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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6.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
7.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8.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9.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10.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11.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12.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13.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14.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15.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16.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17.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설교>
인간이 기대하는 복과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복이 다릅니다. 인간이 기대하는 복은 자기에게 기쁨이 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소유욕의 충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은 자기 존재에 절대적 가치를 두고 복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로 부각 되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적인 것을 복으로 간주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복을 받으면 소유가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존재 가치 또한 든든하게 강화될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노력과 열심과 재산까지 투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한 투자들이 헛되지 않고 복으로 보상되어 돌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의 욕망을 따라 복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복을 향한 인간의 열망을 거부하면서 오히려 있는 것을 빼앗으십니다. 그리고 죄 아래 있는 인간에게 진심으로 가치 있고 존귀한 복이 되는 것을 주기 위해 일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의해서 알아가게 되는 기존의 우리 생각과는 다른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욥기를 보시면 하나님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에게 구축되어있는 기존의 신관, 즉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생각으로는 욥에게 일하시고 욥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이상한 하나님이고 생소하고 낯선 하나님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우리의 생각과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욥기를 보면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42장에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보면 결국 주셨다가 빼앗으시고 다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시고 이방 나라로 쫓아내셨다가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유는 약속의 땅을 주신 하나님의 취지에서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의식과 속성과 사고방식을 지적하시면서 하나님의 취지에 맺는 백성으로 고쳐가기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주셨다가 빼앗으시고 다시 주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의 과정에서 인간에게는 아픔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결국 욥이 겪게 되는 근심과 아픔들도 욥의 죄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취지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인간 됨을 지적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 보면 욥의 친구들이 등장해야 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욥 친구들의 말에서 앞에서 말씀드렸던 인간에게 구축되어있는 복의 개념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욥이 7,8절에서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라고 말하지만 과연 누가 이러한 하나님을 원할까요?
욥은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다고 말하지만, 인간의 구미에 맞는 하나님은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하는 인간이 욕망이라는 것을 욥을 증거 삼아 보이시는 것입니다.
9,10절의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라는 말 역시 일반적인 기독교인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래서 욥의 말에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비천한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시고 고난을 받게 하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신 하나님은 이해되십니까? 당연히 얼마든지 이해된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세상이 굴복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아니라 무시하고 조롱받을 비천한 모습으로 보내시고 그것도 모자라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은 사실 이해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해된다 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구원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아프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아프게 하신 것이고, 나의 고난이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이며 그로 인해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 때문에 예수님의 고난도 아픔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를 아프게 하고 고난의 길로 가게 하는 하나님은 받아들이기를 싫어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하나님이 아닌 자기 위주로 살아가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사 53:8절에 보면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라고 말합니다.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되 곤욕과 심문을 당하는 길로 끌려가실 것인데 누구도 그것을 보면서 마땅히 형벌 받은 자들의 허물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자신들의 허물을 생각하지 못할뿐더러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는 길로 갈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욥의 친구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욥은 지금 곤욕과 심문을 당하는 길로 끌려갑니다. 하나님이 욥을 찢고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완벽한 신앙생활을 보였던 욥을 그렇게 대하신다면 모든 사람도 절대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찢으시고 적대시할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 친구들은 자기의 허물을 보지 못합니다. 다만 욥을 허물 있는 자로 몰아붙이면서 욥의 죄로 인한 재앙으로만 경고하는 것입니다.
12-15절을 보십시오. 욥이 겪는 비참함에 대한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좋은 상황에서 조용하고 편안한 신앙생활을 기대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배울 수 있는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만족과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거짓 신앙일 뿐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러한 거짓 신앙을 들고 욥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회개만 하면 삶의 안정이 회복되어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미끼 삼아 하나님이 누구신가와 상관없이 너의 삶의 복지를 위해 회개하라는 것이 욥을 거짓 신앙의 세계에 합류시키는 것이고, 결국 사탄에게 이용되는 하나님의 원수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욥을 증거 삼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일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위주의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에 의해 욥이 조롱받는 것처럼, 예수님 또한 그러한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무엇이 사탄에게 이용되는 하나님의 원수인가를 증거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원수의 정체는 우리가 기대하는 상황과 조건이 아니라 도무지 상상하지 못하고 예상도 하지 못한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상황과 조건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속성과 맞지 않는 하나님의 일을 통해 평소 인간이 갖고 있던 본심이 무엇인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욥의 상황을 통해 친구들의 본심이 드러난 것처럼 예수님의 오심과 고난을 통해 우리의 본심이 드러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욥을 인도해 가시는 일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의 신비’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답을 가르쳐 주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답을 가지고 일하시는 신비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답답해할 것은 없습니다. 애당초 나의 뜻대로 되는 인생이 아니고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답대로 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답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짐을 믿는 것입니다. 이 답이 여러분에게 평강을 가르칠 것입니다.
Chapter 42
Different God
Though I speak, my grief is not asswaged: and though I forbear, what am I eased?
But now he hath made me weary: thou hast made desolate all my company.
And thou hast filled me with wrinkles, which is a witness against me: and my leanness rising up in me beareth witness to my face.
He teareth me in his wrath, who hateth me: he gnasheth upon me with his teeth; mine enemy sharpeneth his eyes upon me.
They have gaped upon me with their mouth; they have smitten me upon the cheek reproachfully; they have gathered themselves together against me.
God hath delivered me to the ungodly, and turned me over into the hands of the wicked.
