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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땐 시간이 10킬로미터로 지나가지, 20대가 되면 조금씩 가속이 붙기 시작해. 골격이 완성되고 탑재된 욕망, 그 엔진의 폭발 열 때문에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지. 그리고 30대가 되면 시간이 30킬로미터로 달리기 시작해. 40대 돼 바라 아주 정신없다."
성숙하는 속도는 정지한 풍경처럼 더뎠고, 쇠락해지는 속도는 고속열차 차창으로 지나는 풍경 같았다. 앞으로 내 쇠락의 속도가 얼마나 빠를지도 이미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날 고종사촌 누나가 했던 말과 다르게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저녁 6시가 다되어서야 거제도 앞바다에 도착했다.
누나의 이론대로라면 나의 조급했던 속도보다 더 빨리 이 바다에 도착했어야 했다.
엊그제 렌털업체에서 임대한 2000 연식 소나타도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10대의 속도보다도 더 느린 속도로 달려온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얌마! 너 왜 그리 인터벌이 길어? 좀 빨리 쳐라. 남의 흐름 끊지 말고."
그날 볼링 시합은 다른 날보다 좀 높은 상금이 걸려 있었다. 꼭 상금에 눈이 어두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스트라이크에 스트라이크를 합쳐 높은 점수를 만들고 싶은 내 욕심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인터벌을 길게 가지고 가고있었던 것이다.
거제 앞바다에 도착했을 땐 멀리 석양이 기암절벽 위에 걸 터 앉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석양이 바닷속으로 뛰어들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저무는 한 생애처럼 작열한 핏빛으로 기어이 어둠 속에 묻힐 것이란 걸. 아 그것은 내가 얼마나 동경했던 것이었나. 다행히 조금 있으면 나는 바닷속에 침몰하는 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늦게 당도한 것이 아니다.
소나타를 여객터미널 주차장에 세우며 렌털업체 사장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동안 사장은 기다릴 것이다. 약속 시간에 돌아 오지 않는 내가 아닌 소나타를, 하지만 소나타는 거기 있을 것이고, 사장은 조금 번거롭더라도 신고를 하고 소나타를 찾을 것이다.
내가 올려다본 여객터미널은 기억 속의 모습과 다르게 변해 있었다. 30년 전 그날 내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느라 매번 엎어지고 무릎이 까이던 그 넓은 곳을 찾을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낚시를 했던 조그만 다리, 그 아래 검은 등을 보이며 떼 지어 올라오던 꽁치들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30년 전 그날 내 손을 꽉 잡고 외갓집으로 가기 위해 여객선에 나를 먼저 들어 올려 태우던 엄마도 있을 리 없었다.
낚시 바늘을 던져 넣은 지 일분도, 아니 삼십 초도 되지 않아 바늘을 문 꽁치를 들어 올리던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한 시간 내내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좀 기다리다가 꽁치의 입질이 내 손 끝에 느껴지자, 내가 늦게 걷어 올려서 꽁치를 못 낚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조바심에 훅 하고 걷어 올려보아도 꽁치는 여전히 없었다. 지렁이를 빼앗긴 바늘만 바다에 비친 푸른 허공을 흔들고 있었다. 숙기가 별로 없었던 나는 그날 사람들에게 왜 내 바늘만 꽁치들이 물지 않을까요? 하고 묻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훗날 알게 된 거지만 그날 내 바늘은 너무 컸던 것이다. 꽁치의 작은 입이 커다란 바늘을 한입에 쏙 물 수 없었던 그 당연한 이유를 알았을 때, 나는 한숨이 나왔다. 나는 그런 경험을 했으면서도 매번 큰 바늘을 사람들의 마음에 던져 넣기 일쑤였다.
