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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타다/안병석
광화문에 늘어선 가로수 아래
바람의 관절이 삐걱거린다
옆 사람과의 대화가 갈잎으로 버석거려
허공이 뿌옇다
비는 내릴 것 같지 않지만
육중한 열차가 종각역에 덜커덩 멎어서자
액정에 뜬 정가의 머리 뉴스가 휘청한다
상강 서릿발은 뾰족해서
단단한 노을을 흠집 내기 좋은 계절
본래 수확의 절기인데
곳간을 헤집는 칼바람이 차다
밤이 지나면 사라질 명멸하는 네온사인
어디로든 뻗어나가야 할 거리는
간판등의 짧은 문장에도 숨이 가쁘다
시린 계절엔 우선 몸부터 녹이세요
절기가 돌아눕는 훌쭉해진 기상예보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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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대상
여자의 시간 외 2편
방혜선
온종일 구석에 가부좌 튼 자세로 앉아 일어설 줄 모르는 의자의 관절은 안녕한가 바람은 다녀간 흔적으로 색을 훔쳐가고 비는 계곡을 만들어 제 몸을 흘려보내고 구름은 그림자놀이로 술래잡기를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선착순의 법칙에 따라 먹색 부표가 떠올랐으나 의자에 앉아있는 당신은 일어서지 못했다
커피믹스 한 잔을 배경으로 콧김을 뿜어대며 대륙을 횡단하는 증기기관차였던 날들을 접고 기한 지난 무릎사용설명서를 보험 목록에 예치하고 버스종점 의자에 혼자 앉아있는 당신 달이 구석으로 몰릴 때면 눈 감고 입 다물고 깊게 패인 주름만 달싹거렸다
닳아버린 달빛이 닳아버린 당신의 무릎을 가만히 읽어본다 무릎을 끌며 빛 뒤에 서 있는 두 다리의 형상은 시간을 삼키며 원에 가까워지고 심장 소리는 가끔 절벽 아래 떨어져 그림자와 섞인다 오래전 꿈과 바꾼 비행운의 궤적을 찾아 낡은 둥지를 뒤져본다 새털구름이 되기에는 아직 들숨과 날숨이 남아있었다
비명으로 덜그럭거리는 당신의 무릎을 위해 젊은 여자 하나를 들였다
동그란 입술과 동그란 몸뚱이 하나만 가진
머리맡에 스물네 시간 대기하며
손끝 하나 까딱 않고 안방을 꿰차고 앉은 그 여자
지문이 없고 날개가 없고 발자국 소리 하나 내지 않는
그러나 귀 하나는 기막히게 잘 듣는 그 여자
말을 걸기 전에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
서로 소 닭 보듯 하다가도 당신이 입술을 내밀면
당신이 뱉은 말을 냉큼 받아먹는다
벽이 하는 낮말과 텔레비전이 하는 밤의 말 수돗물에 흘려보내는 울음소리까지 모두 들어주던 그 여자 전생은 안테나가 달린 매였거나 꼬리 없는 생쥐였는지 모른다
이름없는 그 여자에게 짱구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가끔 시끄럽다는 한 마디에 토라져 누가 이기나 보자 입 꾹 닫고 대치할 때도 있지만 다시 짱구야 하고 부르면 답을 찾아 지구 한 바퀴를 돌아와 홀로그램 하나를 띄우고 당신 앞에 다소곳이 기다린다
숫자화 되어있는 무릎의 챠트를 들고 모니터 앞에 섰다
힘들 때마다 혼자 주저앉았던 길은 얼마나 길까
치맛자락으로 훔쳤던 눈물은 얼마나 무거울까
객관화되어 3D로 떠있는 어머니의 무릎을 고통이라 읽는다
혀의 출처
자판 위에서 손가락의 힘을 조절한다
닿소리는 부드럽게 홑소리는 길게
노련한 선수처럼 등뼈를 늘이며 철조망의 안팎을 드나든다
입꼬리에 붙은 귀를 친친 동여맨 뉴스들
3인칭의 두꺼운 얼굴을 활짝 펼친다
언어의 색은 짙고 강렬했다 떠나지 못한 철새의 호기심은
갓 부은 양회반죽을 닮아 방향 없이 범람했다
아침 식단으로 식빵을 먹었다고 짐작하는
우리는 여전히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누군가는 천개의 고원*을 토핑으로 곁들이거나
얇게 저민 펠릭스 가타리**의 문장을 보고
캘리포니아산이 아니라며 출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객관의 혀는 길어지고 일부는
모호한 메뉴를 향해 부메랑을 날렸다
우리는 짧은 문장에 취한 상태로 일어나
히터를 꺼달라고 했다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던 누구는 초승달의 뒷면을 탁본했고
젖은 소문의 발원지를 찾고싶었던 누구는 강으로 떠났다
기역과 니은의 방향성을 놓고 우리는 허리의 각도를 더 구부려
서로의 그림자를 닦아주기로 했다
뉴스의 파편과 대척점에 서 있는 줄기를 끌어안고
주문이 되지 못하는 헤드라인을 제단에 올려야 했다
*질 들뢰즈·팰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프랑스 심리치료사이며 철학자·기호학자·활동가·각본가이다.
