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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선사시대 유적
시생대(Archeozoic era) | |||
원생대(Proterozoic era) | |||
고생대(Paleozoic era) | |||
중생대(Mesozoic era) | |||
신생대(Cenozoic) | 제3기(Tertiary period) | 선신세(鮮新世, Pliocene) | |
제4기(Quaternary period) | 홍적세(洪績世, Pleistocene) | ||
충적세(沖積世, Holocene) | Early | ||
Middle | |||
Late |
제1절 지구의 역사(지질연대)
지구의 생성 지구는 약 45억 년 전에 생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생명체가 살 수 있게 된 시기는 약 10억 년 전이며 인간이 살 만한 환경이 갖춰진 시기는 수천만 년 전이다. 지구의 역사(지질 연대)는 시생대-원생대-고생대-중생대- 신생대라 불리는 시기로 이루어지며, 신생대는 다시 제3기와 제4기로 나누어지며, 제4기는 다시 홍적세와 충적세로 구분한다. 인류의 등장 인류는 제3기말에서 제4기 홍적세 초기에 등장하였다. 약 300만 년 전에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오스트랄 로피테쿠스가 출현하였고, 약 200만 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손쓴 사람)가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난 호모 에렉투스(곧선 사람, 直立猿人)는 불을 사용하고 사냥과 채집을 하며 살았다. 그 후 20만 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슬기 사람)에 속하는 네안데르탈인이 나타났으며, 진정한 의미의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슬기 슬기 사람)는 약 4만 년 전에 출현하였다.
2.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구분
선사시대(prehistoric age) | 역사시대(historic age) | ||||||
구석기시대 | 신석기시대 | 고대 | 중세 | 근세 | 근대 | 현대 | |
청동기시대 | 철기시대 | 고려시대 | 조선전기 | 문호개방 | 광복이후 | ||
수렵, 어로, 채집, 뗀석기, 이동생활 | 농경목축, 간석기, 정착생활 | 계급발생, 국가성립(고조선) | 부족국가, 정복전쟁, 3국(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통일신라, 발해 | 개방적 신분구조 | 상공업발달, 화폐경제발달, 자본주의 맹아 | 문호개방, 근대화 | 광복과 분단, 민주화, 경제성장 |
구분 | 구석기시대 | 신석기시대 | 청동기시대 | 철기시대 |
시기 | 약 70만 년 전 | 기원전 8000년 | 기원전 10세기 | 기원전 4세기 |
유물 | 뗀석기(打製石器)-몸돌석기(石核石器), 격지석기(剝片石器), 골각기 주먹도끼, 찍개, 팔매돌, 긁개, 밀개, 슴베찌르개 | 간석기(磨製石器, 농경굴지구, 돌도끼, 돌보습, 괭이(석초, 石鍬), 따비, 삽 반달돌칼(半月形石刀), 갈돌(碾石)(갈돌(棒)과 갈판), 토기/전기 : 이른민무늬토기(原始無文土器)와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중기: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후기: 平底櫛文土器, 물결무늬토기(波狀文土器), 번개무늬토기(雷文土器), 눌러찍기무늬토기(押印文土器), 골각기 | 간석기(농기구: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바퀴날도끼(달도끼, 環狀石斧), 홈자귀(有溝石斧)) 청동기(무기 : 靑銅劍, 靑銅鏃, 제사 도구: ):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 거친 무늬거울(多鈕粗文鏡),청동방울(靑銅鈴), 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 토기 : 민무늬 토기(無文土器), 미송리식 토기, 붉은 간토기(<홍도(紅陶),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 철기(농기구: 鐵劍, 鐵鉾, 철괭이(鐵鍬), 철보습(鐵犁), 철낫(鐵鎌)․ 철등자(鐙子), 재갈(鐵轡), 무기: 靑銅劍, 靑銅鉾, 靑銅戈, 청동방울(銅鐸), 멍에(車衡) 청동기(의기화): 세형동검(細形銅劍), 잔무늬 거울(多鈕細文鏡), ․토기(민무늬 토기, 덧띠토기, 검은간토기, 중국식 회색토기 다양화), 화폐(명도전), 거푸집(鎔范), 동물모양띠고리(動物形帶鉤<馬形, 虎形>), 붓 |
유적 | 동굴 | 흙무덤,조개더미(貝塚) | 巨石文化: 고인돌(支石墓, dolmen), 선돌(立石, menhir), 돌널무덤(石棺墓) | 독무덤(甕棺墓),널무덤(土壙木槨墓) |
경제생활 | 사냥(狩獵), 채집 | 사냥(狩獵, 화살촉(石鏃), 창(石槍))・채집・어로(漁撈, 그물추(石錘), 작살(杈), ․원시적 농경(조․피), ․원시적 수공업(가락바퀴(紡錘車). 바늘통과 뼈바늘(骨針)) | 농경의 비중 증가(벼농사 시작), 목축의 발달(가축사육 | 철제 농기구 사용 (생산력 증대),교역(명도전, 연나라 화폐) |
주거생활 | 동굴, 바위그늘, 평지 생활 ․강가의 막집 ․불의 사용 | 강가. 해안가 거주 ․원형, 방형 움집(竪穴住居, 움막(움幕), 굴실(堀室), 토막(土幕)), 화덕자리(爐址). 窟.굴 | 산간 구릉 지대 거주 ․움집의 규모 확대- -지상 가옥화, 배산 임수의 취락 | 주거 지역 확대 |
사회생활 | 무리생활(horde), 이동생활 | 정착생활, 부족사회(족외혼, exogamy), 평등사회 | 성읍국가(군장국가)의 성립, 사유재산발생, 계급분화, 남성중심사회 | 연맹왕국 성립, 직업의 분화, 제천행사 |
문화예술 | 동굴벽그림(洞窟壁畵)(주술적 의미) | 가면, 동물조각, 장신구 | 종교 의식 관련 | 바위그림(岩刻畵), 청동기 의기화 |
종교・신앙 | animism, shamanism, totemism, ancestor worship. 영혼불멸사상 | 선민사상 | 부족신 숭배 |
제2절 구석기시대의 유적
시기 | 유적 유물 | 내용 |
