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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육공동체 벗 원문보기 글쓴이: 낭만샘(안준철)
2016. 7. 15.
(재)교보교육재단이 주관하는 ‘2016. 교보교육심포지엄 학교 인성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가 7월 27일 오후 1시 30분부터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23층 컨벤션홀에서 열립니다. 이 글은 그 자리에서 발표할 원고내용을 ppt 자료에 맞추어 재작업한 실제 발표 시나리오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는 벗들이 계실지 몰라 공유하고자 합니다. 파일을 첨부했으니 참고하세요.)
인성교육을 위한 교사 역량-‘시나브로’ 교실 소통법-인성교육을 위한 10가지 실천
안준철(전 순천효산고 교사)
#1 학생의 결핍과 교사 상처
안녕하세요? 저는 전문계 사립고등학교인 전남 순천 효산고등학교에서 29년 동안 근무하다가 올해 2월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한 학교에서만 계속 근무를 하다가 퇴임을 했기 때문에 저의 경험이 보편적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점을 먼저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학교에서 동료 교사들과 학생 문제로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동료 교사의 상처를 건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가끔 교사 학생간의 불미스런 사건이 생겨 이를 중재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 하다보면 교사는 교사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서로에 대한 울분과 분노가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칫 학생 편에서 서서 얘기를 했다가는 교사들의 공동의 적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침묵으로 일관할 때가 많았습니다. 저도 상처를 받기 싫었던 건데 상처를 좀 받더라도 대화를 시도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퇴임식 때 이런 저의 속내를 털어놓고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공유했던 내용은 뒤에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학생의 결핍은 인성교육의 존재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그 결핍이 교사에게 상처를 주는 무기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결핍이란 단어는 공격적인 뉘앙스를 풍기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거죠. 인간성이 결핍되었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버릇이 없거나 싸가지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역으로 그 거친 무기가 결핍으로 이해될 때만이 인성교육은 가능해지고 교사상처도 극복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 교사는 완전한가?
교사는 완전한 존재인가? 전혀 그렇지 않죠. 제가 고1 담임을 맡고 있을 때 고3생들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세대차이가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고1 수준인 거죠. 가끔 졸업한 제자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저보다 훨씬 성숙한 느낌을 받을 때도 많습니다. 학교만 졸업하면 애들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인성교육을 잘 하려면 학교를 빨리 졸업시키는 방법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데 인간적으로 미숙한 느낌이 드는 교사일수록 자신을 완전한 존재로 보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인성교육이 완전한 성인인 교사가 미완성인 학생을 교화하거나 지도하는 식이 되면 실패하기 쉽지요. 또한 이런 착각과 오류에서 교사상처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3. ‘시나브로’ 교실소통법이란?
고백하자면, 저는 한 때 학생들을 심각하게 차별하는 교사였습니다. 제가 학생들을 그나마 덜 차별하게 된 것은 학교라는 곳이 차별이 일상화되고 구조화된 곳이라는 자각이 있고난 뒤부터였습니다. 물론 교사도 인간인데 공부 잘하고 인성이 좋은 아이들을 편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는 학생이 생깁니다. 따라서 이런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움을 역행하여 학생들을 공평하게 대해주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의 영역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런 성찰의 과정에서 생각해낸 것이 ‘시나브로’ 교실 소통법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학생들을 느리게 만나자는 것!
부드러움과 유머는 교사의 전문성일 수 있다는 것!
인간성을 말살하는 과열 경쟁시대가 교사와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들었다면, 이제 그 속도를 줄이고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여유를 갖자는 것!
4-7. 허리숙이기
인성교육을 위한 10가지 실천 중에서 첫 단계는 ‘허리 숙이기’입니다. 흔히들 인성교육을 예절교육 정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생각은 다릅니다만 예절교육도 결국은 본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허리를 숙이라고 명령하는 것이 예절교육은 아닌 거죠. 우선 시를 한 편 감상해보시겠습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이 저와 이름이 같더군요. 동명이인은 아닙니다만.
주번교사 하던 날이었지
흰 종이 쓰레기 한 점
장맛비에 젖어
측백나무 울타리에 걸려 있었어
누군가 손에 쥐었다가
무심코 버렸으리라
생각하며 허리를 굽히는데
세상에, 그게 흰 장미인거야
이슬 같은 물기를 머금고
생글 웃고 있지 않겠어?