I was at ease, but he hath broken me asunder: he hath also taken me by my neck, and shaken me to pieces, and set me up for his mark.
His archers compass me round about, he cleaveth my reins asunder, and doth not spare; he poureth out my gall upon the ground.
He breaketh me with breach upon breach, he runneth upon me like a giant.
I have sewed sackcloth upon my skin, and defiled my horn in the dust.
My face is foul with weeping, and on my eyelids is the shadow of death;
Not for any injustice in mine hands: also my prayer is pure. (Job 16:6-17 KJV)
(Sermon)
The blessing people expect from God and the blessing God gives are different. What they expect from God is all things that can make them happy. Thinking that the happiness comes from the satisfaction of what they have, we can learn that men pursue blessings for boosting the value of themselves. In other words, they regard all things blessings as long as the things enhance their value.
Thus, men think the more they are blessed, the more they possess and the higher they are valued. That’s why they sacrifice their time, talent and money while expecting to receive blessings from God.
However, the blessing God gives is different from men’s expectation. Although those who don’t know the difference would continue to pursue the blessings they want, God would take what they have, destroying the desire of the blessings and provide a way to give what is truly valuable and blessing to them, who are in sin. This is the different God we are getting to know in His guidance.
Don’t you ever think God is strange while meditating the Book of Job? According to our common knowledge of God, we can’t comprehend the work of God through Job. He is foreign and unusual due to the fact that He is working in a totally unexpected way.
That’s why we don’t understand the Book of Job. The story goes in a direction where we can’t guess. Even though Chapter 42 says God gave Job twice as much as he had before, it is nothing but giving, taking and giving back.
God led the children of Israel to the promised land and gave them the land as inheritance. It was a blessing for them. Yet, God expelled them to another country while demolishing all they had and had them return to their land. The reason is because they were off the purport of God’s giving them the land.
Keeping that in mind, we find that God works, correcting the people of God while revealing men’s consciousness, characters and thoughts. For that reason, God gives and takes and gives back. In a mean time, there is time when the children of God hurt.
In Verse 6, it says, “Though I speak, my grief is not asswaged: and though I forbear, what am I eased?” Knowing that Job’s experiences of pain and anxiety aren’t from his sins but God exposing men’s wickedness, off the will of God, we can understand why his three friends show up in the Book of Job. It is because, as spoken earlier, they show us our evil ideas of blessings.
Even though Job says in Verses 7 and 8, “But now he hath made me weary: thou hast made desolate all my company. And thou hast filled me with wrinkles, which is a witness against me: and my leanness rising up in me beareth witness to my face”, who would want this kind of God?
He says God made him weary, but what we would like to hear is God who would make us increase later though the beginning was small. This is what God is revealing through Job to us who are in wicked desire, calling the name of God in vain.
We can’t either hear in modern christianity Verses 9 and 10, “He teareth me in his wrath, who hateth me: he gnasheth upon me with his teeth; mine enemy sharpeneth his eyes upon me. They have gaped upon me with their mouth; they have smitten me upon the cheek reproachfully; they have gathered themselves together against me.” That’s why we can’t readily agree with what Job says.
Then, do you easily understand God, sending Jesus in the form of the lowliness, afflicted and slain on the cross? Of course, you would say you do, but logically speaking, you wouldn’t be able to understand it because God sent His only Son to the world, not in the form of the empowered to overcome the world but the weak.
Yet, if you would still say you understand it, it is because you interpret the work of God as His love for your salvation. You would count all the agonies and pains of His for your salvation, but you wouldn’t want God leading you to pains and afflictions, which is our reality, using God for our own sake.
In Isaiah 53:8, it says, “He was taken from prison and from judgment: and who shall declare his generation? for he was cut off out of the land of the living: for the transgression of my people was he stricken.”
The verse says that there is no one would think the Messiah’s receiving afflictions and judgement is for the transgression of the people who deserve the judgement. Besides, they would never imagine the Messiah would go to the way of death. It was totally different from their thoughts of the Messiah.
Job’s friends are not far from what is stated above. Job is now being dragged on the way of agony and judgement, which God is tearing him off and antagonizing him. If it is the case of Job, no one would be an exception, ending up being in the same position of Job. Yet, his friends can’t see themselves, only pushing Job to the corner by warning him for his sin.
If you take a look at 12 to 15, you will see how miserable Job is. We would never want to be in such conditions because we would always like to be in comfortable situations, satisfying our expectations. However, it is not the way we learn the true life of faith. It is falsehood in the name of faith.
His friends came to Job in such idea, making Job join their falsehood by persuading him to repent for a comfortable life, regardless of who God is. They are being revealed the enemies of God, used by Saran.
As Job is ridiculed by those who attempt to keep their man-made faith, far from the will of God, Jesus was killed by such people. God exposed the enemy of God, used by Satan.
In other words, the enemy of God is revealed by the work of God, totally unexpected from our thoughts and hopes. It is the way God shows the characters of our wickedness, which we can’t see in our walk. Thus, as the true color of Job’s friends through Job’s situation is revealed, we come to realize who we are, the enemies of God, by Christ’s coming to the world and receiving all the agonies.
Therefore, the only thing we can tell about the work of God, leading Job, is ‘the mystery of God’, not letting us know the answer but holding it Himself.
For such reason, we ought not to be frustrated when things go wrong because our life is supposed to be done according to the answer He has, not our will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anyway. The answer we have is to believe that His will be done. The very answer will teach you what the true peace is supposed to m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