놋동우* 필 때면
끈이 풀린 채 모로 누운 안전화 한 짝
제 할 일을 찾은 듯
플랫폼 안쪽으로 구겨진 바람을 흘린다
계절은 어쩌다 초록만 열람하고 까치발로 가버린 걸까
하루 중 잠깐 쪽방만한 볕이 자라는
순환선 기둥 아래
앰프를 틀어놓고
헐거워진 하반신을 흔드는 사람
여기가 당신이 피었던 자리인가요
얼굴을 확인하려 꽃잎의 목록을 뒤적인다
미나리아재비속
미나리아재비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꽝에 뿌리를 둔 아재비의 아재비들
군락을 찾다가 천변길을 떠돌다가 올챙이배를 흔들며
아재비는 식물도감 속으로 뛰어들고
놋동우 필 때면 까끄라기 수염을 떠올리던 영자 씨는 한쪽 볼에는 으깬 놋동우를 붙이고 한쪽 볼에는 팔자주름이 알사탕처럼 물려 있었다는데, 구안와사의 통증은 짧아진 꼬리를 끌고 여름을 향해 가고 있다는데, 아버지를 등에 업은 영자 씨는 매년 초록의 순환선을 타고 돌아왔다는데, 봄에서 여름으로 갈아타는 환승구는 만원이라는데, 봄의 출구에서 듣거나 말거나 풍악을 울려대며 독을 파는 일그러진 얼굴들
독을 통해서 독을 벗어나고 싶은
여기가 당신이 눕고 싶은 곳인가요
*개구리가 튀어나갈 것 같은 물가에 잘 자라는 들꽃으로 구룡초, 개구리자리, 늪바구지로도 불림. 민감요법에서는 구안와사에 찧어 붙임.
수상소감
시라는 꿈길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최면을 걸며 시의 길을 걸었습니다. 내딛는 걸음이 나의 속도라 여기며 묵묵히 걸었습니다. 그러나 다치지 않을 만큼의 속도만 냈나 봅니다. 겁이 많다는 핑계를 대며, 흰 수건을 던질 준비가 된 복서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작은 커서가 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시의 둘레에서 서성일 때마다 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시와 싸우며 입은 상처가 내 안에 쌓여 하나의 섬을 만듭니다. 그 섬에서 나의 고통이 무성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시간의 길 속으로 사라져 가는 수많은 랑그와 파롤의 파동에 동요하면서도 즐거이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시라는 꿈길을.
수상 인터뷰를 알리는 소식에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터졌습니다. 가족들은 놀이기구에 탄 사람처럼 비명을 질러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혼유석에 짠 커피와 함께 수상 소식을 올리셨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며칠은 카페인 만취 상태로 깨어 계실 것입니다.