자세히 보니 제 몸에 가시를 박은
한 줄기 초록빛 가녀린 선이
측백나무 울타리를 속을 비집고 올라와
흰 장미 한 송이를 후끈 피워놓은 거야
나는 생각했지
처음에는 그 쓰레기가
정말 흰 종이 쓰레기였을지도 모른다고
장맛비에 젖어 측백나무 울타리에 걸린
찢겨진 한 영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허리를 굽혀
다가가기 전까지는 말이지.
-졸시, <하얀 장미>
8-11. 생명 값
저는 해마다 첫 담임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2와 60의 차이는 몇 배입니까?"
학생들은 어려운 질문인 줄 알았다가 긴장을 풀고는 쉽게 대답을 합니다.
"30배요."
저는 잠시 기다렸다가 이렇게 다시 묻습니다.
"그럼 20조 2와 20조 60의 차이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줍니다.
"차이가 거의 없지요.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2와 60 앞에 붙어 있는 20조라는 숫자가 너무 큰 숫자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 앞에 있는 큰 숫자를 '생명 값'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뒤에 붙어 있는 2나 60이라는 숫자는 공부를 좀 더 잘하고, 얼굴이 좀 예쁘고 하는 여러분의 조건을 의미하지요. 그 조건의 차이가 30배가 된다고 해도 그 앞에 붙은 여러분의 생명 값이 너무 크기 때문에 거의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하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누가 좀 더 예쁘고 누가 공부를 좀 더 잘하고 하는 것은 선생님에게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생명 차제가 저에게는 너무나 크고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첫 담임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초임교사 때의 일입니다. 학기 초라 반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조사를 하기 위해 한 아이와 면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작성하여 제출한 가정환경 기초조사서에는 부친의 직업이 '사업'이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무슨 사업을 하시느냐고 물으니 그 아이는 대답 대신 이렇게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걸 왜 물으세요?"
너무도 당돌하고 예기치 못한 반응이어서 저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그 아이의 상기된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네 담임이니까 묻는 거야. 널 알아야 하니까. 알아야 널 사랑할 수 있으니까."
그러자 그 아이는 또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절 사랑해야 하는데요?"
전 잠시 생각을 모아 다시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잘 모르겠다. 왜 널 사랑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그런데 난 이미 널 사랑하고 있는 걸."
그렇게 말해놓고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데, 의외로 그 아이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더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빤 무직이에요. 엄마는 재혼하셨구요. 전 할머니하고 살고 있어요. 선생님께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너무 차별만 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생명 값’ 이야기는 학생들을 생명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하거나 차별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 속에는 학생들의 외모나 성적뿐만 아니라 인성도 포함됩니다. 인성이 부족한 아이들이 가르침의 대상이 될지언정 비난이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2-16 오른편 그림 그리기
점심시간에 철조망을 넘어 무단 외출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운동장에서 풀을 뽑고 있던 세 명의 여학생들이 나를 보자 우르르 달려왔습니다. 그 중 목소리가 유난히 큰 아이의 입에서 발음된 저에 대한 호칭은 이랬습니다.
“자기야!”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교장 선생님께서 먼발치에서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는데 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철없이 희희낙락하는 아이들을 급하게 수습하여 땅바닥에 쪼그려 앉게 했습니다. 제가 먼저 반 무릎자세로 앉은 다음 아이들을 앉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어떤 절박한 생각에 사로잡혀 땅바닥에 큼지막한 네모를 하나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해주었다.
“그동안 우린 이 왼편 그림만 그려왔어. 너희들이 담배를 피우면 피우지 마라. 화장을 하면 화장하지 마라. 치마 입고 철조망 넘어가면 넘어가지 마라. 너희들은 그리고 나는 지우는 그런 불행한 그림만 그려온 거야. 오늘도 너희들은 이 왼편에 그림을 그렸고, 나는 그것을 지웠어. 그리고는 끝이야. 사랑으로 지웠지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 이제 이 오른편 그림을 그려보자. 정말 잊을 수 없는 감명 깊은 책을 한 권 읽는다든지, 아무도 줍지 않는 저 교정의 휴지를 줍는다든지, 직장 일로 힘드신 아빠 어깨를 한 번 주물러 드린다든지 하는 거 말이야. 그것이 오른편 그림이야. 아무도 지울 필요가 없는. 이제 선생님은 너의 오른 편 그림을 보고 싶다.”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두 아이가 멀리서 저를 보자마자 손에 무언가를 든 채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더니 이렇게 외쳐대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저 오른편 그림 그렸어요. 여기 휴지요.”
“저도요. 저는 어제 아버지 어깨도 주물러 드렸어요.”