터미널을 지나 바닷물이 와닿는 항구 근처로 걸어 나가며 횟집들이 신식 간판을 내 걸고 주르륵 서 있던 골목을 지날 때, 나는 수족관 속에서 먼바다를 유랑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지, 아니면 망망했던 바다에서 탈출한 것에 안도하는지 모를 고기들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다행히 나는 바다 가까이 바로 파도가 때리는 해안 옆에 위치한 횟집을 찾을 수 있었다. 저녁 바람은 그렇게 쌀쌀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번거롭지 않으려고, 바다 가까이 가 앉았다. 콘크리트에 뿌리박은 철제 난간 귀퉁이를 때리는 파도 때문이었을까? 이제는 내가 다독거려야 할 삶의 중심에서 아득히 멀어진 내 삶의 귀퉁이들이 파도에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엄마는 아빠보다 먼저 집으로 들어오셨다. 집을 나서 시장으로 가거나 집으로 돌아올 때 반드시 걸어야 하는 언덕길, 당연히 그날도 엄마는 그 언덕길을 걸어올라 집으로 들어오셨다. 아버지가 내뱉은 욕설과 잔인한 폭력을 견디는 엄마의 피 묻은 모습은 낯설었다. 그 때문에 나는 얼른 다시 대문 박으로 나와 언덕길 위에 서 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달빛 속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이따금 달빛을 치렁치렁 감고 날아다니는 박쥐들도 보였다. 나는 그 박쥐가 신기해서 어린 강아지들이 파리가 신기해 꼬리 치며 달려들 듯 그 박쥐를 향해 폴짝폴짝 뛰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술 취한 아버지가 막 대문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본능적으로 엄마 뒤에 숨으려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내 등 뒤엔 여전히 달빛을 감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당겼지만 나는 엄습한 공포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엄마에게로 달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부엌으로 들어갔을 때 그곳엔 엄마는 보이지 않고 익숙했던 공포보다 더 견디기 힘든 낯선 적막이 있었다.
물론 그 순간은 처음 맛보는 적막이었기에 그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내 앞에 자주 나타났던 적막을 잘근잘근 씹을 때마다 그날, 그 낯선 적막의 맛이 이빨에 으깨져 혀에 번지는 육즙처럼 잔인하게 되살아나곤 했던 것이다. 마술처럼 사라진 엄마. 나는 엄마를 찾기 위해 부엌 박으로 나왔다. 그때 아버지가 욕을 하며 대문으로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달빛이 가려 어둠이 짙은 담벼락 귀퉁이 쪽을 몸을 숨겼다. 점점 또렷해지는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 따라 내 공포는 담벼락 귀퉁이 아래의 어둠보다 더 짙어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는 얼른 대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언덕에서 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모두 집에 들어가고, 달빛만이 언덕길을 치렁치렁 휘감고 있었다. 엄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한 병 더요."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나는 한 병을 더 주문했다. 파도는 쉼 없이 철제난간을 때리고 있었다. 사람이 숨을 쉬는 것도 바다가 쉼 없이 파도를 밀어 올리는 것과 같은 것일까? 그런데 바다는 왜 곤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소주 한 잔을 삼키자 그날 뒤늦게 떠올랐던 담벼락 너머 들판이 위벽을 갉아 내렸다. 조금만 더 빨리 그 들판 길을 기억했더라면, 나도 몇 번 그 들판 길을 따라 엄마가 계신 시장을 간 적도 있었다. 친구들과 저수지로 수영을 하러 가기 위해 언덕길을 내려가 도로를 돌아가는 번거로움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지름길을 택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언제나 언덕길을 오르고 내렸기에 나는 감히 엄마가 그 들판 길을 걸어갔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들판을 엄마는 어떻게 걸어가셨을까? 한 번은 내가 엄마에게 해에 대해 물었다.
"엄마 저 해는 이상해. 해가 왜 이상해?"
"응?"
"엄마 다른 모든 것들은 내가 멀리 가면 사라지는데 저 해는 맨날 졸졸 따라다녀. 내가 있는 곳에 항상 있단 말이야. 엄마는 저 해처럼 언제나 내 옆에 있을 수 없는데, 해는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야?"
"응 그건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물어보렴."
"칫 엄마는 그것도 모르는 거야? 칫 바보."
유난히도 밝았던 그날 밤, 달빛이 엄마의 길을 밝혀주었을까? 그리하여 엄마는 그 낯선 들판을 허우적이지 않고 길을 잘 찾아 아버지에게서 무사히 달아날 수 있었던 것일까?
"아주머니 소주 한 병 더요."
곧이어 석양이 바다에 닿자 휘황찬란한 모습이 펼쳐졌다. 하지만 곧 바다 위로 어둠이 찾아왔다. 바다는 그 같은 하루를 매일 경험할 것이다. 절정으로 치닫던 삶의 오르가슴 뒤에 반드시 찾아오는 허무, 적막, 찰나의 순간 뒤엔 어둠이라니, 왜 그 공식은 반비례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그 누가 이따위로 세상을 만들어 놓았을까? 석양이 지던 그 순간 내가 바다에 뛰어들지 못한 것은 몸을 가눌 수 없도록 마셔버린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처 난 고흐의 마지막 이틀은 방금 내가 맛본 그 순간처럼 초조했을까? 아니면 두려웠을까? 아니면 설렜을까?
어둠을 밀며 여객터미널로 들어서는 여객선 한 척 때문에 번뇌처럼 일렁이던 파도, 다시 낮게 가라앉고 잠잠해진 바다는 마치 평정심을 되찾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 평정심은 잠깐이라는 것을 나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한 순간도 번뇌의 파도를 지울 수 없는 바다.
