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sCPXiHMVozQ
교회의 자리 마태복음 9장 10-12절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영혼들과 그리고 이 땅에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영혼들 위해 주님의 자비와 위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지금도 그날의 현장을 생각하면 먹먹하고 절망감과 무기력감에 어찌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디면서 유가족들과 많은 시민운동단체 노력으로 사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긴 했으나 여전히 진상규명을 위해 단 한발자욱도 나가지 못하는 정치적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조국 전장관을 수사하듯이 관련기관들 국정원, 국가 기록물, 군 기무사 전부 압수수색하여 수사하면 몇달이면 끝날일인데 말입니다. 분명한 건 촛불 정신으로 세워지고 광화문에서 두손을 치켜들고 약속했던 현 정부도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한 분명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 건만은 확실해 보일 뿐입니다. 지난 일일 릴레이 단식기도회 때 예은 엄마를 만났는데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은데 죽어서 자식 볼 낯이 없어서 어떻게든 진실이라도 밝혀놓고 이 줄을 놓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지난 토요일에도 일산문화시민공원에 작년에 심은 세월호 기억나무 표지석 제막식을 했습니다. 일산 세월모 역시 적지 않은 시간동안 한길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유가족들과 세월호의 진실을 원하는 많은 시민들의 힘겨운 발걸음으로 4.16 인권 선언문도 나오고 안산에 기억저장소도 만들고 생명안전공원도 시공식을 앞두고 있고 팽목항과 제주 그리고 전국 곳곳에 기억과 추모의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국 방방곡곡 모든 곳에 추모와 기억의 공간이 생긴들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이대로 묻힌다면 우리 사회 안에 생명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한 발자욱도 변한 것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은 허공에서 흩어지고 마는 소리만 요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식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날 단 한사람이라도 가만 있으라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 조끼를 입고 탈출하라고만 했더라면, 아니 선장이 지금은 비상상태이니 모두가 가판 위로 올라가 바다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만 했더라면, 아니 이런 날씨에는 항해를 해서는 안된다고 배를 운전하려면 나를 밟고 가라 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었다면, 보고를 받자마자 홍해바다 가르듯 모든 절차 무시하고 무조건 인명구조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더라면, 선장과 선원들이 구조되는 시간에라도 총력을 기울였더라면, 최초의 신고 시간이 8시 40분쯤이었는데 그때가 급변침으로 45도 기울어졌을 때였습니다. 그때부터 침몰되는 시간까지 1시간이라는 적지않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무조건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몸을 던지라 현장에서 단 한사람만이라도 지휘했더라면...거꾸로 배가 급격히 뒤집히는 과정에서 배의 유리창을 깨기 위해 의자를 집어 던지던 학생들의 마지막 절규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단 열 명의 의인이 있었다면 소돔과 고모라 성이 무참히 무너지지 않았으리라는 아브라함이 이야기가 오버랩됩니다. 직관적으로 권력중심의 사고가 아닌 생명 중심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 마치 내 가족을 통제한다는 심정으로 그 상황을 통제하는 단 몇명의 사람만이 있었더라도 그렇게 처참하고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참담하게 침수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니 미국에서 기독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라구요. 1999년 만해도 전 국민의 70%였던 기독교 인구가 47%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시절을 접어 들면서 하락곡선이 급하강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된 이유가 보수 우파 기독교인들의 진절머리나는 짓들과 그리고 성소수자들에 대한 극단적 혐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수많은 종교인들 중에서 기독교인들이 보수 우파에 가득하고 혐오세력의 가장 중심에 서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게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커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했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제사장 삼으셨다는 것이고 우리를 선택해 부르셔서 모든 사람을 구원케 하셨다는 선민의식이 그냥 자긍심으로 발전하면 그나마 긍정적일 수 있지요.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의 자손답게 그렇게 살아야지 삶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지면 그만큼 그런 삶을 독려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선민의식이 우월성으로 발전하면 일반 서민들이 개 돼지가 되는 것이고 가르치고 교화해야하는 교화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반드시 뜯어 고쳐야만 하는 죄인들인 것입니다.
세월호참사도 그렇고 코로나 위기도 그렇고 돈 자본 대형화 이익 앞에 마구 짓밟히는 생명권의 위기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렇게 짓밟는 이들의 이면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 배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경멸성, 모든 국가적 자원을 동원해서라도 구해야할 절박성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경시성, 배안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국가가 국민으로 봤다면, 통제 관리하는 사람들이 그 들을 사람으로 봤다면, 아니 좀더 이렇게 이야기하면 감이 더 잘 올까요? 그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국회의원이었다면, 장관들 이었다면, 장관과 국회의원들의 자식들이었다면.... 세월호 참사와 관계된 모든 부처, 공무원, 실제적 통제 관리 책임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더 나아가 지금까지 이 참사에 대핸 이런 식으로 방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전히 한국 땅에서 그들은 국민도 사람도 아닌 현실인 것입니다.ㅣ
오늘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의사는 건강한 사람에게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병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말씀하십니다. 종교지도자들 사회에서 잘낫다고 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너는 왜 지질이도 못나고 결핍이 많고 사람같지도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냐 하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교회의 모델이라는 책을 보면 교회의 역할에 대해 다양한 정의를 합니다. 어떤 학자는 교회는 말씀의 공동체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길러올리는 공동체가 되어야한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교회는 제자 공동체라고 합니다. 말씀을 단순히 길러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안에서 교육하고 훈련하고 그래서 사도로써 세상으로 파송하는 제자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원형경험을 체험하면서 이땅에서 이루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전초기지의 역할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시대가 길을 잃었을 때 벽을 쌓고 혐오와 폭력의 칼을 휘두를 때 존중과 다양성의 공존, 함께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들을 찾아서 길을 내고 길을 열어가면서 새시대 새 길을 내는 돌격대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 세월호 릴레이 단식기도회에 함께 하면서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시대 교회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건강하게 살려놓으면 그 사람은 알아서 다 자기 살길을 찾아 살아갑니다. 문제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창현어머님께서 교회의 혐오의 시선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결국은 교회를 떠났는데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 길을 걸어오면서 모두가 떠난 고통의 자리에서 함께 손잡아 주고 있는 것이 교회였다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당신이 하나님을 버릴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구석으로 내 몰린 사람들 고통과 상처에 찢겨 절망에서 일어설 수 없는 자들 곁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소망하십니다. 우리가 여전히 이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있는 것은 교회를 키우기 위함도 아니고 그 교회를 통해 목회자의 존재감을 세우기 위함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누룩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 스며들어가 전체를 변화시키지만 그 존재는 사라집니다. 여전히 이 시대 교회가 건강하게 존재해야하는 이유는 여전히 똑같은 국민으로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사람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혐오로 폭력으로 고통으로 내몰리는 이들의 자리에서 때로는 함께 비를 맞기도 하고 때로는 손을 맞잡아 줄 품이 필요합니다. 교회라는 존재는 그 역할로써 사라지지만 비로소 생명이 생명다워질 수 있다면 사람이 진정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존재가 존재의 귀함을 알고 건강한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교회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하늘의 소명을 다한 것일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이 코로나 시대에도 이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며 굳건하게 지켜나아가야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참사의 통증의 자리,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는 자연의 자리, 혐오와 차별의 시선으로 점점 극단으로 몰리는 자리, 아픔과 통증으로 도저히 혼자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자리!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들과 함께 연대하고 손잡고 함께 살아가길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