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사 문소 김공 묘갈명 서문을 아울러 붙이다處士聞韶金公墓碣銘 幷序
공의 휘는 관진(觀鎭), 자는 경빈(景賓)이다. 김씨(金氏)는 고려 의성군 용비(龍庇)를 시조로 한다. 조선 중엽에 증 이조 판서 청계(靑溪) 휘 진(璡)이 덕을 심고 후손에게 드리워 다섯 명의 어진 아들을 두어 여섯 부자가 모두 사빈서원(泗濱書院)에 제향되었다. 장남 휘 극일(克一)은 내자시 정(內資寺正)이고 호는 약봉(藥峰)이다. 아우 귀봉(龜峰) 휘 수일(守一)의 아들을 후사로 삼았으니, 휘는 철(澈)이고 진사이고 호는 대박(大朴)이다. 이분이 휘 시온(是榲)을 낳았으니 숭정(崇禎)의 절의를 지켰다. 증 집의이고 호는 표은(瓢隱)이다. 이분이 휘 방걸(邦杰)을 낳으니 대사간이고 호는 지촌(芝村)이다. 이분이 휘 원중(遠重)을 낳았으니 증 승지이고 호는 목와(木窩)인데, 공에게 6대조이고 공이 곧 주손(冑孫)이다. 증조는 시정(始正), 조부는 복운(復運), 부친은 낙수(樂壽)이다. 모친은 풍산 김씨(豊山金氏) 통덕랑 시원(始源)의 따님과 반남 박씨(潘南朴氏) 시욱(時旭)의 따님이다. 생가 부친은 안수(安壽)이고, 모친은 안동 권씨(安東權氏) 강좌(江左) 만(萬)의 손자 신도(信度)의 따님과 진성 이씨(眞城李氏) 사량(師亮)의 따님이다.
순조 갑자년(1804) 12월 28일에 공은 국란리(菊蘭里) 집에서 태어났으니, 안동 권씨가 낳았고 형제 가운데 셋째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힘들게 자랐다. 13세에 조부 치헌(耻軒) 공의 명으로 양자로 들어가 승지공의 종사(宗嗣)를 이었다. 당시에는 사는 곳이 안정되지 않아 살림이 어려워 조석의 끼니 걱정이 있었다. 공은 하늘이 맡긴 듯이 기뻐하고 생가의 여러 친족에게 갈 때마다 어렵고 힘든 모습으로 근심을 끼친 적이 없었다. 여러 해에 걸쳐 제사를 받드는 처지에 문호를 성립하는 것에 급급하여 생계를 다스리는 일에 마음을 두어 능히 농사와 양잠에 근면하여 조금씩 쌓아서 점차 넉넉함을 이루었으나 조금도 의가 아닌 것을 취하여 도리를 상한 적이 없었다. 문학에 힘쓸 수 없었던 것을 후회하고 한스럽게 여겨 서적을 사들인 것이 수백 권에 이르렀다. 항상 자손에게 경계하기를, “농사와 독서 가운데 하나라도 폐할 수 없으니, 어찌 태만하게 하고서 능히 복록을 누릴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스스로 먹고 입는 것은 매우 박하였으나 선조를 받드는 데는 후하였다. 흉년을 당하면 반드시 궁핍한 친척과 이웃을 돕는 일에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여러 대의 묘소를 이장하여 길지를 택하여 모시고, 몇 곳의 재사를 건립하고, 제전을 마련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 반드시 풍성하고 정결하였다. 한 마디 말도 거짓으로 하는 것이 없고, 한 가지 일도 임시로 구차히 처리하는 것이 없었다. 효성과 우애를 본원으로 삼고, 근면과 검약을 실덕으로 삼았다. 무릇 조상을 추모하고 후손에게 끼치는 도리는 그 성의를 다하여 필생의 사업이 넉넉히 여유가 있었다.
기묘년(1879) 9월 13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75세였다. 화지동(花池洞) 입구 병좌(丙坐) 등성이에 안장하였다.
배위는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니 광노(光魯)의 따님이다. 매우 부덕이 있었으니 공이 가업을 성취한 것은 내조가 실로 많았다고 한다.
2남을 낳았으니 적락(迪洛), 양자로 나간 술연(述淵)이다. 적락의 아들은 서병(瑞秉)·구병(九秉)·기병(璣秉)이고, 딸은 이만표(李晩杓)·권정원(權鼎遠)의 처이다. 술연의 아들은 노병(魯秉)·주병(周秉)·귀병(龜秉)이고, 딸은 신영한(申永漢)의 처이다. 증손 현손 이하는 많아서 다 기록하지 않는다.
공의 시대가 이미 백 년이 넘으니 후손이 창성하여 빗돌을 마련하여 묘소에 드러내려고 하여 양자로 나간 현손 시린(時麟)이 그 숙조(叔祖) 옥서(玉西) 공이 찬술한 행략(行略)을 가지고 나에게 명시(銘詩)를 부탁하였다. 나는 감히 이 일을 맡을 수 없음을 스스로 알지만 또한 감히 끝내 사양하지 못할 것이 있어서 삼가 가져온 행략에 의거하여 차례대로 서술하고, 명(銘)을 붙인다.
그윽한 내 굽이에 有窈川曲
토구가 이미 오래 되었네 菟裘已古
시서를 쌓아 자손에게 끼치고 畜詩書以遺晜仍
농사와 양잠을 가르쳐 문호를 세웠네 課農桑以基門戶
심력을 전일하게 하여 경륜을 베푸니 一心力施經綸
한 가문 사업의 조상이 되기에 넉넉하네 優優乎其一家事業之祖
사실을 취하여 명에 드러내어 摭實揭銘
이로써 묘도를 꾸미네 用賁隧道
토구(菟裘) : 은거하는 곳을 말한다.
白渚文集(下), 배동환 저, 김홍영, 남계순 역, 학민문화사(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