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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오늘 첫날은 조금 걱정 되었다. 경량 패딩을 챙기자니 짐만 될 것 같고, 바람막이만 챙기자니 지리산은 추울 것 같고, “모르겠다. 될대로 되겠지” 이렇게 말하고 경량 패딩까지 가방에 차곡차곡 넣는다. 그리고 학교에서 상율이랑 만나 순춘역으로 출발했다. 상율이 가방을 보고 내 가방을 뵌까 조금 많이 챙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미 출발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가만히 있었다.
순천역에 도착해서 후마를 만나고 두더지, 시우도 만났다. 애들까지 다 모이고 나서 인사를 하고 기차를 탔다. 그리고 내린 곳은 남원역이다. 15분 정도 걸어서 버스를 타고 1시간, 그 사이 여러 할머니분들이 타신다. 앞자리부터 하나들씩 자리를 내어주고 바로 내 앞 까지 왔는데 좀 자고 싶어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후마의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라는 말에 일어났다.
작년 지리산 순례에 들렀던 흑진주 집에 들러서 잠깐 쉬다가 이번 순례의 첫 숙소인 우림집으로 간다. 우림집이 생각보다 좀 위에 있었다. 그리고 우림집에 도착해서 짐을 간단히 풀고 쉬었다.
오늘은 우림집에서 출발해서 실상사 작은 학교를 거쳐 금계까지 걷기로 했다. 우림집의 다락은 천장이 너무 낮아서 아직은 적응이 더 필요한 단계였지만 이번 순례는 저번과 다른 매일 이동하는 순례였기에 아침을 간단히 먹고 실상사 작은학교까지 우림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갔다. 오늘 많이 힘들거라고는 했는데 살싱사 작은학교를 넘어간 다음부터 힘들거라고 했다. 하지만 어제와 비교해서는 많이 힘들었다.
그후에 실상사 작은학교에 도착해서 거기 계신 분들한테 사과도 얻어먹고 많이 쉬었다. 나는 너무 많이 쉬길래 지루해서 철봉을 하다가 다리를 철봉에 강하게 찧었다. 그래도 최대한 안 아픈척 하면서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이 엄청 아팠지만 어차피 걸어야 할 곳이니까 라고 나에게 세뇌를 시키며 걸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 의아한 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내가 표정관리를 잘하는 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다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을 때쯤 나마스테라는 카페겸 숙소에 도착했다. 실상사에서 선생님들의 소개를 받고 왔는데 주인분은 계시지 않았다. 주인분이 경상도 어디쯤에 계셔서 오시긴 힘들다고 했고 실상사 작은학교를 통해 소개 받고 온 사랑어린 학교라고 말하니까 아무대가 없이 숙소를 내어 주셨다. 힘들긴 엄청 힘들었지만 마무리는 기분좋게 마무리 된 것 같다.
어제는 후마가 엄청 힘들거라고 하고 듣고 걸으러 나갔다. 하지만 오늘은 많이 걸으면 25km정도 걸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어제 다쳤던 왼쪽 정강이가 놀다가 한번더 어디 부딪혀서 그 부분이 많이 걱정되었다.
숙소가 마을에 들어와서 처음쪽에 있는 숙소여서 힘들게 걸어온 마을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는데 아침에 걸어가면서 아직은 힘들지 않은 덕분에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숙소에서 내려다본 마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낡긴했지만 사람들이 열심히 산다는 느낌이 느껴지는 마을이었다.
