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픔이 빚어낸 인간의 본성 - '물레방아, 뽕/나도향'을 읽고(이수린 )
동아 여중 1 이수린
일제강점기는 모두가 살기 힘든 시대였다. 굶어죽지 않고 목숨을 이어나가는 것도 중요한 시대였고 독립운동과 항일투쟁 뒤편에서 비참한 그 시대를 꿋꿋이 살아 버틴 많은 민초들이 있었다. 그 민초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 나도향의 작품‘물레방아’와 ‘뽕'을 읽었다.
물레방아는 상전의 탐욕과 위선에 대한 하인의 반항과 응징을 다뤘다. 신치규의 막실살이를 하고 있는 이방원의 아내는 신치규가 자신의 아들 하나만 낳아주면 모든 것을 준다는 말에 솔깃하여 신치규와 함께 이방원을 쫓아내려는 음모를 꾸민다. 방원의 아내가 선택한 것은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남편이 아니라 신치규의 돈이었다. 지금도 돈을 노리고 남편을 죽이는 아내에 대한 뉴스는 쉽게 들을 수 있는데 돈 앞에서 인륜을 저버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나보다. 가난을 이겨내는 방법이 몸을 파는 것밖에 없었을까 생각도 해봤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지주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소작도 아닌 머슴살이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처지라면 여자들이 몸을 파는 것이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작가 나도향은 그 시대 남자들의 무능력과 여자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나타낸 것 같다. 즉 가난과 신분상승욕구, 또 성적 욕구가 비교적 도덕이나 윤리로부터 자유스러운 서민층에서 그리고 여자들에게서 더 활발하게 나타난 것을 그려내고 있다.
'물레방아'는 결국 방원이 아내를 살인함으로써 벌을 받아야 할 신치규나 아내 대신 오히려 피의자가 되어버린 비극으로 끝난다. 이보다 더 비참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비참하게 끝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벙어리 삼룡이'나 '백치 아다다'에서도 그렇듯 이 비참한 내용들이 우리들 얘기가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었다는 게 정말 가슴 아팠다.
‘뽕’은 방원의 아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인간들의 도덕적 무질서를 정확히 알려 주는 작품이다. 노름꾼인 김삼보의 아내 안협집은 인물은 곱지만 무식하고 가난하여 15살에 원두막 집 총각에게 참외 한 개를 얻기 위해 정조를 버린 여자였다. 그리고 한 달에 한두 번 들릴까 말까 하는 건달 남편만 믿고 혼자 살 수 없어 돈이 있는 남자들과 어울려 헤프게 몸을 팔았다. 반반한 계집이면 한 번 씩 넘본 뒷집 머슴 삼돌이가 안협집을 두고 애를 태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뒷집 주인마누라가 그 둘에게 누에에게 먹일 뽕잎을 도둑질해 오라고 시킨다. 삼돌인 안협집을 넘볼 기회라 생각했지만 뽕지기에게 들켜서 삼돌이는 도망가고 안협집만 잡혀 그에게 몸을 판다. 목적을 이루지 못한 삼돌이는 삼보에게 그녀가 뽕지기에게 정조를 판 계집이라고 이르는 것으로 분풀이한다. 화가 난 삼보는 아내를 때리지만 안협집은 되려 태연하다. 집안은 팽개치고 노름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삼보가 안협집을 때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작가 나도향은 가난에 찌들려 살다가 폐결핵으로 죽는다. 그래서‘물레방아’와 ‘뽕’은 나도향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서민들의 생활이 잘 묘사돼 있다. ‘뽕’에서 안협집은 남편에게 맞고도 태연하다. 여기에서는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밑바닥 인생들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체면을 위해서라면 앉아서도 굶어 죽을 수 있는 선비와 정조를 지키기 위해 은장도로 자결하는 여인들 얘기를 많이 듣고 자라서인지 체면을 지키기는커녕 정조까지도 함부로 팔고 사는 주인공들의 모양새가 읽기에 아주 불편했다. 읽는 동안 부끄럽고 치욕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글이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것은 가난 앞에서 인간이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금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방원의 아내나 안협집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것이 있다면 주인공들은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몰렸다는 것과 지금은 스스로 그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정도다. 그만큼 인간성의 타락정도가 심해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타락의 강도는 더 커질 것이다. 바른 가치관을 세우고 저마다 그것을 강하게 지켜나가지 못한다면 우리 주변에 신치규나 삼돌이 뽕지기같은 인간형들의 유혹은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접한 책들이 교훈적이고 감동을 전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물레방아', '뽕'은 낯설고 생소했다. 만약 작가의 의도를 먼저 알았다면 덜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신치규 , 삼돌이, 뽕지기, 방원의 아내, 안협집은 내가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할 대상들이 아니라 어려운 현실을 적극적으로 살아나간 우리 민족의 한 부분이란 걸 생각해낸 것이 이번 독서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