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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산학교 개교 10주년 즈음하여 최근 발간된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산학교 역시 저희와 같은 학교 터 이전을 준비 중이신가 봅니다. 새터의 근본을 바라보는 빛나는 안목이 같은 고민을 하는 저희들에게 마치 선물처럼 여겨졌습니다. 새터모임과 교사모임에서도 함께 읽은 글, 함께 나누고자 올려드립니다.
<학 교 터 전 에 대 한 상 상 력 >
전 재 철/ 하 늘 소 , 대 안 교 육 학 부 모 연 대 대 표
1. 대안학교에 있어서의 터전이란 무엇일까?
교실, 운동장, 아이들, 교사……. 왠지 학교라는 상상을 할 때 이런 모습을 염두에 두지않고서 감이 잡히지 않거나, 그것을 벗어나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기존의 학교형태와 일정 정도의 타협을 합니다.
“그래도 교실은 있어야겠지? 아이들에겐 공간에 대한 안정감이 필요하니까.” “운동장도 있어야 할 거야. 아이들의 집단적인 몸 놀이와 자기들만의 놀이 공간이 필요니까.” “텃밭도 있어야 할 거야. 아이들과 절기에 맞는 작물의 성장을 바라보며 노동을 할 수 있는 농사수업을 위해서 말이야.” “주변에 산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아이들의 생태적 감수성을 길러 주기 위해서 말이야.” “그래도 우리는 일반학교와는 달리 아이들과 교사와의 전면적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작은 학교를 지향해야해.” “부모들이 힘들지만 아이들의 좋은 교육을 위해서 조금 비싼 비용은 감당해도 괜찮아.”
학교공간을 바라 볼 때마다 뭔가 자꾸 부족함을 느낍니다. 공간을 좀 더 잘 꾸몄으면 좋을것 같고, 기왕이면 조금 더 비용을 들여서라도 전문가를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바쁘니까 기회비용이라 생각하고 돈을 조금 써도 괜찮아.” “공교육에서는 조기영어교육을 한다는데, 영어몰입교육은 아니더라도 영어는 해야 할 거야. 최소한 그것 정도는 해야겠지? 앞으로 우리 아이들을 둘러싼 미래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기왕 할 거면 원어민이면 더 좋지 않을까?” “이제 우리도 학교 구성원이 꽤 되잖아? 임대터전이 불안하니까 영구터전을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몇 군데 대안학교가 땅을 사서 건물을 짓는 것을 보니 우리도 이젠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터전에 대한 고민 중 가장 큰 문제는 터전 관련 비용입니다. 대안학교의 재정 중에 많은 부분이 터전임대와 유지비용에 쏠려 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학교는 아이가 입학할 때 기부금과 예탁금 형식으로 몇 백만 원을 받아서 터전 유지비용으로 충당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월 받는 교육비와 후원회비, 재정사업비에서도 일부를 충당하면서 늘 돈에 쪼들립니다. 재정담당은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대안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푸념을 합니다. 이런 푸념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빛도 곱지만은 않습니다. 대안교육을 하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일정 정도 돈이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귀족교육이 아니냐는 것이죠.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러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 학급당 인원도 늘려야 하고, 입학자격 요건도 더 느슨해집니다. 그래도 비용이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습니다. 그런 결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 부모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중산층 특성(자기중심, 개인, 가족주의, 안정성, 계층상승욕구)이 여러 가지 변형된 형태로 학교 공동체 안에 스며들면서 공동체성이 많이 후퇴하고 내부구성원 간의 갈등, 학교에 대한 불만 토로 이 부분을 극복하기 위한 부모교육, 각종 간담회 등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대안교육 진영 내에서 요즘 새로 들어오는 학부모나 아이들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물론 맞는 부분도 있는 얘기지만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이 듭니다. 대안학교의 문턱(돈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중산층 부모가 유입된 결과이고 입학전형과정에서 공간유지 비용을 위해서는 학교 철학에 약간 못 미치더라도 입학정원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엄격했던 입학요건을 낮추면서 빚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학교터전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학교의 철학과 교과과정, 학교형태, 학교공동체 구성원의 의식과 조직력, 지역사회 등 여러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해결이 가능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묶어 옷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튼튼한 기본이 전제되지 않은 채 일이 진행되면 언젠가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우리는 상상하지 못할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2. 학교
