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김기택 )
김기택 시인 | 경희사이버대 교수
꽃잎이 지는 열흘 동안을 묶었다
꼭대기에 앉았다 가는 새의 우는 시간을 묶었다
쪽창으로 들어와 따사로운 빛의 남쪽을 묶었다
골짜기의 귀에 두어마디 소곤거리는 봄비를 묶었다
난과 그 옆에 난 새 촉의 시간을 함께 묶었다
나의 어지러운 꿈결은 누가 묶나
미나리처럼 흐르는 물에 흔들어 씻어 묶을 한단
- 문태준(1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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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진 찍는 일은 꽃이 떨어지기 전에 나무에 묶어두는 일. 쉬 떨어지는 꽃을 지지 않는 꽃으로 만들어 눈동자에 박아 두는 일. 꽃시를 쓰는 일이 어찌 다르랴.
365일 중에 열흘밖에는 볼 수 없는 꽃, 나머지 355일은 기다려야 하는 꽃을 마음에 묶어서 두고두고 보는 일이 아니겠는가. 꽃노래를 부르는 것도 꽃빛 꽃향기의 흥과 낙화의 아쉬움을 추억에 묶어두는 일. 그래서 노래할 때마다 사라진 꽃이 하나씩 풀려나오게 하는 일.
지는 꽃은 무심한데 왜 보는 사람이 서운하고 슬프다 하는가. 꽃을 사진과 시와 노래에 담는 것은 바로 그 흥과 슬픔의 변덕이 시키는 일. 부지런히 타이어를 굴리고 카메라를 부리고 언어를 불러와 새소리를 묶고 풍경을 묶고 봄비를 묶고 꽃 진 자리에 돋는 연한 새잎들을 묶고 자꾸 달아나는 계절과 세월도 묶어야지. 언제 떠나가 버릴지 모를 사랑도 가기 전에 잘 묶어놔야지. 떠나간 사랑에는 우두둑 뜯겨버린 마음 몇 단도 묶어 보내야지. 보고 싶으면 언제나 기억에서 불러낼 수 있도록 죽은 이들도 그렇게 내 삶에다 꽁꽁 묶어야지.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마음이 시키면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