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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장난꾸러기'로 번역되는 트릭스터(Trickster)는 이야기문학에서 주류 인물들과 대적하거나, 혹은 그들을 돕는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서양의 신화에서는 주로 신이나 자연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장난스럽게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선하다가도 악의 편에 서기도 하고, 무언가를 새롭게 생산하는 역할을 하다가도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기도 한다. 그래서 명민한 천재적인 면모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반면 어리석은 행동으로 다른 이들의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되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시간의 숲에서 고대 중세 근세의 문화영웅을 만나다'라는 부제의 이 책은 기존의 질서에 적극적으로 합류하지 못하는 존재들을 일컬어 '영원한 방랑자'라고 지칭하고, 서양문화에서 발견되는 트릭스터들을 '문화영웅'으로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트릭스터라는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서, 먼저 서양문화에서 적절한 때와 장소 그리고 상황에 맞는 방법을 적절하는 구분하는 예의와 도덕 규범을 지칭하는 '데코룸(decorum)'이라는 용어를 제시하고 있다. 즉 트릭스터는 구범과 예의를 존중하는 서양 문화의 외부에 존재하는 인물이며, 주어진 규범을 한계를 넘고자 할 때는 누구나 트릭스터로 정의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기존의 사회질서에서 용인되기 힘든 존재들을 지칭하는 트릭스터는 어느 사회에서는 존재할 수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이를 위해 먼저 1장에서 '데코룸, 삶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사회적 규범과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하고 있다.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로맨스 멜로드라마인 영화 <유브 갓 메일> 등의 작품에 나타난 인물들이 기존의 규범과 어긋나는 행동을 조명함으로써 '데코룸'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한다. 그것이 때로는 교양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엄격한 관습이나 법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등 시대에 따라 데코룸은 다르게 적용되어 왔음을 드러내고 있다.
애니매이션 <모모노케 히메>의 줄거리로 풀어가는 2부 '트릭스터, 시간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서양문화에 등장했던 트릭스터들의 존재들에 대해서 조명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서양문화에는 트릭스터는 '시간 속에서 흩어지고 살아나는 존재'이며'폭력과 사랑'의 양면성을 의미하는 존재라고 이해된다. '바보와 광인은 한 배를 탄다'라는 제목의 3부에서는 트릭스터의 이러한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설명하면서, 특히 역사에서는 기존의 권력자들이 이들을 쉽게 '타자'로 치환해서 적대자로 만들었음을 밝혀내고 있다. 예컨대 농민반란의 지휘자들에게 덧씌워진 반역자의 이미지나, 중세의 광풍 속에서 희생된 이른바 '마녀사냥'의 대상자들이 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양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트릭스터는 놀이꾼의 이미지가 강하며, 그래서 놀이문화를 이끄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놀이문화인 '루두스'로 지칭되기에, 4장에서 '루두스, 진지하게 놀아라'라는 제목을 통해서 트릭스터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가 안내하는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트릭스터의 성격과 의미를 보다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단순한 장난꾸러기의 이미지로 남아있던 트릭스터의 성격와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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