◈ 이 목사의 우크라이나 Report 1- 난 우크라이나에 왔다 ◈
지금 막(23일 아침 7시-전주보다 6시간 늦음)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 도착했습니다. 10시간의 모스크바 비행과 2시간의 우크라이나 비행을 마치고 키예프에 도착한 시간은 밤 8시쯤이었습니다. 10시간 기차를 타고 르비브에서 키예프까지 마중을 나오신 백일선 선교사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핏줄이 땡긴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선교사님은 동역하던 최영준 집사님이라는 분과 함께 오셔서 차로 픽업을 해주셨습니다. 그분의 댁으로 가 정성스런 밥을 먹고(족발, 명이나물, 동태찌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대우 근로자로 왔다가 의학을 공부한 후 다시 한의학을 배워 병원 일을 보는 분이셨는데 남매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는 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 중에도부인(김영선 집사)의 거짓 없는 미소와 대우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비행기에서 많이 시달려 피곤했으나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시차 때문이라는데...새벽 3시에 잠을 깨고는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 뒤척이니 그 소리에 잠이 깬 백목사와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아침 일찍 효림이와 셋이서 키예프의 거리로 나갔습니다. 새벽장이 선 곳의 풍경은 남문시장 만큼은 아니어도 할머니들의 보퉁이는 비슷했습니다. 과일이 싼 곳이라 그런지 다양한 과일들이 풍부했습니다. 60흐리나(9,000원)를 주고 장미 세 송이를 사서 잠과 밥을 제공한 김 집사님께 드렸더니 참 좋아하셨습니다.
김만영 집사님이 제일 궁금해 하시는 우크라이나 여성은 역시 김태희도 밭 맨다는 우스개소리가 농이 아님을 증명할 정도였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키예프 관광을 백 목사님 내외와 함께 했습니다. 지하철을 탔는데 이건 지하철이 아니라 속도로는 KTX수준입니다. 고속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2분을 내려간 곳에 자리한 지하철, 지하 100터 깊이에 1960년 만들었다는 지하철은 미국과의 핵전쟁을 대비해 방공호 기능을 갖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하철 열차가 문을 열고 달리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칸마다 사람들로 빼곡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넘치고 곳곳마다 행인들로 붐볐습니다.
경건과 찬란함을 겸비한 소피아 성당, 미하엘 성당, 안드레아 성당, 동굴 수도원, 제1차 세계대전 위령탑과 1940년 대기근(홀로드모르) 때에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식량을 갈취하려고 약 천만의 사람들을 죽인 러시아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만든 기념관, 다양한 물건들을 거리에 놓고 파는 풍물시장, 2005년 오렌지 혁명을 일으킨 마에단 혁명광장 등을 돌아보았습니다. 게다가 도도히 흐르는 드니프르강은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그대로 안고 흐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동방정교회를 믿는 곳입니다. 사람들의 목에는 대부분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있고 차량 실내 거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서도 교회가 보이면 성호를 긋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앙이 삶에 깃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성당마다 참배객들이 줄을 잇고 정성스레 초를 사서 헌촉하는 광경은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농산물과 육류는 우리나라의 1/3밖에 안될 정도로 매우 저렴하나 공산품은 매우 비쌉니다. 자체적으로 제작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을 수입하기 때문이랍니다.
신호등이 거의 없음에도 물 흐르듯 한 거리와 시내 중심의 모든 도로가 엄청난 조각돌로 이루어져 있어서 도로가 아닌 유적지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버스를 탔는데 누가 어깨를 툭툭 쳤습니다. 돌아보니 갑자기 돈을 주는 겁니다. 의아해 하며 머뭇거리니 또 칩니다. 말이 안 통하여 뻘줌하게 있으니 옆에 앉은 사람이 그 돈을 받아 앞사람에게 건네는 행동을 반복해서 요금을 운전기사에게 전달하더군요. 앞에까지 갈수 없으니 대신 내달라는 행동임을 금방 알았습니다. 버스 문은 앞뒤로 열리는데 누구하나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앞의 방법으로 차비를 내는 것을 보고는 생활에 정직함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요?
영어가 거의 안 통하는 나라,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 유명관광지에도 거의 영어 표기가 없습니다. “알고 싶으면 너희들이 우리말을 배워라.”민족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18,9세에 일찍 결혼을 하고도 이혼율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은 나라, 설령 이혼을 했다 해도 다른 사람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나라, 가난해도 조급해 하지 않고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인 우크라이나를 보며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달리는 차 중에서 현대차를 찾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삼성 스마트폰 갖기를 소망하며 한국 연속극을 즐겨본다는 사람들에게서 거부감 보다는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밤 10시 40분 기차를 타고 열 시간을 달려 마침내 목적지인 르비브에 도착했습니다. 난생처음 침대열차를 탔습니다. 시차 때문에 잠을 설쳐서인지 눈을 뜨니 르비브에 도착했습니다.
60년 전에 지어졌다는 선교사님의 아파트는 마치 요새 같았습니다. 효림이가 묵을 방에서 60년 된 먼지를 털어내고 나니 하루가 다 지나갔습니다. 오후가 비껴가는 시간에 효림이 학교를 찾아 언어학원 원장을 만나 면담을 하고 살지도 모를 기숙사를 돌아보니 아들을 이런 곳에 두어야 할까하는 생각에 멍해졌습니다. 르비브 시내를 걸었습니다. 입에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고 역사적이었습니다. 지면 때문에 그만 써야 할까 봅니다. 사랑하는 들꽃가족 여러분, 기도해 주세요. 효림이의 앞길을 위해 부탁드립니다. - 이 목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