저는 이 사건을 ‘오른 편 그림 신화’라고 부릅니다. 저로서도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지요. 이 오른 편 그림의 효과는 그 후 다른 학생들에게도 나타났습니다. 한 번은 흡연을 하는 학생에게 적용시켜 보았는데 곧바로 금연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를 가꾸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가시적인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삶을 사는 태도가 예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17. 인성교육에서 오른 편 그림 그리기
“인간은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삶을 살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말이 있다. <닥터 지바고>를 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한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말인데도 뭔가 허를 찌르는 묘한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말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인성교육을 인사지도나 예절교육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인간에 대한 예절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문제는 학생들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 배려하고 지원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금지하고 관리하는데 주력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학생들을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닌 삶을 준비하는 존재로만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성교육의 핵심은 학생들을 자기 삶의 주체로 세워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시간을 스스로 계획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하고자하는 교육선진국 중 하나인 핀란드는 중고생들도 대학생들처럼 수강신청을 한다고 합니다. 이공계를 원하지 않는 학생들은 수학 과목을 신청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가하면 독일은 "일제고사가 시행되면 학교 간의 경쟁이 치열해져 교육은 사라지고 점수만 남게 된다."라는 이유로 일제고사를 폐지합니다. 이 두 나라는 왜 이런 정책을 쓰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명합니다. 학생들이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행복한 삶을 누릴 테니까요. 정상적인 어른들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데도 우리의 귀에 이런 말들이 낯설게, 혹은 현실성 없는 낭만적인 수사로 들리기도 하는 것은 우리가 비정상적인 삶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성교육도 오른편 그림 그리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흡연학생들을 교화하기 위해 금연지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아리방이나 체육관 시설 등을 확충하여 예술과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발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근본적인 처방일 것입니다. 금연지도가 왼편 그림이라면 이런 근본적인 처방들이 오른편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오른편 그림의 정신은 자율과 책임입니다. 강제적 야간자율학습이란 형용모순의 용어가 엄연히 존재하는 학교 공간에서 인성교육은 죽은 언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성상실의 시대, 교육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학교환경부터 개선해야하는 이유입니다.
18-22. 먼지가 아닌 푸른 종이로 바라보기
‘클래스’라는 제목의 프랑스 영화가 있습니다. 학교 현장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교육은 ‘감정 노동’이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이 감정노동이라면 교사는 감정노동자인 셈입니다. 교사가 감정노동자이니 감정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감정을 상하지 않고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 물음은 오늘의 주제인 학생들의 인성지도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물음이 될 것 같습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기형도의 시 ‘먼지투성이 푸른 종이’중에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가 있습니다. 똑 같은 상황인데도 푸른 종이 위에 쌓인 먼지가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먼지에 가려진 푸른색에 먼저 눈이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도 학생들을 푸른 종이로 보는 교사가 있고, 먼지로 보는 교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교사들이 둘 중 하나로 확연히 나뉘어져 존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학생 편에서 보자면 자신을 먼지로 보는 교사보다는 푸른 종이로 보는 교사가 당연히 좋을 것이다. 그럼 교사는 어떨까요? 감정노동을 하는 교사는 학생을 푸른 종이로 보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할까요? 아니면 학생들을 먼지로 보는 것이 유리할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 푸른 종이로 보면 푸른 종이와 살게 되고 먼지로 보면 먼지와 살아야하기 때문이지요. 학생을 푸른 종이로 보는 교사는 푸른 종이 위에 쌓인 먼지를 없애주려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는 수모와 고통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먼지가 제거되고 먼지에 덮여 있던 푸른색이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에서 교사는 기쁨과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이때의 기쁨과 보람은 그동안에 생긴 교사상처를 치유해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할 것입니다. 반면에 먼지투성이 푸른 종이에서 먼지에 가려진 푸른색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먼지에만 집중하는 교사의 경우는 크게 상처받을 일은 없겠지만 대신 먼지구더기에서 살아야하는 숙명에서 벗어날 방법은 갈수록 묘연해질 것입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습니다. 혹시 이런 식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먼지투성이 푸른 종이는 먼지이다.
나는 오늘도 먼지의 보복에 시달린다.
23-27. 조급해하지 않기, 혹은 느리게 다가가기
물론 학교에는 교사의 인격적인 지도를 낯설어하거나, 인격적으로 대해줄수록 머리꼭대기에 올라앉으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할수록 오히려 그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은 억울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제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좋은 말로 할 때 내려와라 잉.”