전기 | 경기도 연천 전곡리(全谷里, 1979) | 유럽 Assurian계통의 주먹도끼와 동아시아식 찍개가 동시에 출토, 후기까지 연결되며 약 30만년전 제2간빙기 것으로 추정 |
평양 상원 모루동굴(1966) | 동물화석과 주먹도끼, 긁개, 망치 등 석기 발견, 60만년전~50만년전으로 추정, 중국 뻬이징 원인과 동시대의 것으로 추정 | |
청원 두루봉 동굴(1975) | 3~4살 되는 어린이 두 사람의 모든 뼈와 화덕자리 발견(슬기슬기인) | |
충북 단양 도담리 금굴 | 한반도 구석기 시대의 시작 시기를 입증, 70만년전으로 추정 | |
기타 | 흑룡강성 하얼빈의 고향둔(1931), 길림성 안도의 석문산촌동굴, 함북 웅진 굴포리(1962), 황해도 평산의 해상동굴, 강원도 강릉시 심곡리 | |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1964) | 13개 문화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기 구석기 유물부터 중기를 거쳐 후기까지 포괄적 유물이 출토되며 가장 밑의 제1문화층은 찍개층으로 60~5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주거지, 화덕자리, 외날찍개 발견 | |
중기 | 평양 만달리 동굴 | 24~30살 가량 되는 남자의 거의 완벽한 머리뼈 1점과 아래턱뼈 2점 발견(萬達人) |
평양 역포구 대현동 유적 | 역포인(力浦人)(소녀의 두개골) | |
평안남도 덕천 승리산 유적 | 두 개의 이빨이 박혀 있는 35살 가량의 남자 아래턱뼈 1점 발견(德川人) | |
충북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 점말동굴(1973) | 1층은 56,000년전으로 중기 구석기는 , 2층은 13000년전으로 후기 구석기, 3층은 7000년전으로 신석기시대의 유물 발견되며 10만 년 전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식물 화석, 원숭이 뼈, 사람의 얼굴을 새긴 코뿔소뼈 따위가 출토되었다. | |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 | ||
후기 | 함북 웅기 굴포리(1963) | 찌르개 박편 석기 발견, 석기 제작지 발견, 맘모스 화석 발견, 약 3만년전으로 추정 |
함북 동관진 유적(1933) | mammoth, 코뿔소(犀牛) 등 포유류 의 화석과 몈개의 석기와 골각기가 발견된 한반도에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유적지로서 일제시대 식민 사학자들은 부정함 | |
황해 평산 해상동굴 | 곰의 뼈 화석 출토 | |
제주 빌레못 동굴(1973) | 동물 화석, 뗀석기 출토, 혈거 유적지로 8~7만년전으로 추정 | |
충북 단양 상시리 유적 | 바위그늘, 인골(상시인), 남한 최초의 인류화석이 발견된 | |
충북 단양 수양개 유적(1983~85년에 충북대학교 박물관) | 중기구석기시대와 후기구석기시대의 문화층으로 나뉘며 중기구석기문화층에서는 찍개, 긁개, 찌르개, 주먹대패 등의 석기가 나왔다. 후기구석기문화층에서는 잘 떼고 다듬어 만든 여러 종류의 석기가 나왔고, 석기제작터에서는 크고 작은 수많은 격지를 비롯하여 몸돌·망치돌·모룻돌이 발굴되었다. 주먹도끼·긁개·배모양밀개·부채꼴밀개·슴베찌르개·새기개 등이 후기구석기층에서 나왔다. 격지석기 가운데는 돌날을 이용하여 만든 긁개, 밀개, 돌날몸돌도 나왔고 슴베찌르개는 후기구석기문화층을 대표하는 석기 가운데 하나이다. | |
전남 순천시 외서면 월암리의 월평 유적(1998, 2001) | 졸돌날몸돌, 밑개, 새기개, 슴베찌르개, 창끝찌르개 등 발달된 사냥 기술을 가진 후기구석기인들의 보금자리이며, 마한으로 여겨지는 철기시대의 마을이 있던 곳이다. 월평유적은 1995년 7월 조선대학교의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발견되었고, 전라남도와 순천시의 조사비 지원으로 1998년 1차 학술발굴이 이루어졌다. 조사 이후 국내외 여러 학회에서 소개되어 그 중요성이 널리 알려졌으며 2000년에 전남도 기념물 제181호로 지정되었다. 2001년의 2차 발굴에서 더 새롭고 흥미로운 자료들이 드러나 국내의 석장리와 수양개 유적, 우크라이나의 메지리치유적, 연해주의 우스티노브카유적, 일본의 시라다키 하또리다이유적과의 비교 연구가 기대되는 곳이다. | |
함북 웅기 굴포리 | ||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1964) | 밀개, 새기개 발견 |
연천 전곡리 : 양면 주먹(양날)도끼 발견(아슐리안 계통)
주먹도끼(광주시 실촌읍)
제천 점말동굴 : 사람의 얼굴을 새긴 코뿔소의 뼈,
슴베찌르개(광주시 실촌읍)
제3절 신석기시대의 유적
Ⅰ. 간석기
Ⅱ. 토기
이른민무니토기(原始無文土器), 덧무니토기(隆起文土器),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 평저빗살무늬토기(平底櫛文土器), 물결무늬토기(波狀文土器), 번개무늬토기(雷文土器)
Ⅲ. 농경굴지구,
갈돌과 갈판(碾石), 갈판과 갈돌(碾石·碾石捧)
가락바퀴(紡錘車)
Ⅳ. 집자리(집터)
서울암사동유적, 강원도 양양오산리유적
Ⅴ. 조개무지(貝塚)
Ⅵ. 무덤
독널무덤(甕棺墓), 움무덤(土壙墓)
제4절 청동기시대의 유적
Ⅰ. 석기
반달돌칼, 바퀴날도끼, 홈자귀
Ⅱ. 청동기
비파형동검, 거친 무늬거울
Ⅲ. 토기
민무늬토기, 미송리식토기, 붉은 간토기(홍도, 紅陶)
Ⅳ. 무덤
고인돌(支石墓), 돌널무덤(石棺墓)
제5절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
Ⅰ. 철기
철제무기와 철제농기구
Ⅱ. 청동기
세형동검, 잔무늬거울, 거푸집(鎔范)
Ⅲ. 토기
민무늬토기, 덧띠토기, 검은 간토기, 중국식 회색토기(黑陶)
Ⅳ. 무덤
널무덤(木棺墓), 독널무덤(甕棺墓)
제6절 원삼국시대의 유적(삼한, 부족국가, 성읍국가, 군장국가, 부족연맹왕국시대)
Ⅰ. 철기
철제무기와 철제농기구(도끼, 검, 낫)
Ⅱ. 청동기
곧 소멸
Ⅲ. 토기
연질, 와질의 타날문토기
Ⅳ. 무덤
널무덤(木棺墓), 독널무덤(甕棺墓)(고인돌(支石墓), 돌널무덤(石棺墓)소멸)
시대 | 도구 | 내용 | |||
구석기시대 | 전기 | 뗀석기( 打製石器) | 몸돌석기(石核石器) | 주먹도끼(握斧), 찍개 | 사냥도구: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
중기 | 격지석기(剝片石器) | 긁개, 밀개, 톱니날석기 | 요리도구: 긁개, 밀개, 톱니날석기 | ||
