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달을 본다. 아파트 맨 꼭대기 층, 창가에 새어 드는 달빛을 온연하게 볼 수 있어 좋다. 정하여 놓고 보는 달은 아니다. 안방에 나있는 네 칸짜리 창틀에 어쩌다가 걸쳐든 달을 우연히 마주치면 본다. 보는 달은 마주하는 순간부터 체면이라도 걸린 양 꼼짝 못하게 한다.
그쯤이 대개 밤 9시 무렵이니 실상 내가 보는 달은 정하여져 있다. 초승달은 그쯤 시각에 지고 서편에 치우쳐 있으니 안방에 들어앉아서는 볼 수가 없다. 하현달이나 그믐달은 새벽에 보는 달이니 더더욱 본 적이 없고 주로 상현달 아니면 보름달이 되려하는 달이다.
창틀에 걸려든 달은 의외로 많지가 않다. 어쩌다가 걸려들어도 생각보다 빨리 지나친다. 올해는 비도 많이 오고 구름 낀 날도 많아 제대로 본 기억이 실제로 별로 없다. 요즘에는 은근히 달이 기다려지고 음력을 따져보게도 된다.
보는 달에 대한 상념은 시시때때 다르다. 보름달이라고 해서 환한 것이 아니고 상현달이라고 해서 으스름하지만도 않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볼 때도 제법 많다. 보다가 보면 내 정신이 어디로 떠나가 버린 것 같은 때도 있고 너무 많은 추상이 일시에 떠올라 달을 놓치기가 두려울 때도 있다.
달이 떠나면 떠오른 모든 생각도 같이 사라질 것 같은 막연함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달에 대한 친숙한 말이 많다. 으스름한 달밤에 쟁반같이 둥근 달이 있고 이태백이 놀던 달이 있으며 휘영청 달 밝은 밤이 있으며 이슥한 밤 달빛이 교교히 스며든다고도 한다.
달에 대해 두고두고 읽혀지는 글들도 꽤 많다. 나도향의 그믐달은 너무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어여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박용철은 조각달을 보며 눈에 띄지도 않는 가엾은 존재로 몰락의 때를 놓치고 아편에 시든 몸을 남의 집 문간에 의지한 모양을 연상하였다.
산과 산이 서로 으스스하게 허리를 부비고 그들끼리 긴 가랭이를 꼬고 누운 두메인지라 해만 지면 금시 어두워졌고 솔바람이 몰고 오는 연한 한기로 미닫이를 닫아야 하는 때 초승달이 진다는 허세욱은 그런 때 무서움을 꾹 참고 돌멩이를 하나 들고 동생과 도포자락 휘날리며 돌아올 아버지 마중을 나섰다.
메밀 꽃 필 무렵 교교히 흐르는 달빛에 이효석의 장돌뱅이 허 생원이 있으며 순수한 삶의 느낌을 담은 이태준의 달밤이란 소설도 있다. 그 글의 주인공 황수건을 나는 잊지 못한다. 마지막 대목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 그 구절은 내 속을 끝내 아픔으로 후빈다.
막걸리에 열무김치가 달밤에 제격인양 느껴지는 윤오영의 달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노인은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나는 그 정경 또한 바로 그림으로 그려낼 것만 같다.
어찌 그뿐이랴. 그 시대 연암 박지원의 글이 나를 놀라게 한다. “강가의 먼 산들은 검푸르러 누님의 쪽 찐 머리 같고, 강물 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고운 눈썹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누님이 빗을 떨어뜨렸던 일을 생각하였다.”(‘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
달하면 이태백을 빼놓을 수 없다. 달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月下獨酌) 라는 시를 누구나 한 번은 들어 보았다. 그는 달빛이 내리는 초저녁 채석강에 배를 띄웠다. 하늘이 호수에 담겼으니 호수는 곧 하늘이었다. 그는 달을 건지려다 달 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중국 명절이라 하며 그들의 노래를 들려주는데 깜짝 놀랐다. 분명 그 노래는 윤극영의 반달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小白船이라는 제목으로 가사도 거의 똑같이 번역해서 부른다. 암울한 우리의 시대를 달리 부른 동요로도 알려진 그 노래는 특이하게도 일본에서도 유행하였고 윤극영은 그 노래로 일본에서 저작권료까지 받기도 하였다.
왜 그의 달 속에 계수나무가 들어 있을까. 계수나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무는 아니다. 중국 계림(桂林)이라는 곳이 이태백과 아주 유관하고 계림의 桂란 뜻이 계수나무를 뜻하기에 혹 이에 연유한 것은 아닐까 추정했을 뿐이다.
나는 계림에서 나오는 삼화주라는 술을 꽤 좋아하는데 이 술은 계수나무의 세 종류의 꽃을 따서 만든 술이다. 값도 싸지만 혹여 이태백이 즐겼던 것은 아닐까 싶어 더욱 맛이 당긴다. 그런데 달을 그려낸 명작들을 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 대개의 작품은 달처럼 느낌이 으스름하거나 허름하다. 기껏해야 교교하다는 표현이 밝은 것의 전부이다.
밝은 달을 묘사한 것은 극적인 대비를 위한 표현에 불과하다. 그믐달이나 초승달 조각달에 대개가 서정이 머문다. 아니면 흐릿하거나 은은한 배경을 연상시키는 달밤이란 말로 뭉뚱그려 여릿하게 나타내었다. 보름달은 동요나 가요에서 밝게 떠오를 뿐이다. 나는 그것이 다행이라 여긴다.