그렇게 말을 한다고 순순히 내려오는 아이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결국 내려오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들의 행동거지가 굼뜨고 느리게 보이는 것은 교사의 조급함으로 인한 착시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것을 몰랐다가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는데 그 후로는 학생들과의 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느리게 만나는 것. 아이들의 행동에 느리게 반응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때까지 잠자코 있어주는 것. 느린 속도로 아이들의 진실을 채취하는 것. 여유를 부리며 느린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느려터진 교사가 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서서의 아이들의 힘을 빼는 것!
이것이 나의 ‘시나브로’ 교실 소통법의 근간이기도 한데, 저에게 이런 좋은 방법을 전수해준 고마운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욱현이’이라고 합니다. 교실에 들어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눈길을 주지 못하고 한 단위로만 학생들을 바라보던 나의 고질적인 습관을 고쳐준 것도 바로 그였습니다.
욱현이는 좀 느린 아이다.
평소에는 그다지 굼뜨지 않지만
시험 기간에는
녀석의 느린 동작이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흡사 조각가 같다.
OMR 카드에 서른 문항의 정답을
컴퓨터용 싸인 펜으로 옮겨 적는데
오 분 남짓 걸린다.
서른 개의 빈방마다
한참씩이나 고요한 눈길을 주다가
아뿔싸, 실수를 했는지
정답 카드를 한 장 더 달라고 했다.
또 오 분을 기다리기가 무료해서
시간이 없다고 다그쳐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의 평화로운 눈빛이
다시금, 한 장의 카드가 아닌
서른 개의 빈방에 가 닿고 있었다.
욱현이를 볼 때마다
나는 나의 속도를 반성한다.
졸시, <욱현이>
아이들에게 느리게 다가가는 것을 교사의 성격이나 성품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 1년 동안 상담 연수를 받은 동료교사가 있었습니다. 상담을 배워서 학생들과 원활하게 소통을 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겠지만 나이가 들기 전에 수업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구가 더 컸을 수도 있습니다. 연수 동기야 어떻던, 상담을 배운 뒤에 그 동료교사의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졌습니다.
가령,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말썽을 부렸습니다. 과거 같으면 조건반사적으로 반응을 해서 버럭 화를 내거나 야단을 쳤을 텐데 상담을 배운 뒤로는 그 대응이 사뭇 느려졌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 학생을 스터디 케이스, 곧 리포트를 써야할 대상으로 본 것입니다. 물론 동기가 불순하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학생들을 대하다보니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학생의 말을 경청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급하게 학생을 판단하던 습관도 사라졌습니다. 전문적인 상담공부와 훈련을 통해서 “학생들을 느리게 만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지요. 학생들을 느리게 만날수록 학생들로부터 상처받을 일이 그만큼 적어집니다. 물론 학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학생에게 준 상처가 다시 부메랑으로 교사에게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은 속도가 문제인 것이지요.
28-30 부드럽게 대하기, 혹은 창조적으로 반응하기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교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런 경우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기가 쉽습니다. 물론 저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 제가 좀 들떠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겁도 없이 휘파람 소리를 낸 녀석이 그날 일진이 좋아서 그랬는지 그 소리가 제 귀에는 청아한 새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연극 대사라도 외우듯이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 우리 교실에 새가 한 마리 들어왔나 보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두 마리의 새가 화음을 맞추어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싱긋 웃어 보이자 금세 한 마리가 더 합세하여 이내 삼중주가 되었습니다. 저도 질세라 입을 오므려 휘파람 소리를 내 보았습니다. 휘파람새 한 마리가 아이들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잠시 후 저는 잠시 교탁에 책을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여러분의 가슴 속에 있는 새들을 다 날려보세요."
순간, 말을 잘했다 싶게 교실은 삽시간에 새떼가 날아와 앉은 숲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이자 아이들도 환히 따라 웃었습니다. 사내 녀석들이 귀엽고 예뻤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자유의 냄새가 났습니다. 불과 몇 분, 아니 몇 초가 그렇게 흘러가고 이내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몇몇 떠드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고 잠시 눈길을 주면 덩치 큰 녀석들이 순한 양처럼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습니다. 그 중 한 녀석이 처음 휘파람을 분 아이가 아니었을까요?