후기 | 돌날, 짜르개 | 농구 : 새기개 | |||
중석기시대 | 잔석기(細石器) | 톱, 활, 창, 낫, 작살 등 슴베잔석기 | |||
신석기시대 | 점렬무늬토기(點列文土器) | 삼각점렬토기 | 촌리 바위그늘, 월령리 한둘굴, 사계리 신석기 후기 | ||
원형점렬토기 | |||||
기타 점렬토기 | |||||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 | 북촌리, 부산동상동, 금곡동, 암남동, 기해 수가리, 범밤리, 양산 신암ㄹ, 거제 신달도 | ||||
전기 | 이른민무니토기(原始無文土器) | 알이 약간 굵은 돌이 섞인 진흙을 손으로(手捏法) 빚어서 만든 비교적 소형의 투박한 토기로 무니가 없음 | |||
덧무니토기(隆起文土器) | 표면에 띠 모양의 흙을 덧붙여서 무늬를 만든 토기 | ||||
중기 |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 골각기 | 돌이 섞이지 않은 진흙을 빚어서 테를 말아 올리거나(輪積法) 긴 띠를 만들어 감아올려서(捲上法) 만든 토기 | ||
후기 | 평저빗살무늬토기(平底櫛文土器) | 빗살무늬의 바닥이 납작하게 된 토기 | |||
물결무늬토기(波狀文土器), | 문양에 물결무늬가 있는 토기 | ||||
번개무늬토기(雷文土器) | 회(回)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토기 | ||||
청동기시대 | 민무늬 토기(無文土器) | ||||
미송리식 토기 | |||||
붉은 간토기(홍도, 紅陶) |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 ||||
철기시대 | 민무늬 토기 | ||||
덧띠토기 | |||||
검은간토기 | |||||
중국식 회색토기 |
제2장 암각화(巖刻畵, 바위그림) 嵒 碞, 嵓, 암岩
제1절 암각화(巖刻畵, 바위그림, rock art, petroglyph, petrograph)
동굴안이나 절벽, 커다란 바위에 사물이나 형상, 관념을 쪼기, 긋기, 칠하기 등의 기법으로 형상화한 것
제2절 암각화유적의 분포현황과 입지조건
Ⅰ. 분포 현황
1. 세계
스칸디나비아반도, 사하라사막, 아메리카, 대양주에서도 발견
2. 우리나라
울산 천전리(1970), 울산 대곡리 반구대, 고령 양전동(1971), 포항 인비리, 안동 수곡동, 영주 가흥동, 영일 칠포리, 여수 오림동(1980년대), 함안 도항리 2개, 남원 대곡리, 영천 보성리, 고령 안화리, 경주 석장동, 고령 지산리, 경주 안심리, 남해 양아리(1990년대) 등 23곳
Ⅱ. 입지조건
예외없이 하천 근처(하천 상류나 하천변)에서 발견되는데 물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일반인이 평소에 접근이 어려운 곳, 그리고 신성시되는 지역에 선택
암각화 | 새긴 곳 | 내용 |
반구대(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 대곡천 기슭의 절벽 아래쪽 바위면 | |
경주 석장동 | 서천 하류의 금장대 절벽 바위면 위쪽 | |
경주 안심리 | 내남면 안심리 남산 자락 | |
영일 칠포리 | 흥해읍 외관 곤륜산 기슭의 바위들 | |
영주 가흥동 | 외곽 서천기슭의 구룡끝 절벽 바위면 | |
안동 수곡리 | 대곡천 계곡의 산록 바위면 | |
영천 보성리 | 청통면 보성리 봉수마을 도로곁 고인돌 덮개돌 | |
포항 인비리 | 안강분지 북쪽 기슭의 기개천 곁 고인돌 덮개 | |
여수 오림동 | 여수반도 동남단 좁은 분지의 고인돌 덮개 | |
함안 도항리 각목마을 | 함안천 유역의 충적평야 한가운데 구릉 끝자락에 있는 고인돌무리와 가야고분 사이 | |
고령 지산리 | 지산리 30호분 돌덧널무덤 뚜껑돌 | |
고령 안화리 | 쌍림면 안화리 안림천 곁의 상봉우리 절벽 아래 바위면 | |
고령 양정동 알터 | 낙동강 지류인 회천 곁 구릉기슭의 바위면 | |
남원 대곡리 | 풍악산 서넘쪽 기슭 봉황대 절벽의 정상의 바위면 | |
남해 양아리 | 남해군 이동면 양아리 뒤쪽 금산 중턱 남해 바다를 향해 길게 누워 있는 넓은 바위 | |
의령 마쌍리 | 한국형 암각화로 불리는 검파형(검손잡이) 암각화의 기원과 의미를 밝혀 줄 중요한 자료로 평가 |
그 외 부산 복천동, 밀양 활성동과 안인리, 사천 본촌리, 의령 마쌍리, 나주 운곡동, 제주 애월읍 암각화가 있다.
제3절 임각화의 제작기법과 내용
Ⅰ. 제작기법
1. 쪼아 새기기
면새김(面刻) : 무두 쪼아냄. 모두 쪼아 새기기. 표현대상의 내부를 모두 쪼아냄
선새김(선각) :윤관만을 쪼아냄
2. 갈아 새기기
3. 그어 새기기
Ⅱ. 암각화의 조형양식과 표현내용
1. 형상암각화(形象巖刻畵)
사실적 묘사에 충실. 사냥, 생포, 주술의식, 제의장면. 울산 대곡리암각화, 울산 천전리암각화, 경주석장동 금장대암각화, 포항 인비리암각화, 여수 오장동암각화
2. 표상암각화(表象巖刻畵)
현상이나 개념을 상징적 도안으로 그려낸 것. 방패문암각화(태양신, 신의 얼굴과 모습, 주수사의 몸, 검파형동기, 방패형동기). 경주 석장동 금장대암각화, 경주 안심리암각화, 영천 보성리암각화, 영일 칠포리암각화, 영주 가흥동암각화, 고령 양전동・안화리・지산리암각화. 울산 천전리암각화, 안동 수곡리암각화
3. 사상암각화(事象巖刻畵)
사회적・문화적 활동 내용을 표현. 울산 천전리암각화가 유일
제4절 주요한 암각화 유적
Ⅰ. 울주 반구대암각화(盤龜臺巖刻畵 국보 제285호)
1. 위치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刻石
2. 형태 : 바다짐승(고래, 물개, 바다거북), 뭍짐승(사슴, 호랑이, 멋돼지, 개), 사람(얼굴, 정면상, 측면상, 배에 탄 모습), 도구(배, 울타리, 그물, 작살, 방패, 노 유사물), 기타
3. 의미 : 사냥과 고기잡이 성공과 풍성한 수확을 비는 것으로 보인다.
Ⅱ. 울주 천전리서석암각화(天前里書石(誓石)巖刻畵 국보 제147호)
1. 위치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2. 형태 : 사슴, 개 뭍짐승류, 사람 얼굴, 여러 가지 기하무늬, 사람들의 행렬과 배, 상상속의 동물들, 명문(銘文)등
3. 의미 : 다산, 종족보존, 사신행렬, 제사터(墠場(선장), 畤(치))
Ⅲ. 고령 양전동 알터암각화(高靈良田洞岩刻畵, 보물 제605호)
1. 위치 : 경남 고령군 고렵읍 장기리 532번지 알터 마을 입구
2. 형태 : 동심원, 십자형, 삼각형 등의 추상적인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다.