학교는 대안교육의 여러 방식 중에 한 가지 형태일 뿐입니다. 초기에 대안교육을 하면서 소수의 인원이 다른 조력자들과 입학생을 모으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그나마 인정하는 하나의 형식을 취했을 뿐입니다. 작은 학교의 지향은 공교육에서 극복하고자 했던 학교형식과 일정 타협을 한 결과물인 셈이지요. 학교를 설립하고 10여 년이 경과한 지금 대안교육 진영 전체를 둘러보면 모두 비슷한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안교육연대운영위원회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대안교육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첫째, 혁신학교의 성장입니다. 지금은 시작 단계라서, 교육 컨텐츠 확보가 부족해서 힘들어하지만 많은 혁신학교가 대안교육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지역자원을 활용하면서 성장을 거듭해 나가고 있습니다. 반면 대안학교는 공교육의 안정된 틀에 경도(학교 터전, 교과 선정 및 선정 과정 등)되는 측면이 있으면서 초기의 건강했던 생명력이 시들해지고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상태로 5년이 경과되면 대안학교는 혁신학교와 비교되면서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교육내용은 비슷해지는데 학부모가 내는 비용은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지요.
둘째, 사설학원의 대안교육으로의 진입입니다. 현재 교육기본권관련 토론장에 가보면 럭셔리, 엘리트 대안학교 관계자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국제학교, 각종 문화 특성화학교 등등입니다. 대형 대입입시학원도 대안교육 시장에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들이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데, 대안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는 운동성이 떨어지고 선택만 합니다. 대안교육을 시켜서 자기 주도력도 키우고 대학도 보내고. 그것을 겨냥해서 무늬만 대안학교인 학원의 수요가 생겨나기 때문이겠지요. 대형 학원들의 진화와 변화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자본과 사회적 정보력이 있기 때문이지요.
셋째, 초기의 대안학교 지향과는 다른 성향의 학부모 구성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생기는학교철학의 흔들림과 내부 구성원간의 공동체성 훼손문제입니다. 대안학교는 대부분이 민주적 합의제를 지향하지만, 이제는 예전과는 다르게 합의하기가 기술적으로, 의식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결국엔 다수결로 가는 안건들이 많아질 것이고 현실적인 판단이란 이유로 결국 중산층 성향의 학부모들과 타협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계속 연출되고 있습니다.
10년 경험을 가진 대안교육 진영에서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고, 새로운 비전과 공동체를 꿈꾸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대안교육연대와 대안교육학부모연대 정명포럼(대안교육, 자기 이름값 하기)으로 명명된 사업으로 각 현장마다 학교철학, 교과과정, 공동체, 진로, 학교형태 등과 관련해서 토론을 조직하고 이러한 결과물들을 대안교육한마당(6월25~26일, 성공회대)에서 함께 나누고자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학교 형태가 맞는지 이제는 대안교육의 방식에 있어서도 학교란 형식, 도식적인 터전에 대한 관성을 벗어나는 노력과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유럽과 북미, 가까운 일본에서는 학교형태를 띠지 않는 다양한교육형태가 실현되고 있습니다. 숲 학교, 농장학교, 공장학교, 버스학교, 네트워크형 학교 등. 국내도 “공감유랑”이라는 버스학교가 있습니다. 교사 2명이 15~20세의 청소년 17여 명과 함께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비용으로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스승과 배움을 좇아 전국을 휘젓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 교사 중에 ‘한김지영’이라는 분은 7~8년간 유럽에서 교육과 NGO 실천 활동과 덴마크 버스학교 경험을 다년간 한 결과물을 가지고 국내에서 “공감유랑” 이라는 다른 배움의 형태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형식을 그대로 가지고 가더라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사안이 많습니다.
