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외관의 차이에 그대는 웃는다, 그리고 운다 - 채만식 '치숙'(痴叔)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0선](4)
말뚝이: 쉬이, 양반 나오신다. 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를 다 지낸 퇴로재상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아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자 쓰는 양반이 나온단 말요.
양반들: 야아, 이놈 뭐야아?
말뚝이: 아, 이 양반들 어찌 듣는지 모르겠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를 다 지내고 퇴로재상으로 계신 이생원네 삼형제분이 나오신다고 그리하였소.
봉산탈춤의 양반과장에 나오는 말뚝이 대목이다. 하인 말뚝이가 관중들과 더불어 시골 토호에 지나지 않는 주인을 놀려먹는 장면이다. 말뚝이는 노론과 소론을 함께 지낼 수 없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말했으니, 뒤의 호조와 병조에 삼정승 육판서도 모두 거짓이며 말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개다리소반’이라는 비유를 통하여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따라서 바로 즉시 ‘이놈 뭐야아?’ 하는 양반들의 반발이 나와도 좌중의 흥을 돋우기나 할지언정, 그 다음 말뚝이가 정정하는 대사를 해도 가짜 양반이 되어버린 사실을 뒤집어엎기는커녕 더욱 강조하는 꼴이 된다.
재담가: 국회의원이 되고 싶으면, 집권여당 수뇌부와 친해져서 집권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를 하면 돼요. 출마할 때는 공탁금 이억 원을 들고 선관위로 찾아가면 돼요. 선거유세 때 평소에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던 국밥을 한 번에 먹으면 되지요. 공약을 얘기할 때는 그 지역에 다리를 놔준다든가 지하철역을 개통해 준다든가, 아! 현실이 너무 어렵다구요? 괜찮아요, 말로만 하면 돼요. 약점을 개처럼 물고 늘어지면 국회의원이 될 수 있어요.
우리네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들으면 하나도 우습지 않은 말인데, 청중은 배를 잡고 웃는다. 모두가 그런 현실을 상식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현실의 재현만으로도 코미디가 된다. 위와 같은 두 가지 예에서 아이러니(反語)의 풍자가 어떤 것인지 대개 윤곽이 나온다. 말뚝이의 대사는 끝줄의 정정이 오히려 아이러니로서 앞의 폭로를 굳혀주는 효과를 낸다. 재담가가 말하는 사실은 이미 청중의 경험 속에서 아이러니컬한 현실로 인식돼 있으므로 되풀이만 해주어도 아이러니가 된다. 더욱 아이러니의 효과가 높아진 것은 국회의원의 즉각적인 고소인데, ‘이놈 뭐야아’ 하는 반발이 더욱 앞의 재담을 코미디 같은 현실로 굳혀주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원래 아이러니는 ‘아닌 척하는 자’라는 ‘에이론’(eiron)에서 왔으며, 다시 거기서 파생된 ‘모르는 척하는 것’의 뜻인 ‘에이로네이아’(eironeia)에서 왔다고 한다. ‘간파되기를 바라는 아닌 척하기’가 본래의 의미라는 얘기다. 뜻하고자 하는 것의 반대의 말을 하거나, 어떤 것을 말하면서 다른 것을 뜻하거나, 비난하기 위해서 칭찬하고, 칭찬하기 위해서 비난하기라고 정의하면서 ‘시치미를 뚝 떼기’라고 그 행동 원칙까지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화술의 공중전인 셈이다.
채만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이러니와 풍자와 패러디를 통한 현실 비판의 작가라는 점과 우리식 서사를 현대적으로 접목시킨 진정한 ‘이야기꾼’이라는 점이다. 채만식은 염상섭과 함께 식민지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는 당대의 현실을 살아가는 여러 계층 사람들의 삶을 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그려냈다. 채만식은 장편소설, 중단편소설, 희곡, 시나리오, 방송극에 이르기까지 거의 백여 편이 넘는 작품을 썼고, 문학평론과 수필 등 잡문도 이백 여 편이나 썼다. 그는 자신의 당대에 무엇을 문제 삼아야 하며, 자기가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던 작가였다.
