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요한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1. 마가 요한을 생각할 때 그의 연약한 점 두 가지
첫째 예수님께서 잡혀가시는 시간에 모든 제자들이 달아난 것은 물론이고, 특별히 베드로는 멀찍이 있으면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되 맹세,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막 14:51-52)는 기록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청년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유월절 만찬을 잡수시던 곳이 마가의 다락방이었고 만찬이 끝난 후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향하셨습니다. 마가는 자기 집에서 잠들었다가 후에 예수께서 잡혀 집 앞을 지나가실 때 잠에서 깨어 덮고 있던 베 홑이불만 걸치고 무리들을 따르다가 예수님을 따라온 무리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잡으려 하자 베 홑이불을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간 것입니다. 이 기록을 읽는 독자들은 마가 요한이 연약하여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둘째 마가 요한은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그 선교팀의 수행자로 동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그만 선교팀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행 13:13). 그후에 2차 전도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 마가 요한을 데려가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심한 말다툼이 일어났고, 결국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거쳐 더베로 이동하였습니다(A.D. 49년).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조카였습니다(골 4:10). 마가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12장 12절은 마가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보다는 그의 어머니와 그곳에 모인 성도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사람들이 흔히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말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요, 여기는 120여 명의 성도들이 오순절날 성령을 받았던 곳이기도 합니다(행 2:1~4). 당시의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에 12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을 소유했다는 것은 마가의 집안이 남달리 부유했던 것을 보여주며, 이 집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으며(막 14:14~15), 오순절 이후에는 기독교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감옥 문이 열리고 성령에 이끌리어 밖으로 나와 찾아간 집이었습니다(행 12:6~16). 이렇게 부유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던 마가 요한이 선교비나 여행에 필요한 짐, 심지어는 두 벌 옷이나 신발 지팡이도 없이 고된 선교 여정을 이어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요, 그래서 결국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린 것으로 생각됩니다(행 13:13~14). 아직 믿음이 어리고 고난을 이겨낼 만한 용기와 인내와 장성함이 없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설명-마가는 두 사람을 따라 먼저 구브로에 갔다. 이곳은 바나바의 고향으로 마가의 친척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마가 일행을 환대해 주고 거짓 선지자를 징계하여 소경이 되게 하는가 하면 총독 서기오 바울이 회개하고 주를 영접하는 등을 보며 마가는 무척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단의 여정이 언제나 이처럼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곳을 떠나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갔다. 때는 이미 초여름이라 더위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고 전염병이 유행하였다. 더군다나 선교단이 나아가고자 하는 터키 중앙고원 지대에는 지형이 험하고 황량하여 산적 떼의 출몰이 잦았는데, 이같은 산적 떼 얘기가 사방에 퍼져 있었다.
갈라디아 지방으로 계속 가고자 하는 바울의 주장에 바나바는 찬성했으나, 마가는 더 이상 고난과 싸우면서 고향을 멀리 떠나 이국 하늘 아래서 처음 겪는 어려운 전도 여행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부유하고 유약하게 자란 마가로서는 이미 많은 인생 경험을 쌓은 바울과 행동을 함께하기는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드디어 이들 일행과 헤어져 예루살렘의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2. 바나바와 베드로와 바울과 동역한 마가 요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와 바나바는 오누이 사이여서, 마가가 삼촌 바나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 봅니다.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비교적 부요한 생활을 누리며, 독신이었지만 일찍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최후의 만찬도 자기 집에서 하도록 했습니다. 마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였고, 어머니와 바나바에게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자애롭고 믿음이 돈독한 어머니, 유복한 가정환경, 유대인으로서의 철저한 신앙교육, 예수님과의 만남, 자기 집에서 열렸던 은혜로운 기도회와 예배들과 성령 강림의 체험, 사도들과의 어울림 등, 너무나 좋은 신앙환경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마가와 바울의 만남은 바나바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바나바가 바울과 함께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돌아올 때에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옵니다(행 12:25). 