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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를 받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한 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표제어는 하루키의 작품이나 인터뷰에 한번이라도 언급되었던 것들로 구성되었고, 그것의 설명도 일반적인 사전의 형식이 아닌 하루키와 관련된 내용들만 언급되어 있다. 저자가 하루키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을 책의 형식과 내용만을 보더라도 금방 알 수가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하루키에 대해서 관심이 덜한 독자라면, 이 책이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하루키의 팬이라면 반드시 하나쯤 소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루키의 작품이 한국에 처음 번역되어 소개되었던 1980년대 후반 무렵, 국내에서 활동하던 한 자가의 작품이 하루키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의심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해당 작가는 표절이 아니라, 하루키의 작품을 혼성모방했을 뿐이라고 변명을 했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혼성모방’을 여러 작품들의 일정 부분을 베껴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드는 기법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성모방’이라는 용어로 피해 나갔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것은 명백히 표절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베스트셀러 작품을 의도적으로 기피했던 내 성향과 겹쳐, 하루키의 소설은 처음 번역된 <상실의 시대>를 제외하면 읽었던 기억이 없다.
이후 하루키의 작품을 둘러싼 출판사 간의 과다한 인세 경쟁이 보도되면서, 구태여 찾아 읽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 더더욱 읽을 기회를 찾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이 책을 읽은 이후에도 하루키의 작품을 쉽게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인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통해서 하루키의 작품 세계의 면모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한 작가의 작품을 철저히 조사해서 작가 사전과 같은 형식으로 꾸민 저자의 노력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애당초 ‘문학을 잘 알지도 못했다’는 저자는 왜 하루키에 빠지게 된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형식으로 독특한 내용과 구성의 저서를 편찬하게 된 것일까? 책을 다 읽은 지금에도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이다.
‘더없이 꼼꼼하고 너무도 사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어 500’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하루키의 작품과 인터뷰 그리고 번역 등을 통해서 언급되었던 다양한 표현들을 표제어로 올리고, 철저히 하루키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재규어’에 대해서, 하루키의 어느 작품에 등장하고 등장 인물 가운데 누가 타고 다니는 지 등에 대해 설명을 했을 뿐이다. 또 하나 하루키가 가장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미국 작가 ‘피츠제럴드’ 역시 하루키의 언급이나, 어떤 작품이 영향을 받고 또는 어떤 작품에 등장하는 지만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은 사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일반적인 사전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말하자면 하루키의 팬들을 위한 안내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루키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하나쯤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지적 만족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리뷰도서가 아니었다면, 구태여 이 책을 구입해서 읽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그의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없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일부러 찾아서 읽을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과 모든 기록들을 살펴, 그 작가만을 위한 사전을 만든 저자의 열정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문고판 형식의 작은 판형으로 편집되고, 각각의 항목에 대한 서술도 그리 많지 않지만 적어도 내용 만큼은 하루키 작품의 면모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점도 특징이라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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