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봄비의 속삭임 듣고
껍질 벗기며
새싹이 나온 날
새들이 노래해 주고
나무는 그날에 사랑을 압니다
창가에 앉아 이런 날
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지난 엄동설한 추위에
물론 나도 당신을 알았습니다
이제 비에 젖어 봄비에 젖어
새로운 사랑을 찾아봅니다
나무 곁에 서서
나무 곁에 서서
당신을 보는 새눈이 틉니다
사랑을 아는 꽃이 핍니다
이 시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만일에 이 시가 80년에 참여시인으로 역사의 흔적을 온몸으로 살다가 산화한 김남주의 시라면 과연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까? 김수영의 유명한 명시 '풀'이 김수영의 시가 아니고, 설령 박인환 정도의 동급의 시인의 시였어도 그렇게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엄동설한 추위를 이기고 봄비에 젖어 비로서 새 눈을 뜨고 사랑을 아는 새로운 눈을 뜨는 민초의 아픔을 대변한 시 정도로 평가가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하겠지만 위의 시는 그 이름을 논할 때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한 시인 최일환의 시이다. 시가 쉽게 씌여졌다고 해서 다 평가 절하 될 수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다작의 시인에게는 필연적으로 타작이 많이 발견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리고 부단한 노력을 통한 자기 변신없이는 시인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세태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비슷비슷한 발상과 어법으로 씌여지긴 했으나 분명한 한 세계를 이루고 있는 최일환 시세계를 아우르는 본질은존재하며, 그 본질을 조금이나마 밝혀보자는 의도에서 이 글은 시작하고 있다.
처음 인용한 시에서도 나왔지만 그의 시에도 많은 서정시가 그러하듯이 '당신''사랑''그대'라는 어휘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최일환의 시는 홍신선 교수의 지적대로 '그리움의 대상이면서도 <내 베개>에서 밤마다 만나는 사랑'이다. 홍교수의 지적을 더 빌리자면 '부재하면서도 고통보다는 행복을,비애보다는 즐거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임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도/멀게 멀게/아주 먼먼 곳에서도/가까이 가까이'보이는 존재이다.이러한 범애론적인 시선은 그의 시의 절창 중의 한 귀절( 두줄시로 보아도 무방한 )'목련꽃 피는 아침은 /아 세상 모두 애인이어라'(최일환,"목련꽃 피는 아침은"의 마지막 연,시문학,94,11)을 잉태한다. 단 조지훈 시인의 싯귀인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를 연상시킨다는 단점은 있다.
이야기는 지금부터 10년전 1996년 세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내 정신은 좀 오락가락했고 여행지로서만 여겼던 목포에서의 삶은 생각같이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모두가 예민하고 남들고 쉽게 사귀지 못하는 성품 때문이었으리라. 그 즈음 최일환 시인을 만났다. 그냥 첫느낌에 나와는 연배 차이가 많은 선배 시인 정도로 느꼈으리. 그런데 중요한 건 최시인은 그동안 내가 만난 몇 안되는 문인 중 한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시인으로서는 한 세번째쯤 될까? 모교의 교수님 시인 한 분, 추천받은 잡지의 발행인이셨던 시인 한 분 그리고 세번째 였다. 정말이다. 그분과의 이러저러한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으며 그것이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그분이 어떤 상을 받았고 무슨 상을 어떻게 받았으며 무슨 회장을 몇 번 했는지 도통 관심이 없다. 오히려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최시인님이 내게 몇 번 육필 편지를 보냈으며, 몇 번 맛있는 밥을 사주셨으며, 전화 목소리가 그리 듣기 싫지 않은 음성이었으며, 월례회때 지나가는 소리로 회색 목폴라가 잘어울린다는 내말에 몇 번 더 겨울 내내 그 폴라를 입고 다니셨다는 사실이다.
다시 책을 집어든다. 내 작은 서고에서 먼지를 뒤집에 쓰고 있었던 <바람따라 흔적없이>이다. 어쩌면 시인은 운명을 예견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지 모른다. 한 시인이 사라졌다. 정말 '바람따라 흔적없이' 이럴 수가 있을까? 주위의 아는 분들이 한 분 두분씩 작고할 때마다 그 허망감은 농도를 더한다. 그리고 그분께 받았던 과도한 기대와 칭찬 그런 것에 빚갚기로 이글은 시작되고 있다. 글쓰기가 그런 걸로 연유한다고 비난받을 일 있을가? 어차피 사람은 서로 빌려주고 갚으며 사는 인생이 아닌가? 우리의 살이가 그렇듯이...
