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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바위를 쉼 없이 때리다 보니 스스로 멍이 들어서 그런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바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아이의 손을 잡고 직접 말했다. 나무와 바람, 달맞이꽃이나 하늘다람쥐, 은빛 갈치 떼들나 독을 품은 방울뱀까지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저마다 품고 있던 푸른 색을 조금씩 보탠 까닭이라고. 결정적인 것은, 네가 그런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고 너도 모르게 빠져나간 너의 푸른 색이 나에게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라고. 너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스스로의 외로움을 벗지 못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이미 바다에게 이 대답을 들었건만 어른이 되고나서 그 답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60~61쪽, 박두규 '바다가 푸른 이유' 모두 시인들이 애타게 부르는 생명 평화의 노래 "나는 물고기이고 새이며 짐승이고 나무이며 달이고 해이다"라는 메시지를 내걸고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걸어 다니며 이 땅에 생명평화의 씨알을 뿌리고 있는 '생명평화결사' 산하 문화위원회가 생명평화 탁발시집 <바다가 푸른 이유>(시와에세이)를 펴냈다. 도종환, 곽재구, 백무산, 조성래, 안상학 등 시인 64명의 탁발시가 각 1편씩 모두 64편이 실려 있는 이 시집에는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라는 화두 같은 시가 탁발순례단의 잰걸음처럼 빼곡히 실려 있다. 이번 시집의 편집을 맡았던 시인은 김용택, 박남준, 박두규, 안도현, 양문규, 이원규. 이들 시인들은, 시는 생명 평화의 뿌리인 존재의 속내를 드러내는 등불이며, 생명 평화를 무럭무럭 자라나게 하는 좋은 양식이라는 데 뜻을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시 속에는 사람들의 소박한 꿈과 따뜻한 웃음소리가 들어있고, 생명을 지닌 온갖 미물들의 고운 얼굴과 그 생명의 향기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들 64명의 시인 모두가 '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를 다닌 것은 아니다. 또한 이들 시인들 중 늘 생명 평화 탁발순례에 나선 시인들도 더러 있다. 그래서일까. 이들 시인들의 시 속에는 이 땅의 생명과 평화의 씨알을 뿌리기 위해 발땀을 흘린 시들도 있고, 그저 먼 발치에서 삼라만상의 속내를 차분하게 훑은 시들도 있다. 시인이라는 존재는 타고날 때부터 생태주의자
그렇다. 생명평화운동은 나 혼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운동이 아니다. 생명평화운동은 네가 없으면 내가 없다는 그런 운동이다, 즉, 사람은 해와 나무 등 삼라만상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므로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그날까지도 해와 나무 등 삼라만상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명평화결사' 문화위원회 최명진 목사는 서문에서 "시를 쓰는 일은 본질적으로 늘 자신과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는 일이며 자신과 모두를 가여워하고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어 최 목사는 "시인이라는 존재는 생래적으로 생태주이자요 스스로 생명평화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되뇐다. 최 목사는 또 "생명평화운동은 자연의 질서와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며 그와 같은 인간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이는 '나'의 존재론적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고 구체적 생명현실로 구현해내어야 하는 뼈저린 성찰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의 생명에 상처를 주지 마세요 "시장에서 참숯을 샀다 갈참나무의 뼈를 샀다 흙가마를 휘감는 천 도의 불길 속에 제 肉(육)을 날려버리고 훠얼 꿈들을 날려버리고 단단한 심지로 남은 靜寂(정적) 한 덩이 샀다 - 42쪽, 김정희 '검은 뼈' 몇 토막 시인 김정희는 시장에서 산 참숯을 바라보며 숲 속의 참나무가 어떤 시련을 거쳐 숯으로 다시 태어나는가를 곱씹는다. 그리고 너무나 가벼워진 참숯을 통해 "욕망을 사르면 이리도 가벼워지는 것이냐/ 죽어서도 세상을 맑게 하는 것이냐/ 생명을 부추기는 것이냐"라며, 사람의 이기적인 욕망을 빗댄다. 시인 강영환은 "별이 보일 때까지/ 하늘을 갈고 닦아라/ 그대 가슴에서 어둠을 몰아내고/ 별이 돋을 때까지/ 슬픔을 갈고 닦아라"(내 마음의 투명한 우수)라며, 공해에 찌든 지구촌의 환경을 되짚는다. 시인 권석창은 죽령 옛길에 서서 "죽령 옛길은/ 계곡물을 동무하며/ 산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나 있었네"(죽령옛길)라며, 길과 물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노래한다. 시인 김기홍은 "발길에 걸리는 모난 돌멩이라고/ 마음대로 차지 마라/ 그대는 담을 쌓아 보았는가"(돌담)라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생명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다 소중하다고 여긴다. 시인 김용락은 "대구에서도 앞산 남쪽 자락 가창면 상원리에는/ 조선의 토종 반딧불이가 유난히 많"(반딧불이)다며, 터널을 마구 뚫어 자연의 생명에 상처를 주지 말라고 경고한다.