바울과 마가의 직접적인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에 그는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선교에도 열심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은혜에도 참여했을 것이요, 공회와 바울의 핍박으로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었을 것인데도 기꺼이 선교여행에 동참한 것을 보면 자신은 물론 다른 교인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기록했던 부끄러운 모습을 회개하고, 다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열심히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가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선교팀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린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바나바와 함께 2차 선교를 하게 하였고, 그를 더 연단시켜서 베드로와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마가 요한은 바나바와 선교여행 이후 로마에 들어가 베드로의 수종자와 통역자가 되었고, 베드로로부터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듣고 복음서를 저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입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인 파피아스(Papias)에 의하면 베드로가 로마에서 사역할 때 베드로의 설교를 통역했고, 교부 이레니우스(Irenaeus)에 의하면 베드로에게 들은 내용을 근거로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마가 요한은 베드로가 로마 감옥에 있는 동안 그를 보살피며 베드로의 영적 아들 역할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 5:13). 그리고 마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보다도 베드로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많고 이로 인해 ‘베드로 복음’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그가 기록한 이 마가복음은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 후에 로마의 시험과 박해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빛이 되고 위로와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연약하고 비겁해 보였던 마가 요한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한 신앙의 용사가 되었는지 새롭게 놀라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0여 년 후에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골 4:10).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나의 동역자 마가”라고 부르며 안부를 전하고 있으며(몬 1:24), 바울이 죽기 전 쓴 디모데후서에서는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말합니다(딤후 4:11). 이전에 바나바와 다투며 헤어지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요? 바울은 그를 용서하고 귀하게 여기며, 기꺼이 ‘동역자’라고 인정하는 것을 봅니다.
전설에 의하면, 마가 요한은 후년에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창립자가 되고 감독으로서 그곳에 머물러 이집트 전도에 힘썼고, 트라야누스 황제의 박해를 받아 줄에 매여 끌려다니며 고초를 당하다가 불 속에 던져져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3.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용납하고 동역하는 주님의 종들
마가 요한의 삶을 보면서 복음 전파를 위하여 부름받은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부모님께 받은 물질적인 유산과 신앙의 유산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한 모범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의 일을 하려고 기꺼이 나설 줄 알고, 그러다가 실수와 허물을 보이지만 주저앉아 버리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더욱 힘써 일하는 모습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와 삼촌 바나바,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을 생각하면서 마가 요한의 과거를 모두 용서해주고, 새로운 모습을 귀하게 여기는 시각을 배우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늘 변화시키시는 창조주이십니다. 때로는 실수나 범죄를 통하여, 때로는 환난과 핍박을 통하여 우리의 연약과 한계를 알게 하시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삶을 통하여 배우고 싶습니다.
교회의 목회나 해외 선교 사역에서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사람들이 서로를 용납하고 협력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시각이나 체제나 방식에 어긋난다고 동역할 만한 사람인데도 쉽게 배척하고 헤어지기만 한다면, 모세나 다윗이나 바울의 모습에서 보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칼빈 선생님도 당시의 수많은 개혁자들과 얼마나 많이 협력하고, 필요하면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자주 생각합니다. 지도자들이 서로 이런 자세를 갖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어서 한 교회 안에서 담임목사와 부목사 사이에도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을 가끔 듣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하여 일하려고 나선 분들이라면 어찌하든지 복음이 전파되기 위하여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6장을 읽으면서 바울 사도가 다양한 로마 교인들에게 문안하는 것이 마음을 울립니다. 동역자만이 아니라 한 가족임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 중에는 여인과 심지어 노예도 나온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는 1)지나친 개인주의, 개교회 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2) 과연 빈부귀천과 남녀노소를 차별없이 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직분과 신분을 앞세우는지 3) 마지막으로 사명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조건이나 환경을 우선하지 않고, 사명을 먼저 생각하는지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마가 요한의 허물을 덮어주는 바나바와 어머니와 바울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의 태도,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동역이 우리의 신앙공동체 안에서 보기를 원하는 모습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 10:3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