그래 아까 내가 바다에 뛰어들지 못한 것은 바다가 잠잠해질 때마다, 내 앞에 간헐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던 그 사내 때문이었다. 그도 세월의 풍화 작용을 이길 수 없었는지, 침식의 흔적이 가득했다. 크고 단단했던 바위가 모래가 되기까지 그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순간들을, 풍화의 힘에 맞서 견뎌야 했을까? 그는 아직도 침식되지 않은 크고도 단단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이 아직도 가지고 있는 단단한 것이 무엇이냐고. 그래, 그것을 묻고, 답을 받고, 내일 다시 여기 앉아 석양이 침몰하기를 기다려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말을 뱉어내지 못하고 소주를 삼켰다. 그러자 그동안 내가 와작, 와작 씹어 삼켰던 생의 맛들이 느껴졌다. 강바닥에 가라앉던 돌들의 촉감도 느껴졌다.
"참 옅은 바닥이지?"
중학교 3학년 그날 내가 집어든 돌멩이 하나를 강물에 던져 넣자 강은 물살을 튀어 올리며 돌을 금방 바닥에 가라앉히고 말았다. 그날도 내 세월은 역동적으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그 시간들이 안타깝지 않았다. 그것은 누나가 말한 것처럼 20대가 빨리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지금은 저렇게 옅은 바닥이야. 그래서 아까 소연이가 한 말이 내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해. 내가 여기로 달려온 것은 도저히 내 물살을 고요히 평정할 수 없어 저렇게 튀어 올린 물결 때문이야. 나는 바다가 되고 싶어. 바다가 되면 깊어져 있겠지? 그럼 사람들이 아무리 내게 돌을 던져도 나는 튀어 오르지 않을 거야. 내 바닥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야. 그들이 던지는 돌은 절대 내 바닥에 닿지 못하고 해류 따라 유랑할 테니 말이야. 그때가 되면 그들의 말이 더 곤하고 아플 거야. 닿지 못하고 계속해서 흘러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넌 모를 거야."
하지만 30년 만에 닿은 바다는 내가 그동안 상상하며 바라던 그런 바다가 아니었다. 수평선처럼 막막한 현실, 정의 내리고 매듭지을 수 없는 그 부질없는 것들이 깊은 혼 속을 유랑하고 있었다.
"고향에 오신 거요?"
파도가 일렁인 뒤에 다시 찾아온 그가 내게 물었다.
"내 여기가 제 고향입니다."
"여기가 어떻게 당신 고향이 될 수 있겠소?. 당신은 여기서 5년 남짓 살았고, 그 5년의 삶 또한 포근하고 평온하기는커녕 지옥이지 않았소. 그리고 당신은 아버지의 손에 억지로 끌려 여기를 떠나지 않았소. 아 그리고 후에 당신은 아버지까지 떠났죠."
"당신 말을 듣고 보니 여기가 내 고향이 될 수 없는 이유가 타당하군요."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도 나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출렁거렸고, 흐릿했지만, 그는 필시 나와 같은 표정이었다. 다시 나는 그 사내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건 사실입니다. 이곳 거제도에서 첫 이별, 첫 공포를 맛보았죠. 아 맞다. 회도 여기서 처음 맛보았죠. 여기서 첫 죽음도 목격했어요. 아 그리고 여기서 첫 사랑도 했군요.
"????"
"아 사랑이야기 하니까 그녀가 떠오릅니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지 5개월쯤 지연이와 전 아주 많이 친해져 있었죠. 하하 얼마나 좋아했는지 지연이는 주산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 끝나고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싫어서 제가 엄마를 졸라 주산학원에 다니게 해달라고 했죠. 그녀의 왼손 중지엔 조그마한 사마귀가 돋아나 있었어요. 어느 날 제가 그 손을 잡았더니 전까지 웃고 제게 장난치던 지연이가 글쎄, 확 하고 손을 거두더라고요. 그때는 그녀가 너무 서운했는데, 지나고 보니 알겠더라고요."
내가 거기까지 말하자 그는 그래요, 슬프지 않은 이야기군요. 하고 말했다.
"살아오면서 다른 누구에게는 드러내놓아도 절대 치부를 드러내 놓기 싫은 존재가 있긴 하죠."
나는 그 순간 내 왼쪽 손목을 오른손으로 쓰다듬었다. 강렬했던 삶의 집착만큼이나 사무치도록 무엇인가를 원했던 흔적이, 침묵을 지키며 내 오른 손바닥에 와닿았다. 그러자 나는 까닭 없이 눈물이 났다. 그 강렬했던 뜨거움, 그 시절 나는 그토록 뜨겁게 살아남고 싶었다. 매일처럼 침식되는 내 단단한 것들을 바라보며, 그 풍화의 고통 앞에 나는 매일 울부짖었다.