"내 가난함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배부릅니다 내 야윔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이 찝니다 내 서러운 눈물로 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 새벽밥같이 하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 -35쪽, 김용택 '세상의 길가' 모두 시인 김은숙은 "경기도 여주 땅을 지나다가/ 쌀밥집이라는 상호를 처음 보았는데/ 쌀밥이라는 낯익은 어휘가" 살가워 쌀밥 한 그릇을 시켜먹으며 이 땅의 배고픈 민초들을 떠올린다. 시인 김인호는 "오랜 비 끝에 촉촉한 땅을 갈아 씨앗을 뿌"(씨앗을 뿌리며)리며, 자신도 씨앗이 되어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과 평화의 싹을 틔우고 싶어 한다. 시인 김종인은 "비바람이 불어도 호들갑 떨지 않고/ 땡볕이 쏟아져도 아랑곳하지 않는" 늙은 감나무를 바라보며 "감꽃이며 가지며 물든 이파리"(저 늙은 감나무)까지 아낌없이 내주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깨친다. 시인 김태수는 백마전적비 가는 길가에 피어있는 홀아비바람꽃을 바라보며 "남북도 없이 이념도 없이 서로 몸 비비며/ 저토록 엉기어 있"(홀아비바람꽃)다며, 대자연을 통해 분단의 비극을 되짚는다. 시인 나희덕은 "1950년 늦여름/ 지리산 어느 마을에서의 일", "새벽녘 동구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그 일을 떠올리며, "평화의 걸음걸이란/ 총탄의 여울을 건너는 숨죽임과도 같은 것"(평화의 걸음걸이)이라고 되뇐다. 시인 도종환은 "처음 이 산에 들어올 땐/ 나 혼자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내가 흔들릴 때/ 같이 흔들리며 안타까워하는 나무들을 바라보며"(숲의 식구), 숲도 내 식구라고 여긴다. "햇살은 부처, 길은 법당, 바람은 경전" "쌀값 폭락했다고 데모하러 온 농사꾼들이 먼저 밥이나 먹고 보자며 짜장면 집으로 몰려가자 그걸 지켜보던 밥집 주인 젊은 대머리가 저런, 저런, 쌀값 아직 한참은 더 떨어져야 돼 쌀농사 지키자고 데모하는 작자들이 밥은 안 먹고 뭐! 수입밀가루를 처먹어? 에라 화상들아 똥폼이나 잡지 말든지 나는 그 말 듣고 내 마음 일주문을 부숴버렸다 -110쪽, 이중기 '그 말이 가슴을 쳤다' 모두 시인 박남준은 "꽃들 어여쁘다/ 키 큰 나무들의 꽃그늘 아래/ 다투지 않고 피어난 키 작은 꽃들"을 바라보며, "평화롭게 산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비워내는 것"(생명평화세상을 위하여)이라고 마음을 다진다. 시인 백무산은 "햇살은 부처/ 길은 법당/ 바람은 경전"(이 길에서 삶을 혁명하리라)이라며,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생명이라고 말한다. 시인 손세실리아는 "씨앗은 생명이라고/ 집 안에 들이면 귀신 내쫓는다"(초경)며, 사람들이 흔히 먹고 버리는 과일의 씨앗 하나도 더없이 소중한 생명이라고 여긴다. 시인 안도현은 "제 집의 개는 사람보다 더 사랑하고/ 남의 집의 사람은 개보다 더 증오한다"(드디어 미쳤다)며,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커먼 속내를 한껏 비웃는다. 시인 안상학은 봄비 내린 아침 "선 채로 누운 석가모니불은 퉁퉁 눈이 부어 있었고/ 앉은 채로 누운 비로자나불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운주사 와불)라며, 대자연과 사람은 하나라고 속삭인다. 시인 양문규는 "양지쪽 바른 곳부터 꽃은 피어난다"(나도양지꽃)라며, 대자연을 음지로 몰아넣고 있는 사람 중심 자연주의를 비꼰다.
생명평화 탁발시집 <바다가 푸른 이유>는 사람과 대자연은 둘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의 피붙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짚는다. 이 시집은 지구촌에 생명과 평화가 올곧게 깃들기 위해서는 사람이 대자연을 자식처럼 보듬고 살 때, 대자연도 사람을 부모로 모신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한다. 한편, <생명평화결사>에서는 오는 29일(금) 저녁 7시, 명동성당 별관에서 시집 <바다가 푸른 이유>와 생명평화 100배 서원음반 <온숨>을 헌정하는 "생명 평화의 푸른 바다에서"라는 문화 한마당 행사를 연다. 이번 행사는 모두 10마당으로 '바다는 왜 푸르냐고?' '스스로 멍이 들어서' 등 화두를 던지고 답하는 독특한 연극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자리에는 (사)<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시인들과 가수 김원중, 이지상, 수니씨가 나와 축하노래를 부르며, 이종희씨의 생명평화의 춤, 더실버라이닝의 생명평화 랩공연, 작곡가 박문옥씨의 '100배 서원음반 <온숨> 20배 시연 등이 펼쳐진다. 이어 5개 종교 성직자 오충일 목사, 수경 스님, 박경조 주교, 이선종 교무, 박정우 신부가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읽는다. |
첫댓글 햇살은 부처/ 길은 법당/ 바람은 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