분명히 점심 먹기전까진 평지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얼마 가지 않아 산이 나왔다. 다리가 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신경쓰여서 다른사람에게서 아주 조금씩 멀어졌다. 나는 앞으로 가고 싶은데 가기는 조금 힘드니까 아프고 지친다기 보다는 짜증난다는 표현이 더 잘 맞는 상황이었다. 산에서 잠시 힘들더니 그 다음부터는 평지였다. 중간중간 내리막길도 있었다. 도시락 쌀게 다 떨어져서 밖에서 사먹고 다시 걸어갈 때 설린이가 아까 먹었던 식당에 물통을 두고온 것 같다고 해서 설린이만 1.2km를 다시 돌아가서 물통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그 뒤에는 산이었다. 이제 이정도면 정상이 있겠지 이정도면... 하면서 올라갔지만 정상은 나오지 않았다. 정상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상은 내가 생각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정상의 모습은 나무판이든 돌이든 어딘가에 무슨 산 정상. 이런 식으로 적혀있는데 진짜 아무겄도 없었다. 있는거라곤 마구자비로 던져서 쌓은 것 같은 돌탑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때부터는 끝날 것 같지않은 내리막길만 계속되었다. 발은 점점 달아올랐다. 그런 발바닥을 뒤로하고 애들이랑 놀면서 내려오니까 힘들긴 힘들었지만 적어도 지루하진 않았다. 숙소에 들어가서는 바로 씼는 순번을 정하고 씼었다. 왠지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어제 연락을 해 봤던 큰들에서 흔쾌히 오라고 허락을 해 주셔서 덕분에 지리산 둘레길에서는 조금 벗어나 걷게 되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거리는 많이 가까워져서 마음가짐은 많이 가벼워졌다.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출발하니까 생각이 적어졌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벼운 마음과 발걸음으로 출발 하니까 전에 걸었던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이 느껴졌다. 전에는 가끔 조금씩만 들었던 잡생각도 많아지고 무거운 마음일 때는 멍때리지는 않았지만 생각이 몸에 작용해서 힘든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생각과 마음가짐이 가벼워지니까 걷는 느낌자체가 달랐다. 아프던 다리가 안 아파진 것은 아니지만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는 느김이 아니라 이 쉬운 길에서 다치면 내가 멍청이지 하는 생각에 전에 비해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걷다보니까, 힘들어 점점 시선은 땅으로 향했다. 곁눈질로 슬쩍슬쩍 보이는 주면의 풍경은 점점 산으로 올라가는 듯 했다. 그러다 다정이 뒤쪽 시야에서 사라졌다기에 기다리는 겸 쉰다고 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주변은 온통 산이었지만 도로길은 얼마전에 깐 듯 깔끔했다. 나는 큰들을 한번도 간적이 없기에 당연히 도시에 있는 큰 공연장이 큰들일거라고 생각하고 “또 얼마나 가야하는거지? 하며 다시 출발 하고 2~3분 뒤 앞에 아까 했던 생각이 무색하게 크게 큰들이다고 적혀 있는 비석이 나왔다. 그리고 큰들이라고 적혀 있는 비석 옆으로 조금 올라가니까 저기 멀리서 복과 장구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입구에 들어서자 우리를 기다리시던 큰들 단원(?)분을 만나서 안내를 받으며 숙소에 들어가자 구석구석 주의를 기울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씻고 나서 잠깐 쉬다가 오늘 있는 큰들 오작교 아리랑을 보러 올라갔다. 가니까 무대뒤에서 잠깐씩 보이는 정민이 누나가 한결같은 모습으로 웃어주었다. 이번 오작교 아리랑 공연이 257회 공연 이었다고 하는데 큰들이라는 곳이 얼마나 노력으로서 유지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이었다. 공연하는 도중 생각보다 관객들을 많이 시키길래 살짝 긴장 되긴 했지만 딱히 시킨 것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정민이 누나를 포함한 큰들에 계신 분들과 사진을 찍고 인사하고 돌아와서 저녁을 먹었다.
