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를 먹었을 때 삶을 뒤돌아보며-시 39편
나이가 많아지면 지난 날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살펴보는 일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잘 살았노라고 기뻐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심지어 죄를 지으며 살아온 것을 인정하며 회개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던 일, 이해하고 품어주며 용서했어야 하는데도 그리하지 못했던 일, 지극히 사소한 일에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비판했던 일 등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들이 연달아 떠오릅니다.
시편 39편은 다윗이 나이가 많았을 때 쓴 것으로 보이는데(J. Ridderbos),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받은 그도 사실은 회개할 것이 많은 죄인임을 인정하며(8-13),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7).
저는 시편 39편에서 볼 수 있는 두 가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번째는 "말"에 대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시 39:1-2)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시편 19편에서도 이렇게 기도했지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성경을 보면 말에 관련한 가르침이 대단히 많이 나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것을 보며, 히브리서에서는 성자께서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신다고 알려줍니다(히 1:3).
사탄은 말로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하게 했지요.
창세기에서는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라고 말하며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벌하신 하나님(창 11:1-9), 다니엘에서는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단 4:30)라고 교만한 말을 한 느부갓네살 왕으로 7년간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라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잠언과 전도서 그리고 바울 서신에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반복하여 가르칩니다. 대표적으로 몇 곳만 살펴봅니다.
*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
*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잠 10:19-21)
*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 12:19)
*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 13:3)
*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잠 15: 1, 2)
*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 17:9)
*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 느니라(잠 18:6-8)
*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잠 19:9)
*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 25:11)
*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 5:2)
*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그 입의 말의 시작은 우매요 끝은 광패니라 우매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신후사를 알게 할 자가 누구이냐(전 10:12-14)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 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19-20)
*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약 3:1-11)
*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벧전 2:1)
*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벧전 3:10)
*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최근에 독서모임에서 『그리스도인답게 말하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1. 실수를 피하고 싶을 때 “지혜롭게 말하기” 2. 성장을 위해서 “참된 것을 말하기” 3. 추악한 상황에 있을 때 “아름다움을 말하기” 4. 고통에 직면했을 때 “위로를 말하기” 5. 비난하고 싶을 때 “친절을 말하기” 6. 희망이 없을 때 “복음의 소망 말하기” 7. 장점을 보지 못할 때 “칭찬하고 하나님 찬양하기”라는 주제로 실생활에서 필요한 말하기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스티브 로빈슨 (Steve Robinson, 리버풀 코너스톤교회 담임 목사)의 추천평이 공감이 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언제나 옳은 것을 올바른 때에 올바른 방법으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가 속해 있는 세상에서 생명과 사랑을 가져다주는 말을 해야 한다. 또 이 책은 말이 선보다 악을 끼치는 것 같은 세상에서 생명과 사랑을 가져다주는 말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의 본질을 놀랍도록 정확히 담아낸다. 『그리스도인답게 말하기』를 다 읽은 후, 나는 나의 언어 습관을 더욱 직시하게 되었다. 모든 대화와 소통에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으로 말을 하려면,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옳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 자체가 기쁨이요 축복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둡고 파괴적일 때가 많은 말의 세계에서 밝게 빛나는 이 책은 말을 사용하는 모두를 위한 필독서다.”
나이를 먹으면 이런저런 말에 대한 가르침을 더 많이 받은 성숙한 자다운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삶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가 있어서 남의 말에 흥분하거나 분노하기보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는지 살펴보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쉽게 한탄하고 슬퍼하는 말, 듣는 자들을 낙심케 하는 부정적인 말,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공격적인 말을 하지 말고 잠깐 기다리며 생각해보고, 두 번 들으면 한 번 말하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특히 남이 이야기를 다 끝내지 않았는데도 중간에 끼어들어서 자기 말만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니 이런 버릇은 빨리 고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모임을 하다보면 이런 분들이 참 많은데 참을성있게 들어주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말에 대해 생각할 때에 다음 두 성경구절을 자주 생각합니다.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3:36-37)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둘째는 재물에 관한 것입니다. 다윗은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시 39:6)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전도서에서 이런 말씀을 많이 배웠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전 2:21)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전 2:26)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전 6:2)
이외에도 곳곳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6:1-12에서는 이 사람에게 주어진 재물과 부요와 존귀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슬프게도 이것을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돈과 부요와 존귀가 있어도 이것을 누리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하여 재물을 쌓아놓아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두 다른 사람이 누리도록 하신다면 이것이야말로 헛된 것이요, 악한 병이라는 말입니다. 나아가 전도서 6장 3절에는 “일백명의 자녀가 있고”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6절에는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라고 말합니다. 그럴지라도 만일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하면”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재물과 부요와 존귀도”, “자녀의 복”도, 그리고 “장수의 복”도, 확실하게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좇으며 몸부림치는 삶이라면 어리석은 것이요, 바람을 잡는 수고일 뿐입니다.
