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11
10. 등신불(等身佛)(김동리) 줄거리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간 나는 중국의 북경을 거쳐 남경에 주둔해 있다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탈출, 불교 학자인 진기수 씨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생면부지 적국의 옷을 입은 한국인을 믿지 않자, 오른손 식지를 깨물어 '원면살생 귀의불은(願免殺生 歸依佛恩)'이라는 혈서를 써 올려 결국 그의 도움으로 정원사라는 절에 머물게 된다. 나는 그것에서 수업을 하는 도중 금불각 속에 있는 결가부좌상의 등신불을 보고 경악과 충격에 빠져 든다. 그 등신불은 오뇌와 비원이 서린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나'가 생각한 거룩하고 원만하고 평화스러운 불상과는 반대이므로 충격을 받은 것이다. 등신불은 옛날 소신공양으로 성불한 만적이란 스님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불을 입힌 특유한 내력의 불상이다
만적(법명.속명은 기(耆).성은 조씨)은 이복형제인 '사신'을 독살하려는 어머니의 사악함에 환멸을 느껴 스님이 되었다. 그후 금릉 방면에서 우연히 '신'을 만나게 되었는데 '신'은 불행히도 문둥병이 들어 있었다. 만적은 그의 목에 염주를 걸어 주고 절로 돌아와 소신공양을 결심한다. 만적이 몸을 태우던 날 육신이 연기로 화해 갈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으나, 단 위에는 내리지 않았으며, 또한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 이러한 신비가 일어나 3년간이나 새전이 쏟아지게 되며, 이 새전으로 타다 남은 그의 몸에 금물을 입혀 등신불을 만들게 된 것이다.
- 1961년 11월[사상계]101호
핵심정리
갈래 : 단편 소설. 종교 소설
배경 : 태평양 전쟁 중인 1943년 초여름, 중국 양자강 북쪽 정원사
구성 : 액자 구성
표현: 묘사적 방법보다는 서술적 방법이 더 많이 사용됨. 불교 용어가 많음
주제 : 인간적 고뇌의 종교적 승화
등장 인물
나 : 태평양 전쟁 당시 학병으로 끌려 나가 남경에서 일본 대정 대학 선배인 진기수의 도움으로 탈출, 불가에 귀의함.
진기수 : 중국의 불교 학자로, 나의 탈출을 도와주는 대학 선배
원혜 대사 : 정원사의 주지. 나를 거두어 주고 불도에 인도함
만적 : 내부 액자 속의 주인공. 법명은 만적. 속명은 기. 당나라 때 사람으로 금릉에서 태어나 개가한 어머니가 이복형제 '신'을 죽이려는 것을 알 고 집을 나와 방황하다 불가에 귀의. 23세 때 정원사에서 소신공양으 로 금불각에 모셔짐
이해와 감상
[무녀도]와 마찬가지로 토속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배어 있는 전통적 서정주의 세계를 보여 준 김동리의 후기 작품 세계를 대표. 인간의 운명은 추구하는 서정성과 순수 문학의 옹호라는 김동리의 문학관이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만적의 소신공양을 통해 종교적으로 승화되어 있다.[등신불]은 그의 단편소설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액자소설형식으로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전체 구조로 보아 내부 이야기에 작품의 무게가 실려 있지만 전후의 '나'의 행위와 깨달음에도 상당한 의미를 주고 있다. 외부 이야기는 '나'의 생활과 금불각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렸고, 내부 이야기는 이 작품의 핵심 사건인 주인공 만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게 되고 등신불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작품은 불교적 소재를 취급하고 있지만 불교의 초월적 신앙을 주제로 삼은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실존적 인간 경험과 그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만적이 자기 몸을 불사르는 의식에는 자신과 배 다른 형제를 죽이려던 어머니의 죄를 사하고, 그 죄의식이 가져온 번뇌로부터 자기를 구원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이복 형'신'이 앓는 문둥병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숙명적 고통에 대한 절대자의 자비를 구하는 대속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불타는 만적의 머리 위에 나타난 '보름달 같은 원광'은 실존적 인간의 초극적 힘을 상징한다. 또한, 이 소설은 '나'와 '만적'과의 대비를 통해서 불교 사상이 보여주는 삶의 번뇌와 한계 상황,그리고 인간 의지를 통한 초극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나'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불교에 귀의한 소승적 의지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인간적 아픔과 슬픔을 성불의 경지로 승화시킨 만적의 대승적 의지를 통하여 살신 성불의 비장미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주인공이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쓴 실존적 경험은 만적이 육신을 불사를 때 느낀 처절한 인간체험과 같은 현실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나'가 식지를 깨물어 혈서를 쓴 것과 만적선사의 소신공양은 개인과 중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구원의 의미 즉, 운명을 극복해 보려는 인간의 몸부림이라는 공통된 의미를 갖는다. 김동리는 인간의 원초적 죄의식과 번뇌, 그리고 이에 대한 종교적 구원이라는 주제를 즐겨 다루는 작가이다.{역마}에서는 운명에 순종하므로써 구원을 얻은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인간고뇌의 종교적 승화를 통해 구원을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이 주제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탐구는 장편{사반의 십자가}에서 볼 수 있다.
지은이가 초기부터 줄기차게 시도했던 ‘인간의 구경(究竟)의 탐구’라는 주제가 이 작품에서 완성되었다는 평을 받을 만큼 완숙한 작품이다. 학병을 탈출한 화자는 등신불을 본 순간 그것에 일종의 동정을 느끼면서 불상에서 인간의 고뇌의 원형을 본다는 사실에 의아해 한다. 그러나 곧 등신불 속에 나타나는 인간적 고뇌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며 그를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등신불은 불상과 인간 사이에 놓여져 있어, 절대자와 인간 사이에 중개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영원 회귀를 지향하는 인간에게 그것은 구원의 좁은 문 앞에 세워 놓은, 인간을 평가하기 위한 거울이기도 하다. 화자는 이러한 등신불에 자신의 인간 속사를 비춰 봄으로써 유한한 자신과 무한한 우주의 원형을 인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