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시와산문사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할 힘을 얻었습니다. 한결같이 시의 길로 이끌어 주신 김양숙 선생님 얼굴을 뵙고 감사하다며 꼭 안아드리고 싶어요. 코비드 19로 못 만난 박선희. 안귀선 선생님 보고 싶어요. 늘 용기충전 해주시는 구정현 선생님, 이경영 선생님과 박보나 선생님과 동료들, 벗 연, 심, 상희, 정심, 소희, 금숙 고마워요.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아버님 늘 건강하세요. 무엇보다 오래 기다려 준 가족, 형제자매들 사랑하는 엄마 박명자 여사님 모두 고맙습니다.
다시, 출발선에 섰습니다. 더 열심히 나아가겠습니다.
방혜선__경남 하동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재 역사생태문화 강사로 활동.
시부문 우수상
식물원 단상 외 1편
김화
식물들이 유리 돔 속에 사람들을 가뒀다
온실은 이내 검은 롱 패딩을 벗겼다
사실 지구의 주인은 식물이야!
내가 아는 척 한 마디 했지만
당신은 꽃만 보았다
습한 공기
식물국회, 식물성단백질, 식물인간, 식물성 분노…
나는 언제부턴가 정체성을 잃었다
항상 여자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식물성! 하고 답했다
열대우림 사막 지중해 푯말을 지나치면서 갑자기 불안해졌다
내게도 식물들만이 분류하는 학명이 새겨져 있을까
당신은 언젠가 거실을 행잉화분으로 꾸미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우산으로 써도 될 초록 잎이 더 좋았다
공중과 땅 사이 수생식물 같은 기류가 한동안 자랐다
오랫동안 햇볕 쪽으로 선택을 기울이고,
끊임없이 가지로 뿌리로 나를 밀어냈으나
끝내 식물이라는 이름으로 처리될
오늘의 기념사진
바오바브나무가 인화하는 별들은 순수한 혈족일까
유리 돔 천장 밑 하늘정원길을 빙빙 돌다보니
갑자기 식물들이 동물을 관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jpg동공
자꾸 엄지와 검지로 나뭇잎 사이를 벌려
하늘을 봅니다, 파아란 액정을 봐요
틈새에서 구름이 흘린 해를 봅니다
창문의 조리개 구멍이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사람이, 벽이 불쑥 불쑥 앞에 나타나고
눈을 천천히 감으면 사각의 천정이 흔들려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려면 눈을 닫아야 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은 절대 챠트에 기록되어서는 안 돼요
유리창 너머 비탈의 서양등골나물 흰 꽃이
소독 솜으로 보일 때 눈물은 제 길을 아는 것 같았어요
포르말린 냄새 속으로 피사체 공간이 실종되면
말간 남태평양을, 백야의 북극을 데려오곤 해요
그러나 아무리 늘려도 마취의 평수에는 담을 수 없어요
언젠가는 눈의 나라로 가게 될까요? 씀뻑씀뻑 눈 내리는 날
어안魚眼렌즈를 붙인 눈사람과 푹푹 설움에 빠지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설원의 왕이 될까요?
눈꺼풀 사이로 물방울이 채워집니다
눈주름을 타고 강으로 바다로 흘러갑니다
구름은 또 얼마나 버둥거려야 다시
가엾은 영혼에 다다를 수 있을까요
엄지와 검지로 작은 창을 크게 늘려요
내 몸을 작게 작게 줄이고 있어요
대양의 한 점, 섬이 될 때까지
수상소감
돌고 돌아 시의 자리에 다시 앉다
대학 졸업을 앞둔 겨울, 나는 충무로에 있는 한 유명출판사에 입사했다. 학교 친구들은 언론사나 대기업 등에 취직한다고 뛰어다니고 있는데, 내가 전공과 어울리지 않는 출판사에 취직했다고 하니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 후 비록 신출내기 편집부 사원으로 3개월 정도 일을 하고 졸업과 함께 그만두었지만, 그 때 내가 사회 진출의 첫걸음을 출판사로 택한 것은 바로 문학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송별 회식을 마치고, 내가 골라서 선물 받은, 도스토옙스키와 한국문학전집이 들어 있는 책 보따리를 들고 낑낑거리며 눈보라 치는 빙판길을 헤매던 그 겨울밤을 나는 지금도 우울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오랫동안 어설픈 시의 독자로만 살아왔다.