혁신학교, 엘리트학교와 우리 대안학교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을 무엇일까요? 대안학교 교사의 대안교육 운동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된 헌신적인 아이들과 배움의 관계 맺음, 교육적 상상력, 학부모들의 운동성과 현장성, 학부모의 사회적인 관계망을 통한 인적, 물적 자산일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변증법적으로 잘 어우러지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대안학교는 지역 속의 학교, 마을 학교를 표방하면서 지역의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평생교육원, 주민자치센터, 청소년상담센터, 아동센터, 시민단체, 혁신학교와 연계한)하고 있습니다. 학부모는 생협, 환경, 풀뿌리 시민단체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지역에서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면서 대외적으로는 대안학교의 가치와 실천의 장을 지역 속에 확장시키고 외부의 좋은 교육적인 소재들은 학교 안으로 가져들어 오는 선순환적인 활동을 통해서 자기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혁신학교나 공교육 전교조 교사들과의 교류(실상은 많은 대안학교 학부모들이 교사 출신이기 때문에 이들이 고유의 활동영역을 확보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를 통해서 대안학교의 교육내용을 나눠주고 그들로부터는 지역의 여러 교육적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지역관련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지역에서 학교의 의미를 살리고 지역의 많은 시설과 사람을 배움의 좋은 소재로 하여 사회에 대한 공부를 넓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의 지역사업단위에서는 지자체와 관계망도 넓혀서 터전을 대체할 수 있는 시설물들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고양에 있는 대안학교들은 지자체의 기금으로 고양시의 청소년 창의센터(서울시의 대안교육센터를 벤치마킹한), 두레생협을 통한 대안화폐 준비과정에 함께하고 있고, 지난 지자체 선거시기에는 지역의 공동육아 어린이집, 지역대안학교, 시민단체등과 함께 지역사업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후보군들에 대한 선거운동을 하였습니다. 하남시에 있는 대안학교들은 평생교육원을 위탁운영하면서 시민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지역시민단체와 연대해서 지역현안과 관련해 문제가 많았던 “하남시장 주민소환운동”도 함께 하면서 지역에서 대안학교의 정체성과 의미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과천의 대안학교들은 급식조례, 대안교육지원 조례지정운동, 무지개마을 대안화폐 운용 등을 통해서 지역에 다가가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마포의 성미산 학교와 공동육아 어린이집들은 차병원, 동네부엌, 마포FM(라디오)채널, 마을극장, 성미산 지키기 싸움 등 학교를 넘어서 각종 마을사업과지역현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면서 다양한 모습의 실천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3. 교사
교사의 존재와 역할은 대안학교 모습 그 자체입니다. 교사의 역량에 의해서 학교의 빛깔이 달라지고 아이들의 성향도 교사를 닮아 갑니다. 교사는 학교의 철학과 교과과정을 완성해 나가는 적극적인 주체입니다. 학교의 모습에서 건물과 교구재, 재정, 학부모 등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생략하고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볼 때 그에 대한 답은 교사와 아이의 배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살아 있으면 어떤 모양과 형태를 지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학교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교사의 교육적 상상력과 실천력은 대안학교의 아주 특별한 자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안학교 교사는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대안학교 대부분이 학교 설립 초기의 교사와 교사생활을 시작한 지 1~3년 초급교사들만이 있고 경험과 역량이 있고 교사의 중심축이 되는 5~7년 경력 교사층의 부족과 잦은 이직으로 인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허리가 부실한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학교는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는 작업과 학교 현장의 많은 과제를 풀어 나감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자주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저는 단언컨대 학교 시설, 터전에 막대한 에너지와 재정을 쏟아 넣으면서 정작 교사의 경제적 지원이나 교사 성장에 필요한 교육과 교류에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상을 어떨까요? 결혼한 교사에 대한 교사 월급의 현실화! 3년차 교사 한 학기 안식년제 실시! 안식학기 IDEC과 같은 국제교사 프로그램참여! 