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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배우고 나서- 예수님을 믿고 성령충만한 후에 완전히 변화된 사람들
은성: 아버지, 작년에 사도행전을 읽을 때는 크게 감동을 받은 것이 없었는데 올해 예배 시간에 자세히 공부를 하니까 너무나 놀라운 것들이 많았어요.
아버지: 네가 한 해 동안에 믿음이 많이 자랐다는 증거다. 미국 제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는 “성경은 무한하고 고귀한 지식과 덕을 간직한 거대한 광산이다.”라고 말했다. 목사님들은 이 광산에서 “무한하고 고귀한 지식과 덕”을 파내어 우리들에게 주시니까 우리는 그 지식과 덕에 놀라고, 우리의 삶이 바뀔 수밖에 없지.
은성: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이 책이 없었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믿기로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라고 말했다는데 요즘은 저도 링컨 대통령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아요.
아버지: 네 말이 너무 기특하구나. 그런데 사도행전을 배우면서 가장 크게 놀란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볼까?
은성: 몇 가지 있지만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바뀐 것이어요. 열두 제자들이나 예수님의 가족들이 4복음서에서 보여준 모습과 사도행전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이었어요.
아버지: 그래?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은 하겠다만 구체적으로 말해볼래?
은성: 사도행전 처음에 보면 열한 사도들이 예수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고 묻고 있어요.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강림 이후에는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네 말이 맞다. 당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정신을 잃어버리고 그냥 현세에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 해서 로마의 세력에 붙어 지내는 사람이 아니고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절히 바랐다. 즉 로마에서 해방되고, 다윗의 후손을 중심으로 다윗 왕국과 같은 나라를 세워서 하나님의 백성이 태평성대를 누리기를 바랐는데,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한 열두 제자들도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언제나 되려는가 하고 바라고 있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이심이 확실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키시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에서도 누가 회복된 나라에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막 10:35-45).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군중들이 예수님을 앞서가고 뒤따르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막 11:9)라고 외쳤던 것도 조상 다윗의 나라가 그의 자손 예수를 통해서 오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호산나’ 즉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던 것이다.
은성: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외치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나라로 생각하였나 봐요. 사도행전도 시작할 때에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라고 말하고, 마칠 때에도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 28:30-31)라고 말하고 있으니 예수님이나 바울 사도나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중심으로 가르치셨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을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아버지: 그런데 네 말처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는 제자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일이 없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구나.
은성: 그리고 이 제자들은 예수님이 붙들려 갈 때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던 비겁한 모습을 보였지요. 가장 믿음이 좋은 것 같던 베드로는 세 번이나 부인하였고요. 그런데 사도행전에서는 이들이 너무나 달라졌어요. 사도들을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한 산헤드린 공회의 가운데 세우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물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대답하되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라는 천지를 뒤흔드는 주장을 하였어요. 나중에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8-20)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과연 복음서에서 보여주던 그 제자들과 동일한 사람들인가 의심이 들 정도여요. 죽는 것도 상관하지 않는 담대한 그들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해서 생긴 변화이지요?
아버지: 네 말이 맞다. 열두 제자들은 사방 나라에 흩어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다가 대부분 순교했다고 한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던 그들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은성: 예수님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여요. 복음서를 보세요. 형제들이나 친속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 3:20-21)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3~5)
아버지: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를 보면 그는 초대 교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행 15;13, 갈 1;19), 야고보서를 기록하였다.
은성: 놀라운 일이어요. 무엇이 제자들과 가족들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하겠어요.
아버지: 그들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놀랍게 변한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를 보자.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눅 23:20-25) 그런데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후에 어떤 반응을 보였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7-41) 베드로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이라고 했으니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기를 원했던 사람들인데, 이제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다.
은성: 예수님이 그런 놀라운 변화를 주시는 분인가요? 아니면 베드로와 사도들이 그런 변화를 주시는 분들인가요?
아버지: 당연히 예수님이시지. 예수님이 사도들을 변화시키셨고, 가족들과 유대인들을 변화시키신 분이시지.
은성: 예수님이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네요. 모두가 잃어버린 자들인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이들의 마음을 바꾸어 주셔서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고, 예수님을 전하는 자가 되도록 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아버지: 맞는 말이다. 또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라는 말씀이다. 첫째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라는 말씀이고, 다음에는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라는 말씀이다. 유대의 지도자 계급을 이루는 자들은 사도들과 새로 믿은 제자들의 복음 전파를 막고자 전력을 다하였지만 제자들의 수는 늘어만 갔고, 심지어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이런 예언의 말씀을 자주 들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음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막 8:31)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눅 9:22) 예수님을 체포하고, 십자가에 죽이기를 구하고, 초대교회의 제자들을 신문한 산헤드린 공회는 주로 제사장 계열의 사두개인들과 서기관 계열의 바리새인들로, 그리고 의장인 대제사장을 포함하여 71명으로 구성되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대제사장은 처음 시작할 때와 달리 왕이 가졌던 특권과 위엄을 가지게 되었고, B.C. 2세기까지 초기 산헤드린을 구성한 일단의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을 통솔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볼 때에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산헤드린이 반대하고 박해하는 사도들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받을 수 있는 어려움을 각오하면서도 이 길이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길임을 깨닫고, 기꺼이 그 좁은 길을 택한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틀림없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칠 때 함께 있었을 것이다.
은성: 정말 놀라운 변화네요.
아버지: 산헤드린 회원 중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완전히 변하여 그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면서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는 것이 가장 놀라운 일이다. 그는 믿기 이전의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지.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행 22:3-5)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행 26:9-12)
은성: 그를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요 16:2)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네요. 자기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겠지요?