"당신은 죽음이 두렵습니까?" 그가 그렇게 묻자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아뇨. 하고 말했다.
"그런데 아까 석양이 질 때 왜 뛰어내리지 않았소?" 그가 그렇게 묻자 나는 들고 있던 소주잔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소주 한 잔을 한 다음 그에게 답을 하려고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또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기 위해 그가 있던 그곳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곳엔 어둠이 출렁이고 있었다. 그 어둠 아래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허방이 있었다. 조금 있으면 그 허방을 건너 다시 그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풍화의 고통을 이길 수 없어 초라한 자태가 된 그의 모습이, 평정심을 되찾은 바다 위로 다시 떠오를 것이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한 병 더요."
홀로 마신 소주병을 보더니 이마 위에 높은 파도 하나 밀어 올린 아주머니는 서비스 안주 하나 없이 다시 돌아 서고 말았다.
죽지 못해, 죽기 위해 고흐가 간신히 걸어갔을 밀 밭길, 누나 내 마음이 너무 아파. 민아가 떠났지만 다행히 내 곁엔 고종사촌누나가 있었다. 지금은 세상이 끝날 것처럼 아프지, 하지만 두고 봐라 곧 잊혀진다. 원래 마음은 없는 거야. 너 그동안 엄마 없이도, 그 험악한 아버지 밑에서도 안 죽고 살아남았잖아. 원래 없는 마음이야. 그러니 넌 그 없는 마음 비우는 거 어렵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날 누나의 말은 틀렸다. 나는 이제껏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고흐가 걸어간 그 밀 밭길, 저 바다처럼 그곳에도 어둠이 출렁거렸을 것이다. 고흐의 핏방울을 적신 이파리들, 강렬한 뜨거움에 나부꼈을 것이다. 끝끝내 세월의 바닥에 가라앉지 못한 기억들이 어둠의 수평선 너머로부터 밀려왔다. 그 기억들은 파도처럼 일렁이며 내 가슴에 파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대는 진정 뛰어내리려고 온 것이 확실하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아까보다 눈이 더 충혈된 것처럼 보였다.
"네 확실합니다. 쇠락해지는 것이 너무도 싫습니다."
"허허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 없군요. 스스로 어른이 되겠다고 했으면서 당신은 여전히 아이에 머물러 있군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나는 소리쳤다.
"당신 첫 흉터 그 손목의 첫 흉터 말이요."
나는 그에게 내 손목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그는 그렇게 말했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내 흉터를 안단 말이요?"
"잘 알지요. 자기 연민에 빠진 채 또다시 버림받았다는 그 수치심 때문에 생긴 것 아니오?"
"아니요!"
나는 부정했다.
"너 남자친구 있었으면서 왜 나한테 숨기고 그동안 내게 그렇게 행동한 거니?"
"세상에 밥만 먹고살 수 있니?"
적어도 그날 연주가 그런 말만 하지 않았어도 나는 훌훌 털고 돌아 섰을 것이다.
그녀의 눈빛 또한 그날 내 엄마의 모멸찬 눈빛과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아버지와 이혼소송 때문에 광주 법정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엄마와 나는 재회했다. 엄마는 내 눈빛을 모멸 차게 외면했다. 어느 순간 아버지와 엄마가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미선이 데리고 갈 거 에요. 아니 이 미친년을 보았나! 내가 미선이 데리고 가야지. 부모님은 서로 동생을 데리고 가겠다며 그렇게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첫 버려짐의 맛을 알 수 없었던 나는 당연히 먼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창너머로 사라지던 풍경들, 인생도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던 나였지만 버려짐의 맛을 알 순 없었다.
그날 내가 손목을 그은 것은, 연주가 내게 안겨준 수치심보단 그녀가 나를 버림으로써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그날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 홀로 원룸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길, 시장에서 칼 한 자루를 사들고선. 11살 적 처음 맛본 버려짐의 그 매운맛, 청양고추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혀를 마비시키듯 얼얼하게 전해지는 그 매운맛. 그것은 다른 맛과 달라 한동안 오래 입속에 감돌았다. 연주는 오래지 않아 잊었지만 그 버려짐의 맛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고 내 혀를 맵게 했다. 욕실에 쓰러진 나를 업고 달려가던 룸메이트 형이 인마 그깟 여자가 사랑이 뭐라고 그 짓을 했어?라고 말했을 때 나는 형 아니 엄마가 미워서 그랬어. 내가 먼저 콱 죽으면 엄마가 아파하실 거 아니야? 하고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