31-39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신뢰하기
한 아이가 아침 조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교무실로 찾아와 조퇴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너무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꾀병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퇴를 허락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돌려보냈다가 점심시간에 다시 아이를 만나 차분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이의 고민은 친구문제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오해가 발단이 되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골이 깊어진 듯했습니다.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에 비해 친구 문제에 더 민감한 편입니다. 그것은 항상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길 좋아하는 여학생들의 습성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친구 간에 오해가 생겨 우정의 전선에 금이 가면 일단 짝을 지어 다니는 습성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늘이 없는 아이일수록 단 하루라도 무리를 벗어나 혼자 외톨이가 된다는 것은 머리가 터져버릴 만큼 견디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늘이 없는 학생을 좋아합니다. 아니, 그늘이 없는 학생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늘이 없다는 것은 아이에게 좋은 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런 보편적인 생각을 배반하는 일도 종종 경험합니다. 적당한 그늘이 있는 아이들이 비교적 외로움을 잘 견딘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안에 쉴만한 적당한 그늘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그 아이에게 해준 말입니다.
"선생님은 걷는 걸 참 좋아해. 지난 겨울방학 땐 순천에서 여수까지 걸었어. 해안선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는데 참 좋더라. 경치가 좋아서가 아니고 나 혼자라는 사실 말이야. 너도 보니까 글을 참 잘 쓰던데 글을 쓰는 사람은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이 필요하거든. 혼자 식당에 가고 혼자 하교하고 그런 일들이 많이 힘들 거야. 하지만 이번 기회에 그런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아. 외롭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야. 외로워봐야 외로운 사람을 이해할 수도 있고. 이번 기회에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보고 네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도 가져봐. 선생님이 널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것도 임시방편일 뿐이야. 중요한 것은 바로 너야. 난 네가 강해졌으면 좋겠어. 친구 문제로 자꾸만 도망치려하지 말고 네가 일이 잘 되도록 한 번 풀어봐. 이번 기회에 다른 좋은 친구들도 사귀어 보고. 알았지?"
이런 말들이 아이의 영혼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 수 있을까요? 하지만 한 아이를 신뢰하는 것은 곧 인간을 신뢰하는 일일 것입니다. 인간의 변화에 대한 신뢰, 아무리 불확실성 시대라고 해도 이것이 없으면 교육은 존재할 이유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 후 그 아이에게서 받은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선생님께!!
선생님 컴퓨터시간에 잠깐 틈이 나기도 하고 선생님 생각도 나고 해서 이렇게 편지를 해요. 항상 칭찬해 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친구 같은 선생님이 제 곁에 있어서 지금까지 너무 행복했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새 제게 너무 힘든 일도 있고 그랬지만 그래도 정말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이 제 곁에 있어서 버틸 수 있었어요.
이젠 다짐했어요. 절대 울지 않기로. 혼자서도 꿋꿋이 당당하게 다니기로요! 힘이 들 때 피하려고만 했는데 이젠 부딪쳐 볼 거예요. 어떤 험한 일이 있더라고요. 전 늘 생각했어요. 왜 힘든 일은 나한테만 찾아올까 하구요. 하지만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예전에 모습처럼 밝고 활기찬 모습 보여드릴게요. 선생님 항상 걱정해 주시고 문자 보내주시고 다독여주셔서 감사하고 존경해요. 선생님 그리고 사랑해요!!
그 후 그 아이는 친구 문제로 잠시 드리워졌던 그늘은 사라졌지만, 오히려 외로울 때 찾아가 쉴만한 내면의 그늘을 소유한 듯, 아이의 거동에 깊이와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다음은 그 아이의 생일 때 써준 시입니다.
사월이 오면
네가 태어난 꽃 피는 사월이 오면
살구꽃 피고 복사꽃도 피고
이름 모를 꽃들도 다투어 피어나는
눈부신 사월이 오면
이제는 가장 먼저
네 이름이 생각나겠다.
사월이 오면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런 멋진 말들이 생각나곤 했는데
이제는 가장 먼저
네 갸름한 얼굴이 떠오르겠다.
발레의 꿈은 허리부상으로 접었고
패션 쪽은 너무나 관심이 가지만
어른들의 시선이 좋지 않아 고민 중이라고
네 꿈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는 1년
정말 뜻 깊고 뭔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조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넌 첫 편지에 그렇게 썼었지
바로 그 말
변화라는 말, 성장이라는 말이
어찌나 빛나 보이던지
어찌나 가슴에 와 박히던지
이제 사월이 오면
가장 먼저 네 이름이 생각나겠다.
네 예쁘고 갸름한 얼굴이 떠오르겠다.