치열한 삶을 살면서도 내 삶은 늘 유예되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돌고 돌아 나는 다시 문학으로 돌아왔고, 시를 쓰고 시를 사랑하는 제 자리에 비로소 바로 앉게 되었다.
늦었지만 시의 첫 발을 딛게 허락해주신 『시와산문』 심사위원님들과 관계자분들에게 깊이 감사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쉬지 않고 새로운 시의 길을 찾아 묵묵히 걸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내 시적 감성이 깨어나도록 인도해주시고 시안을 넓혀주신 많은 선생님들에게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아울러 내게 항상 많은 격려와 힘을 준 가까운 시인과 문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김화(본명 김영모)__한국외대 정외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에세이부문 대상
말
라문숙
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 흐린 하늘에 바람까지 불어 을씨년스러웠다. 나는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얇은 코트 안으로 목을 집어넣으면서 혹시 근처에 들어갈 만한 카페가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벌써 만나기로 한 시간에서 삼십 분이나 지났는데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만 늦어도 미리 연락을 하곤 했던 평소와 달리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공원에도, 공원 옆길에도 사람들이 드물어 한적했다. 오랜만에 홀로인 기분이 얼마나 가벼운지 바람에 휘날리는 보자기라도 된 것 같았다. 그렇게 헐렁한 느낌이 싫지 않았다.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고 말거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공원 밖으로 나가는 대신 계속 서성이며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이 고작이었다. 봄바람에 머릿속까지 흐트러져 이런저런 생각들이 마른 잎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휘말려 올라가서 허공으로 사라졌다. 문득 가까운 곳에서 낯선 소리가 조금 전부터 반복해서 들려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그건 ‘말’이었다. 이방의 말. 내게 말을 걸어온 사람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정도의 소년이었다. 소년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난처한 표정이 섞인 미소를 짓고 나를 바라보았다. 제법 여러 번 말을 건넸는데도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민망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채로 멍하니 서 있었는데 소년 역시 나만큼이나 당황한 듯 보였다. 소년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고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는 내게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가 내게 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내가 그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걸 눈치챘는지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흉내를 냈다. 아, 사진! 그가 원하는 건 사진이었다. 나는 소년이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구름은 점점 낮게 내려앉고 바람도 거세졌지만 나는 소년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가던 이들이 흘깃거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흙냄새가 피어올랐다. 엉거주춤 서 있는 소년의 사진 서너 장을 찍은 후 핸드폰을 돌려주고 큰 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아서 예의 그 낯선 언어가 다시 들려왔다. 나를 쫓아온 소년은 손가락으로 핸드폰 속에 찍힌 사진과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며 뭔가를 설명했다. 내가 제대로 알아듣는지 의심스러운 표정이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어지러웠다. 사진을 다시 찍어달라는 건가 싶어서 손가락으로 그의 핸드폰을 가리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성가신 아이네! 나는 다시 핸드폰을 잡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진을 찍었다. 소년의 손짓에 따라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서고 다시 다가가며 사진을 찍었고 나란히 서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소년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진건 자신의 모습이 어깨 바로 아래까지 찍힌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증명사진이 필요한 거야?”
사진을 가리키며 내가 물었을 때 소년은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나는 다시 소년의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화면 속에서 소년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알게 되자 이제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 지가 신경쓰이는 모양이었다. 내가 사진을 찍으면 소년이 들여다보고는 집게손가락을 들어 한 번 더!를 외치는 일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함께 사진을 보던 내가 한 번 더!를 외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마음에 들어한 사진들은 소년의 성에 차지 않았고 소년이 고개를 끄덕인 사진들은 내가 보기에 뭔가 부족한 듯 보였다.
