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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6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5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기운이 나기도 하면서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신부님은 내가 어려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느님나라가 이미 우리들 가운데 오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이 아주 작은 하느님나라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우리 집은 오순도순 재미있고 아름다운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불행한 깨어진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세례를 받지 않으시고 우리랑 같이 살지 않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나라로 알고 있었습니다.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도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를 ‘아버지의 나라로 갈 수 있게 해 주시며’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어서 천당에 가려고 교회에 다니며 이 세상에서 그 모진 고생을 다하면서 살아도 죽어서는 천당에 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하늘나라는 꿈의 나라였지 현실의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환상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천당이 천국으로 바뀌면서 하늘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 복음말씀을 더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나라의 실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며, 나라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 사실이지만 손으로 만질 수 없고,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신앙생활 가운데에서 항상 해결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것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살아야 하고 하느님을 체험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 신앙의 가장 첫 번째 관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관념적으로 체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더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생활 속에서 체험하는 것이 관념적으로 체험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합니다. 부모님을 하느님으로 보기 시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하느님으로 보면서 하느님을 체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 있을 때, 병중에 있을 때 간절히 기도할 때 자신이 의지하고 붙잡는 그 기둥을 하느님으로 체험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생활 속에서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내 안에, 우리 안에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국민이 있고, 영토와 주권을 가진 실체적인 존재입니다. 나라에는 국민의 주권을 대신하는 통치권자가 있습니다. 그런 실체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나라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하느님나라도 그렇습니다. 우선 하느님나라의 가장 작은 나라인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나는 하느님나라의 가장 작은 영토입니다. 그리고 국민이며 주권을 가지고 있는 실제적인 존재입니다. 그 나라의 통치권자는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야 하느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정이 작은 영토이고, 우리 가족이 국민이고,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고, 통치권자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나의 통치권자는 ‘나’라고 생각하고 가정의 통치권자는 ‘가장’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하느님나라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나 중심의 나라이고, 하느님 중심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나라와 구별되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은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모양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가정이라는 작은 나라를 잘 맡아 다스리는 가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대통령도 한 가정의 가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세상과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은 하느님뿐이십니다.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것이 하느님 중심사상입니다. 하느님나라는 그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 것 중에 하나가 하느님을 무시하고 자신을 하느님보다 더 높여왔기 때문에 하느님나라가 올 틈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통치는 이미 우주가 생성되기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통치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처럼 교만할 때부터 하느님을 박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박해를 받고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 하느님나라가 현존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이 통치자인 것처럼 행사하고 권력을 부리면서 백성을 다스리고 하느님을 우습게 알 때부터 이미 하느님께서 밀려나 계신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7,22ㄴ―8,1
22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23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24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5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29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30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축일11월 16일 성녀 마르가리타 (Margaret)
신분 : 왕비
활동 지역 : 스코틀랜드(Scotland)
활동 연도 : 1046-1093년
같은 이름 :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1046년 헝가리의 레스카(Reska)에서 앵글로 색슨 왕조 최후의 왕인 에드워드 애틀링(Edward Atheling)과 헝가리의 왕비 아가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헝가리의 성왕(聖王) 스테파누스(Stephanus, 8월 16일)의 조카로 어린 시절 대부분을 성 스테파누스 왕의 궁중에서 보냈다. 1066년 부왕이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 노르망디의 윌리엄(William) 대공이 쳐들어왔고, 헤이스팅스(Hastings) 전투에서 패한 후 그녀의 가족들은 헝가리로 피난을 가려고 했으나 배가 표류하여 스코틀랜드에 도착했다. 이때 스코틀랜드의 왕 말콤 3세(Malcolm III)는 성녀 마르가리타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그녀의 인품과 선행에 반해 결혼을 청하였다. 이렇게 스코틀랜드의 왕비가 된 성녀 마르가리타는 여섯 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를 낳고 직접 훌륭하게 교육하였는데, 스코틀랜드의 성 다윗 1세(David I, 5월 24일)가 바로 그녀의 아들 중 하나이다.
그녀의 성덕은 더욱 널리 알려졌다. 특히 기도와 고행과 단식에서 철저하였고,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놀라웠다. 그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만연하던 성직 남용과 성직매매를 금지하려는 시노드(Synod)를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교회 개혁에도 이바지하였다. 그녀는 또한 남편인 말콤 3세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예술과 교육의 진흥을 위해 노력했고, 던펌린(Dunfermline)에 성삼위 대수도원을 세우고 이오나(Iona)를 비롯한 여러 곳의 켈트 성당들을 복구하는 일을 후원하였다. 왕비라는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성녀 마르가리타는 겸손을 잃지 않았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특별히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성녀 마르가리타는 말콤 3세 왕과 장남 에드워드(Edward)가 노섬브리아(Northumbria)와의 안윅 전투(Battle of Alnwick)에서 사망하고 3일 뒤인 1093년 11월 16일 슬픔에 잠겨 에든버러(Edinburgh)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249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Innocentius 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 1670-76년 재위)는 오래전부터 스코틀랜드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성녀 마르가리타를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축일11월 16일 성녀 아녜스 (Agnes)
신분 : 수녀
활동 지역 : 아시시(Assisi)
활동 연도 : 1197-1253년
같은 이름 : 아그네스, 아네스
이탈리아 아시시 출신이며 성녀 클라라(Clara, 8월 11일)의 동생인 성녀 아녜스는 불과 15세의 나이로 언니인 클라라의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언니 클라라가 수녀회로 들어간 후 집안 단속이 심하였지만 그녀의 열망을 꺾을 수 없었다. 마침내 친척들이 아녜스를 억지로 끌고 가려고 산 안젤로 디 판초 수도원으로 몰려왔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버티었다. 마침내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로부터 수도복을 받았고, 언니와 함께 성 다미아노 성당 곁에서 살았다.
