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024. 7월 초대시조
돌탑
이승현
돌탑을 허물다 보면 들리는 무엇이 있다
돌과 돌 층간 사이 흐르는 빛의 여울
활 없이 속내를 켜는 큰 산, 먼 강물 같은
점이면 점 하나로 선이면 선 하나로
햇빛과 장대비로 덧칠하며 쌓아왔던
살아온 이력만큼만 들을 수 있는 그런 소리
가슴속 말간 물로 돌탑을 풀어낼 줄 알면
돌 하나 내릴 때마다 산 하나가 다가와 앉고
바람도 탑돌이하다 듣게 되는 제 목소리
■ ◆이승현
「
이승현
2003년 유심 등단, 이호우 신인문학상, 나래시조문학상, 서울시문학상 수상, 시조집 『빛 소리 그리고』 『사색의 수레바퀴』 『아내에게 바치는 연가』.
」
시인은 ‘돌탑’을 쌓은 후에 돌들이 탑이 되기까지 오래 견딘 시간을 짚어본다. 점과 선을 이어 반듯해진 돌을 한 층 한 층 쌓고 내린 숱한 날은 돌과의 연이 닿은 일이며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나 또한 마음속 평평한 자리 탑을 쌓았지만 와르르 무너져버린 일이 허다했다. 쌓는 일만 집중했지 내리는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돌의 단단함과 묵직함을 먼저 배웠어야 했다. “돌 하나 내릴 때마다 산 하나가 다가와 앉”는 것을 보는 시인의 심안이 웅숭깊기만 하다. 시장통에 가면 층층이 쌓아올린 밥상을 이고 배달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밥때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한 층 한 층 밥탑을 내려주는 일도 얼마나 무량한 일인가, “바람도 탑돌이하다” “제 목소리”를 듣는다는 돌탑은 어디쯤 가야 있을까, 시인이 돌탑을 내리는 그 언저리엔 향기로운 꽃탑이 철마다 피고 지리라.
시조시인 이태순
출처 : 중앙일보, 2024.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