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잔잔하게 떠들어 줄래?

[안준철]

도서실로 들어서자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해준 분이 계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감선생님이셨다. 다가가서 인사를 드리며 어쩌면 그렇게 표정이 해맑으시냐고 했더니 "영광입니다!"라는 인사로 대신 답을 해주셨다. “제가 영광이죠.”하고 서로 영광을 주고받는 사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선생님들이 도서실로 들어오셨다. 맨 마지막으로 가슴에 명찰을 단 앳된 얼굴의 교생실습생들이 자리하자 내 기분의 일기예보가 흐림에서 맑음으로 뒤바뀌었다.

전주에 살면서 전주에 소재한 학교에서 강의하기는 처음이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대강 눈짐작으로 내린 뒤에 우산을 펼쳐 들고 빗속을 걸어서 행인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전주 우림중학교를 찾아갈 때까지만 해도 내 기분은 날씨만큼이나 우중충했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박성숙의 독일 교육이야기 <꼴찌도 행복한 교실> 탓일 수도 있다. 책 제목이 주는 비현실감이 책을 읽어갈수록 너무도 합당하고 자연스러운 독일 교육의 현실로 확인이 되면서 마음이 울적해진 것이었다. 나는 그런 속내를 선생님들 앞에 솔직히 털어놓으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밝아진 뒤였음으로 칙칙하지는 않게.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독일 교육에 대해서 어렴풋이 들은 바가 있었습니다. 독일은 가을방학을 열흘 정도 하는데 그때는 절대로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정부에서 법으로 정했다는 건데 한 학교가 그런 법을 어기고 숙제를 내주는 바람에 학교장이 중징계를 받습니다. 그런 일이 사실일까 의심이 들기도 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럴 수 있겠구나 싶더라구요. 그런데 왜 가을방학 때 숙제를 못 내게 하는 걸까요?”

잠시 대화가 오고간 뒤,

“맞아요. 숙제가 학생들의 행복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숙제 때문에 신경이 쓰여 가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할까봐 가을방학때는 숙제를 내주지 못하도록 정부에서 법으로 정한 것이지요. 책을 읽어보면 독일은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유난히 민감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처음에는 그것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너무도 합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깨닫게 되지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의 행복에 있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듯이요. 여기서 행복은 미래의 행복만을 뜻하는 건 아니겠구요. 학교 교문을 들어서는데 프랑이 하나 붙어 있더군요. 미래를 향한 무궁한 뭐 이런 문구였는데 그거 교감선생님께서 만드신 거 아니죠? (아니라고 함) 이건 상상력의 빈곤에서 나온 것입니다(폭소).

"인간은 삶을 준비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났다." 이 말은 <닥터 지바고>의 저자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한 말입니다. 명언 중의 명언입니다. 물론 학생도 인간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학생들을  미래적 존재로만 규정하려고 드는 걸까요? 왜 우리는 학생들의 현재의 행복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일까요? 이것이 한국 교육의 가장 큰 오류이자 우리가 깨부셔야할 벽입니다. 학생들은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여기 이 학교에서 행복해야할 권리가 있는 현재적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만약 그들이 미래적 존재라면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인 학생은 서른다섯 살이 되어 전공의가 되기까지는 무엇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수단으로서의 삶만을 강요받게 되는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의사가 된들 절반은 실패한 삶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절반을 희생하여 의사가 된다면 그 의사에게 환자는 무엇일까요? 더더욱 모든 교육비를 국가가 아닌 개인이 지불해야하는 상황에서 말이지요. 이런 사회적인 문제가 교육의 실패로, 교육의 실패는 다시 인간 개개인의 삶의 실패로 이어집니다. 

