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史記 43회》
☆左遷과 錦衣還鄕☆
항우는 함양성에서 아방궁 등 진나라 흔적을 다 지워버리고 지난 3년동안 생사를 같이 하며 싸웠던 장수들에게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였습니다.
논공행상은 모사 범증과 의논을 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자신은 초패왕(楚覇王)이라 칭하며 최고의 권좌에 오르고 나머지 장수들에게도 영지를 나누어 주면서 왕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가마솥에 넣고 삶아죽이고 싶었지만, 그리되면 민심을 잃어 항우 자신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관중에서 가장 거칠고 험한 땅인 파촉 즉 漢中으로 보내면서 漢王에 봉했습니다.
그 땅은 함양에서 보면 왼쪽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신 장군이 한왕 유방을 수행해 가면서 "이것은 좌천(左遷)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좌천이라는 말은 주로 공직사회에서 뜻하지 않게 현재의 보직 보다 못한 자리로 밀려났을 때 좌천되었다고 하는데, 좌천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유방은 권토중래(捲土重來)하여 항우를 물리치고 漢나라라는 대제국을 창업(創業)하였습니다.
한편 논공행상을 끝낸 항우는 함양에 있지않고 고향인 초(楚)나라 팽성으로 떠나려고 짐을 챙겼습니다.
이때 모사 범증이 "장차 초패왕으로서 전국을 통치하려면 중앙인 이곳 함양에서 즉위식을 가지고 황제에 올라야지 팽성은 너무 남쪽이고 땅이 좁아 전국을 통치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건의하였으나, 항우는 "사나이가 출세를 했으면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해야 한다." 즉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범증은 몇번 더 마음을 돌려보려고 건의해 보았으나 황소같은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실망한 범증은 이런 멍청한 놈을 따라다니다가는 내가 명대로 살지 못하겠다며 사표를 던지고 종적을 감추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錦衣還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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