3. 의미 :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고 풍요로운 생산을 비는 제사터의 의미를 지녔다.
제3장 고대의 고분
제1절 무덤이 발생
Ⅰ. 무덤 사용의 계기
1. 육식동물로부터 시신을 보호하기 위해
2. 부패해가는 시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매장
3. 영혼의 부활에 대한 육신의 안전한 보관을 위해
Ⅱ. 무덤의 등장
1. 구석기시대
무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발견된 예는 없다.
2. 신석기시대
확실한 무덤은 신석기시대에 등장한다.
3. 청동기시대
본격적인 무덤의 사용과 공동묘지의 형성은 청동기이후에 나타난다.
제2절 고분문화
고분과 고분벽화 (구석기 기록없음)
구분 | 시대 및 장소 | 고분양식 | 대표 고분 | 특징과 내용 | |
신석기 | 독무덤(甕棺墓) | 부산 동삼동, 진주 상촌리 | 항아리를 이용하여 매장 | ||
움무덤(土壙墓) 광(壙) 뫼구덩이 광 2. 굴 광 3. 넓은 광 | 통영 연대도(煙臺島)와 욕지도(欲知島), 전남 여수 안도(安島). 춘천 교동동굴 | 땅을 파고 시신을 매장. 연대도에는 일종의 공동묘지 성립. 울산 后浦里의 바닷가 골장제묘 | |||
청동기 | 고인돌(支石墓, dolmen) | 탁자식고인돌(卓子式支石墓, 北方式支石墓) | 황해도 안악, 대동강, 재령강, 황주천 일대, 평안남도 용강군 석천산(石泉山) 일대, 강원도 고성과 춘천, 전라북도 고창 | 형태상으로는 지상에 4개의 판석형(板石型) 고임돌(支石)을 세워서 장방형(長方形)의 무덤칸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上石)을 올려 놓은 탁자식(北方式) 고인돌이다. | |
바둑판식고인돌(碁盤式支石墓) | 전북 고창, 전남 화순, 인천시 강화, 전남 여수 적량동(비파형동검 출토) | 판돌(板石), 깬돌(割石), 냇돌(川石) 등을 사용하여 지하에 무덤칸을 만들고 덮개돌(上石)과 무덤칸 사이에 3, 4매 또는 그 이상의 고임돌(支石)이 있는 형식으로 지하 매장시설의 구조는 돌널형(石棺形), 혼축형(混築形) 돌덧널형(石槨形), 돌돌림형(圍石形) 그리고 토광형(土壙形)등 다양하다. | |||
개석식 고인돌(蓋石式支石墓) | 고임돌(支石)이 없이 지하에 있는 매장시설 위를 뚜껑처럼 덮개돌(上石)이 직접 덮고 있는 형태이다. 이 형태는 무지석식, 접지형, 심촌리형, 구덩식, 대석개묘 등이라고도 하며, 변형 고인돌로 간주하여 기반식(南方式)고인돌 안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 ||||
묘역식고인돌(墓域式支石墓) | 경남 산청군 매촌리, 경남 진주시 초전동 | ||||
돌널무무덤(石棺墓) | 遼河의 동쪽, 松花江 유역, 부여 송국리 유적(비파형동검 부장) | 직사각형 모양의 사방의 벽을 널돌(판석板石)로 조립해 만들고 그 안에 시체를 두는 무덤. | |||
움무덤(土壙墓) | 內蒙古, 遼西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7호분 | ||||
독무덤(甕棺墓) | 한반도 서남부 | ||||
돌무지무덤(積石墓) | 웅진 시도(矢島), 황해도 황주 침촌리, 경남 통녕 연대도와 욕지도, 강원도 춘천시 진천리 | ||||
둔덕무덤. 둔덕은 두두룩하게 언덕진 곳 | 崗上무덤 樓上무덤 | 사람 머리만한 돌을 쌓아 올려 둔덕을 만들고 그 안에 돌널을 만들거나 움을 파고 그 위에 시시매장. 1963년 북한과 중국 두 나라 고고학자들의 공동발굴에 의해 이루어졌다. 기원전 6~7세기경의 崗上무덤과 약간 늦은 시기의 樓上무덤은 누상(樓上)이라고 불리는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이 무덤은 언덕의 정상부를 평평하게 고른 뒤 주위에 커다란 돌로 담을 쌓아 한 변에 20m 가량의 방형 구획을 정한 후 그 내부에 여러 개의 무덤구덩이를 만든 형태이다. 그 위에는 검은 흙과 자갈을 섞어서 전체를 덮었다. 심양 정가자와 6512호 | |||
철기시대 | 초기 |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 | 요동 운가촌무덤, 부여 합송리, 논산 운북리, 장수 남양리, 함평 초포리무덤 | ||
덧널무덤(木槨墓) | 평양 정백동과 태성리, 영천 어은동, 경주 일십리유적. 위만조선의 지배층이 남긴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 | ||||
널무덤(木棺墓) | 진한 경주 조양동과 사라리. 성주 백전 예산리. 변한 창원 다호리 유적. 마한 박장. 진한변한 후장 | ||||
덧널무덤(木槨墓) | 구덩이를 파고 널[棺]을 넣는 덧널[木槨] 시설을 나무로 만든 무덤 | 강서 태성리, 은율 운성리, 봉산 송산리 당촌, 경주 구정동·입실리, 화순 대곡리, 김해 양동리·예안리 | |||
주구토광묘(周溝土壙墓) | 안산 신길택지구(2007).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2005) | 신길택지지구에서 2007년 6월 주구토광묘(周溝土壙墓)와 집터 23기 등 다량의 신석기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었다. 서산서 4-5세기 백제 집단 분구묘 46기, 동경 1점ㆍ흑색마연토기 7점 무덤 주위로 주구(周溝)라고 일컫는 도랑과 비슷한 시설물을 돌린 분구묘(墳丘墓) 46기가 떼를 이룬 채 충남 서산에서 확인됐다. 공주대박물관(관장 이남석)은 2005년 7월1일 이후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 공군시험장 예정지 일대 7천700여 평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9기와 같은 시대 수혈유구 6기, 초기삼국시대 주거지 2기 외에 4-5세기 백제시대 분구묘 46기를 확인했다고 7일 발표했다. 이 중 분구묘는 일정한 구역에서 매우 밀집도가 높은 상태로 조성됐음이 밝혀졌다. 이들은 시신을 안치한 매장 주체부를 중심으로 한 변 10-20m 가량 되는 사각형 주구를 마련했다. 주구는 네 모서리 각을 죽인 이른바 말각방형(抹角方形)이었다. 주구 중앙부에는 역시 말각방형으로 땅을 파고들어가 토광(土壙.흙구덩이)을 마련한 다음, 거기에 시신을 안치한 목관(木棺.널)을 놓았음이 조사결과 밝혀졌다. 21호 분구묘의 경우, 매장 주체부 중앙에 중국에서 수입한 한식경(漢式鏡)의 일종인 사유훼룡문경이라는 동경(銅鏡) 1점이 발견됐으며, 묻힌 사람의 왼쪽에는 모종의 청동기물을 구성한 부속품이었다고 생각되는 환(環.고리)과 방울이 출토됐다. 아울러 이 무덤에서는 수정과 벽옥제 관옥(管玉. 푸른빛이 도는 대롱 모양 옥), 금박옥 등이 확인됐다. | |||
분구묘(墳丘墓) | 영산강 중하류역의 나주(羅州), 함평(咸平), 영암(靈岩) 일대 / 움무덤을 매장주체부로 하는 초기 분구묘로서 함평 예덕리 만가촌(萬家村)무덤, 영암 만수리(萬樹里) 4호분, 나주 용호(龍虎)무덤, 독무덤을 매장주체부로 하는 대형 분구묘인 나주 대안리(大安里)무덤, 무안 사창리(社倉里)무덤, 영암 시종 옥야리(沃野里)무덤 | 일반적인 무덤은 지하나 반지하, 혹은 지상에 매장시설을 만들고 그 매장시설 위로 흙이나 돌을 쌓아 봉분(封墳)을 만들지만, 분구묘는 미리 흙이나 돌로써 봉분과 같은 분구를 조성하고 그 위에 매장시설을 만드는 독특한 무덤양식이다. 분구묘는 주검을 안치하는 매장주체부의 형태에 관계없이 분묘의 외형에 따라 분류한 것이며, 성토한 봉분 속에는 독널무덤 혹은 널무덤 등 다양한 묘제가 존재한다. 외형 형태에 따라 원방형분(圓方形墳)과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으로 나눌 수 있다. 