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8일 수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누구의 일꾼인가?
내 이력서를 보면 정말 화려합니다. 지금까지 옮겨 다닌 곳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가장 짧게는 6개월에서 가장 오랜 곳은 10년까지 직장을 옮겨 다녔습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10년, 고등학교에 10년, 대학에 근무하기를 23년, 그렇게 대충 계산할 수 있지만 각각 근무처가 계속 바뀌고, 생활공간도 무척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사를 다닌 것도 열다섯 번이 넘습니다. 많은 상사도 모셔 보았고, 많은 어른들하고 근무도 해 보았습니다. 여러 보직도 맡아 보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보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 자리에서 30-40년을 계속 근무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 비해서 너무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무슨 일이건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말을 지금서야 실감합니다. 나와 똑 같이 공무원을 출발한 사람이 국장이 되고, 차관이 되고, 장관까지 올라간 사람은 분명 나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학교에서도 같은 직장에서 계속 근속하면서 교장이 되고, 총장이 된 사람을 보면서 그들이 좋은 몫을 택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돌아다니느라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것을 반성하면 나의 그 역마살(役馬殺)은 도저히 말릴 수 없는 고질병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떠돌이 삶에 아주 익숙합니다. 내가 존경하는 분 밑에서 행복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나와 같이 일하던 사람들을 너무 볶아대서 아주 힘들어 하던 사람들도 기억합니다. 나를 따르고, 내 강의를 열심히 듣던 수많은 제자들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내 강의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살려고 애쓴 제자들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고 그 일에 만족하던 때도 많이 있었고, 너무 욕심을 내어 부작용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후회할 일도 많이 하였고, 아쉽고 더 열심히 일할 것을 대충 한 일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고통스러워 혼자서 울기도 하였고, 기뻐서 웃고, 떠들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가닥가닥 살아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돌아다니지 말고 한군데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셨는지 생각이 머뭅니다. 너무 변덕스럽게 내가 편하고, 대접받는 곳으로 옮기려고 했었던 삶을 반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는 이룰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지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과연 어떤 일꾼이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일의 주인은 누구였는지 생각해 봅니다. 학교에 있으면서 학생이 주인이었는지, 교장이나 총장이 주인이었는지, 이사장이 주인이었는지, 국가가 주인이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세종대왕 드라마를 보면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세종대왕의 그 깊은 뜻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한 사람이라도 행복한 것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성의 편에 서야 한다는 그 깊은 애민사상(愛民思想)을 가슴 깊이 새겨 봅니다. 그 애민사상이 곧 하느님의 사랑과 함께하는 것임을 느낍니다. 세상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양들을 이리 떼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시는 심정을 다시 느낍니다. 그리고 그 평화를 나누어 주시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시는 주님의 사랑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일꾼이었는지, 세상 사람들의 일꾼이었는지, 내가 근무하던 곳의 일꾼이었는지, 가장 소중한 가족의 일꾼이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제발 주님의 일꾼이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이 시대는 일꾼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을 다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일꾼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정말 하느님께 일꾼을 많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성직자, 수도자들도 간절히 청해야 하지만 열심히 세상을 개혁하고, 세상을 주님의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평신도 일꾼이 더없이 필요합니다. 이제 평신도 일꾼을 많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평신도 일꾼을 잘 양성하고 그들에게도 품삯을 잘 쳐 주어야 합니다.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10-17ㄴ
사랑하는 그대여,
10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11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12 티키코스는 내가 에페소로 보냈습니다.
13 올 때, 내가 트로아스에 있는 카르포스의 집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 특히 양피지 책들을 가져오십시오.
14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실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15 그대도 그를 조심하십시오. 그는 우리의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축일10월 18일 성 루카 (Luke)
신분 : 복음사가, 증거자
활동 연도 : +1세기
같은 이름 : 누가, 루가, 루까, 루카스, 루크
전통적으로 성 루카(Lucas, 또는 루가)는 교회사학자 에우세비우스(Eusebius) ·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 · 리옹의 성 이레네우스(Irenaeus, 6월 28일) 등에 따르면, 안티오키아(Antiochia) 출신의 그리스인 의사로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의 ‘협력자’(필레 1,24)이자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라고 알려졌다. 실제로 성 바오로는 서간에서 그를 ‘사랑하는 의사 루카’라고 지칭했다(콜로 4,14).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12월 26일) 부제의 순교와 박해로 많은 이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했는데, 안티오키아도 그런 도시 중의 하나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을 돌보기 위해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를 파견했고, 성 바르나바는 타르수스에 있던 성 바오로를 데려와 함께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성 루카는 아마도 이때 사도들과 알게 되고 특별히 성 바오로를 깊이 존경하고 따랐던 것 같다. 그는 51년경에 있었던 사도 바오로의 제2차 선교 여행을 수행하며 힘껏 도왔고, 57년까지 필리피(Philippi)에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한 후 성 바오로의 제3차 선교 여행 때도 만난 듯하다. 그는 성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의 감옥에 갇혔을 때도, 로마로 호송되어 감옥에 갇히고 재차 갇혔을 때도 늘 곁에 있었다(콜로 4,14; 필레 1,24; 2티모 4,11). 그는 사도 성 바오로의 순교 이후 그리스로 건너간 듯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복음서를 집필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Maria)를 찾아뵙고 주님의 탄생 전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반대로 성모 마리아를 직접 뵐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마리아의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고도 한다. 전통적으로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 초상화로 알려진 이콘의 작가가 성 루카라는 의견도 있지만, 사실 그는 ‘붓’보다는 ‘펜’으로써 다른 복음서들이 전해주지 않은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기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의 모습을 마치 그림처럼 묘사해 주었다(루카 1-2장). 성 루카가 언제 어디서 복음서를 집필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것은 팔레스티나 밖에서 80년 전후에 쓰였다고 한다. 그리고 루카 복음을 시작하는 머리말(1,1-4)에 따르면, 그는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Theo-philos)을 뜻하는 ‘테오필로스’라는 인물을 통해 이미 그리스도교의 기본 진리를 전해 들은 이들이나 입문자가 더욱 확고한 신앙을 갖게 하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대체로 성서학자들은 복음사가 성 루카가 염두에 둔 독자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로 보고 있다.
루카 복음서와 이어지는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부터 63년경 사도 성 바오로가 로마에서 수인으로 생활하며 선교 활동에 매진할 때까지 초대교회의 성장기를 서술하고 있다. 전반부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에게 그리고 후반부는 사도 성 바오로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성 루카 자신에 관한 구절은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겸손함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성 바오로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 아카이아(Achaia) 지방과 소아시아 지방에서 선교하며 온갖 고난을 참아내며 주님을 섬기다가 84세를 일기로 선종한 듯하지만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의 열두 사도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던 성 루카는 의사와 화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 루카는 성경(에제 1,10; 묵시 4,7)에 언급된 ‘살아있는 네 생물’에서 유래한 상징에 의하면 황소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성 루카 복음사가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격과 주님과 사도 성 바오로를 위한 희생과 충직함을 상징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루카 (Luke)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