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신문 / 崔瑛의 군산문학의 원류를 찾아서 (6)
마 음
배환봉(1936- 현재)
거미줄로 망을 두르고
그 속에
화사한 날개가 쉰다
이슬방울처럼
대롱진 마음을
하늘에 받쳐 들고
어디서인가
시작된 길을
곰곰이 생각든다
별빛처럼
신은 수많은
날을 걷어드리고
모시올의
싸늘한 그 부피로
꽃씨를 감는다.
1963년 5월 23일부터 31까지 군산 여정다방에서 개항 64주년 제 1회
개항제 시화전에 금실히, 김봉열, 김신웅, 문찬, 배환봉, 원용봉, 유상은,
이병훈, 정윤봉, 조아설, 차칠선, 황자금 , 이창열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시화전 작품을 모아 묶어놓은 손바닥만한 앤솔러지를 내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책자의 머리글 뒷부분에 이 시화전에 그림을 그려준 문복철,
태건석 화백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시인과 화가가 함께한
흔적이 정겨워 보입니다.
위 시는 배환봉이 27세 때 쓴 시입니다. 거미줄 속에 햇살을 받아 빛나는
어떤 중심을 노래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전체적인 균형미가 약한 듯하지만
별빛과 모시올로 집약한 꽃씨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꿈 많은
아가씨의 마음이 환히 보여서 좋습니다.
80년대 중반 내가 최승범 교수가 하는 전북문학에 시를 내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 책에 군산 영광 중학교 교사로 시를 발표하고 있는
배환봉과는 글로 이미 알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가 군산 청사초롱
문학회에 참여 하면서 문학적 인간적 교류를 했습니다.
1992년 문예사조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 봄볕 내리는 뜨락>,
< 따스한 햇살 조금씩 모아> 등 두 권의 시집을 내놓고 제 3시집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그는 청사초롱 문학회 회장을 하다가 97년도인가
<군산여류문학회>를 조직하여 많은 문학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뒷날
군산 여성 문학을 확충하고 시민의 정서 함양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합니다.
시인 배환봉 선배는 나와 같이 순창이 고향입니다. 그 분의 선친은 유학과
신학문 그리고 불교에 일가를 이루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는 어려운
60년대 서울에서 유학을 했던 모던 걸이었습니다. 서울 유학여학생이
시골에 나타나면 얼마나 많은 총각들 가슴을 두근거렸을지 알만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신태인 중학에서 교편을 잡을 때 제자가 박순호 교수라
하여 우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신태인 학교를 그만두고 군산에서 쉬고 있는데 제자였던 박순호가 이곳에서
교수 생활을 하며 은사 배환봉을 천거하여 교직에 복직하였답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우리 가슴에 침전되어 전설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는 영광여중에서 정년을 한 후 자기 시와 군산 여류 문학을 아우르는 일
그리고 사회봉사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우린 한 때 직장 담 너머로 오가며
시와 우정을 교류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데 근년에 문인 협회일로 이상하게 엇박자가 되어 서로가 마음의 상처를
많이도 입게 되었습니다. 참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나의 수양 부족으로 인한
상처가 더디더라도 아물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길지 않는 자투리 세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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