원방형분은 최근에 조사 예가 증가하고 있으며, 전방후원분과 계기적으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서울 가락동 2호분, 천안 두정동 분구묘, 익산 율촌리 분구묘 등을 들 수 있으며, 전북 고창 지방에 집중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가락동 2호분과 천안 두정동은 분구 외곽에 도랑[주구(週溝)]이 없는 반면 익산과 고창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분구묘에서는 주구가 확인되고 있으며, 이 주구 내부에서 대형 독널무덤이 출토되고 있어 영산강유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는 전방후원분과 상호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축조 시기는 대략 3세기에서 4세기경으로 판단하고 있다. 전방후원분은 일본의 고분시대(4~6C경)에 성행했던 무덤양식으로, 평면도상으로 보면 원형(圓形)과 방형(方形)의 분구가 붙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악기인 장고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하여 장고분(長鼓墳)으로 불리우고 있다. 영어로는 원형과 방형의 구멍이 이어진 열쇠구멍 모양과 유사한 점에 착안하여 ‘Keyhole-shaped tomb’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이전에 이 묘제는 일본에 집중 분포하고 있어서 일본의 고유묘제로 판단했으나,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많은 수의 전방후원분이 확인되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대표적인 전방후원분으로는 전라남도 광주시 월계동(月桂洞) 1호분과 2호분 그리고 명화동(明花洞) 고분, 함평군(咸平郡)의 신덕(新德)고분 등이 발굴 조사되었고 해남(海南)과 함평의 장고산(長鼓山)고분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나주 신촌리 9호분 을관(乙棺)에서는 금동관?환두대도를 비롯한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들 전남지방에서 발견된 전방후원형의 고분들은 대개 매장주체부가 굴식돌방(橫穴式石室)식과 독널무덤(甕棺墓)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분구묘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출자를 알 수 없으나, 중국 외몽고의 Noin-Ula고분이 알려져 있으며, 또한 고구려의 돌무지무덤 중에도 압록강 중류 지역의 자강도 초산군(楚山郡) 운평리(雲坪里) 고분군 내의 4지구 6호분이 원형 돌무지분구에 방대형의 단이 결합된 구조여서 전방후원형에 가깝다고 한다. | |||
삼국시대 | 고구려 | 초기 | 돌무지무덤(積石塚) | 장군총(將軍塚)<吉林省 通溝>.태왕릉(太王陵). 임강묘. 천추묘. 서대묘 | 강변의 대지 구릉 사면에 돌을 쌓아 무덤의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매장하고 돌을 덮는 형태. pyramid식으로 석재를 쌓아올린 형식의 7층계단식 무덤 |
후기 | 굴식돌방무덤(봉토돌방무덤,封土石室墳, 土塚) | 쌍영총(雙楹塚) 무용총(舞踊塚), 강서대묘(江西大墓) | 돌을 쌓아 올려 관을 만들고 흙으로 덮는 방식. 석재를 널방(玄室, 관을 들여 놓는 방)을 만든 위에 흙을 덮어서 만든 봉분 四神圖 : 靑龍, 白虎, 朱雀, 玄武 | ||
백제 | 한성시대 | 돌무지무덤3세기 후반~4세기 초반 | 석촌동고분(石村洞古墳), 가락동 90시 | 고구려의 영향 |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 | 宋山里古墳(송산리고분) | 거대한 규모 | |||
웅진시대 | 굴식돌방무덤 | 능산리고분(陵山里古墳). 호 미하리. 하남 광상동. 원주 법천리. 청원 극성리. 청주 신봉동 | 규모가 작고 세련됨 | ||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室墳) | 송산리 6호분 | ||||
벽돌무덤(塼築墳, 塼室墳) | 무령왕릉 | 중국 남조의 영향 | |||
사비시대 | 굴식돌방무덤 | ||||
분구묘(墳丘墓) | 4세기 이후 | 나주, 영암 등 대규묘 옹관고분 | |||
전방후원형(前方後圓形) | 전방후원분은 일본의 고분시대(4~6C경)에 성행했던 무덤양식으로, 평면도상으로 보면 원형(圓形)과 방형(方形)의 분구가 붙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악기인 장고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하여 장고분(長鼓墳)으로 불리우고 있다. 영어로는 원형과 방형의 구멍이 이어진 열쇠구멍 모양과 유사한 점에 착안하여 ‘Keyhole-shaped tomb’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 ||||
가야 | 덧널무덤(木槨墓) | ||||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 구덩식 돌방무덤[竪穴式石室墓(수혈식석실묘) |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6세기 중엽 | 고성 송학동 고분군 1호분 B지구의 횡혈식석실분은 국내 최초의 채색고분 | 원형(圓形)의 분구에 직사각형 또는 사각형 분구를 붙여놓은 평면형을 나타내는 무덤 가야고분의 분포와 출토지역은 고령지역(지산동고분군·중화동고분군·고아동고분군), 함안지역(말이산고분군), 김해지역(예안리고분군·양전동고분군·생곡리고분군), 부산지역(복천동과 연산동고분군·당감동고분군), 경상북도 구미지역(비산동과 내당동고분군) 등이다. | |||
신라 | 3세기 이후 | 경주식덧널무덤 | 경주 구정동 고분 | ||
4세기 이후 |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 | 경주평야의 98호고분(皇南大塚) : 南墳과 北墳의 쌍무덤(瓢形墳), 鳳凰大古墳, 金冠塚, 金鈴塚, 天馬塚, 瑞鳳塚 | 도굴이 어려움 | ||
지방 |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 경산, 대구, 창령, 안양, 부산, 의성, 안동 | |||
통일신라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 경덕왕릉, 흥덕왕릉, 掛陵(괘릉), 金庾信墓 | 호석(護石, 둘레돌)에 12지신상 조각 | ||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 | 무덤의 단벽 일부를 작은 창문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 | 경주 지역의 대다수 | |||
발해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 貞惠公主誌墓 | |||
벽돌무덤(塼築墳) | 貞孝公主誌墓 | ||||
고려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태조의 顯陵, 원종의 韶陵, 七陵群 | ||||
조선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
강서대묘(우현리대묘) : 평안남도 대안시 삼묘리(옛 이름은 강서군 강서면 삼묘리)에 있는 고구려시대 벽화고분의 하나
제4장 분묘와 왕릉
제1절 분묘와 왕릉
Ⅰ. 무덤의 유래
1. 무덤(墓, 墳, 冢)
송장이나 유골을 묻은 곳
2. 무덤의 유래
무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기를 바라는 영혼불멸(靈魂不滅, immortality of the soul)의 신앙 위에서 시체를 매장(埋葬, 薶葬)하였던 풍습 때문에 만들어진 유물
Ⅱ. 장법과 무덤속의 시체 처리 방법
1. 장법(葬法)
가. 토장(土葬) : 가장 기본적으로는 사체를 흙 속에 묻는 방식
나. 화장(火葬) : 茶毘(荼毘, 다비)
시체를 불에 태우는 방식. 화장을 불교애서는 茶毘(荼毘, 다비)라고 한다.