오늘은 어제보다도 긴장감이 없었다. 긴장감이 없으니까 순례라는 느김은 약해졌고 웃음이 전보다는 많아졌다. 큰들은 우리가 출발할 때 많은 분들이 나오셔서 인사해 주셨고 우리가 순레 끝나고 학교 정문으로 들어갈 때 치는 박수 소리보다 더 큰소리로 힘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큰들로 오는 것은 계획에 없었던 일이라 우리가 오늘 가야 하는 곳까지는 40km가 넘어서 산청 시내버스 터미널 까지 걷고 그 다음부터는 버스를 갈아타며 이동하기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출발하면서 걷는 곳은 어제 한번 걸었던 길이지만 어제는 고개를 숙이고 걸었고 오늘은 주변을 보면서 걸어서 새로운 곳을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큰들을 가고나서 많은 마음가짐, 생각, 목표 같은 것을이 많이 바뀌었다. 순레가 싫지 않아졌고 걷기가 상쾌해졌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계속 버스만 갈아타서 어딘가 불편했지만 어쨌든 화계장터에 도착했다. 거기부터 조금만 걸으니 항상 여기근처를 걸을 때 머물렀다던 숙소에 도착했다. 그 뒤에 옆에 계곡이 있다는 소릴 듣자마자 상율이는 달려가 입수했다. 원래는 다른애가 들어가서 놀고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데 이번에는 그런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니, 들어가면 않될 것 같았다. 상율이 한테는 감기는 거의 걸린다고 봐야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상율이는 감기같은 건 걸리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출발시간이 많이 늦어졌고 석영이, 상율이, 시흔이는 학교 발표가 있어서 10시에 차를 타고 갔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10시 50분에 숙소 앞에서 모여서 가위바위보를 통해 오늘 길잡이는 내가 됬다. 또 하나 특별한 점이라면 오늘은 석영이의 생일이다. 석영이 생일은 재쳐두고 걷기를 시작했다. 내가 선두에 섰고 처음 걷는 길은 화계장터로 들어가서 길은 복잡했고 화계장터에서의 10분정도는 후마가 앞에서 길을 알려주셨다. 걷다보니까 내가 선두에 서있는 것도 다 잊고 앞에 서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속도는 계속 빨라졌다. 그후 얼마 안되서 간정에 도착하니까 원래 밥을 먹으려던 식당을 포함해서 다른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서 후마는 조금 당황하고 무안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덕분에 거기서 부터는 10분 정도 더 걸어서 순두부찌개를 먹고 숙소에 들어갔다. 8시 쯤되니까 석영, 상율, 시흔이가 돌아와서 간단히 생일축하 하고 아까 저녁먹었던 놈들이 애들이 왔다는 핑개를 대면서 라면들 또먹었다. 너무 많이먹는 것 같았지만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하는 애들은커녕 배부르다고 하는 애도 없었다.
이번 순례는 7일차가 되어서야 순례의 생활리듬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렇게 늦게 받아들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낭을 매고 걸어서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같고 다른 이유는 순레 지체보다는 내 생각에 많이 빠져서 인 것 같다. 주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생활해야할까?, 집에 돌아가면? 그리고 잡생각들로 머릿속이 하나둘씩 채워지다 보니까 순례적응에는 힘을 쏟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바로 가방을 싸서 나가는게 버겁지 않았고 여기가 집이 아니라는 생각에 눌리지 않았다. 오늘 길잡이는 은지였고 나는 후마와 은지 사이의 넓은 사이의 중간쯤에서 걸었다. 어쨌든 적응을 끝내서 호흡도 정돈되어 있었고 나의 힘듦을 가리키는 그래프는 가파른 곡선이 아닌 완만한 직선을 그렸다. 숙소에 가는 길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작년에 7학년 막올라오고 어설픈 모습으로 온 길을 이제는 8학년이라는 조금더 익숙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한번 걸었던 곳을 걷는다는 느낌이 새로웠지만 다른 애들은 별 감흥이 없어보였다. 숙소 자체는 달라진 게 없었고 애들과 이야기 하며 9학년들이랑 같이 왔을대는 어디로 걸었었는데 하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 모습이 좀 신기했다.