옛날 데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라는 사람은 107년을 살고 죽을 때에 “나는 이제부터 재미있게 살아 보려고 하니 죽는구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다윗의 기도가 지혜로운 것임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시 39:4-5)
이런 근본적인 진리를 알지 못하면 자신이 연약한 자요, 주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림자같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며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기에 바쁩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 왕의 욕심과 아합 왕과 이세벨의 욕심이 두드러진 것을 봅니다. 그들은 권력과 부에 마음이 어두워지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하다가 억울한 다윗을 죽이려고 뒤쫓고, 무죄한 나봇과 아들들을 죽이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세벨이 모함으로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밭을 차지한다는 발상 자체가 “힘”있는 자가 하지 말아야 할 행위중에 하나였고, 하나님은 즉시 엘리야를 통해 아합과 이세벨의 악행을 고발합니다. 나봇이 흘린 피가 곧 아합의 피, 그의 자손의 멸망임을 선포합니다. 사악한 음모를 꾸며서 무죄한 하나님의 사람 나봇을 죽인 이세벨도 곧 살해되어, 이스르엘 성 곁에서 개들이 달려들어 그녀의 시체를 먹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나아가, 아합에게 속한 자 중에서 성읍에서 죽은 자들은 모두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들은 새들이 시체를 먹을 것이라고 최고의 저주를 선언했습니다. 결국 사울 왕이 세우려고 하던 나라는 다윗에게로 넘어가고, 이스라엘에서 권력과 부를 누리려던 아합 왕은 하나님의 재앙을 받고 그의 가문이 멸절당합니다.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아합 왕이 병거를 타고 전쟁에 나갔다가 적군의 화살에 맞아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으며(왕상 22:34~35), 아합은 비록 사마리아에 장사되기는 했으나 그가 탔던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을 때 개들이 물에 씻긴 아합 왕의 피를 핥았고, 이로써 나봇의 포도원 사건 때 엘리야가 한 예언과 아람과 전쟁에 앞서 미가야가 한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왕상 22:38). 그리고 아합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악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세벨은 예후와 내시들에게 죽임을 당해 그 시체가 개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는데, 이 또한 엘리야가 한 예언대로였습니다(왕하 9:30~37).
오늘날에도 나라의 권력을 잡은 정치가들이 사울 왕과 아합 왕의 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합법을 이용한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세벨은 밭을 빼앗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장로와 귀족들을 이 일에 이용하였습니다. 그들은 성 안의 질서를 세워 법을 지키게 하고, 가끔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하며, 중요한 결정의 증인 역할을 하는 성읍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은 왕의 권위를 이용하여 이들에게 나봇을 죽이는 불의한 일에 동참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정의와 질서를 지켜야 할 지도자들에게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불의를 저지르도록 강요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불법이 퍼지고 무질서한 나라가 되도록 만드는 일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 위에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합과 이세벨과 아달랴와 예후의 상황을 읽으면서 권력을 위하여는 형제도, 자녀도 무참히 죽이는 잔인함을 보게 되고,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왕위를 위하여 아들이나 형제를 죽이고, 사촌을 죽이는 모습, 로마나 유대에서 황제나 헤롯가의 권좌를 위하여 가족을 죽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탄적인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에도 공산주의 국가와 독재주의 국가에서 몇 사람의 지도자나 지도층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재산을 빼앗는 일이 계속됩니다. 중국과 북한과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은 물론 독재국가가 되어버린 이슬람 국가들, 심지어 미국과 영국과 한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기득권을 차지한 일부 집단들이 갖가지 합법을 가장하여 음모를 꾸미고, 누명을 씌우며, 불법을 저지르면서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부를 빼앗아 가고, 자기들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합니다. 국민의 세금을 마치 자기네 집안의 돈처럼 여기는 집단들이 너무 많이 있고, 갖가지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서 불로소득을 가져갑니다. 참으로 한탄스럽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심지어 전염병을 퍼뜨리기도 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너무나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에 대하여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그렇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헛된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그 결과가 자기의 소원대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18장의 바벨론의 멸망이 잘 보여줍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계 18:1-3)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계 18:15-19)
이것을 자세히 이야기하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바벨론이 완전히 심판받는 것을 보면서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계 18:20)는 말씀을 기억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산 소망”(a living hope through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from the dead, and into an inheritance that can never perish, spoil or fade-kept in heaven for you 벧전 1:3-4)을 기억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부요, 기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6장의 삶을 살아가면 충분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7-12)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바울 사도가 나이가 많았을 때 쓴 편지라서인지 더욱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말씀 아닙니까? 그리고 이 정의가 사라지고 불의가 판치는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 크게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