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다롱이와 카드 찾으러 간다/김준한
계단을 한단 두단 밟으며 오르지 않고
몇 개단씩 훌쩍 오른 사람은 과연 삶의 깊이를 알까?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빠트리고 길을 지나온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엊그제 셀프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챙기지 못한 카드 찾으러 간다
한 시간 거리를 주행해서 빠트린 것을 다시 찾아와야 하는 일은 수고로운 일이다
그러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오른손의 수고를 잊듯이 오늘 나의 주행은 노동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롱이다롱이와 함께 가기 때문이다
동행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내 삶엔 텅 빈 대나무 속처럼 채우지 못한 것들이 많다
9살 적 정신적 지주였던 엄마가 떠나면서 내 텅 빈 가슴 위에 최초의 매듭이 생겼다
내가 빠트린 것도 아닌데 악착같이 잡으려고 여린 손 사력을 다해 힘주었지만 엄마는,
그날밤 옥상 위에 서서 내가 잡으려 했던 수많은 별빛처럼 허공 멀리 사라졌다
그날 내 커다란 눈 속에서 출렁이던 별빛들은 내 가슴속으로 옮겨와 억척스럽게도 따갑게 했다
20대 때 친구들은 지갑 속의 신용카드처럼
저마다의 여자친구를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구겨 넣고 자랑했다
나는 그 또한 빠뜨리고 사랑에 굶주렸다
어디서도 사랑을 구매할 수 없었다
내 지갑엔 여자 친구란 카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운전하는데 아롱이다롱이가 자꾸 내 옆을 파고든다
차창을 열자 케케묵은 트럭의 먼지가 도로 밖으로 사라졌다
어느새 풍겨오는 봄내음이 밀려온다
아롱아 다롱아 고마워
그나저나 씨부럴 정신 어디다 팔아먹고 신용카드를 놓고 왔단 말인가
세월도 역행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내 인생 그 무엇도 빠트리지 않고 다시 올 수 있을 텐데
엄마도, 여친도, 내 청춘도,
2024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