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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8일 토요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자랑스러운 제자들
혼자서 제자들에 대해서 생각이 머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가끔 그냥 혼자서 시간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제자들을 생각합니다. 정말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이 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하여도 나는 그들을 생각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들 생각은 기도뿐입니다. 가난하게 살았던 제자들, 불우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하였던 제자들이 하나하나 생각납니다. 나는 남자제자보다 여자 제자가 더 많습니다. 여학교에 근무했었기 때문이고, 내 과목의 수강신청을 여학생이 많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학교와 교육기관에 근무한지 43년이나 되었으니 제자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항상 마음에 머무는 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자상업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에 제자들이 언제나 마음에 가득히 남아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공부하던 그 학생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정말 매일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제자들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제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을 빼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나는 더 말을 덧붙입니다. ‘정말 사랑하고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내가 심술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제자랍니다. 선생이 자랑스러워하는 제자는 몇 명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를 자랑스러워하는 선생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맹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는 맹자삼락(孟子三樂 : 군자삼락, 인생삼락)은 인생의 큰 즐거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1. ‘부모구존형제무고일낙야’(父母俱存兄弟無故一樂也)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2. ‘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이낙야’(仰不愧於天俯不怍於人二樂也)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숙여 사람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두 번 째 즐거움이고,
3. ‘득천하영재이교육지삼낙야’(得天下英才而敎育之三樂也)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의 즐거움이다.
그렇거늘 어찌 제자들이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제자들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답니다. 열심히 사는 그들을 볼 때마다 자랑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그 팔불출이 되고 싶은 것이 제자들 자랑입니다. 그들은 학교에 다닐 때도 공부도 열심히 하였고, 사회의 적응력이 좋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을 나오고, 다시 대학원까지 공부한 학생들을 어떻게 내가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자신이 맡은 바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 제자는 많지만 머리가 나쁜 내가 기억하고 머리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몇 명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제자들을 내 자의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을 그냥 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지만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아주 큰 인연으로 맺어진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제자들을 유난히 많이 둔 행복한 사람이랍니다. 선생으로서는 잘못 살았고, 올바르게 살지도 못하였고, 모범이 되지도 못하여 스스로 실패한 선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제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어떤 제자들에게는 아픈 마음을, 어떤 제자에게는 좋은 기억을, 어떤 제자에게는 좋지 않은 감정을 심어 주었을 것입니다.
한 번은 선생님들의 협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털실을 샀습니다. 가정과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그 털실을 학생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벙어리장갑, 목도리, 양말을 정성스럽게 떠서 만들었습니다. 학생회 아이들이 양로원하고 고아원을 찾아가서 선물하고 그 기뻐하던 모습을 전하는 아이들과 같이 운적도 있습니다. 내 제자들은 그렇게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제자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제자들을 뽑기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아마 수만 명도 넘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단 열둘을 뽑으셨습니다. 몰려드는 군중으로 본다면 몇 십만 명도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중에서 열둘을 뽑기가 정말 많이 힘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당신을 배반할 유다까지도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신 후에 뽑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밤을 새우시기까지 기도가 필요하셨을까? 봉사자 한 명을 선택하실 때도 그렇게 기도하시며 뽑으실 것인가? 예수님의 그 마음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들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스승이 제자들을 뽑았습니다. 제자들은 요즘의 제자들과 완전히 다르게 모든 것을 함께하며, 모든 것을 의심 없이 나누며, 자신의 분신과 같은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대학원은 제자들을 교수들이 직접 뽑습니다. 또 제자들이 스승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스승이 제자들을 선택하는 것이나 제자들이 스승을 선택하는 것은 동등한 원칙일 것입니다.
‘비군유택신 역신택군’(非君唯擇臣 亦臣擇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주만이 신하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신하 역시 군주를 가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고르신 것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생명과 같이 스승이신 예수님을 선택하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대하여 깊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 모두 죽을 것을 미리 아시고, 죽음을 무릅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게 느껴집니다. 주님의 그 크신 제자 사랑을 마음으로 새기면서 내가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했는지 반성해 본답니다. 아마 주님께서는 지금도 제자를 뽑으실 때 당시와 같은 마음이실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신자를 뽑더라도, 작은 일을 맡기시더라도 그 때와 같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시고 뽑아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뽑도록 지금도 사제들에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실 것입니다. 기도하고 제자들을 뽑는 것과 기도하지 않고 뽑는 것은 천지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밤새워 기도하면서 주님의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저희들을 당신의 제자로 선택하신 주님, 저희가 당신의 제자 되기에 부당하오나 당신의 자비로 저희를 당신의 곁에 두셨나이다. 저희가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 당신의 진실한 제자 되도록 이끌어 주소서.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도록 이끌어 주소서. 영원한 스승이신 주님!!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축일10월 28일 성 시몬 (Simon)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 연도 : +1세기경
같은 이름 : 사이먼
예수님에 의해 열두 제자의 한 명으로 뽑힌 성 시몬은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열혈당원’으로 소개될 뿐 그의 출신이나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된 것이 없다(마태 10,4; 마르 3,18; 루카 6,15; 사도 1,13). 열혈당원은 로마 제국과 그 동조자들에게 무력으로라도 대항해서 유다의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믿고 행동하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제국에 협조했던 성 마태오(Matthaeus, 9월 21일)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에 대항했던 극단주의자 성 시몬까지도 제자로 맞아들여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다. 교회 전승 또한 그의 신원에 대해 확실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거나 예수님의 첫 기적이 이루어진 카나의 혼인 잔치의 주인공 신랑이었다거나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 천사에게 전해 들은 목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전승도 있다.