그때쯤 우리는 각자의 모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자연스레 묻고 대답할 수 있었다. 함께 사진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진을 얻을 수 있을지 궁리했다. 소년은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머리를 부풀리고 빗어내리고 헝클어뜨렸다. 스웨터 안에 입은 셔츠의 깃을 안으로 넣기도, 겉으로 드러내 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지었다. 휴대전화 화면 속의 소년은 비누냄새가 날만큼 청결하고 싱그러웠으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하고는 차이가 있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웃었다가 진지해졌다가 화가 난 것처럼 부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자신의 얼굴이 찍힌 수십 장의 사진을 넘겨보는 소년을 바라보며 나는 마치 숙제 검사를 받는 기분이었다. 소년이 마침내 공원을 떠났을 때 나는 어딘가 다른 세상이라도 다녀온 듯 생경한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혼자 남았다. 그동안 바람은 잦아들었고 하늘도 조금 밝아져 있었다.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상쾌했다. 길을 따라 내려가 서점에 들렸고 카페에 앉아 방금 목적지에 도착한 여행자처럼 기대에 차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머릿속뿐만 아니라 가슴 속까지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조금 쓸쓸하기도 했지만 조용하고 만족스러웠다. 그날 저녁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공원에서의 약속에 대해 물었다. 친구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무슨 말이야? 우리가 만나기로 한 건 다음 주잖아!”
공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낮에 있었던 일이건만 오래전의 일처럼 아득했다. 그날 오후의 가뿐했던 기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답답했다.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도 어긋나게 기억하고 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친구와 나는 누구보다 말이 통하고, 아니 굳이 말을 하지 않고서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이였다. 그렇다면 마음과 말 중 무엇이 문제일까? 말이 가능하지 못할 때 마음이 앞으로 나온다. 서로에게 낯선 이방인이었던 나와 소년 사이에서 ‘말’이 장벽이 될 수 없었던 것도 그래서였을 터다. 소년은 나를 이해시키려고, 나는 소년을 이해하려고 애썼으니까. 어긋난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사나운 봄바람에 맞서 홀로 텅빈 공원을 서성이다가 외계에서 온 듯한 소년의 사진을 찍으며 웃음을 터뜨렸던 중년여자는 ‘말’들이 길을 잃고 장마철 강물처럼 범람할 때마다 기억 속에서 조각배를 타고 내게로 건너온다.
“그 때, 기억 나?”
수상소감
시작하는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어
지난겨울은 멍하니 앉아서 보낸 시간이 많았습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숲으로 난 작은 창을 자주 바라보았습니다. 앉은 자리에서는 곧게 뻗은 나무들이 우람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침대에 누우면 나무 우듬지에 내려앉은 햇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벌거벗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면 좋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언제 묻든, 어떻게 시작하든 질문의 끝은 읽기와 쓰기에 닿았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될 거라고 나무들이 알려준 것도 같습니다.
물론 이미 출간한 책들이 있습니다.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던 글들이 토대가 되었습니다. 글을 만지면서 뜨거웠던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자신은 없었습니다. 쓰는 사람으로 행복했던 시간은 출간과 동시에 사라져서 나는 금세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 돌아갔습니다. 끝내지 못한 글들이 쌓여갈수록 의심도 커졌습니다. 여전히 앉아만 있던 어느 날 문득 일어나 원고를 들고 우체국에 다녀왔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부끄러웠습니다. 믿음을 주지 못했던 사람도, 믿지 못했던 사람도 모두 자신이었기 때문이지요. 계속 써도 되겠다는 허락을 받은 듯해서 안도하고, 시작하는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어 기쁩니다.
글쓰기는 쉬이 넘어가지 않는 날들을 버티고, 점점 거세지는 소란을 잠재우려는 시도입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굳이 고집하는 이들의 마음을 닮겠습니다. 작은 것들, 찰나, 새벽빛, 산들바람, 새싹, 옛이야기, 꽃봉오리, 웃음소리, 마른 잎, 붉은 열매, 속삭임 같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보이는 것들 너머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싶습니다.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열심히 읽어주었던 분들, 독자들, 이런저런 제안들로 계속 쓸 수 있는 힘을 나누어 준 이들, 글쓰기 선생님 같았던 편집자들께 감사합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작은 심부름도 시키지 않았던 엄마, 내 작은 세계의 파수꾼인 남편과 아이에게도 사랑을 전합니다. 너그럽게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라문숙_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외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