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이네 집
- 이주홍
오늘도 어제같이
따스한 날
충이랑 식이랑 준이랑
현이네 집에 와
말판놀이 하고 있다
밥 먹으러 가라 두번 세번
할아버지가 재촉을 해도
마루 밑에 옹기종기
신들을 벗어 놓은 채
아이들은 들은둥 만둥
말판놀이에만
정신을 뺏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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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너는 죽었다
- 김용택
콩 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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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나비
- 헤르만 헤세
작은 파랑나비 한 마리
바람에 실려 날아간다.
자개구름 색깔의 소나기처럼
반짝반짝거리며 사라져 간다.
이처럼 순간적인 반짝임으로
이처럼 스쳐 가는 바람결에
행복이 반짝반짝 눈짓을 하며
사라져 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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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길
-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