1902년 전북 옥구(군산)에서 태어난 채만식은 부농이던 아버지의 덕으로 서울 중앙고보를 나오고 일본 와세다 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퇴하고 귀국한다. 앞서 그는 부모의 권유로 조혼했는데 그 결혼은 당시의 많은 개화 지식인들처럼 붏행한 것이었다. 그 후 부친이 미두(米豆)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해 채만식은 글을 써서 온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다. 그는 단편 ‘세 길로’를 <조선문단>에 발표하면서 등단한다. 채만식은 등단 초기부터 ‘프로 문학’에 관심을 보였고 좌익문단으로부터 ‘동반자작가’로 인정되기도 했지만 염상섭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잠시 동아일보 등 신문·잡지 기자로 옮겨 다니다가 193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전업 작가’로 생계를 꾸렸다. 일제 말기 사상탄압이 극심했던 시기에 ‘개성독서회’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은 그는 일제의 압력에 의하여 친일문학 작품을 쓰게 된다. 해방 뒤에 자아비판을 하면서 중편소설 ‘민족의 죄인’을 쓰기도 했고 동료들로부터 월북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낙향하여 스스로 고립되었다. 채만식은 6·25 전쟁이 터지기 보름 전인 1950년 6월 11일, 가족 이외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는 병석에서 세상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망한다.
채만식의 대부분 작품에는 이광수나 김동인에게서 보이는 전근대적인 ‘치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채만식을 근현대문학의 대표작가로 생각하는 것은 <태평천하>와 <탁류> 등의 장편소설을 놓고 보더라도 식민지 시대의 총체성이 만만치 않게 반영되어 있으며,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작가적 관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가적 관점’이란 무수한 삶의 표상들 가운데서 시대정신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를 잡아채는 현실적 시선일 것이다. 후기로 갈수록 그는 우리 이야기의 전통에 걸맞은 ‘입담’을 되살려내고 판소리나 민담의 형식과 함께 그 골계(滑稽)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실험한다. 예를 들면 몰락한 농촌 부르주아지인 아버지의 표상일 듯한 <탁류>의 정 주사를 나중에 희곡 ‘심봉사’에서 무능하고 이기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심청이 대신 주막집 작부가 와서 손을 잡고 눈을 뜨면서 환멸로 끝나는 것도 매우 현대적이다.
내가 채만식의 <탁류>를 읽은 것은 대학 때 <민중서관> 판 헌책을 구입하고서였고, 단편소설집은 오히려 고등학교 때에 읽었으며 <태평천하>는 나의 초기 중편인 ‘객지’를 쓰던 무렵에 지금은 작고한 한남철 소설가에게서 옛날 책을 빌려 보았다. 채만식이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은 뒤늦게 70년대에 본격화되었고 그의 전집이 나온 것도 1989년 무렵이었다. 물론 세월이 가면서 독자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청산되었으나, 해방 뒤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정치적으로 문단의 주도권을 쥐게 된 이른바 ‘순수문학파’는 좌우에 중립적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그려낸 비판적 리얼리스트였던 채만식마저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치숙’은 1938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요즈음 식으로 하자면 ‘모노드라마’ 투의 일인 독백으로 전개되는 구어체 소설이다.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키,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덕이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 고모부 그 양반...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의 화자는 조카로 되어 있다. 여기서 모든 가치는 반전되어 있고 선악도 뒤바뀌어 있으며, 조카의 부정적 비난은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간다. 아이러니는 희극과 비극의 미묘한 경계에 서기 마련인데,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이 희극적으로 그려져서 더욱 눈물겨운 비극적 아이러니라면, ‘치숙’은 가치가 전도된 비극적 현실이 조카의 입을 통해서 희극으로 변하는 아이러니다.
이 작품의 조카와 고모부는 서로를 투영한 타자의 ‘거울’을 통해서 원주민의 소외를 드러내고 있는데, 프란츠 파농은 이러한 소외와 부재를 식민지 사회의 심인성(心因性) 장애라고 썼다. 이를테면 요즈음 물대포에 맞선 촛불은 소외에 저항하려는 몸짓일 것이다.
작가 황석영이 뽑은 한국의 명단편 100선은
문학동네 네이버카페 http://cafe.naver.com/mhdn와 경향신문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기획물입니다. 명단편 선정은 황석영 작가와 문학평론가 신수정 교수(명지대 문예창작과_문학동네 편집위원)가 함께 작업했습니다. 황석영 작가는 단편을 읽음으로써 역사서나 경제·사회학 전문서적보다 훨씬 우리의 삶을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