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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꽃이 필 때 그곳에 한 번 놀러 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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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차로 덕골 스님 태우고 가조에서 딸기밭에 가서 딸기 한박스 사들고 여행을 시작한다.
대구에서 여여행보살 차로 갈아타고 안동에 가서 영양오지마을에서 사과농사 짓고 있는
범산님 차 타고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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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온통 초록이다. 안동 봉정사에 도착하였다.
초록의 향과 오래된 절의 느낌이 어우러져 그윽한 차향처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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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행보살님이 새벽부터 싸 온 소풍도시락(종이 가방이 찢어져 비닐봉지에 둘러 맴) 들고
봉정사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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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들어가는 돌계단 옛스러워 좋다. 풀들도 자연스레 예쁘다.
꾸미지 않음속에 정갈하고 오래된 향이 마냥 좋다. 있는 그대로 지켜준다는 것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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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를 땅에 묻어 둔 모습이 얼마나 정겹던지, 저 뚜껑 열면 맛난 냄새 폴폴 진동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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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도 참 앙증맞다. 절 화단의 꽃들은 수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냥 피어 있는데 다 부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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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독특하다. 커다란 문짝 같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쉼터가 되어 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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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의 풍경을 한 눈에 바라다 보며, 스님 한 마리 새 되어 저 숲으로 날아가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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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잠시 세상 시름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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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초록에 갇혀 한 발짝만 더 떼면 숲속으로 빨려 들 것 같다.
그곳에서 한 포기 풀이 되려나? 새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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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래된 나무! 봉정사와 함께 이곳을 오래도록 지켜보았겠다.
그 많은 사연들을 다 받아내고 저렇게 고운 초록잎으로 피워내다니, 부처님의 벗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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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소풍나와서 도시락 까먹는 시간.
구운 계란과 유부초밥과 김밥, 과일과 캔커피!
모두들 어린시절 소풍나온 기분이라며, 사이다 한 병의 추억까지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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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근방에서 안동 명차 국화차를 개발하신 돈수스님댁에 들렀다.
육잠스님이 제주도에서 출가하기 전 만난 스님인데 30년 만의 만남이었다.
스님은 글과 그림을 그리시고, 동화적이고 예술적이고 자유분방한 분이셨다.
사향청심원을 차 마시기 전 하나씩 주시고, 오랜 벗이 찾아왔다며,
운남성에서 직접 만들어 온 차 를 시작으로
' 차의 맛은 텅빈 골짜기처럼 고요하고 그윽하다' 그 맛을 느끼게 해 주셨다.
사진 찍는 걸 꺼려하셔서 차를 따를 때, 꽃밭에 물을 주듯이 차를 대접하는 모습이며,
집안 곳곳의 독특한 예술작품 같은 조각품과 글과 그림들은 마음에 담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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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직접 지은 호가 마음을 사로 잡았다. '아통'
치과에 가서 이 치료할 때의 고통를 느끼며, 가장 치열하고 고통스러울 때,
진실해지고, 맑아지고, 깨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며 그렇게 지으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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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영양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범산님의 집에 왔다.
모두들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스님은 이런 오지는 처음이라며 놀라워하셨다.
깊고 깊은 숲속에 숨겨진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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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꽃과 민들레 홀씨와 애기똥풀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야생 그대로다.
그만의 왕국에서 홀로 지내는 기분이 어떨까?
꼭 우리들이 그의 보금자리를 차지한 산짐승이 된 느낌이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 사과밭에서 숨바꼭질을 하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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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지피고 숯불에 불 피우고 저녁을 먹었다.
중국 운남성 시골농가에 온 듯하기도 하고, 빨치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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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농사 짓고, 책읽고 자연 감상하며 그렇게 이곳에 홀로 지내시는 범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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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골짜기처럼 고요하고 그윽한 여행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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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길 의성 고운사에 들러 부처님 앞에 엎드렸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마음에 담아 온 풍경들이 참 기쁨을 준다.
첫댓글 좋은 계절에 좋은 나들이 하셨네요.^^
무슨 인연인지, 저도 이즈음 그 쪽으로 자주 ...
안동, 영양, 의성...경북북부의 정서가 진하게 밀려오네요,
저야 도시에서 나고 자랐건만, 역시 고향쪽 이라...
영양의 범산님댁은 어디쯤인가요?
기회 닿으면, 지나는 길에 한 번 들러가고 싶네요.^^
지금 영양에서는
대한민국 산채박람회와 영양군 산채 한마당이 5월 18일부터 열리고
조지훈 예술제도 함께 즐길 수 있다고 하네요.
고운사 가는 길에는
폐교에 10명의 학교 때 동무들이 함께 집을 짓고
앞으로의 삶을 같이하기로 한 친구 언니네가 계셔서
지난 해 가을 한 번 다녀왔었지요.
꿈을 이룬 아름다운 약속이 몹시도...^^
범산님 댁 주소는 잘 모르는데 오지중에 오지였어요. 마을에서 차로 20분 정도 밀림 같은 골짜기를 지나갔지요. 아, 그곳을 생각하면 마음이에 사과꽃이 날리고, 애잔해지고, 포근해지기도 하네요. 나중에 주소 알면 알려드릴게요. 숨어있는 곳이라 찾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