霽月光風(제월광풍)
며칠 전 성암(省菴) 양주호(梁周鎬)선생님께서 省菴散稿(성암산고)책과 함께 ‘霽月光風(제월광풍)’이라 쓴 서예작품 1점을 동봉해 보내주셨다.
선생님은 기묘(己卯)생으로 83세이시다.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학문에 매진하면서 서예와 한문 성독에 정열을 쏟고 계신다.
선생님은 현재 성균관 전학ㆍ장의, 진주향교 장의, 한국서예문인화연구회 초대작가, 동백서화회 초대작가, 대한민국독립기념사업회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계신다.
각종 서예 대회와 한문 성독 대회에 참가하여 많은 상을 받으셨다. 그리고 여러 명문가의 비문을 직접지어 쓰기도 하고, 재실이나 정자의 현판과 편액 기문 등을 병서한 것도 여러 곳이다. 이를테면 함양 휴천면 원모재의 현판과 기문, 함양 수동의 구천서원 중건기문과 중수기문, 함양 유림 경양재의 기문과 상량문, 함양 휴천 남호리 경모재의 기문과 진주 지수 효예리 경모재의 기문 병서가 그것이다.
선생님의 글씨를 보면 힘이 넘친다. 그것은 글자의 구성과 운필의 필력 때문이다. 필력은 단시간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절차탁마(切磋琢磨) 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체득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쓰려고 하는 한자의 의미를 꿰뚫어 보는 내공이 있어야 운필이 활기차고 글자의 구성이 균제(均齊)와 조화(調和)와 통일(統一)을 이루는 것이다.
한문 공부의 바탕이 부족한 사람들도 열심히 노력하여 서예를 잘 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다. 대체로 그런 분들이 글 쓰는 모습을 보면 글을 쓴다고 말하기 보다는 글자를 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쓴 글은 형체는 그럴 듯하지만 글에서 느끼는 기운은 부족하다.
그런데 성암 선생님의 글을 보면 필력에서 용사비등(龍蛇飛騰)을, 구성에서 평사낙안(平沙落雁)의 안정감이 있다.
선생님께서 써 주신 글은 ‘霽月光風(제월광풍)’이다.
직역하면 ‘비가 개인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다.
이역하면 정대하여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면의 뜻은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인품이 시원스러움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글’이다.
霽月光風(제월광풍)이라는 글의 근원은 북송(北宋) 때의 시인 황정견(黃庭堅)이 주돈이의 인품을 흠모한 데서 유래한 글이다.
주돈이는 인생관에 우주관을 도입하고 거기에 일관된 원리를 통합하여 성리학의 체계를 확립한 인물이다. 그를 논평한 원문은 이러하다.
‘庭堅稱(정견칭) 基人品甚高(기인품심고) 胸懷灑落(흉회쇄락) 如光風霽月(여광풍제월)’
정견이 일컫기를 ‘그의 인품이 심히 고명하며 마음결이 시원하고 깨끗함이 마치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과 같도다.’라고 칭송한 말이다.
제월광풍(霽月光風)이라는 말은 훌륭한 인품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하지만, 정사를 나타낼 때는 세상이 잘 다스려진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성리학의 체계는 그 근원을 논어에서 찾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기에도 맥을 같이하는 논어의 구절이 있다.
논어 선진편 25장에 이런 글이 있다.
어느 날 공자께서 자로 • 염유 • 공서화• 증점 등과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다가 각자 품고 있는 뜻을 기탄없이 이야기 하도록 했다.
자로는 제후국을 다스리면 백성을 용맹스럽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염유는 작은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을 풍족하게 할 수 있다고 했으며.
공서화는 벼슬길에 나가 집례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말했다.
다만 증석만이 다른 대답을 했다.
莫春者(막춘자) 春服旣成(춘복기성) 冠者五六人(관자오육인) 童子六七人(동자육칠인)
浴乎沂(욕호기) 風乎舞雩(풍호무우) 詠而歸(영이귀)
“늦은 봄, 봄옷이 다 지어지면 관을 쓴 어른 대여섯 명과 아이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며 돌아 왔으면 합니다.”
夫子喟然歎曰(부자위연탄왈)
공자께서 ‘아!’ 하고 감탄하시면서 말씀하셨다,
吾與點也(오여점야)
“나도 증점과 함께 하고 싶구나!”
위의 말로 유추해 볼 때 공자 역시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함께 즐거움을 느끼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싶은 생각은 필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영향이 유학자들로 하여금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삶을 동경하게 하는 모티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霽月光風(제월광풍)’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몇 곳에서 전한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도봉서원에 와서 정암 선생을 추모하며 사당을 참배하였는데, 우암 선생이 도봉서원에 이르자 많은 선비와 유지들이 모여들어 강의를 요청하므로 며칠을 머물며 학문을 강론하였다. 그리고 재학생들의 요청으로 붓을 들어 도봉산입구에 “霽月光風更別傳(제월광풍갱별전) 聊將絃誦答潺湲(요장현송답잔원)”이라는 글씨를 써주었다. 이 14자의 글씨는 서원 앞 계곡의 바위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이 14자의 시구는 주자가 白鹿洞書院講會(백록동서원강회)에서 학생들에게 오르지 유학에 전념하여 도덕적 품성을 기르고, 절대로 출세를 위한 과거공부나 현실을 도피하는 망상을 하지 말도록 권고한 두 편의 시 가운데 한 구절씩을 발췌한 것이다.
또,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그의 두 아들에게 내려주는 훈계(示二子家誡)에 광풍제월을 인용했다.
士大夫心事(사대부심사)
사대부의 마음가짐은
當與光風霽月(당여광풍제월)
당연히 광풍제월과 같아
無纖毫恥曖(무섬호치애)
털끝만큼도 가려진 곳이 없어야 한다.
凡愧天怍人之事(범괴천작인지사)
무릇 하늘에 부끄럽고 사람에 떳떳치 못한 일은
截然不犯(절연불범)
단호히 끊어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自然心廣體胖(자연심광체반)
절로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有浩然之氣(유호연지기)
호연지기가 일어날 것이다
若於尺布銖貨(약어척포수화)
만약 한 자의 베나 몇 푼 재물에 팔려
瞥有負心之事(별유부심지사)
어쩌다 마음을 져버리는 일이 있게 된다면
卽是氣朒敗(즉시기뉵패)
그 즉시 이 기운은 위축되어 무너지고 만다.
此人鬼關頭(차인귀관두)
이것은 사람과 귀신을 가르는 관건이다.
汝等切戒之(여등절계지)
너희들은 깊이 경계하도록 해라.
나는 마루에 걸린 ‘霽月光風’의 액자를 보면서 어떻게 행동하면서 늙어가는 것이 제월광풍의 본의에 가까운 모습일까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