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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식에 특별한 제약이 없으며, 글쓴이의 감정이나 경험 등을 정리하여 자유롭게 쓴 글을 일컬어 수필이라고 한다. 시나 소설과 더불어 근대의 문학 양식으로 구분하지만, 작가의 창작 역량이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이 또한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수필은 독특한 특징을 지닌 문학 갈래로 여겨지기도 하며,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분야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이를 조금은 진중한 주제를 다루는 중수필과 개인적 감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경수필로 나누기도 하지만, 그 둘이 엄격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수필은 다른 문학 갈래들보다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편자 역시 서문에서 ‘수필은 그렇게 화려하지도 못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다른 장르보다 정직하고 우아하며 격조가 높은 장르’라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의 문학사에서도 이규보 등 고려 후기 문인들이 남긴 글을 수필 양식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다른 문학보다 더 개성적이며’ 글쓴이가 그저 ‘붓 가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품격 있는 선비의 글’이라고 규정한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수필의 가치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독자들에게 새롭게 알려주기 위해 그 전범을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책을 엮어냈다고 밝히고 있다. 기왕에 수필가로 얄려진 이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필자들의 글을 모아 그것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누어 엮어낸 결과물이라고 하겠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편자의 ‘책을 펴내며’와 별도로 김태길의 ‘수필과 그림’이라는 글이 본몬의 맨 앞에 배치되어 있다. ‘한 편의 수필을 쓰는 일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일 사이에 근본적인 유사점이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이 글을 통해서, 편자는 아마도 수필의 특징과 그 전형을 이 글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라고 이해된다. ‘화가는 선과 색채를 써서 대상의 모습을 그’리지만, ‘수필가는 산문 형식의 글로 대상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을 두 양식의 유사점이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서투른 화가‘와 ’높은 경지에 이른 화가‘가 구별되듯이, ’수필을 쓰는 사람들도 그 수준에 따라서 그들이 그리는 대상의 층이 얕기도 하고 깊기도 하다‘는 것을 애써 강조한다. 결국 수필이란 누구나 쓸 수 있는 양식이지만,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깊이가 갖춰져야만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사색’이라는 주제의 제1부에는 피천득의 ‘수필’을 비롯해서 11편의 수필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이양하의 ‘나무’와 이상의 ‘권태’를 비롯하여 법정의 ‘무소유’ 등 이미 명문(名文)으로 평가된 수필들이 포함되어 있다. 제2부의 ‘자연’이라는 주제에서는 이희승의 ‘청추 수제’를 비롯해 13편의 글이 전제되어 있고, 김진섭의 ‘백설부’와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등의 익숙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책으로 공부하던 시절의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던 작품들이 적지 않아.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이들의 수필을 통하여 때로는 그 내용에 공감하기도 하고, 고풍스러운 낯선 문체를 마주치기도 했다.
‘삶’이라는 주제를 다룬 제3부에서는 이양하의 ‘페이터의 산문’과 민태원의 ‘청춘 예찬’ 등 13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항목에 수록된 피천득의 ‘인연’ 역시 옛 교과서에 수록된 글이라,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읽으면서 옛 기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생활’이라는 주제로 이희승의 ‘딸깍발이’를 비롯해 11편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수필이란 다양한 소재로 누구나 쉽게 도전해볼 수 있는 양식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도, 가까운 이에게 전하는 편지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수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조금은 가볍게 다양한 수필들을 읽으면서, 내 나름의 생각에 빠져들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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