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에 관하여- 창조적인 사고
통상 생각하기를 사고라면 우리가 늘 하는 것이 아니냐. 지금도 하고 어제도 했고 내일도 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또 그런 사고말고 창조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우리가 하는 사고와 창조적인 사고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아가 우리는 어떤 사고를 해야하는가가 질문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하는 사고, 밥은 뭘 먹고 출근은 몇시에 하고 잠은 언제 잘 것인가와 같은 사고가 있다. 또는 금리가 몇퍼센트이고, 테이퍼링이 언제 시작되는지와 같은 사고도 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내게 맞는 밥은 어떤 밥인지, 왜 그 밥을 찾아서 먹어야 하는지로 넓혀진다. 다른 예, 출근, 잠도 마찬가지이다. 금리가 몇 퍼센트이므로 앞으로 내게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와 같은 사고도 있고, 그렇게 금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와 같은 사고도 있다.
사고가 다 같은 사고는 아니듯이, 사고가 갈라지는 지점이 있다면 여기이다. 예컨대 밥을 어떻게 먹는가? 첫 번째, 내게 맞게 먹는가. 그냥 생각없이 먹는가. 두 번째, 내게 맞게 먹되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게 먹는가. 세 번째, 밥에 대해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생각하는 것이다. 미래 쌀농사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나라 기후가 변하고 있는데 대처는 하는가? 세계 산업이 변하고 있는데 먹거리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등등. 더 많은 사고가 있을 수 있다. 나아가면 노벨상을 받을수 있는 사고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세 번째가 창조적인 사고이다.
한 사람을 두고 보면, 그 사람의 사고가 어디까지 나아가는가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예컨대 첫 번째 사고만 할 경우 발전이 없다. 자신의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가 있지만, 자신의 분야도 첫 번째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여기, 사고의 지점에서 삶이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이런 사고(세 번째)를 하도록 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질문이다. 누구라도 이런 사고를 해서 인생을 풍부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사고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하라고 해도 하지 못한다. 요컨대 누가 말해주는 사고를 보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식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재를 뽑을려고 기업에서 전담기구까지도 설치하는 것이다. 인재가 곧 기업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인재를 어떻게 키우는가. 언제 이런 인재가 나누어 갈라지는가?
슈타이너가 항상 주장하는 교육방법이 있는데, 여기에 중요한 지점, 인재가 갈라지는 지점이 있다. 어떻게 교육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재가 되는 것이다. 교육방법은 두가지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나아가는 방법, 반면 부분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첫 번째 방법, 수학에서 뺄셈을 할때에 전체 갯수를 말해주고 내게는 몇개의 수가 있다. 전체에서 얼마를 덜어냈을까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전체 20개가 있다. 그리고 내 손에 5개가 있으면 얼마를 덜어내야 할까이다. 아이들에게 -처음- 제시할 때에는 반드시 그림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하면 인간의 내부가 바삐 움직인다. 내부가 총동원되는 것이다. 반면 두 번째 방법인 부분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20개에서 15개를 덜어내면 나머지는 얼마일까와 같은 방법이다. 이 경우 내부는 잠잠하고 머리만 바삐 움직인다.
