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품 가운데 낡은 기계식 손목시계 하나가 있다. 은빛이 바래 누르스름하게 변한 메탈 줄, 긁힌 자국이 켜켜이 쌓인 유리면. 하지만 그 안의 초침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나는 가끔 그 시계를 귀에 가져다 댄다. 딱, 딱, 딱. 기계의 심장이 뛰는 소리. 마치 아버지의 맥박이 아직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아, 차마 서랍 깊숙한 곳에 밀어두지 못한다.
생전 아버지는 매일 아침 태엽을 감으셨다. 출근 전, 넥타이를 매기 전, 거친 세상과 맞닥뜨리기 직전. 시계의 용두를 두 손가락으로 쥐고 돌리는 일은 하루를 여는 아버지의 첫 의식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이 그저 낡은 시계를 가진 자의 번거로운 습관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마흔 중반의 가장이 된 지금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오늘 하루도 온전히 버텨내겠다는 무언의 결의였음을.
1592년 금산, 중봉 조헌은 칠백 의사와 함께 왜적 앞에 섰다. 구원병의 발길은 끊겼고, 등 뒤에서는 헛된 죽음 을 피하라는 목소리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돌아서지 않았다. 일찍이 지부상소의 도끼를 곁에 두고 대궐 앞에 엎드렸던 그 서슬 퍼런 손으로, 이번에는 기꺼이 창을 쥐었다. 끝내 전원이 산화했고, 지금 금산의 그 자리에는 칠백 개의 넋을 한데 모신 둥근 의총만이 무거운 침묵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의'의 상징이라 부른다. 오랫동안 나는 그 '의'란 웅장하고 비장한 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다.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 앞에서 기꺼이 목숨을 던지고, 그리하여 청사에 찬란한 이름을 남기는 것. 그런 대의는 나와 같은 범인의 일상과는 아득히 먼 곳에 놓인 별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낡은 시계가 손안에서 차갑게 만져질 때면, 내 안에서 오래 굳어 있던 그 별의 궤도가 쩍 하고 금 가듯 흔들렸다.
아버지는 평생 무명의 사람이었다. 역사책에 이름이 오를 리도, 훗날 의총에 깃들 영혼도 아닌-그저 새벽이슬을 맞으며 공장으로, 현장으로, 만원 버스 정류장으로 묵묵히 걸어 나가던 평범한 사람, 허리가 굽어가는 세월 속에서도 늘 반듯하게 다려진 작업복 셔츠를 입으셨고, 거래처의 어음이 부도나 하늘이 무너져 내리던 그 혹독한 겨울에도 식구들의 밥상만은 결코 거르게 하지 않으셨다. 우리 남매는, 생의 무게가 무섭도록 짓누르던 그 새벽에도 아버지가 어김없이 시계 태엽을 감으며 하루치 투지를 장전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그 시계를 내 손목에 차보았다. 줄이 헐거웠다. 아버지의 삶을 지탱했던 손목이 내것보다 훨씬 굵고 단단했기 때문이리라. 그 서늘한 헐거움이 묘하게 가슴을 짓눌렀다. 아버지가 온몸으로 막아내고 채워 넣었던 그 자리를, 나는 아직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이었다. 조심스레 용두를 돌려보았다. 손끝에 전해지는 작고 단단한 저항감, 팽팽하게 태엽이 감기는 감각. 아버지는 매일 아침이 뻑뻑한 저항을 이겨내는 것으로 하루의 문을 여셨겠구나.
생각해 보면, 조헌의 도끼와 아버지의 시계 사이에는 같은 온도의 묵직한 힘이 흐른다. 도끼는 불의에 꺾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세상에 내리찍는 선언이고, 시계 태엽은 또 하루의 고단함을 꺾이지 않고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맹세다. 전자는 역사가 기억하고, 후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칠백 의사가 쥐었던 창과 아버지가 쥐었던 용두의 무게는-나는 감히-결코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진정한 의는 대개 환호와 박수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주저앉고 싶은 아침에도 억척스럽게 일어나는 것, 도망치고 싶은 삶의 자리를 끝끝내 지켜내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캄캄한 새벽에 홀로 시계 태엽을 감는 것. 그 모든 작은 결의들이 켜켜이 쌓여 한 사람의 고결한 의를 이룬다. 조헌이 금산의 혈투에서 물러서지 않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어쩌면 그가 평생 수없이 많은 일상의 작은 자리들을 올곧게 지켜온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부상소의 도끼는 어느 날 갑자기 들린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단단하게 감겨온 내면의 태엽이 마침내 그 자리에 이르러 터져 나온 결과물일 테니까.
나는 요즘 헐거운 아버지의 시계를 찬다. 그리고 매일 아침, 아버지가 그랬듯 용두를 돌린다. 손끝에 닿는 뻐근한 저항을 이겨내며 조용히 생각한다. 오늘도 꺾이지 말자고. 웅장하지 않아도, 이름 석 자 남지 않아도 좋으니, 저 금산의 칠백 의사처럼, 그리고 나의 아버지처럼,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는 사람이 되자고.
딱, 딱, 딱.
초침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한 시대를 지켜낸 의병의 혼이, 한 가족을 지켜낸 아버지의 투지가, 이제는 내 손목 위에서 하나의 박동이 되어 계속 뛰고 있다, 멈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