최일환의 시세계를 짚어 보기로 하면서 사설이 길었다. 아는 사람의 평설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홍신선 교수는 지방에서 문학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문학하는 일의 근본은 서울이든 지방이든 좋은 글을 쓰는 것이지만 지방에서 좋은 글을 쓰는 일은 더 어려운 것 같다. 김영랑이나 유치환 선배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지금보다 상황이 불리한 시절에 그분들은 불리하게 살면서 우리 시의 흐름에 한 공간을 빚어놓았다. 생각이 여기 미치다보면 그들이 더 커보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전남문학>,2006년 봄)
최일환 시의 첫번째 특징은 동심적 발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목포를 대표하는 시인중의 하나인 김선태 시인은 최시인의 시쓰기의 키워드를 이루는 동심적 발상을 안이하다고 질타한 적이 있으나(<목포시인 산책>,최일환 편) 최일환 시인이 동시로 시를 시작한 분이고, 시심 자체가 어린아이의 천진한 눈을 가지고 바라보았으니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런 동심적 발상은 '비행기 타고/먼 나라로 여행가는 길은/돌아가신 어머님을/만나러 가는 길이다/구름 위 어디쯤/편히 주무시는 어머님을 깨우러 가는 길/'로 인식되고 있고,참새의 눈을 보고 '세상 보는 눈 저리 작아도/보이는 세상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하고 있다. 봄눈을 보고 '마음이 너무 깨끗해/따돌림 당했나/눈물 글썽대며/내려'온다고 노래하고 있다.
최일환 시의 또다른 특징을 이루는 부분은 어머님을 비롯한 사람에 대한 뜨거운 애정표현의 시이다. 이 논의에서 주로 텍스트로 삼은 시집은 메이저급 출판사가 아닌 출판사에서 발행한 오자가 간혹 발견되는 시집 '바람따라 흔적없이'(영하,1997)이다. 최일환 시에 대한 광의의 논의가 진행되려면 그의 전 작품을 아우르는 통찰과 논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머니 오래 누워서
눈썹 내려 감은 눈에
하늘이 들어가
오 평화로운 세계
눈썹 올려 뜬 눈에
젊은 시절 고향의 논과 밭
또 어른 거리고
하루에도 수십번
하늘과 땅 사이를
왕래하신 어머님
눈썹 사이로
한평생이
흘러갑니다
<눈썹 사이로> 전문
개인적인 의견으로 최일환 시인이 자주 사용하는 '오'라는 감탄사를 뺐으면 하는 마음이 들지만 최일환 시의 특징을 두루두루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시는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고,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유동하는 특이한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독실한 크리스쳔이기도 했던 최일환 시인은 <종소리>라는 시에서
종줄을 잡아 악기자
거두워 올려 놓은 종 줄
차임벨 소리에 밀려 난 종 소리
종 줄을 다시 잡아 당기자
고향집 앞은 흙벽돌 교회
먼 먼 하늘까지 소식 알리던
그 종소리
쫒기듯 몰래몰래 교회 나오던 사람들
간절한 기도 소리같은 종소리 종소리
종 줄 잡아 당길 때면
우수수 우수수 쏟아지던
은혜스런 새벽 별 가슴에 안고
어둠 속에 등잔 불빛 따라따라 가면
초가 지붕의 작은 예배당
(중략)
최일환 시의 주요 특질을 이루는 운율성이 두드러진 시이면서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잡아당겨 시골 초가 지붕의 작은 예배당으로 옮겨놓고 있다. 주의할 점은 차임벨 소리에 밀려난 종소리라는 귀절이다. 시인은 도시 문명에 쫒겨나는 구식 문물에 대한 애정을 도처에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쫒기듯 몰래 교회나오는 사람들은 무엇일까? 뭔가 비밀한 것, 소중한 것을 보듬고 지켜내고자 하는 정의로운 마음 같은 걸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닐까? 더이상 확대 해석은 그만 두기로 하자. 이도 역시 타자의 섬세한 손길과 본인도 후일을 기약하자.
이글은 쓰던 도중 홍신선 교수의 <고향,또는 범용주의의 공간>(<<전남문학>>,2006,봄)이라는 본격적인 최일환론이 발표되었다. 반가운 마음이었다. 홍교수는 최일환 시의 본질을 '마음 속의 유토피아인 고향의 훼손에 대응하는 최일환의 비판'이라는 표현을 앞의 글에서 사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그 비판은 전통적 삶의 상상적 재현으로 이루어진다. 흔히 과거 지향으로 일컬어지는 이 상상적 재현은 전통적 삶에 몸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말하자면,유토피아에서 (고향공간)의 삶의 기억들을 되살리고 그 세부를 꼼꼼히 꿰매므로써, 단순한 기억의 잔해가 아닌 지난 날 삶의 몸을 회복하는 일인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최일환 시인은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목포에서 생활하시고 목포에서 운명하였다. 그에게 '목포'란 지명은 시인을 낳아준 '고향땅 해남'이상의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시인은 목포에서 자주 슬프고, 자주 홧술을 마신다.
목포사람들은 선창가에 나가
비린내 나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막으면서
생낙지가 도마 위에서 칼에 맞아도 꿈틀거림을 보면서
헐벗긴 삼학도 쪽으로 두주먹 불끈불끈 쥐면서
소금기 짜디짠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이난영의 서러운 목소리로
노래하면서
노래하면서
(최일환,목포의 눈물 7 전문, <남쪽 끝 항구에서>,청하)
한동안 목포역사에 붙어있었던 역시 김선태 시인의 혹평을 받은 작품 <목포에 오면>에서도 이 소외받은 자의 억울함, 울분은 고스란히 드러나도 있다.