다. 풍장(風葬), 임장(林葬), 수목장(樹木葬), 괘장(卦葬), 현공장(懸空葬)
사체를 시체를 숲이나 들판에 버리거나 나무 위, 제작된 받침대 위, 동굴, 단애면 등에 일정한 기간 놓아두거나 무덤구덩이(墓壙)를 파고 그 위에 집을 지어 거기에 걸어 두는 방식.
라. 조장(鳥葬)
파키스탄이나 티베트에서 행해지며 사체를 해체하고 독수리 등에게 먹이는 방식
마. 수장(水葬)
사체를 물속에 넣거나 배에 태워서 냇물이나 바다로 흘려보내 처리하는 방식
2. 시체처리 방법
가. 굴신장(屈身葬)
다리를 구부리게 하는 굴신장(屈身葬)
나. 신전장(伸展葬). 직지장(直肢葬)
다리를 곧게 뻗친 신전장(伸展葬). 한국의 경우는 신전장만이 시행
몸을 구부려 넣는 것을 굴신장(屈身葬), 펴서 넣는 것을 신전장(伸展葬) 또는 직지장(直肢葬), 앉혀서 묻는 것을 좌장(座葬), 세워서 묻는 것을 입장(立葬)
다. 좌장(座葬)
앉혀서 묻는 방식
라. 입장(立葬)
세워서 묻는 방식,
마. 부신장(俯身葬)
엎어서 묻는 방식
3. 얼굴방향
가. 앙와(仰臥)
얼굴의 방향에는 위를 보게 하는 방식
나. 측와(側臥)
옆을 보게 하는 방식
4. 동침신전앙와장(東枕伸殿仰臥葬)
시체의 머리를 동쪽으로 두고 얼굴을 위로 향하게 하는 방식
Ⅲ. 무덤을 나타내는 말
1. 무덤(뫼)을 나타내는 말陵
무덤 릉, 園 무덤 원, 墓 무덤 묘, 墳 무덤 분, 塋 무덤 영, 冢(塚) 무덤 총, 埌 무덤 량, 堬 무덤 유, 墦 무덤 번, 壟(隴) 무덤 롱, 丘 무덤 구, 宰 무덤재, 封 무덤 봉, 堌 고총 고 瘞 무덤예 陰宅(음택)
2. 陵(능) 園(원) 墓(묘) 墳(분) 冢(총)의 구별
주인을 알 수 있을 때. 조성 당시 명명 | 陵(능) | 왕, 왕비의 무덤 |
園(원) | 세자와 세자비 및 왕의 부모의 무덤(인조이후 영조때 일반화) | |
墓(묘) | 기타 사람의 무덤 | |
주인을 알 수 없을 때. 조성후 발견되어 명명 | 墳(분) | 특징이 없는 평범한 무덤 |
冢(총) | 다른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특이한 유물이 발견되거나 다른 무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을 때 붙이는 이름 |
Ⅳ. 무덤의 발전
1. 신석기 시대의 무덤
가. 땅속이나 조개더미 밑
최초의 무덤은 땅속(地中)이나 조개더미(貝冢, shell mound) 밑에 매장라고 봉토(封土)도 하지 않았다.
나.환석묘(環石墓)
뚜껑이나 바닥없이 자연석을 직사각형으로 둘러 세우고 그 속에 시체를 안치하였다.
2. 신석기시대의 발전과 변형
가. 고인돌(支石墓, dolmen)
나. 돌널무덤(石棺墓) : 판석(板石)과 괴석(塊石)으로 관을 만들어 흙속에 묻는 무덤
다. 돌무지무덤(積石冢) : 판석(板石)으로 만든 관위에 흙 대신 돌을 쌓아 올린 무덤
라. 널무덤(土壙墓) : 지하에 수직으로 장방형의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묻는 무덤
마. 독무덤(甕棺墓) : 2개의 항아리를 맞붙여 관을 만든 무덤
제2절 삼국 통일신라시대의 분묘와 왕릉의 현황과 특징
Ⅰ. 고구려
1. 초기
돌무지무덤(積石冢, 石冢) : 길림성 통구의 장군총(將軍冢)
2. 후기
봉토돌방무덤(封土石室墳, 土冢) : 평안남도 용강군의 쌍영총(雙楹冢)
Ⅱ. 백제
1. 초기 : 돌무지무덤(積石冢)
2. 후기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및 벽돌무덤(塼築墳, 塼室墳) 무령왕릉(武零王陵)
Ⅲ. 신라(56왕중 37기 확인・추정, 19기 미확인)
1. 초기 : 굴식돌무지덧널무덤(橫穴式 積石木槨墳) 목관(木棺)을 넣은 목관 주위에 돌을 채우고 다시 진흙으로 덮은 다음 흙과 자갈을 교대로 쌓아서 커다란 봉분을 만든 것.