우리 모두는 두 번째 방법으로 수학을 배웠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슈타이너는 인간의 본성이 전체에서 부분으로 접근하므로 반드시 첫 번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로 든 것이 우리가 길을 가다가 무서운 것을 만나면 몸 전체로 놀라지 머리로만 놀라지 않는다. 이를 풀이하면 몸 전체로 놀란다는 말은 인간의 내부, 정신과학적 요소 모두가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반면 부분으로 접근하면 머리만 움직인다. 머리만 움직이면 -되풀이 하지만- 정신과학적 요소가 움직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필자도 초등 학교에서 수학을 배웠는데 -그 당시를 돌아보면- 수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그 당시는 필자가 공부를 못해서 그런가 보다. 또 예습, 복습을 안해서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이 필자의 내부 환경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필자의 내부가 도통 모르겠다는 싸인을 보낸 것이다. 싸인을 보냈기 때문에 필자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이는 필자가 이때만 해도 내부와 소통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결국 점점 내부와 소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는 것도 파악된다. 당시는 이유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필자의 내부에서 제기하는 질문을 묵살하였고, 슈타이너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그 부분에서 -평생- 창조적인 사고가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도 많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 차이를 자세히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앞에서 말했듯이 전체로 접근하면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움직이고, 반면 부분으로 접근하면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움직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는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가 있다. 네 가지가 모두 움직여야 창조적인 사고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교육방법이다-. 먼저 인간의 발달단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육체는 0-7세까지, 에테르체는 7세 이갈이 시기에 탄생해서 7-14세 동안 발달한다. 아스트랄체는 사춘기 시기 탄생, 14-21세 발달해서 자아가 탄생한다.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탄생하기 전에는 막으로 둘러 쌓여있다. 그리고 이갈이 무렵 에테르체가 탄생하고, 사춘기 무렵 아스트랄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당연히 인간의 발달단계에 맞게,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의 속성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결론은 7-14세 사이는 에테르체의 속성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정신과학적 요소가 발달해서- 인간의 세 번째 사고, 즉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다. 추상적 사고를 에테르체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이 우주 에테르야 말로 사고내용의 진정한 담당자입니다. 모든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이 우주 에테르야 말로 사고내용의 제공자이며, 사고내용이 존재하는 곳입니다(교육은 치료다. 2017, 46)."
추상적 사고란 일상 삶에서 비롯되지만, 일상 삶에서 벗어난 사고이다. 즉 세 번째 사고이다. 이 사고를 에테르체에 의해서 에테르체를 통해서 얻는 것이다. 조금 과장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7-14세 사이 결정된다고 할수도 있다. 더불어 여기가 인간의 사고가 갈라지는 지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아이들이 추상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
교육은 인간의 발달단계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교육을 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여기에 마추어야 한다. 이어서 에테르가 탄생하는 시기는 에테르의 속성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에테르체가 탄생하는 시기 인간의 발달 단계는 가슴부분이다. 먼저 감성으로 접근해야하고, 가슴체계는 혈액과 맥박 그리고 심장이 뛰는 리듬쳬계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리듬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 에테르체는 상으로 받아들이고 상으로 표현하므로 사고를 하지는 못한다. 이 시기 사고를 요하는 교육은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상이란 비유로 에테르체가 생명의 힘이므로 생명의 힘을 상으로 표현하면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한다. 자신과 같은 존재를 상으로 표현해 주면 아이들 내부는 즐거워서 비명을 지른다고 슈타이너도 표현한 바 있다.
누구라도 가만히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즐거워서 환호성을 지를 때가 있었을 것이다. 이때가 그런 경우이다. 인간의 내부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내부를 움직이기가 어렵지만, 한번 움직이면 그 영향이 계속 지속되고 평생 즐겁고 행복하다. 추억을 먹고 산다는 의미가 여기에도 해당이 될 듯하다. 아이들의 내부가 발달할 때 내부를 움직여주면,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해 하는 지가 짐작조차 안된다. 그런 경우를 많이 보지 않아서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가 생각할 때 인간의 내부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렇게 못하면 차라리 교육을 하지 말고 가만히 두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둔다의 의미는 사랑은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스스로 발달해 나아간다.
어느 날 우연히 구글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사람의 강의를 유튜브에서 들었다. 질문자가 천재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을 텐데 다른 점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 천재의 예를 들면서 이 사람은 4-5세 동안 밥을 먹고 매일 1-2시간 숲속을 산책하면서 엄마와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언제나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황성현 대표 참조).
4-5세 사이 엄마와 매일 산책을 함으로써 아이의 내부가 온전하게 발달했을 것이다. 4-5세는 모든 존재를 자신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본질 자아가 우주의 영향력을 받는 시기로, 인간이 우주의 영향력을 받으면 일반적으로 말해서 천재가 된다. 자아가 드러나면서 우주의 영향력을 인간이 잊으므로 자아가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또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하면 숨어있는 본질 자아를 깨우게 된다. 우주의 영향력을 많이 받을 때이므로 그것을 잊지 않았을 것이고, 또 인류의 도움이 되는 일이 본질 자아를 깨웠을 것이다. 천재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결론은 교육이 중요하고, 교육이 인간의 내부를 깨우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감성을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서 -자신의- 본질 자아가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를 자극하여 현실 삶을 창조적으로 살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