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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현대 소설가인 루쉰은 그 명성과 문학적 성취 등에 대해 이미 한국에서도 충분히 알려져 있다. 루쉰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아Q정전>을 꼽을 수 있는데, 그 작품에 형상화된 ‘아Q’라는 인물이 중국 근대 초기의 불합리와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 <광인일기>에 주목하여, 이 작품의 주요 모티프인 '광인'의 형상이 근대 초기 다양한 작품들에서 발견된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을 제외한 중국과 일본에서는 <아Q정전> 못지않게 <광인일기>가 주목을 받았으며, 심화된 연구 결과가 제출되었다는 것도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내용이라 하겠다.
루쉰의 단편소설인 <광인일기>는 일종의 액자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화자가 우연히 일기를 입수했다는 것을 밝히는 내용이 액자의 틀로써 작품의 도입부에 제시된다. 그리고 그 일기를 그대로 전제하면서, '광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바로 작품의 주된 내용으로 본문에 해당한다. 일기의 주인공은 사람들이 자기를 잡아먹으려 한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광인'의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급기야는 형을 비롯한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소설을 ‘식인과 광기’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으며, 그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작품의 주제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이 작품은 주로 전근대적 가족제도와 예교에 사로잡힌 도덕관이 만연한 근대 중국의 모습을 비판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이 작품을 자세히 읽어볼 것을 강조하고 있다. ‘권위와 관습적 읽기에서 벗어나 21세기에 다시 읽는 <광인일기>’라는 부제가 저자의 이러한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모두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광인일기>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서’(1장), ‘<광인일기> 창작의 이모저모’(2장)를 검토하고, 이 작품에 영향을 끼친 ‘세계문학 속 광인’(3장)과 한중일 3국의 ‘<광인일기> 연구 현황’(4장)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짧은 단편소설 한 작품을 대상으로 450면이 넘는 책을 저술할 수 있다는 것에서 저자가 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심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내용은 아주 단순하지만, 작품을 통해서 추출할 수 있는 의미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할 것이다. 저자를 비롯한 <광인일기>의 연구자는 작품의 말미에 제시된 “사람을 잡아먹어 본 적이 없는 아이가 혹 아직도 있을까? 아이를 구해야 할텐데......”라는 진술에 주목한다. ‘광인’으로 표현된 자신을 포함해서 기성세대들은 이미 ‘식인’을 경험했을 것이라는 전제,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식인의 경험’이 전혀 없는 아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식인’과 ‘아이’의 함의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들에 제시한 다양한 연구들을 상세하게 논하면서, 방대한 이 책의 내용을 꾸려갈 수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러시아 소설가인 고골의 <광인일기>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지는 바, 세계문학에 등장하는 다양한 ‘광인’의 모티프들에 대해서도 주목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3장에서는 고골의 <광인일기>와 모파상의 <오를라> 그리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미친 노인의 일기>의 내용을 소개하고, 각각의 작품에서 ‘광인‘ 모티프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들은 루쉰의 작품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받으면서 창작되었음을 전제한 것이라 여겨진다.
4장에서는 <광인일기>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광범위하고 폭넓은 연구 성과들에 대해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연구 성과가 상대적으로 소략한데, 대체로 루쉰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에 <광인일기>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제출되고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루쉰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아Q정전>을 꼽았던 한국의 현실에서 너무도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마치 <아Q정전>을 읽으면 루쉰을 다 아는 것처럼 여겨졌던 경향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루쉰의 다양한 저작들이 번역되어 출간되고, 또한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소개되는 현실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광인’이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세상이 정상적이지 못할 때, 그러한 현실을 그저 바라볼 수 없어 지각 있는 사람으로서 멀쩡하게 살 수 없을 때 정상적인 사람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상과 동화하지 못하고 일탈하는 것으로서의 ‘광인’이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광인’의 의미를 상세하게 따지는 것은 비단 루쉰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그 시대의 사회문제를 도드라지게 표현할 수 있는 형상으로서 문학 연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그래서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이 있듯이, 때로는 ‘미치는 것’이야말로 열정적으로 살아간다는 증거로 표현되기도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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