단기간의 노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많은 복잡한 이유들로 인해 우리가 독일처럼 합당하고 자연스러운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의 교육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해도 피하지 말아야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는 날을 하루라도 더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독일 교육 이야기를 조금 더 하다가 내가 농고 출신이며, 그것도 고2때 친구 따라 가출을 하는 바람에 그해 생활기록부에 성실성과 준법성에서 최악인 ‘다’를 맞은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또한 그 바람에 사립 순위고사에 합격하고도 끝내 전주에서 교사 생활을 하지 못한 케케묵은 이야기까지 나왔다. 고교시절 한 때의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독일은 그런 점에서 매우 느슨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사회 과목에서는 최고점인 1점을 맞은 학생이 수학에서는 최하점인 5점을 맞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또한 그것이 대학을 가거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지금 수학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저자가 한국에서 수학 때문에 겪은 어려움을 생각하면 억울할 만도 하다. 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들을 미래적 존재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그들의 현재적 행복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독일 사회가 느슨한 것은 지나친 속도 경쟁이 인간의 행복을 망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엄마들도 자녀들을 느슨하게 키우는 편이다. 인내심도 대단하다. 조금 긴 글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독일 엄마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아이의 뜻을 존중한다. 특히 과외 활동에 대해서는 완전히 스스로 결정하도록 맡긴다. 그러다 보니 인내심이 적은 초등학교 때는 무엇 하나 진득하게 오래 하는 아이가 드물다. 스포츠는 물론 음악, 미술 할 것 없이 시작했다고 자랑할 만하면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런데 고학년에 올라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악기면 악기, 스포츠면 스포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열심히 한다. 이 중 절반 정도는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거의 프로에 가깝게 열중한다. 엄마의 간섭과는 전혀 상관없이 공부와 취미생활을 스스로 조율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몰입할 만한 한 가지를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 오기까지 아이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한다. 좋다고 생각하던 악기도 막상 해보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멋있어서 시작했던 스포츠도 배워보면 너무 버거웠음을 깨닫기도 한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준 엄마 덕분이다.’

독일 교육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끝냈다. 이제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해야하는데 가만 보니 메일로 보내드린 강의 원고가 선생님들의 책상 위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상기시키자 오늘 자리를 만들어주신 벗 조합원이기도 한 장경덕 선생님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선생님들에게 쿨로 보내드리기까지는 했는데 복사해서 나누어주지는 않으신 모양인데 이미 늦어버린 일!! 이 때 필요한 건 임기웅변이다.   

“오늘 이곳 도서실에 들어오는데 교감 선생님께서 어찌나 해맑게 웃어주시든지 지금도 그 환한 웃음이 제 가슴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원고 없이 강의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원고가 있으면 더 강의가 잘 안 될 것 같아요. 장 선생님 선견지명이 있으시네요."

강의 이야기는 생략할까 한다. 너무 길으면 읽기 싫으니까. 강의와 질의응답 시간이 다 끝나고 짐을 챙기는데 얼굴이 앳되어 보이는 여선생님이 나에게 질문할 것이 있다고 했다. 좀 부끄러워서 질의응답 시간에는 질문을 못했다고 했다. 잠시후 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한 아이가 너무 떠들어서 너는 옆에 친구에게 미안하지도 않니? 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미안하지 않대요. 그런 아이에게는 뭐라고 해줘야 하죠?”

“친구에게 미안하지도 않니? 라는 질문 속에는 그 아이가 없네요. 그 아이는 그 친구 옆에서 친구의 공부를 방해하는 미운 아이일 뿐이죠. 그런 취급을 받았으니 그런 식의 대답이 나오는 건 당연하죠.”

“아, 그럼 어떻게 말을 해야 하죠?”

“너 때문에 수업하기가 좀 힘드니까 조금만 잔잔하게 떠들어줄래?”

[아롱이 다롱이 아빠^^]

ㅎㅎ 갑자기 아시바 일 할때 몇 명이 팀으로 일을 했는데 위에 사장님이 주신 일량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일을 하는데 주위에 몇몇 형들이 설렁 설렁 게으럼을 피우길레... 그냥 참고 내가 좀더 열심히 하지 뭐 했다가 그게 하루 이틀 반복되니깐 저도 스스로 열이 받아서 ㅋㅋ 어느 날 한 마디 했는데... 형들이 그렇게 일 하면 다른 우리가 힘들잖아요.. 결국 이 일을 다끝내야 우리가 월급을 받는데.. 형들이 스스로의 수고를 동료에게 떠 넘기고 돈은 다 받아 가잖아요 그럼 그게 도둑들하고 뭐가 달라요? ㅎㅎㅎㅎ 어린 제가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 했었죠...

[안준철]

하하 너 같은 사람이 있어서 사화가 이만큼 돌아가고 있는 거 아니겠냐!!

[김영아]

시행착오와 기다림......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지요^^

[안준철]

와 그러시군요. 어려운 일인데 잘 하고 계시나봐요. 그 결실을 꼭 보게 되시길 빌어요^^

[정성권]

교감 선생님이 "영광입니다" 하면 "전 굴비입니다" 했어야 했는데 ㅎㅎㅎ

[아롱이 다롱이 아빠^^]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안준철]

나도 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