서방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성 시몬은 이집트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성 유다 타대오(Judas Thaddaeus)와 함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활동했고, 페르시아(Persia)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에서 이교도의 사제와 예언자들과 논쟁하다가 그들의 신상을 무너뜨려 처형되었는데, 성 시몬은 십자가형이나 톱으로 몸이 잘려 순교했고, 성 유다 타대오는 창에 찔리거나 도끼로 참수형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성 시몬을 표현할 때 보통 큰 톱이나 십자가가 주로 등장한다. 동방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카이사레아(Caesarea)의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1월 2일)는 성 시몬이 에데사(Edessa)에서 평화로이 선종했고, 그의 무덤과 그에게 봉헌된 성당이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코카서스 산맥 서쪽의 니코피우스(Nicopius)에 있다고 한다. 서방 교회는 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는 전승에 따라 8세기 이후 그들의 축일을 10월 28일 같은 날에 기념하고 있다. 동방 교회는 성 시몬의 축일을 5월 10일에 기념한다.
축일10월 28일 성 유다 타대오 (Jude Thaddaeus)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 연도 : +1세기경
같은 이름 : 다대오, 다두, 유다스, 주다스, 주드, 타대우스, 타데오, 타데우스
예수님에 의해 열두 사도로 뽑힌 제자 중에는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둘 있다. 루카 복음 6장 16절에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 나온다. 마르코 복음과 마태오 복음의 열두 사도 명단에는 유다 대신 ‘타대오’(마르 3,18; 마태 10,3)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는 유다 이스카리옷과 구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실 예수님 시대에 한 사람이 유다식 이름과 그리스식 이름을 동시에 갖는 일이 흔했다. 따라서 유다(Judas)의 그리스식 이름이 타대오(Thaddaeus)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이유로 사도 성 유다는 자연스럽게 ‘유다 타대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따르면, 사도 성 유다는 신약성경에 있는 유다 서간의 저자와 같은 인물로 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가 부르심을 받은 이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 주시는 이들에게 인사합니다.”(유다 1,1) 이에 따르면 그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친척 형제 중 한 명이 된다(마르 6,3; 마태 13,55). 그는 또한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성서학자들은 가톨릭 서간 중 하나인 유다서 1장 1절에 나오는 유다가 예수님의 열두 사도에 속한 유다이지만 유다 서간의 저자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사도 성 유다의 이름을 빌려 익명의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려 쓴 ‘가명 서간’으로 보고 있다.
초기 문헌인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에 따르면, 성 유다 타대오는 성 시몬(Simon)과 함께 시리아와 소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페르시아(Persia)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에서 이교도의 사제와 예언자들과 논쟁하다가 그들의 신상을 무너뜨려 처형되었는데, 성 유다 타대오는 창에 찔리거나 도끼로 참수형을 당했고 성 시몬은 십자가형이나 톱으로 몸이 잘려 순교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성 유다 타대오를 표현할 때 보통 창(미늘창) 또는 도끼, 그 외에 고문 도구였던 곤봉이 많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성 유다 타대오는 성령 강림 때 다른 사도들과 함께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마에 불꽃 모양의 성령을 표시하거나(사도 1,13) ‘에데사의 성화’로 알려진 예수님 이콘인 ‘만딜리온’(천 위에 새겨진 것)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이는 예수님 시대 에데사 왕국의 아브가르 왕의 치유 기적과 관련 있는데, 예수님에 의해 파견된 일흔두 제자(루카 10,1-12) 중 하나인 타대오와 성 유다 타대오가 혼동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오류가 발견되었을 무렵 성인의 가슴에 만딜리온을 그리는 유행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서방 교회에서는 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가 함께 순교했다는 전승에 따라 8세기 이후 10월 28일을 두 사도의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 정교회는 유다와 타대오를 다른 사람으로 간주해, 예수님의 형제인 유다는 6월 19일에, 타대오는 8월 21일에 기념해 왔다. 성 유다 타대오에 대한 공경은 아마도 동명이인인 유다 이스카리옷 때문에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 18세기에 비로소 그에 대한 공경이 활력을 찾았는데, 그동안 성 유다 타대오에게 봉헌된 성당이나 세례명으로 선택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그에게 전구를 청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말이 퍼졌다. 그래서 신자들은 특별히 가장 곤란한 일을 겪을 때나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경우에도 성 유다 타대오에게 전구를 청하면 꼭 도와주신다며 ‘절망에 빠진 이들의 수호자’로 공경하게 되었다. 그의 유해는 후대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의 부속 제대인 성 요셉 제대 아래 안장되었다.
축일10월 28일 성녀 아나스타시아 (Anastasi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지역 :로마(Roma)
활동 연도 : +253년
같은 이름 : 아나스따시아, 아나스타샤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로마에서 순교한 성녀 아니스타시아는 동정녀였다. 그녀는 총독 프로부스(Probus)에게서 불과 매로 고문을 받았으나 끝끝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래서 총독은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고 이빨을 뽑았으며 손발을 잘라냈다고 한다. 그래도 살아 숨을 쉬면서 배교하지 않자 박해자는 하는 수 없이 참수시켰다는 것이다. 성 키릴루스(Cyrillus)는 그녀가 목말라하는 것을 보고 물을 갖다 주었다가 순교하였다. 그 당시 성녀 아나스타시아는 훌륭한 집안의 딸로서 동정을 지키려고 혼자 서원을 했고 순교할 당시 20세였다고 한다. 현재 이 두 성인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시몬, 유다 타대오 형제님들과 아나스타시아 자매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