40-43. 행복감수성 키워주기
저는 해마다 봄이면 봄수업을 가을이면 가을수업을 했습니다. 아이들의 행복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해서였지요. 가을수업을 하는 날은 교정이나 학교 뒷산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서 저에게 보여주어야 교실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답답한 교실에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밖에 나가 바람을 쐬는 것도 썩 내켜 하지 않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하긴 휴대폰에 달린 작은 창 하나로 세상과 소통하는 아이들이니 지금도 아날로그 시대를 살고 있는 아버지뻘 되는 늙은 선생의 고리타분한 말들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지요. 그래도 그렇게 속단할 일만은 아닙니다. 낙엽을 한두 장 붙이고 난 여백을 깨알 같은 글씨로 메워가는 아이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어느 핸가는 제가 낙엽을 주워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낙엽을 주워오라고 했더니 나무에 달린 붉은 단풍잎을 가지째 꺾어온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상자 속에 든 낙엽 중에서 구멍이 나지 않는 예쁜 낙엽만을 고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해는 미리 이런 말을 해주었지요.
"동산에서 예쁜 낙엽을 주우면서 좀 덜 예쁜 낙엽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예쁘고 안 예쁘고 그 기준이 무얼까? 여기 이 낙엽을 보세요.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잖아요. 그럼 이것은 안 예쁜 낙엽인가요? 이 구멍을 통해 이렇게 여러분을 바라볼 수도 있고 세상을 볼 수도 있는데요. 그리고 이 구멍은 벌레들이 먹은 흔적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 이파리는 벌레들에게 좋은 먹이가 되어준 거잖아요. 그럼 참 마음이 예쁜 낙엽 아닌가요? 그러니까 예쁜 낙엽을 고르려하지 말고 그냥 한 장이나 두 장씩 손에 잡히는 대로 정을 붙여보세요."
이런 말을 잘 했다 싶게 상자에서 낙엽을 골라내는 아이들의 손길은 그리 까다롭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기어이 상자를 뒤적여 예쁜 낙엽을 골라가는 아이도 있긴 했지만. 낙엽이 다 돌아가자 이번에는 하얀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주며 이렇게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 가을 수업의 주제는 '나에게 쓰는 가을 편지'입니다. 나에게 편지를 쓰라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할 거에요. 하지만 이 세상에 가장 사랑스런 존재가 바로 나 자신 아닐까요? 고독을 즐긴다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은 곧 내 자신과 사랑을 나눈다는 말과 같은 뜻이에요. 친구도 소중하지만 그 친구는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 안의 나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지요. 그리고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어요. 이렇게 소중한데도 그동안 너무 소홀히 해온 나 자신에게 사과하는 뜻에서라도 가을 편지를 한 번 써 보세요."
요즘 들어 이런 말에 귀를 쫑긋하고 듣는 아이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하나 둘 팔을 턱에 괴고 사색에 잠겨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학생들에 대하여 너무 쉽게 절망하는 것은 교사로서 절대금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완전하다면 우리 교사가 존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다음은 그런 미완성의 존재인 한 아이가 쓴 글입니다. 그날 가을수업 대상작이기도 합니다. 제 마음 속으로만 상을 준 것이지만요.
'내가 나한테 할 말이 없다니…
너무 아쉽다…
난 왜 이럴까?
왜 아무 말이나 생각이 안 나지?
정말 화가 난다….'
44-45. 수업장면에서 인성교육 연계하기
인성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평소의 수업장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적극적으로 인성교육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사전 준비가 필요합니다. 다음은 그날 배울 영어단어와 연계한 5분 인성교육 내용입니다.
“오늘 제가 주목한 글자는 break입니다. break가 무슨 뜻이죠?”
“깨다. 깨뜨리다.”
“좋은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다.”
“그럴까요? 여러분 휴식 시간이 영어로 뭐죠?”
“break time입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break는 좋은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까?”
“좋은 말입니다.”
“생각이 바뀌었네요? 그런데 왜 break time이 휴식시간이죠?”
“그건 수업시간 사이에 있어서....”
“맞습니다. 1교시와 2교시 사이의 그 깨진 틈새에 쉬는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 사진을 보십시오. 제가 아침에 출근하다가 폰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보도블 록 사이에서 핀 냉이꽃입니다. 저 깨어진 틈새 혹은 사이가 한 생명을 키우는 창 조적 공간이 된 것이지요. 우리 마음도 그럴 수 있습니다. 깨지고 상한 마음에서 위대한 생각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46-50. 일상적 잔소리에서 ‘행복학 강의’로 전환하기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 달에 생리통을 두 번씩이나 앓는 아이입니다. 물론 한 번은 거짓말인 거죠. 신호음이 가고 아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나야, 담임선생님. 지금 어디냐?”