2. 후기
굴식돌덧널무덤(橫穴式 石槨墓) 전면에 널길(墓道)을 설치한 무덤
다. 통일신라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및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
Ⅳ. 신라의 왕릉
1. 소재 : 경순왕릉(연천군)외 모두 경주시 분포
2. 유형
형식 | 왕릉 |
1. 봉토(封土)만 있고 둘레돌(護石)이 없는 형식 | 오릉(五陵: 1대 혁거세왕릉과 왕비 알영부인릉, 2대 남해왕릉, 3대 유리왕릉, 5대 파사왕릉. 사적 제172호), 4대 탈해왕릉, 6대 지마왕릉, 7대 일성왕릉, 8대 아달라왕릉, 13대 미추왕릉, 17대 내물왕릉, 24대 진흥왕릉, 25대 진지왕릉, 26대 진평왕릉, 32대 효소왕릉, 43대 희강왕릉, 45대 신무왕릉, 46대 문성왕릉, 52대 효공왕릉, 53대 신덕왕릉, 54대 경명왕릉, 55대 경애왕릉 |
2. 봉토 밑에 자연석을 장치한 형식 | 23대 법흥왕릉, 27대 선덕왕릉, 29대 무열왕릉, 47대 헌안왕릉 |
3. 봉토 밑에 가공석으로 석축 둘레돌(護石)을 돌리고 가공장판석(長板石)을 받쳐 놓은 형식 | 31대 신문왕릉, 44대 민애왕릉, 49대 헌강왕릉, 50대 정강왕릉 |
4. 능 앞에 능비(陵碑)만을 세우 형식 | 29대 무열왕릉 |
5. 봉토 밑에 장판석(長板石)으로 둘레돌(護石)을 쌓고 탱주(撐柱)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양각한 형식 | 28대 진덕왕릉, 35대 경덕왕릉, 41대 헌덕왕릉 |
6. 봉토 밑에 장판석(長板石)으로 둘레돌(護石)을 쌓고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석사자(石獅子)・문인석(文人石)・무인석(武人石)・석화표(石華表)・능비(陵碑) 등 의표물(儀表物)을 거의 완비한 형식 | 33대 성덕왕릉, 괘릉(掛陵, 38대 원성왕릉), 42대 흥덕왕릉 |
문무왕릉: 동해의 대왕암(大王巖)에 수장
제3절 고려시대의 분묘와 왕릉의 현황과 특징
Ⅰ. 형식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Ⅱ. 소재
개성과 부근에 일부는 강화도 고려 29대 충목왕의 무덤인 명릉과 인근 무덤,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무덤군인 칠릉떼
개성, 개풍, 長湍 | 顯陵(태조와 神惠王后 柳氏 單封合葬陵, 태조 왕건릉,북한 국보유적 179호) : 개성직할시 개풍군 해선리, 韶陵(원종) :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소릉리 내동, 七陵群(칠릉떼) : 송악산. 고려 후기의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왕이나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 智陵(명종) : 장단군 장도면 두매리 지릉동, 명릉(29대 충목왕의 무덤),玄陵(공민왕)과 正陵(寶塔實里, 魯國大長公主) (국보유적 123호): 개성직할시 개풍군 해선리 정릉동 |
강화도(조선 현종의 명으로 강화유수 趙福陽이 발견) | 碩陵(석릉, 21대 희종), 坤陵(곤릉, 22대 강종비 元德太后 柳氏. 사적 제371호), 洪陵(홍릉, 23대고종), 嘉陵(가릉, 24대 원종비 順敬太后). 紹陵(소릉, 21대 희종 제1황후 成平王后 任氏) : 기록상으로 존재 |
碩陵(석릉, 21대 희종)
坤陵(곤릉, 22대 강종비 元德太后 柳氏. 사적 제371호)
洪陵(홍릉, 23대고종)
洪陵(홍릉, 23대고종) 석인
嘉陵(가릉, 24대 원종비 順敬太后)
제4절 조선시대의 왕릉의 현황과 특징
Ⅰ. 형식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Ⅱ. 구조
Ⅲ. 소재
서울과 서울 근교
서울 | |
서울 근교 |
齋室(재실)
禁川橋(금천교)
紅箭門(홍살문)
版位(배위)
守僕廳(수복청)
參道(참도)-御道와 神道
丁字閣(정자각, 망전)
燒錢臺(소전대) 望燎位 瘞坎(石函-)
碑閣(비각)
正中石(배석)
이한(李翰) 신라 문성왕때 사공(司空)-18세손 이안사(전주-삼척-함경도-원 간동)
대수 | 왕명 | 왕릉 | 매장인 | 연도 | 위치 | 사적번호 | 구분 |
추존왕 이안사(李安社) | 목조(穆祖) | 德陵(덕릉) 安陵(안릉) | 목조 효공왕후 | 1274년 미상 | 함남 영광 함남 영광 | 북한소재 | 열외 |
추존왕 이행리(李行里) | 익조(翼祖) | 지릉(智陵) 숙릉(淑陵) | 익조 정숙왕후 | 미상 미상 | 함남 안변 함남 문천 | 북한소재 북한소재 | 열외 |
추존왕 이춘(李椿) | 도조(度祖) | 의릉(義陵) 순릉(純陵) | 도조 경순왕후 | 1342년 미상 | 함남 함흥 함남 함흥 | 북한소재 북한소재 | 열외 |
추존왕 이자춘(李子春) | 환조(桓祖) | 정릉(定陵) 화릉(和陵) | 환조 의혜왕후 | 1361년 미상 | 함남 함주 함남 함주 | 북한소재 북한소재 | 열외 |
제1대 | 太祖 | 건원릉(健元陵) 제릉(齊陵) 정릉(貞陵) | 태조 神懿王后 韓氏 神德王后 康氏 | 1408년 1391년 1396년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개성 서울 성북구 | 193호 북한소재 208호 | 동구릉 열외 - |
제2대 | 定宗 | 후릉(厚陵) | 정종, 定安王后 | 1419년 | 개성 | 북한소재 | 열외 |
제3대 | 太宗 | 헌릉(獻陵) | 태종,元敬王后 閔氏 | 1422년 | 서울 강남구 | 194호 | 헌인릉 |
제4대 | 世宗 | 영릉(英陵) | 세종,昭憲王后 沈氏 | 1450년 | 경기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 195호 | 영녕릉 |
제5대 | 文宗 | 현릉(顯陵) | 문종, 顯德王后 權氏 | 1452년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 193호 | 동구릉 |
제6대 | 端宗 | 장릉(莊陵) 사릉(思陵) | 단종 定順王后 宋氏 | 1698년 |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경기 남양주시 진전읍 사능리 | 196호 209호 | |
제7대 | 世祖 | 광릉(光陵) | 세조, 貞喜王后 尹氏 | 1468년 1483년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 197호 | |
추존왕 | 德宗 | 경릉(敬陵) | 덕종, 昭惠王后 韓氏 | 1457년 | 경기 고양서 덕양구 용두동 | 198호 | 서오릉 |
제8대 | 睿宗 | 창릉(昌陵) 공릉(恭陵) | 예종, 安順王后 韓氏(계비) 章順王后 韓氏(원비) | 1469년 | 경기 고양서 덕양구 용두동 경기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 205호 198호 | 서오릉 파주삼릉 |