세계 곳곳에 있는 대안학교 방문과 교류 프로그램 실시! 국내에 있는 학교와 교사들의 연구 수업팀 참여! 교사의 교육적 역량과 상상력을 키울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절대 불가능하다구요? 현실적이지 않고 낭만적인 발상이라구요? 저는 학교의 물리적 터전에 대한 생각을 약간만 비틀면 분명히 길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손에 떡을 쥐고 새로운 것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해결의 우선 순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겠지요? 유럽이나 일본에 있는 대안학교 교사들은 교사경험이 최소한 20~40년입니다.(물론 우리와 사회적인 환경이나 배경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정도는 안 되더라도 조금 더 정성을 쏟는다면 교사의 자존감과 활동영역은 훨씬 넓고 깊어지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학부모들을 교육하고 견인하고 맞상대할 수 있는 힘은 생기겠지요? 우리의 교사는 아이들의 친구이고 멘토의 역할을 할 것이고, 학부모에게는 교육적 동지이자 이기적인 학부모에게는 호랑이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산의 우다다학교나 서울의 도시형 중등학교 교사는 부모들로부터 거의 금전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오로지 지자체의 프로젝트 지원 금액과 후원비, 자신의 헌신으로 아이들과 지내면서 부모에게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일반 대안학교 교사처럼 학부모 앞에서 작아지지 않습니다. 교사의 자존감은 그들이 살아가는 원초적인 힘입니다.
4. 학부모
세계 대안학교 역사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리나라처럼 학부모가 학교설립과 운영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른 나라 대안교육관계자들도 경이로운 눈으로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80년~90년대 반독재 민주화, 생산현장 투신 등 헌신적인 사회활동을 통해 체득한 긍정적인 조직관, 역사적 낙관성을 가진 486세대의 학부모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대사회 투쟁현장에서 일부는 정치, 노동, 시민단체의 활동가로 남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상의 생활로 돌아와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서 함께 공동육아를 경험하면서 그 당시 만연했던 공교육의 많은 폐해를 보면서 자신의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대안학교를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많은 힘든 일과 갈등과정을 겪었지만, 이 일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잘 이겨내고 이 시점까지 왔습니다. 대안학교의 또 다른 뚝심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40~50년에 걸쳐 이루어낸 질적, 양적인 성장을 우리는 불과 10여 년 만에 이루어 냈으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속도전(?)에 있어서는 세계의 귀감(?)이 될 만하지 않습니까? 물론 내용적인 부분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말이지요. 하지만 지금의 학부모는 학교에서 이중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아이만 바라보는 소시민적인 이기적 존재와 대안학교와 공동체를 넘어 대안사회를 바라보려는 건강한 운동성을 가진 존재가 그것입니다. 학부모는 아이들에겐 또 한 사람의 교육가이며, 운동성을 담지한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존재감을 가져야만 합니다. 학교는 장점이 많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오는 순간 엄마, 아빠,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이웃과 직장동료 등이 계속 수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는 여러가지 상상력을 펼칠 수 있습니다.(비관적인 인생관을 버린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늘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학교도 행복하다”는 얘기를 합니다. 학부모들도 우리 학교의 식구들만이 아닌 지역에 많은 인연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건강한 시민으로서 더불어 즐겁게 살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때론 공부를 하고, 때론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을 하면서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
5. 우리 아이들
대안 교육의 최종 열매는 우리 아이들이겠지요? 대안학교 아이들 중 중등과정부터 시작한 아이들은 벌써 사회생활을 하는 아이들도 있고, 남자아이들 중에는 군대에 가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도 많고 힘들어 하지만, 흔들리면서 자기의 중심을 잘 잡아가고 있습니다. 학교 초기의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 아이들은 자기 성장 속도를 가지고 잘 자랐습니다.
