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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배우고 나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다
은성: 아버지, 사도행전을 배우고 나니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교회가 무엇인지 이전보다 생생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 그래? 예수님에 대해서는 이번에 무엇을 배웠니?
은성: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부활을 증거하셨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셨다고 했지요.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지시하시는데 특히 다메섹 도상에서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을 부르시고 완전히 변화시켜서 증거자로 삼는 것에서 알 수 있었어요.
아버지: 굉장한 사실을 배웠구나.
은성: 이전에는 사도행전 1장을 읽으면서 크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갔는데 이번에 보니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것’이 대단히 의미있게 받아들여졌어요. 그리고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을 때에도 베드로가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행 1:21-22)고 그 자격을 말하는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아버지: 실제로 오순절에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성경을 들어서 설명하고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2-36)라고 결론을 내렸지. 그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을 때 무려 3천 명이 회개하고 믿어 세례를 받았다.
은성: 베드로 사도는 이후에도 계속 부활을 전하고 있는 겄을 볼 수 있었어요.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걷지 못하는 자를 고쳤을 때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2-16)라고 증언했어요.
아버지: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것을 유대교 지도자들이 싫어하고, 박해하기 시작하는데 4장에 보면 그 싫어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행 4:1-4)
은성: 그럴만도 하겠어요. 이전에 예수님을 믿지 않던 예수님의 형제들도 열렬한 제자가 되고, 3천 명, 5천 명의 유대인들도 제자가 되니 내세, 육체의 부활, 혹은 죽음 이후의 보상과 징벌에 관한 신앙도 배격하고, 천사들과 영들의 존재도 부인하던 사두개인들과 제사장 무리들이 가장 먼저 핍박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아요.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에는 대제사장의 여종에게도 비굴하게 굴었던 자인데 지금은 완전히 딴판으로 변하여 제사장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 4:10)라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어요. 너무나 놀란 그들로부터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이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행 4:13)라는 반응을 이끌어낼 정도였어요. 우리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당황스러워 했을 것 같아요.
아버지: 그들은 구약 성경에서도 모세오경만 인정하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접 자신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지 않니(마 16:21; 17:22-23; 20:18-19)?
은성: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에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못하고, 구약성경의 예언도 이해하지 못하다가 예수님께 책망을 받지 않았나요?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아버지: 그래서 그런 제자들의 변화가 더욱 놀랍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었겠니? 단지 믿고 모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전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했고,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순교를 당했는데도 굴복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중에 베드로가 이방인인 백부장 고넬료에게 전도할 때에도 역시 강조하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요, 그는 하나님께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요,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38-43)
은성: 뭐니뭐니해도 바울 사도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것 같아요.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행 9:1-2) 이런 의도로 다메섹으로 가다가 십자가에서 죽고 끝난 줄로만 알았던 예수님이 나타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했을 때 그는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다가 아나니아라는 제자의 도움으로 눈도 뜨고 세례를 받아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지요.
아버지: 그는 즉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 성경을 들어서 증거하였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23-39) 그가 나중에 아그립바 왕에게 하는 말도 들어보자.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행 26:15-23)
은성: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할 때에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 1:1)이라고 한 것일까요?
아버지: 맞는 말이다. 그는 율법을 잘 배운 사람이었지만 그 율법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깨닫게 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였다. 그가 바르게 깨달은 것을 전할 때에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잘 보거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롬 1:1-6)
은성: 사도행전을 계속 보면 이런 말씀도 있어요.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행 17:1-3) 즉 바울이 안식일마다 회당을 찾아서 전한 것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것이지요.
아버지: 네 말이 맞다. 그리고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행 17:18)는 말씀이 흥미롭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에게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복음 전파를 할 때에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이었는지를 알 수 있지.
은성: 그런 점에서 오늘날 교회에서 설교를 하거나 성경공부를 할 때도 부활에 대하여 지금보다 훨씬 많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버지: 동감이다. 부활에 대한 신앙이 확실하면 모든 것이 든든히 설 수 있다. 부활에 대하여 이상한 설명을 하거나 믿지 못하면 그것은 이미 바른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바른 교회가 아니다.
은성: 언젠가 성경에서 가장 큰 두 가지 표적에 대하여 공부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하나는 누가복음 2장 10-14절에 나오지요.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즉 예수님의 탄생이 첫 번째 큰 표적이고, 두 번째는 마태복음 16장 1-4절에 나오는 요나의 표적이니 예수님의 부활이지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아버지: 잘 기억하고 있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다시 살아나신 것이 우리에게는 크나큰 표적이 되는데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했을 때는 바로 이것을 전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일반계시와 달리 특별계시로 구원의 길을 보여주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얻는 길인데(요 14:6, 행 4:12) 사도행전에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였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믿은 사람들은 기뻐하고 찬송하였지.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행 3:7-8)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 8:6-8)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행 16:33-34) 이 복음에는 큰 능력이 있어서 병든 자를 낫게 하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하였거든. 그리고 자기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였으니 바울도 이것을 크게 증거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행 24:14-15)
은성: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부활이요 생명이신’(요 11:25)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할 것이 분명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잠자는 자들(즉 죽은 자들)의 첫 열매’라고 불렀다고 한 것을 배웠어요.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0-22)
아버지: 야고보 사도는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고 했는데 이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첫 피조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첫 열매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은성: 신비로운 설명이네요. 어쨌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씀이 인상적인데 과연 사도행전에서는 믿는 자들이 이전과 전혀 다른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 감동을 주고 있어요.
아버지: 나도 동감한다. 이전에는 서로 ‘누가 높으냐?’라는 생각이 강했던 사도들도, 새롭게 교회 안에 들어온 제자들도 이제는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우고 종의 모습으로 섬기는 일에 힘쓰고,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기에 힘쓴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2-47)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2-37)
은성: 그러니까 부활은 교리로 믿는 내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었네요.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그 증언을 듣고 믿은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자원하여 자기의 소유를 드려서 섬기는 생활을 하고 있네요.
아버지: 교회 안에 그런 삶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유대인들과 로마의 핍박 속에서도 불과 300년 이후에는 유럽에 널리 전파되었고, 드디어 로마제국에서는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기에 국교로 정하기까지 한 것이다.
은성: 유대교에 갇혀 있을 때에는 율법과 성전만 생각하고 유대라는 울타리 안에만 바라보면서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던 바울 사도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 변화된 후에는 율법만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 속에서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며 전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네요.
아버지: 좋은 지적이다. 베드로도 비슷하다. 그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는 말씀을 들었지만 여전히 유대인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환상을 동원하시면서 백부장 고넬료를 만나게 하시고,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셔서 베드로는 물론 그와 함께한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주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해 주셨다.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6-18)
은성: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인종과 영토를 초월하여 모든 종족과 나라로 확대되었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는 것이 확실히 실현되었네요.
아버지: 맞다. 그런 점에서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는 말씀의 의미가 분명하게 되지 않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약속이고 명령이다.
은성: 잘 알겠어요. 사도행전을 기독교 역사책 읽듯이 읽을 일이 아니었네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아버지: 나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배웠구나. 오늘은 이야기는 그만하고 사도행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어보기로 하자.
은성: 그것 참 좋네요. 하여간 오늘 너무 감사해요.
아버지: 나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