“안녕하세요? 저 지금 집에 들어가는 중이예요. 그런데 웬일이세요?”
“응. 그냥 했어. 지금 동천으로 산책 나왔는데 가을바람이 너무 좋다. 너 집에 들어가기 전에 꼭 이 가을바람을 느끼고 들어가도록 해라.”
“예? 예.”
“여름에는 어서 가을이 왔으면 하잖아. 그럼 가을이 왔으니까 가을을 느껴야지. 언제 가을이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가버리면 네가 손해잖아. 그래서 전화한 거야. 이 말을 하려고. 네가 행복했으면 해서.”
“예예. 고마워요 선생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조퇴를 청하여 거리를 배회하다가 늦게야 귀가하는 아이에게 가을을 느끼고 들어가라니? 다행히도 이런 위험천만(?)한 말을 듣고도 아이의 목소리는 더할 수 없이 맑고 차분했습니다. 사실은 그 아이에게 해 준 말은 그날 종례 시간에 반 아이들에게 해준 말이었습니다.
“오늘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하늘을 꼭 세 번 이상 쳐다보세요. 요즘 저녁노을이 정말 아름다워요. 그리고 지금 가을이잖아요. 날씨가 추워졌다고만 하지 말고 여러분 가슴으로 가을을 느껴보도록 하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종례 끝.”
저도 종례 때마다 지각하지 말라는 말을 후렴처럼 덧붙이곤 했습니다. 학생들이 바르게 자라기 위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해줄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대신 무엇을 해보라는 말을 했습니다. 가령, 화장을 하는 것을 슬쩍 봐주는 대신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귀찮게 했습니다. 한 아이는 중학교 3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는데 담임을 잘못 만나 책도 읽었노라고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말에는 모둠을 짜서 산에 같이 가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힘든 일을 당하면 자신이 경험한 곳으로 자신을 피신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요. 언젠가 수업을 하다가 공부하기 싫어서 미치고 환장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하나의 작은 생명이 열 달 동안 엄마의 뱃속에서 커 가면서 엄마의 배도 그만큼 부르게 되겠지요. 그리고는 한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데 나중에 엄마의 배는 어떻게 될까요? 갑자기 푹 꺼지겠지요. 그런데 생명이 커 가면서 뱃살이 늘어난 흔적은 거의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아요. 마치 살이 튼 것처럼 피멍이 진 자국들이 남아 있지요. 그런 고통을 치르고서 여러분을 낳으신 거예요. 엄마가 여러분을 뱃속에서 키운 열 달은 여성으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기간이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해요. 고통과 행복은 늘 같이 있어요.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수 있어요. 공부하기 싫다고 안 해 버리면 보람이 없고 보람 없는 삶은 여러분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교사의 일상적인 잔소리가 아닌 일종의 ‘행복학 강의’를 자주 듣는 아이들은 조금씩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힘을 얻기도 할 것입니다. 교육적 상상력을 통해 잔소리를 지혜의 언어로 바꿀 줄 아는 교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51-53.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기
어느 해 마지막 수업시간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누어주고는 나의 수업 방식에 대해서, 혹은 개인적으로 섭섭했던 일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적어내라고 했습니다. 말로는 좋은 말보다는 고쳐야할 점을 더 많이 써달라고 했지만, 한 해 동안 아이들에게 쏟아 부은 사랑에 대해 은근히 어떤 대가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제게 전해 준 쪽지에는 딱 한 줄,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선생님, 제 이름은 너가 아니에요. 저도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쪽지를 누가 볼세라 재빨리 접어 손안에 움켜쥐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저로 인해 이름 모를 한 아이가 겪었을 마음의 상처보다는, 그 아이에게 투영된 내 자신의 모습이 더 중요했던 것이리라. 저는 그런 교사였습니다. 그 후 저는 수업시간마다 아이들의 이름으로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썩 좋지 않는 저로서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지만, 번호가 아닌 이름을 불러주면서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각기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눈을 들여다보면서 평소 조용하고 말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던 아이들도 자기만의 고유한 빛깔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습니다.
한 해 내내 이름으로 출석을 부르고 눈을 맞추다 보면 아이들의 눈빛이 차츰 대담해지고 그런 은밀한 소통을 즐기는 아이들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한 묶음으로 존재하던 아이들이 제각기 고유한 인격과 표정을 지닌 한 인간으로 변모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행동거지가 바르지 못해도, 생명 그 자체의 예쁨에 눈이 떠지면 아이들은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사랑스런 존재가 됩니다. 그러니 제 눈이 빛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느 핸가 한 아이에게 들었던 말입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바라볼 때만 눈이 빛나요.”