제9대 | 成宗 | 선릉(宣陵) 순릉(順陵) | 성종, 貞顯王后 尹氏 恭惠王后 韓氏(원비) | 1494년 | 서울강남구 경기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 199호 | 선정릉 파주삼릉 |
제10대 | 燕山君 | 연산군묘(燕山君墓) | 연산군, 부인 거창 愼氏 | 1506년 | 서울도봉구 | 362호 | 열외 |
제11대 | 中宗 | 정릉(靖陵) 온릉(溫陵) 희릉(禧陵) 태릉(泰陵) | 중종 端敬王后 愼氏 章敬王后 尹氏 文定王后 尹氏 | 1544년 1557년 1562년 1565년 | 서울강남구 경기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경기 고양 서울노원구 | 199호 210호 200호 201호 | 선정릉 - 서삼릉 태강릉 |
제12대 | 仁宗 | 효릉(孝陵) | 인종, 仁聖王后 朴氏 | 1544년 | 경기 고양 | 200호 | 서삼릉 |
제13대 | 明宗 | 강릉(康陵) | 명종, 仁順王后 沈氏 | 1567년 | 서울노원구 | 201호 | 태강릉 |
제14대 | 宣祖 | 목릉(穆陵) | 선조, 懿仁王后朴氏, 仁穆王后 金氏 | 1608년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 193호 | 동구릉 |
제15대 | 光海君 | 광해군묘(光海君墓) | 광해군, 文城君夫人 柳氏 | 1643년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 363호 | 열외 |
추존왕 | 元宗 | 장릉(章陵) | 원종, 仁獻王后 具氏 | 1627년 | 경기 김포 풍무동 | 202호 | - |
제16대 | 仁祖 | 장릉(長陵) 휘릉(徽陵) | 인조, 인렬왕후 장렬왕후 | 1731년 | 경기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 203호 - | 동구릉 |
제17대 | 효종 | 영릉(寧陵) | 효종, 인선왕후 | 1673년 | 경기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 195호 | 영녕릉 |
제18대 | 현종 | 숭릉(崇陵) | 현종, 명성왕후 | 1674년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 193호 | 동구릉 |
제19대 | 숙종 | 명릉(明陵) 익릉(翼陵) | 숙종, 인현왕후, 인원왕후 인경왕후 | 1701년 | 경기 고양서 덕양구 용두동 | 198호 | 서오릉 서오릉 |
제20대 | 경종 | 의릉(懿陵) 혜릉(惠陵) | 경종, 宣懿王后 魚氏 단의왕후 | 1724년 1718년 | 서울 성북구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 204호 193호 | - 동구릉 |
제21대 | 영조 | 원릉(元陵) 홍릉(弘陵) | 영조, 정순왕후 정성왕후 | 1776년 1757년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경기 고양서 덕양구 용두동 | 193호 198호 | 동구릉 서오릉 |
추존황제 | 진종 | 영릉(永陵) | 진종, 효순왕후 | 1728년 | 경기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 205호 | 파주삼릉 |
추존황제 | 장조 | 융릉(隆陵) | 장조, 헌경왕후 | 1761년 | 경기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 206호 | 융건릉 |
제22조 | 정조 | 건릉(健陵) | 정조, 효의왕후 | 1800년 | 경기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 206호 | 융건릉 |
제23대 | 순조 | 인릉(仁陵) | 순조, 純元王后 金氏 | 1834년 | 서울 서초구 | 194호 | 헌인릉 |
추존황제 | 익종(문조) | 수릉(綏陵) | 익종, 신정왕후 | 1830년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 193호 | 동구릉 |
제24대 | 헌종 | 경릉(景陵) |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 | 1849년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 193호 | 동구릉 |
제25대 | 철종 | 예릉(睿陵) | 철종, 철인왕후 | 1863년 | 경기 고양서 덕양구 원당동 | 200호 | 서삼릉 |
제26대 | 고종 | 홍릉(洪陵) | 고종, 明成皇后 閔氏 | 1919년 |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 207호 | 홍유릉 |
제27대 | 순종 | 유릉(裕陵) | 순종, 純明孝皇后, 순정효황후 | 1926년 |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 207호 | 홍유릉 |
동구릉(東九陵) : 건원릉(健元陵), 현릉(顯陵), 목릉(穆陵), 휘릉(徽陵), 숭릉(崇陵), 혜릉(惠陵), 원릉(元陵), 경릉(景陵), 수릉(綏陵)
서삼릉(西三陵) : 희릉(禧陵), 효릉(孝陵), 예릉(睿陵),
서오릉(西五陵) : 창릉(昌陵), 명릉(明陵), 익릉(翼陵), 홍릉(弘陵), 경릉(敬陵)
파주삼릉(坡州三稜) : 공릉(恭陵), 순릉(順陵), 영릉(永陵)
제5절 조선기대 분묘의 특징
Ⅰ. 매장 방법
1. 승려외 : 토장(土葬)
2. 승려 : 화장(火葬, 茶毘)
Ⅱ. 제사(祭祀)
1. 사당(祠堂): 神位을 모신 곳(정신)
2. 묘역(墓域) : 屍身을 안치한 곳(육체)
Ⅲ. 분묘의 구조
1. 분묘앞 : 床石 墓表
2. 신도(神道)앞 : 墓碑(피장자의 신분과 업적을 밝히기 위한 것)
가. 墓表 : 묘역의 봉분 앞에 세우는 가장 단순한 형태(비면의 앞면에는 피장자의 성명, 관직 뒷면에는 음기(陰記, 비석의 뒤쪽 면에 쓰여진 기록), 건립년대)
나. 墓碣 : 비석의 윗부분이 둔근 형태. 비(0) 능(×)
묘갈명명서(墓碣銘幷書) : 망자의 전기인 서(서)와 망자의 생애를 읊은 운문의 찬시인 명(銘)
다. 神道碑 : 종2품이상의 관리의 묘역에 오르는 신도의 입구
신도비명병서(神道碑銘幷書)
3. 석물(石物, 儀物) : 묘역에 설치된 석조물
文人石, 武人石, 長明燈, 望柱石, 床石, 魂遊石, 香爐石, 鼓石, 羊石, 虎石, 馬石 등
왕가 무덤의 명칭
- 능(陵) : 왕과 왕비, 계비, 추존된 왕의 묘(예 : 영릉, 홍릉 등)
- 원(園) : 세자나 대군, 공주 등의 묘(예 : 서오릉의 수경원, 순창원 등)
- 묘(墓) : 폐위된 왕이나 왕비의 무덤(예 : 연산군묘, 광해군묘)과 후궁의 무덤(명빈묘), 기타 왕가의 무덤(임해군묘)을 일반 백성의 무덤처럼 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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