설레이는 가슴을 움켜잡고서
기다리는 곳으로 눈을 돌리면
그리운 이름들이 너무 많구나
갈증난 목구멍으로
세발낙지 한마리 씹어삼키고
괜히 뜨거운 눈물 왈칵 내보낸다
(최일환,목포에 오면 부분,호남교육,96.10)
필자가 보기에 최일환 시인에게 세발낙지는 목포사람들의 동의어이다. 나아가서 소외와 핍박으로 대변되었던 목포사람들의 환유이기도 하다. 자신이 산채로 동강이 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지금은 화려했던 모습이 간데없는 식민지의 빗물같은 삼학도와 이난영의 노래를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왈칵 쏟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일환의 목포정서는 각별하며 또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당대의 미문가 <칼의 노래>의 저자 김훈도 최일환 시인을 가리켜
'목포 시인 최일환의 시들은 목포의 지역성에 보다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다. 유달산,노적봉,갓바위,삼학도,고하도,째보선창,오겅리 등은 그의 시의 중요한 테마이고 '남농선생''차재석 선생'같은 목포의 어른들께도 그는 단정한 시 몇 편을 바치고 있다. 그의 목포 시편들은 도시 정서나 농촌 정서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남쪽의 한 작은 항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김훈, 내가 읽은 책과 세상,푸른 숲 76-77쪽)
고 평가하고 있고 그의 '목포의 눈물'연작들은 '고향의 아늑함과 스산함,고향의 사랑과 고향의 분노'로 동시에 평가하고 있다. 말하자면 제 2의 고향에서 집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린 시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일환시 중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을 지적해 본다. 위에도 잠시 언급했듯이 도시문명에 밀려난 변두리 인생들의 춥고 스산한 이야기들이다. 최일환 시중에서 가장 뛰어난 시로 여겨지는 '머슴 종남이'연작들에서 이러한 특질은 유감없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담이지만 언젠가 광주에 문학행사를 마치고 함께 차를 타고 오는 차안에서 최시인은 본인이 예전에 소설을 쓰고 싶었노라고 털어놓으셨다. 그러한 일환이 아니겠는가? 하찮은 풀꽃같은 돌맹이 같은 누구말대로 갯것들이나 잡으며 살아가는 보잘것 없는 잡초같은 생이지만 그 잡초에는 마침내 아름다운 꽃이 피며 온천지를 덮어버리는 갯땅쇠정신같은 끈끈한 생명력이 묻어있다 하겠다. 최시인은 된장국 냄새나는,'어머니 품인 듯 내리고 싶은 곳'인 고향을 그리며, 평생을 갯냄새나는 목포를 지켰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한사람의 민초의 모습이 시 안에 선연히 그려냄에 일정 부분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설쇠러 고향찾아 온
젊은이들의 승용차가 붐비는데
동구 밖 언덕에는
종남씨 혼자 지게 옆에 쉬고 있다
섣달 그믐날 마지막 노을이
서럽게도 너무 곱더니
종남씨 가슴에서 사라진다
신물지로 말아핀 잎담배의 흰 연기가
금방 구름 속으로 사라진 뒤
나무껍질같은 손가락을
몇 번이나 굽히고 펴고 헤아려도
남의 집 머슴살이 오십년
찾아갈 곳도 없고
찾아올 사람 하나 없는 친구
씨름했던 그 젊은 날의 그 힘도
꽹과리쳤던 그 즐거움도
찾아볼 수 없는 마을 안 길도
다시 지게 짊어지고 들어선다( 머슴살이,<바람따라 흔적없이> 중에서)
이것으로 살아 인연이 잠시 닿았던 선배 시인과의 빛갚기 작업이 조금 이루어진 것일까? 존경하는 평론가 조남현 선생님의 말대로 '인생이란 되로 받고 말로 갚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만 아직도 최일환 시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할 뿐이다. 문학이 문학 자체로 평가되지 못하고 줄서기나,파벌만들기로 인정되는 세태를 온몸으로 사시고 증언하다가 짧은 생애를 마감하신 분이 바로 그 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시인이란 무급의 직업 자체가 정체된 분위기, 게으름에 젖다보면 타성에 젖게 되고 줄서기 자체를 즐기게 되는 요령을 몸에 익히기 쉽다.지방에 거주하고 있다면 그 정도가 더 심해질 것이다. 이 모든 걸 하늘나라에 가신 시인은 맑은 시심으로 이 사바의 불쌍한 중생들을 내려다보고 있겠지만...
첫댓글 누이님, 속마음에서 꺼낸 글, 알뜰살뜰히 읽습니다. 평론 평설이 미답인 목나문단에 한 아름다운 시도라고 여겨집니다. 곳곳에 보이는 평설에 대한 평설도 의미롭게 다가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후속 평설도 기다립니다.
문장이 잘 안된 부분이 있어 조금 수정했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부끄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