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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본 소설을 읽었다. 다소 거칠고 사실적인 문체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폭력적인 현실’을 온전히 그대로 드러내려는 작가의 표현수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로 인해서 그에 반대하는 집회가 지속적으로 열리는 곳이다. 전근대시대에는 독립국이었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영토로 편입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본토에 대한 감정이 엇갈린다고 한다. 더욱이 대규모의 미군기지가 자리를 잡은 이후 이군과 현지인들과의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서 각종 반미 시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에는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문제가 정치인들의 주요 공약이 되고 있으며, 이 작품의 주요 소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 현지 여성들에 대한 미군의 성폭력으로 인한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기도 한다.
학창 시절 학교 폭력조직의 우두머리인 히가에 의해 시달리다가, 마침내 그 조직의 행동대원으로 활동하는 ‘가쓰야’는 졸업 이후에도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조직에 의해 약물에 중독된 여성들을 관리하며 성매매를 유도하고, 성매매 장면을 사진을 찍어 성매수자인 남성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하수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에게 맡겨진 여성 ‘마유’는 히가 일당에게 장악을 당해 평범한 학생의 일상으로부터 멀어져서, 마치내 성매매에 이용당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가쓰야와 마유는 모두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폭력배 우두머리인 히가에게 장악당해 그이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을 당하고 있다. 그들의 부모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가정환경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자신의 휘하에 가두는 히가의 수법에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폭력조직인 히가 일당에게 철저히 이용당하는 가쓰야와 마유라는 존재들은, 어쩌면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미군기지의 이미지와 겹쳐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미 미군기지와 그들의 권력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히가의 존재와 그의 폭력 역시 벗어날 수 없는 막강한 힘으로 그려지고 있다. 가쓰야는 함께 생활하는 여성들을 관리하고, 남는 시간 동안 비디오테이프를 보거나 술을 마시는 등의 무기력한 생활이 지속할 뿐이다. 다만 약물에 취해 평소 무기력하던 마야는 성매수를 하려던 남성을 아파트로 데려와 잔인할 정도의 폭력을 행사하는 뜻밖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에 동조하여 남성의 사진을 찍고 협박에 가담하는 가쓰야도 그녀의 행동이 당황스럽게 생각할 정도이다.
그러한 폭력과 무기력한 처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생활에서, 폭력을 행사하려던 히가를 살해하고 가쓰야는 마유와 함께 차를 타고 탈출하게 된다. 여기에서 ‘무지개 새’의 이미지가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학창 시절 사회 교사로부터 들었던, 오키나와 얀바류 숲에 사는 환상의 새가 바로 ‘무지개 새’이다. 훈련을 하던 병사들이 숲 속에서 그 새를 발견한다면, 아무리 격렬한 전쟁터에 있더라도 살아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새를 본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으나, 부대의 다른 동료들은 전멸하고야 만다는 전설을 지닌 새인 것이다.
실상 처음부터 ‘마유’의 등에 새겨진 ‘무지개 새’는 이러한 이야기에 맞춰진 복선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폭력과 착취를 일삼던 히가 일당이 무지개 새의 문신을 한 마유에게 살해당하고, 그것을 본 가쓰야만이 마유와 함께 탈출한다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죄 없는 미군의 어린 딸이 마유에게 죽임을 당하는 화소가 삽입되어, 그 의미와 필요성에 대한 논란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미군기지로 인해서 아무런 이유 없이 고통당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그것과 대비시켜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그들의 최후는 비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예견된다. 하지만 작자는 도피의 과정을 결말에 배치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제도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폭력을 가하는 내용들이 다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작품의 주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되고 있다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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