반면, 현재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상대적으로 예전보다 좋은 환경에서 지냄에도 불구하고, 왠지 무기력해 보입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 관련 서명운동”하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 반응은 시큰둥하고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절실함을 모르는 듯 했습니다. 당연하겠지요. 자신은 학교에서 교사나 학부모로부터 존중받고 있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모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교육에 다니거나, 탈학교아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라면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또래로서 그 아픔을 함께 극복하려는 감정이입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교현장에 가보면 운동장에는 공이나, 야구글로브, 야구배트, 신발들이 주인 없이 마구 뒹굴고, 교실 안에는 연필, 실내화, 노트, 책, 등이 마구 버려져 있는 것을 보며 우리가 아이들에게 결핍의 어려움에 대해 실감나게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란 물질적 조건이 아니라 늘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아주고 함께 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6. 다시, 산학교 터전에 대하여
산학교가 표방하는 교육적 가치는 공동육아 이념을 기본으로 해서 친환경 생태, 통합교육,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며 이웃과 어울리는 따뜻한 삶과 함께 하는 교육으로 요약됩니다. 이들 가치들의 비중은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공동체의 가치가 기본이 되어서 여러 가치들이 조화롭게 배치가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생태, 통합교육 등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많은 차이 난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공동육아, 공동체, 삶과 함께하는 교육의 공통 소재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라는 환경(교사, 학부모, 아이들, 지역에 사는 사람, 국가, 사회 등)은 아이들 교육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교육적 소재로 활용될 수 있는지 우리는 감히 가늠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생태는 누구와 함께 바라보고 겪느냐에 따라서 교육적 결과는 많이 달라집니다. 시골 출신의 학부모들에게 산과 들은 노동과 가난에 대한 기억인 경우가 많습니다. 교사와 학부모와 함께 하는 자연환경은 또 다른 느낌이 있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무균실에서 자라는 콩나물이 아니라, 거친 환경에서도 의연하게 자라나는 민들레의 강인함과 더러운 냇가에서도 자라나서 강한 향기와 맛으로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미나리처럼, 우리 아이들도 지역과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관계맺음과 배움의 과제를 찾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교육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터전문제를 고민해 나갈 때 단계적으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가 지향하는 학교의 상이 먼저 그려져야 합니다. 지난 10년의 산학교 역사는 백서로 나왔기 때문에 그를 바탕으로 그것을 평가하고 이후 10년, 20년 뒤의 학교 모습을 그려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산학교 구성원 간에 공감대를 모아 낼 수 있겠지요. 거꾸로 터전이 먼저 결정이 되고 학교의 미래상이 그 조건에 맞추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역대의 설립위원장, 운영위원장들이 1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했으니, 이 단위에서 그 준비를 하고 이후에 전체 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면 되겠습니다.
두 번째, 터전이 어떠한 성격의 터전이어야 하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겠지요. 지역을 확정지어야하고, 생태를 지향하여 도심 외곽에 있을지, 마을학교를 염두에 두고 시내 안으로 들어와야 할지를 정해야 할 것입니다.(운동장이나 텃밭, 학교의 부대시설들은 2차적 문제입니다.)
세 번째는 학교가 이 공간에서 어떠한 교육내용과 지역과 연계한 사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그림이 필요하겠지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지역과 연계하지 않으면 공공성에 대안 명분을 잃고 고립되기 십상입니다. 현재 서울 경기지역의 대부분의 대안학교가 지역과 함께하는 학교를 내세우면서 다양한 실천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만 거꾸로 갈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업계 최고의(?) 산학교인데…….
네 째는 터전 비용 관련된 목록을 뽑아 보아야겠지요. 임대터전이 될지, 영구터전이 될지에 관련된 비용을 산정해보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내부 구성원, 설립위원회 단위에서의 합의입니다. 다수결이 아닌 합의 구조로 가야만 그 다음 단계에 가서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 이 정도과정만 있으면, 산학교 식구들의 역량으로 그 다음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산학교의 중요한 핵심은 물리적 학교공간이 아니라 교사와 아이들의 배움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 들판에서 교사와 아이들은 잘 살아 나갈 것입니다.” - 산학교 초기 입학식 때 당시 교장이었던 물길이 한 인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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