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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의 시 ‘꽃’ 중에서)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내용으로 잘 알려진 김춘수의 시 ‘꽃’의 앞부분이다. 실상 이 작품은 꽃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단순히 꽃이 아닌 존재와 존재 사이의 상호 관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던져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표현들과 그에 관한 간략한 설명, 그리고 그 단어들을 뒷받침하는 그림들만으로 구성된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김춘수의 이 시를 떠올렸다. 아마도 제목에서 보이는 ‘이름’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가 저자에게 각인되었던 내용들을 나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저자는 이러한 단어를 떠올렸지만, 다른 이들은 자기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단어를 대신할 수도 있다고 하겠다.
‘세상 모든 언어에는 복잡한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저자는 자신이 선택한 단어들을 열거하면서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각 나라의 초상화’를 그려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예컨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영국’의 경우, 일을 다 끝마쳐서 더는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이라는 뜻 풀이와 ‘스트라이크히도니아’라는 단어를 나란히 제시되고 있다. 이와 함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기분으로 가장 편안한 사람들 속에 이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크랙’,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을 뜻하는 ‘히라이스’, 그리고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는 것으로 안락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는 ‘쿠리’라는 단어들을 영국을 대표하는 단어로 제시한다. 물론 저자가 선택한 단어들에 걸맞은 그림들이 파스텔 톤으로 배경을 이루고 있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저자는 그 대상을 독일과 그리스, 덴마크와 이집트 등으로 확장시켜 자신이 선택한 세계 각국의 단어들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집에 혼자 남아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 ‘슈트름프라이’를 비롯하여 6개의 단어를 제시하고, 역시 그에 걸맞은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인도와 아이슬란드,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고 중국과 네덜란드 등에 관한 저자의 단어 선택은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노르웨이와 포르투갈, 핀란드와 프랑스, 스웨덴과 일본 등 저자가 선택한 국가는 모두 17개국에 달한다. 아마도 저자에게는 한국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 나라인 듯, 이 책에서는 '한국의 초상화'를 대신할 수 있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실제 저자는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라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다양한 원어민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저자가 선택한 단어들은 도움을 주었던 이들의 생각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또한 저자가 생각하는 여러 나라의 이미지들이 전제되엇을 것이고, 때로는 그것이 선입견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김춘수의 시 ‘꽃’의 구절처럼 이 책을 집필할 당시에는 이러한 단어들을 떠올렸겠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 해당 국가에 대한 이해가 좀더 깊어진다면 먼저의 단어들이 다른 표현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저자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저 자기 자신의 단어와 표현을 통해서 떠올리고자 하는 대상과 연결시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보다 자세하게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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