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많은 이들이 이러한 상황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어렵게 생각하던 기긴이 있었지만, 이제는 야외에서 마스크 벗는 것을 논할 단계가 되었을 정도로 개선되어 가고 있다고 하겠다. 그동안 사람들은 직접 만나서 대하는 것보다 이른바 ‘비대면’의 생활에 익숙해졌고, 그로 인해 SNS를 통한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 보편적인 규범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비대면 문화의 장점이 뚜렷한 만큼 그로 인한 불편함도 비례하여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각종 업무를 진행하다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도 지극히 형식적인 관계로 귀착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최근 언론보도나 인터넷 상에서 누군가를 혐오하고 비난하는 발언들이 증가하는 것 또한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비대면 시대에 비로소 부각되는 현상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한 혐오의 표적이 주로 장애인과 성소수자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비주류에 속하는 이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극단적인 표현을 통해 타인들의 삶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고,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이라는 부제를 통해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발생했던 12개의 ‘사건’을 조명하고, 그것이 왜 우리 사회의 <민낯들>을 보여주는 지에 대해서 사회학자로서 성실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에 초점을 맞춰 문제를 논하는 것은 사회학자로서, ‘차별과 혐오가 줄어드는 세상을 꿈꾸는’ 저자의 의지가 굳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유발하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다시 활개를 치는 세상은 분명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한때는 언론과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들의 관심에서 잊혀지고 있는 문제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들을 상세히 짚어보면서, ‘제대로 된 질문이 부재한 사회가 왜 문제인지, 어떤 질문을 미리 던졌어야 했는지를 논’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크게 2부로 구성된 목차에서, ‘말줄임표 ?죽음도 별수 없다’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모두 6개의 사건들을 소개하면서 그 의미에 대해서 짚어보고 있다. 성소수자로 살아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했던 ‘고 변희수 하사’, 익명의 뒤에 숨어서 악플을 쏟아내던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했던 연예인 설리로 잘 알려진 ‘고 최진리’, 철인3종경기 선수로 활동하면서 지도자와 동료들의 폭력에 맞섰으나 끝내 아무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고 최숙현’ 등의 사연과 그 의미를 하나씩 점검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면서 홀로 힘겨운 작업을 하다가 열악한 노동환경에 죽음을 당한 ‘고 김용균’,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에서 비참하게 죽어갔던 ‘고 성북 네 모녀’, 그리고 광고를 믿고 선택했던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당한 그 숫자조차 정확히 판정할 수 없는 ‘피해자들’의 사연과 그것이 드러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민낯들‘을 저자는 조명하고 있다.
이들 사건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는데, 나와는 다른 누군가를 향한 혐오의 표출과 때로는 무관심으로 인해 빚어진 사건들로 귀결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그들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면, 어쩌면 비극적인 결과만은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사건이 벌어지고 한동안 언론보도나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듯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흐지부지되고, 사람들의 무관심을 틈타 또 언젠가 그와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겠다.
‘도돌이표 ?우리는 망각에 익숙하다’라는 제목의 2부에서도 역시 모두 6개의 사건들이 소개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 펜데믹’,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누군가의 성을 착취하여 인터넷에 은밀하게 유통시켰던 ‘n번방 사건’, 그리고 그릇된 논리로 여성들을 향한 비난의 표적으로 활용되었던 ‘낙태죄 폐지’ 등이 지닌 의미를 점검하고 있다. 이와 함께 8년전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과 일반 승객들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목숨을 잃었던 ‘세월호 참사’, 망각의 세월을 뚫고 최근의 대선에서 다시 그 세력에게 투표를 하는 모습으로 확인되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의 공정의 문제를 되새기게 만들었던 ‘조국 사태’ 등이 여기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의 제목을 ‘지금 여기는, 우리의 결과다’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지금 이 사회의 대중들이 망각과 무관심 그리고 혐오의 언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가 지나간 역사를 되새기는 것은 과거의 ‘사건’들로 인해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하지만 지금 2022년의 한국 사회의 모습은 과연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그리고 과거의 불행한 사건들로부터 무엇을 깨닫고 그것을 제대로 교정했는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항상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우직하게 그 답을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며, 여전히 교정되지 않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의 민낯에 믹숙해지 말자는 다짐’에 기꺼이 동참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모습은, 우리의 결과’라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이 교정될 수 있도록 작은 역할이라고 하겠다고 다짐해본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