아버지: 맞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 1:12-16)
은성: 바르게 알지 못하고 비방하고 박해하고 폭행하였지만 알고 나서는 긍휼을 입은 것에 감사하고 더구나 직분까지 맡기신 것에 충성하여 이제는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당하였다는 말이네요. 저는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받은 고난을 읽으면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어요.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 4:9-1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후 11:23-33)
아버지: 그분은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 11:38)는 말씀에 어울리는 사람이지.
은성: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요?
아버지: 그가 고백하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지. 그는 예수님에 대하여 다른 유대인들처럼 십자가에서 죽은 저주받은 죄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정말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기를 부르실 때에 땅에 엎드러졌고 사흘 동안이나 볼 수도 없었다. 주님이 보낸 아나니아가 안수하여 다시 보게 된 후에 그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행 9:20-21)라고 말할 정도로 믿기 어려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은성: 그래서 사도행전을 읽어가노라면 그는 항상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하여 증거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버지: 그렇지. 그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더욱 확실하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고전 15:12-15)
은성: 뿐만 아니라 빌립보서에서 자신의 변화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어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7-12)
아버지: 이전에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을 박해할 때는 오직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키려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하여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일에 온 몸을 바치는 것을 보게 된다.
은성: 제가 흥미 있게 본 한가지는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변호사 더둘로가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면서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행 24:5)라고 한 말씀이어요. 그 당시에 중풍병도 있고, 혈루병도 있고, 간질병도 있고, 문둥병도 있었지만 왜 바울을 전염병이라고 하였을까요?
아버지: 그것은 유대인들이 전염병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는 위 본문에 단 한번 나오고 있지만 구약성경에는 36번 나온다. 전염병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데 예를 들면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일만 사천 칠백명이었더라”(민 16:49)라고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에 머물러 있다가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며 이방 신에게 절하였을 때 염병으로 죽은 자는 2만 4천명이었다(민 25:9). 코로나 19 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전염병은 그 영향력이 정말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잘 안다. 바울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냥 내버려두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나사렛 예수를 믿는 자로 전염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더둘로는 “이 사람은 염병으로,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악한 선동가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인 이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면 유대는 물론 로마 전체가 전염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 빨리 이 사람을 죽여서 더 이상 전염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은성: 그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그만큼 기독교가 빠른 속도로 널리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말이네요?
아버지: 그렇지. 지금도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믿지 않고 여전히 유대교를 믿고 있으면서 기독교인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을 알지? 그때도 유대인들, 특히 지도자들은 기독교를 박해하고 심지어 없애야 한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지만 재산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으면서도 기독교인들은 유대교가 아니라 기독교를 믿었고, 전했고, 그래서 불과 300년 만에 그 거대한 로마제국을 복음화할 수 있었다. 바울의 전염병이 참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물론 상인, 노예, 여행자 등의 무명의 제자들도 모두 초기 선교 사역에 함께한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우리의 화제로 이야기하자면 유럽 전체가 빠르게 변화하였던 것이다.
은성: 사도행전에서도 그런 예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행 17:1-4) 바울 사도가 세 안식일에 전하고 가르쳤는데 믿는 자가 생겼는데 나중에 바울 사도가 쓴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볼 수 있어요.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6-10) 우리는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진실로 믿는지 좋아만 하는지, 달리 말하면 ‘제자’인지 ‘팬(fan)’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은 믿는다는 것이 믿지 않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분명히 보여주었어요.
아버지: 맞다. 또 한 곳을 보자.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행 19:17-19) 은화 1개는 당시 약 하루 품삯에 해당하니, 오늘날 하루 임금을 10만 원으로 계산할 때 50억 원에 해당하는 돈이고, 책 1권을 1만원이라고 가정하면 50만 권이나 되는데, 이는 대형 도서관이 보관하는 수량에 해당한다고 한다. 에베소의 교인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비싼 돈으로 사서 보존하던 책들을 과감히 태워버린 것이다. 얼른 믿어지지 않는 너무나 놀라운 변화이지.
은성: 아버지,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아버지: 이 세상 역사를 B.C.와 A.D.로 나누는데 그 기준이 예수님의 탄생이다. 개인의 삶에도, 사회나 국가의 삶에도 예수님을 믿기 이전과 이후가 뚜렷이 구별되는 B.C.와 A.D.가 있다. 오늘 너와 나눈 이야기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어둠과 빛, 거짓과 진리, 죽음과 생명, 지옥과 천국을 구별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등불이요, 안내서이다. 나아가 기독교가 결코 거짓말장이나 정신병자인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참되고 신실하며 능력이 있어서 변화시키고 살리시는 일을 하시는 진정한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담임목사를 지낸 유명한 학자요 설교자인 켐벨 몰간은 그의 사도행전 강해에서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주님의 노예가 되는 것을 세상이 주는 그 어떤 영예보다도 더 큰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예수를 왕으로 받들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말했는데,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사람 예수, 혹은 죄인 예수로만 알던 사람들이 참 왕이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믿고 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은성: 그런 점들을 생각하면서 사도행전을 다시 읽어야 하겠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나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겠어요. 그러면 저도 많은 변화를 할 수 있겠지요?
아버지: 아주 좋은 생각이다. 네가 사도행전을 다 읽은 후에 나에게도 배운 것들을 나눠주면 고맙겠다.
은성: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그러면 오늘은 이만 하시지요. 늘 감사해요.
아버지: 나도 네 덕분에 많은 것을 공부해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