나만 그런 느낌을 갖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소싯적 노는 것에 흠뻑 취해서 밝다고는 하였지만 나는 여직 보름달에 대해 환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의 기분을 곱으로 느끼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참 달도 밝네.” 라는 말을 흘리곤 한다.
이 말은 꽤 오래 묵은 말이다. 소싯적부터 누구에게서든 한숨지으며 말하는 것을 쉽게 들었었다. 그 말은 그렇게 화두를 던지고 끝나는 말이 아니다. 설령 아무 말이 없다고 하여도 이어지는 심중은 깊다. 그래서일까 그 여운은 변함없이 세월을 느끼게 하고 처한 현실의 구차함에 닿게 한다.
추석 날 차례를 마치고 모두들 귀경을 해버리자 쓸쓸함은 더하였다. 나는 그만 달을 보다가 괜스레 눈가가 촉촉해졌다. 고독하여서가 아니다. 달이 하도 밝아 적적하기에도 그러하고 이러지 저러지도 못한 속으로 갈피를 못 잡아서가 더 맞다.
엄마는 너무 늙었고 동생 또한 나이가 그새 너무 들어 보인다. 야속하게시리 속정을 제일 잘 알 것 같은 달이 무심히 흐른다싶다. 사는 것이 다 그렇고 별게 아니다. 오늘도 나는 달을 본다. 왜 달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념이 생기고 나를 어디론가 잡아끄는 것일까.
밀물과 썰물이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난다. 한참을 그렇게 갖은 상념으로 달을 보던 나는 아내 몰래 술을 끄집어내어 홀짝 들이켰다. 그렇게 달을 벗 삼아 놀다가 달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달은 그 우수를 지닌 채 참으로 달다.
***
달에 대한 참고 사항.
영화에서 드라큘라가 살고 있는 고성의 밤하늘 배경에는 항상 보름달이 걸려 있고 달에는 약간 파란 기가 돈다.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사이언스@NASA’라는 뉴스사이트를 통해 31일에 ‘블루 문(Blue Moon)’이 뜬다고 발표했다. 블루 문은 정말 파란 달일까.
블루 문은 서양에서 양력 한 달 사이에 보름달이 두 번 뜰 때 두 번째 보름달을 가리키는 말이다. 7월에는 2일에 이미 보름달이 떴기 때문에 31일에 뜨는 달은 두 번째 보름달, 즉 블루 문이다. 블루 문은 19년에 7번씩 돌아온다.
보름달의 색이 날짜에 따라 달라지지는 않는다. 서양에서는 보름달이 사람 안에 사악함을 불러일으킨다는 전설이 전해져 왔다. 당연히 서양인들은 보름달을 좋지 않게 여겼고 한 달에 두 번째 뜨는 보름달은 낯선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블루 문이 들어간 영어 표현에는 ‘아주 드물다’는 뜻을 가진 것이 있다.
하지만 화산 폭발이나 산불로 인해 달빛이 파랗게 바뀌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이 폭발했을 때 1년 이상 밤마다 파란 달이 떴다. 100메가톤급 핵폭탄에 버금가는 화산 폭발로 인해 대기 중에 퍼진 화산재 구름 때문이었다.
화산재 구름 가운데 일부는 지름이 100만분의 1m 정도의 입자로 구성되는데 이 크기의 입자가 빨간빛을 강하게 산란시키고 나머지 빛은 그대로 통과시킨다. 따라서 화산재 구름을 통과한 달빛은 파랗게 보인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3D3D3D3D3Dcosmos@donga.com">3D3D3D3Dcosmos@donga.com">3D3D3D3Dcosmos@donga.com">3D3D3Dcosmos@donga.com">3D3D3D3Dcosmos@donga.com">3D3D3Dcosmos@donga.com">3D3D3Dcosmos@donga.com">3D3Dcosmos@donga.com">3D3D3D3Dcosmos@donga.com">3D3D3Dcosmos@donga.com">3D3D3Dcosmos@donga.com">3D3Dcosmos@donga.com">3D3D3Dcosmos@donga.com">3D3Dcosmos@donga.com">3D3Dcosmos@donga.com">3Dcosmos@donga.com">3D3D3D3Dcosmos@donga.com">3D3D3Dcosmos@donga.com">3D3D3Dcosmos@donga.com">3D3Dcosmos@donga.com">3D3D3Dcosmos@donga.com">3D3Dcosmos@donga.com">3D3Dcosmos@donga.com">3Dcosmos@donga.com">3D3D3Dcosmos@donga.com">3D3Dcosmos@donga.com">3D3Dcosmos@donga.com">3Dcosmos@donga.com">3D3Dcosmos@donga.com">3Dcosmos@donga.com">3Dcosmos@donga.com">cosmos@donga.com )
첫댓글 조성원 선생님과 함께 달구경했습니다..감사합니다.
요즘 비가 하도 많이 와서 달을 언제 봤나 싶습니다. 옥상층에 사는 저는 베란다에 평상을 올려놓고 곳에서 자기도 합니다. 모처럼 달을 오랜 시간 얼마전에 봤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쓴 글이 생각나 다시 훑어 봤습니다. 사실 글보다는 저는 배경음악 고르는데 신중을 기하는데 달과 아주 맞다 싶지 않은지요. 감사!!!
모처럼 옛글들을 다시 대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달은 정말 상념에 젖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녔어요. 너무나 밝은 빛은 도리어 생각을 흩어지게 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둘째 줄 '체면'은 '최면'의 오자가 아닐는지요?
맞네요. 오류가 넘쳐 문제입니다. 갈수록 생각도 더뎌지는 것도 같아서 이 또한 걱정도 되고요. 생각하면 한달음에 글을 쓰곤했는데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