그때의 충격과 미안한 마음을 속으로만 간직하고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행히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름대로 노력을 했고, 그로 인해 정년퇴임식 때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행복한 교사’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행복한 교사로 정년퇴임을 하게 된 것인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54-75 밥보다도 진실이 고팠던 제자 이야기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위기 때마다 나에게 도움을 주는 두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이 그 아이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미움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생각을 오랫동안 마음에 새기다 보면 아이에 대한 미움을 비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떠나기 전에 이 두 가지를 퇴임식 자리에서 라도 꼭 동료후배 교사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학생들과의 화해를 염두에 둔 것이었지요. 하지만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들 학생들로 인한 상처가 깊은 교사들의 귀에는 들어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에 쓴 수백 편의 교단일기 중에서 한 편을 골라 소개해주었습니다.
졸업한 지 12년 만에 나를 찾아온 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능력이 사뭇 부족한 아이였다. 그는 자신이 해를 가한 상대방의 아픔이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당한 작은 손해만을 생각했다. 그 아이의 행동을 그가 지닌 거친 무기가 아닌 아픈 결핍으로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낫 놓고 기억 자를 가르치는 식으로 인간의 도리와 양식에 관한 기초적인 이야기를 그 해 내내 해주어만 했다.
그는 여섯 살의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 병이나 사고로 인한 사별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사이가 좋지 않던 부모가 어느 날 말다툼 끝에 갑자기 종적을 감추어 버린 것이었다. 그와 두 살 터울의 동생과 병든 노모를 남겨 둔 채. 부모 없이 자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뜻밖에도 공부라고 했다. 집 안에는 까막눈인 할머니뿐이어서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 없어 초등학교 때까지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급생이 되어 글자도 못 읽는다고 혼을 낼 뿐 그런 처지를 이해하고, 자상하게 글자를 가르쳐준 친절한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아예 그런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아무에게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담임을 맡았던 그 해 불미스런 사고로 졸업을 불과 2개월 남겨두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나를 찾아와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했고, 내가 다시 담임을 맡아 무난히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는 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 생활을 하면서 술에 취한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수법으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문득 그것이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에 대한 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문제였다. 양심을 지키려고 노력할수록 그들의 냉소와 비웃음은 커져만 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런 와중에 두 번째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 사고로 그 동안 번 돈을 거의 다 까먹었지만 돈에 대한 애착보다는 그 사고로 인해 사람답게 살고 싶은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늦었지만 공부를 다시 해서 떳떳한 직업으로 바꾸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자신의 진실한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다. 결국 너무도 큰 외로움에 다시 과거의 생활로 돌아갔고 그러다가 세 번째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세 번씩이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이상하게도 조금도 억울한 생각이 들지 않더란 말입니다. 정말 진실하고 보람되게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제가 마취에서 깨어나자 맨 먼저 떠오른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선생님입니다. 선생님만은 제 진실을 이해해주실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란 말입니다."
그는 방송통신대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나이가 서른 살인데 지금 시작해도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유쾌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해주었다.
"나도 교사가 되려고 네 나이 때 사범대에 들어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 승산이 있을 거야. 그리고 넌 이미 성공했어. 돈보다도 진실을 선택했잖아. 그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거든. 너처럼 교통사고를 세 번씩이나 당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를 보내고 나는 문득 모천회귀 본능으로 유명한 연어를 떠올렸다. 그가 나를 찾아온 것도 그런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어서였다. 연어에게 모천회귀 본능이 있듯이 우리 인간에게는 ‘진실회귀’ 본능이 있지 않을까? 그런 것이 없다면 어떻게 10년 넘게 연락이 없던 제자가 먼 거리까지 차를 몰고 나를 찾아올 수 있었을까?
78-77. 퇴임식 마지막 멘트.
한 때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조차 할 수 없었던 그가 끝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진실이었고 그것을 가르쳐준 이는 교사였습니다. 저는 오늘 교단을 떠나기에 이제 더 이상 교사가 아닙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의 소중함을 여러분께 유산으로 남기고 떠납니다.
“교사로서의 내 관심사는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에 왔을 때보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하여 오후에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내가 교사로서 온전히 산다는 것은 곧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로운 인간만이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끝)
첫댓글 교사들 반응이 엄청 좋을거 같아요^^
학생지도에 도움도 되고, 인문학적 감동도 있고!
성권아우 마음만 같으면 우리 교육 암시랑토안헐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