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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맹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백신의 접종이 시작되었지만 그 종식이 언제쯤일까 아직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건축가로서 공간, 특히 도시건축과 공간의 문제를 천착해 온 저자가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라는 부제를 단 책을 새롭게 선보였다. 그래서 '여는 글'의 제목도 '전염병은 공간을 바꾸고, 공간은 사회를 바꾼다'라는 제목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동안 인간의 미래 혹은 인류의 삶의 조건들에 대한 숱한 '예언'이 쏟아졌지만, 그것이 정확히 일치된 사례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이 책에서 제시한 <공간의 미래> 역시 훗날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져, 먼 미래에는 어쩌면 '거짓 선지자'로 불릴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런 말을 던지기도 한다.
실제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공간의 활용 방안은 이상적이지만, 과연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 저자는 일단 공간의 배치는 사회에서의 권력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이러한 공간의 배치나 그 성격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할지라도, 앞으로의 생활은 절대로 코로나19 이전의 방식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공간이 미래에는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유용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라는 제목의 1장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서 고층 아파트의 각 세대에게 발코니를 제공해주자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좋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이미 주택의 50%를 상회하는 기존 아파트의 비중을 두고 본다면 이것은 또 다른 빈부격차를 야기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도 서울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다른 지역보다 높게 형성된 것으로 인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과연 사람들의 욕망을 뛰어넘어 공간의 변화로만 사람들의 요구를 총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는 쉽게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아파트 보급률이 적은 지방 소도시에서부터 저자의 제안이 실행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야만 하는 속성을 가진 공간이 바로 종교시설과 학교, 그리고 회사라고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칠 때에도 사회의 관심은 이들 시설의 모임과 활용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있었고, 때로는 그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를 각각 '종교의 위기와 기회', '천 명의 학생과 천 개의 교육 과정' 그리고 '출근은 계속할 것인가' 등의 제목으로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분명 서서히 바뀔 것이지만, 종교시설의 모임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된다. 아울러 비대면 방식의 수업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겠지만, 출석수업도 결코 학교 교육 과정에서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재택근무가 확대되겠지만,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직장 문화도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방식의 제안들이 언젠가 실현될 수도 있겠지만, 이들 대상이 지니는 근본적인 성격이 변하지 않는 한 그럴듯한 제안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저자는 '전염병은 도시를 해체시킬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답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욕구와 욕망은 비대면 방식보다 직접 대면하는 방식이 충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공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점에서 저자의 제안이 설득력이 있지만, 사람들은 반드시 효율성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그것을 건축으로 구현하려는 저자의 열정이 충분히 느껴지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저자의 제안에 대해서 이상적이지만,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는 내용들이 없지 않다. 예컨대 '지상에 공원을 만들어 줄 자율 주행 지하 물류 터널'이라는 제목의 6장에서, 획일적이지 않은 지하공간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과연 지하터널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한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렇게 활용하고 남게되는 지상 공간을 과연 공원으로 조성할 수 있도록 땅주인들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경제성을 추구하는 지주들의 욕구로 인해 오히려 공원이 아닌 건물을 지어 수익성을 극대화하려고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린벨트 보존과 남북통일을 위한 엣지시티'라는 7장 역시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여겨졌으며, 분명 거시적인 관점에서 저자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다양한 이익관계가 충돌하여 실현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의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진단한 '상업 시설의 위기와 진화'(8장)는 현 단계에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청년 세대에게 집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자는 취지의 '청년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9장)라는 내용 역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지만, 이 역시 기존 지주들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라는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새롭게 지어지는 건축물들에 개성을 부여하여, 도시마다 혹은 건축물마다 자기만의 색깔을 갖도록 하자는 '국토 균형 발전을 만드는 방법'(10장) 역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하겠다. '공간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자'는 11장에서는, 저자가 직접 설계한 건축물들을 통해서 그 성격과 의미를 진단해주고 있다.
우리 주변에 개성적이고 독특한 성격을 지닌 건축물들이 적지 않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건축물들은 기존의 관성을 따라한다는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저자는 '닫는 글'에서 '기후변화와 전염병'이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새로운 시대를 만들 기회'라고 진단한다. 분명 저자의 이러한 제안들이 필요하고 또 공감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너무도 이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부동산 문제와 건축에 대한 기존의 관성이 그만큼 강고하게 구축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변화는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할 터, 저자와 같은 생각을 지닌 건축가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 때 조금식이라도 변화해갈 것이라고 여겨진다. 저자가 제안하는 <공간의 미래>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조금씩이라도 그 영역을 넓혀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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