그 후 아녜스는 1219년 성 프란치스코가 세운 피렌체(Firenze) 근교 몬티첼리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만투아(Mantua), 베네치아(Venezia), 파도바(Padova) 등지에 수도원을 세웠으며, 언니를 도와 클라라회의 청빈 정신을 고수하기 위하여 힘써 노력하였다. 아녜스가 죽을 때 언니가 동석했는데, 클라라가 예언한 대로 11월 16일에 운명하였다.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 성당에 안치된 그녀의 묘소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는 그녀의 축일을 11월 19일에 기념한다.
축일11월 16일 성녀 제르트루다(대) (Gertrude the Great)
신분 : 수녀, 신비가, 저술가
활동 지역 : 헬프타(Helfta)
활동 연도 : 1256-1302년
같은 이름 : 거트루드, 게르투르다, 게르투르데스, 게르투르디스, 게르트루다, 게르트루드, 제르뜨루다, 제르뜨루디스, 제르트루드, 제르트루디스, 제르트루트, 젤뚜르다, 젤뜨루다, 젤투르다, 젤트루다
성녀 제르트루다(Gertrudis)는 1256년 1월 6일 독일에서 태어났다. 출생지와 가족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지만, 다섯 살이 되던 1261년 아이슬레벤(Eisleben)에 있는 헬프타 베네딕토회의 성 마리아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성덕으로 유명했던 이 수도원은 설립자이자 원장인 하크본(Hackeborn)의 제르트루다 수녀가 지혜롭게 운영하면서 문화와 영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어린 나이의 성녀 제르트루다는 수녀원장의 동생이며 수도원 학교 교장이었던 하크본의 성녀 메히틸다(Mechtildis, 11월 19일) 수녀의 지도하에 개방적이고 휴머니즘적인 교육을 받았다. 15세 때 학교를 마치고 수녀회에 입회했는데, 그녀의 지적 열망과 타고난 지능으로 인해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와 클레르보(Clairvaux)의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8월 20일)의 영성뿐 아니라 음악, 문학, 문법학, 예술 등에도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다. 특히 라틴어에 정통해서 수녀원 내 필사실에서 일하는 소임을 맡았다.
그러나 세속 학문과 모든 것을 지성적으로만 판단하려는 사고로 인해 영적 생활이 소원해지고 거의 냉담 상태까지 갔었다. 그로 인해 극심한 영적 고통을 겪던 성녀 제르트루다는 1281년 1월 27일 환시를 통해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했다.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발현한 예수님께서는 지적 공부에만 몰두한 그녀를 책망하며 “멀지 않아 너의 구원은 올 것이다. 왜 그렇게 고통을 받느냐? 너를 슬픔에서 벗어나게 조언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느냐?”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자신과 예수님 사이에 사랑의 유대가 있음을 깨달은 성녀 제르트루다는 내적 평온함을 찾고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갔다. 그녀는 예수님과의 깊은 일치와 친교 속에서 새로운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다. 세속적인 학문에 흥미를 잃고 오로지 성경과 교부들의 저서 그리고 전례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 성녀 제르트루다는 머지않아 스콜라 사상에도 정통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계시와 여러 발현을 보게 되었다. 이로써 그녀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리는 영원한 찬가’로 바뀌게 되었다. 그녀의 생활은 하느님과의 친밀한 영적 체험의 연속이었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 하느님께서 자신의 심장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성흔(聖痕, stigma)을 주셨다고 밝혔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자신의 삶과 그리스도의 발현,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신비로운 은총의 계시를 다룬 “하느님 사랑의 사자(使者)”(Legatus Divinae Pietatis)를 저술했다. 5권으로 된 이 책은 그녀의 대표적 저서로 자서전적 고백서이자 영적 유언서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영성 수련”과 성녀 메히틸다에 의해 기록된 기도와 시로 된 소책자가 전해지고 있다. 그녀의 신심의 특징은 예수 성심에 대한 강렬한 사랑 체험과 헌신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영성사에서 ‘예수 성심의 신학자’라고 불렸고, 예수 성심 공경을 시작한 선구자 혹은 첫 사도로 여겨졌다. 그녀는 중세의 신비신학과 신비주의에 중요한 역할과 기여를 했고, 특히 13세기 독일 교회 안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가로 여겨진다. 그녀의 풍부한 신비 경험으로 인해 ‘독일의 테레사’로 불리기도 한다.
1288년 심한 병을 알게 된 성녀 제르트루다는 합병증으로 치유 불가능한 상태에서 예언의 은사를 받기도 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그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수녀원의 시간 전례(성무일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헬프타 수도원에서 오랫동안 중병으로 고통받던 성녀 제르트루다는 1302년 11월 16일 “아! 신랑이 오신다.”라고 외치면서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45세였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올려지지 않았지만, 1606년 교황청으로부터 공식 전례의 기도와 독서, 찬가에서 그녀를 공경할 수 있다는 공인을 받았다. 이후 그녀의 축일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로 확대되었고, 1738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는 다른 제르트루다 성녀와 구별하고 그녀의 영적인 깊이를 재평가하면서 ‘위대한’(the Great)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르가리타 (Margaret), 아녜스 (Agnes), 제르트루다(대) (Gertrude the Great)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