오늘도 생활리듬을 잘 적응한 덕분에 아침이 여유롭게 느겨졌다. 물론 오늘이 실제로 전보다는 여유롭게 출발한 것도 있었지만 아무튼 오늘은 무거운 가방 대신 얇은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 출발했다. 오늘은 하나씩 가지고 출발한 각자의 질문들을 주로 생각하며 걷기로 했다. 서로간의 간격은 짧게는 5m 길게는 10 ~ 20m까지의 간격을 두고 출발했다. 나의 질문은 저번 순례의 질문이었던 왜 살까? 라는 질문을 생각하며 걷다가 걸으면서 왜 살까?처럼 특정지어져 있는 질문이 아닌 평소에 당연하게 행동하는 것들 앞에 왜?라는 글자를 붙여보려고 했었다. 생각에 빠져서 걷다보면 앞에 있는 석영이와 어느세 가까워져서 숙이고 있는 고개의 좁은 시야에 들어올 정도의 거리가 되면 걷고 있는 석영이의 발 뒤꿈치를나면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거리를 다시 벌리고 다시 좁아지면 다시벌리고를 반복하다보면 잠깐잠깐 고개를 드는 순간의 풍경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런 풍경을 계속 생각하다가 왠지 작년 순레대 걸었던 곳인 것 같아 석영이 에게 슬쩍 물어보니까 석영이도 맞는 것 같다고 대답해서 그대서야 뿌듯한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제대로는 아닌 것 같지만 지리산 들레길을 다 돌았구나 하는 마음에 자신감도 붙고 가슴을 쭉펴고 걷고 싶은 마음이었다. 점심을 먹고 장을 봐서 돌아오는 길도 중간중간 아는 길이 있었지만 모르는 공사중이어서 알아보기도 힘들었고 애초에 모르는 길이 더 많았다. 아침보다는 나아졌지만 돌아오는 길 역시 추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후마의 표정과 목소리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아서 후반에는 주로 내가 물 잘못했나? 우리가 잘못했자면 뭘?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오늘도 아침은 여유로웠다. 아침밥은 거의 안 먹다 싶이 하고 도시락도 대총 싸서 나갔지만 괜찮았다. 걷기를 지작하고선 처엄에는 긴가민가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기도 작년에 걸었던 곳이구나 하면서 내가 8학년이라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 매일 보던 익숙한 애들이 올라와서 한번도 8학년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8학년이 되었다는 느낌을 의외의 곳에서 받았다. 아침을 안먹다 싶이 해서 11시가 넘어서 부터는 몸의 반쯤은 내 의지대로 못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점심대는 두더지가 오셔서 간식을 조금 주고가셨다. 애들은 좋아했지만 나는 별로 반갑지는 않았다. 엄청 잠깐 있을건데 왜 왔재? 하는 생각과 함게 말이다. 점심을 먹고는 잠시동안 몸이 잘 움직이는 것 같더니 이내 내 몸의 통제권은 다시 다른 무언가가 쥐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낮잠을 30분정도 자고 저녁으로 치킨이 왔다. 나는 내가 치킨을 먹을 줄 알았는데 가서 치킨을 보자마자 먹기 싫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잠깐은 안 먹은게 후회 됬지만 조금있으니 안 먹은게 잘한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은 밥도 먹지 않고 일찍 나와서 걸었다. 주변은 온통 안개 밖에 없었다. 앞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런것도 그럭저럭 좋았다. 장갑이 준비물에 있었지만 안 챙겨온 게 마지막 날인데도 조금은 후회됐다. 아직은 집이라는 글자는 나에게는 이르다는 느낌을 받았고 걸을대 습관적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는데 오늘은 하늘을 올려다 봐도 눈이 부시지 않았다. 그리고 태양은 안개에 가려 뭉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버스를 타고 내려 순천 버스터미널부터 걸어갈 때도 내가 집에 간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걸어가는 도중에는 항상 학교에 가기 전에 거치는 이 길을 걷는 횟수가 하나하나 쌓여가는 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직 덜 힘들었고 학교에 도착했을때는 원래 엄청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었는데 이번에는 학교 안에 들어갈때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접에 들어가서 골아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번에 지리산을 걸으면서 마음가짐과 받아들임을 주로 나의 배움으로 가져와서 그렇게 재미있고 편하기만한 순례는 아니었다.
시
봄, 겨울
땅고 한 몸으로
몇벌 않되는 옷을 갈아입으며
많은 크고 작은 것을을
품에 안는‘산’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며 하는 욕 까지도
품에 안는 ‘산’
자기중심
찰칵
“야 찍지마”
찰칵
“야 찍지 말라고”
“어?”
“어?”
“내가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