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생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가족들이랑 사랑하는 손주 손녀들이 아닐까요?
어머니의 삶은 당신의 생활보다는 자식들 건강과
자식들 잘 되라고 장독대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두 손을 모아 절을 하면서 빌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이가 드니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손주들과 손녀들을 보면서
그간 무엇을 위해서 허겁지겁 달려왔는지 스스로 그 답이
사랑하는 아가들한테 있었던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가들 …
해가 바뀌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당연한 것인데 왜 올 추석은 유독
더 아려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성들여서 송편도 만들고 사랑하는 손주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나를 위해 살았던 것은 언제였던가?
남을 위해 살았던 적이 언제였는가?
만약 내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40세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처음 남편의 병명은 뇌경색이었다.
뇌경색은 머릿속에 뇌동맥에 이상이 생겨서 혈관이 막히면서 어느
부위가 막힘에 따라서 말을 못하거나 손발을 못 쓰게 된다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까 처음 그 병이 왔을 때 옆에서 관리를 잘 해서 담배나 술 짠 음식 등
말렸으면 하는 후회가 들어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40세에서 50세까지가 그렇게
삶의 황금기였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모른다.
악마가 인간을 장기판으로 유혹하듯이 지금은 힘들지만
어차피 인생은 홀로 살아가는 길 적응을 빨리 해야 된다.
살다보니
철없던 청년시기가 아니라
인생의 쓴 맛 다 보고.
무엇이 참으로 좋고
소중한지를 진정
음미할 수 있는 시기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모르고 허둥대며 바쁘게 살다가
떠나버린 사람을 그리워하며 최후의 한 수는 그래도
연금을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에 감사를 느껴볼 뿐이다.
그렇게 갈 줄 알았으면 좀 더 다정하고 예쁜 말투로
말하고 사랑하고 따스하게 할 것을 잔소리만 많았던 것 같다.
인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일만하면서 살아왔던 40대의 모습은 바로 돌아갈 수 없는 작품으로
가슴속에 남아 버렸다.
사랑하며 넓은 마음으로 병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돌봐드렸어야
되었으면 이렇게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을
그게 삶이고 인생입니다.
눈물 많은 사람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눈물이 없는 사람은
가슴이 없다.
바닥까지 추락해 본 사람은
눈물을 사랑한다.
바닥엔 가시가 깔려 있어도
양탄자가 깔려 있는
방처럼 아늑할 때가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나락에 떨어지면
차라리 다시 일어서서
오를 수가 있어 좋다.
실패한 사랑 때문에…
실패한 사업 때문에…
실패한 시험 때문에…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갔다고
그곳에 주저앉지 말아라.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라
무슨 일이든 맨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흘린 눈물만큼
인생의 깊이를 안다.
눈물보다 아름다운 것은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희망이다.
님 을 보내고
49제를 끝내고 영정 사진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고부터는
내 마음은 아실이가 되어 있었다.
나 혼자 자신에게 하던 말을 하나같이
사진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도 집안에 어딘가에 그 사람이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커다란 죄를 죄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외롭다는 걸 알지 못했지요.
매일 일하고 돌아오는 나만 기다려 준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지요.
당신에 머릿속은 텅 비워가고 혼자만의 마음속에 섬망증을 키우며
얼마나 힘들었나요?
그 힘들었던 마음을 지금 나에게 주고 계신건가요?
오늘 하루는 너무나 지루한 시간이었답니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출근하기도 싫어졌어요.
그러나 마무리를 잘 해야 당신도 좋아 할 것 같아서 열심히 아이들
맛있는 밥을 해 주었답니다,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내리고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느끼며 있었던 일들을
사진에게 이야기 하며 삶을 포기 할 수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말 했지요.
내 인생에 다시 살아갈 힘을 복돋워주는 바타민 같은 자식들 사실에
당신을 따라 갈 수도 없네요.
내 앞에 마주 앉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 준다고 상상해보라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올라서
사랑은 타기도 하련만
사진 속에 누군가가
내 말을 지루하다고
자리를 뜨지 않게 열심히 아실이가
되어 본다.
독고의 사랑
사랑은 나에게 있어.
나 자신에 대한 치유의 방법이기도 했다.
끊임없는 사랑이라고 그렇게 누구든지 사랑을 했다.
교육원에 입사하는 학생들 친구들 이성 사람들까지
사랑에는 진실한 마음과 순수한 정신이 있었다.
작은 선과 악 사이에서 힘든 상황을 접하고는
내가 사랑한 방법이 잘못 되었다는 걸 알았다.
남편이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자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최상의 사랑은 나에게 돌아올 수 있는
순수한 바른길을 갈 때 느끼는 자유와 평화
누군가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진실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순수한 정신으로 사랑해 주길 바랐는데.
주위의 사랑하던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사랑은
이유가 있었다.
순수함이 아닌 계산적인 사랑이었던 것이다.
진실한 마음을 주면
삶으로 사랑이 넘쳐날 수도 있을 텐데…
계산적인 사랑은 그 실체가 드러나며 곧 깨지게 됩니다.
아픕니다. 너무 아픕니다.
인간에게 있어 관계란 무엇인가?
가슴에서 솟는 감정의 그림을 담고 싶었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바람이었다는 걸 혼자 살면서
느낀 일입니다.
아직 슬퍼하는 나에게 진실로 동정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온다면
나는 아마 또 사랑 꽃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이란
정말 살아가는 데 무수한 감정을 펼쳐 보는
이불 보따리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두릅을 따면서
애달프다 슬프다
가엾다 하지 말자
한 번 가버린 사람은 오지 않는데, 봄이 되니까?
여전이 남편이 심고 간 두릅나무에서는 뽀족뽀족
두릅이 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무성한 신록의 숲은
다시 태어난 생명들로 살아나는데‥
아픔을 묻어두고 살아온 시간들이
무덤가 꽃이 되어 아프게 저려오네
바람 따라 고뇌의 삶이 싫어서
먼저 가버린 그대를 되새기며
가시가 많은 두릅을 따면서도
손가락에 피가 나와도
감각이 없네요,
두릅을 따러 산에 올라가면
불편한 몸을 끌고 다니던 길목에서
두릅을 따던 그 모습이 떠올라서
수많은 사연이 되어서 다시 돌아오네,
“작은 가시달린 두릅아!”
너는 어쩌자고 다시 태어나는 거니”
너를 심어 놓은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데 말이다,
세월을 낚던 푸른 산의 그리움에
할 말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
바람결에 흩어지는 잔잔한 향기에도
눈물을 흘리는 여자가 되어 버렸네,
그래도 또
산길을 걸어본다 그대의 모습 그리면서
시린 맘 삭히면서 또 그 길을 걷고 있네,
가시가 많은 두릅을 따고 있다,
누구를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그 사람에
향기를 느끼면서 가시가 많은 두릅을 땄다
마지막 동행
강원도 홍천군 산골마을에 소박하고 아담한 초등학교를 가자고하면서
남편은 내가 근무하는 교육원에 왔다.
나는 출장을 내서 남편을 태우고 모곡 초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마치 김유정 선생님의 작품 (오월에 산골짜기)같은 분위기가 나는 산골 마을에
작은 학교가 있었다.
춘천에서 한 시간 정도 산을 끼고 꼬볼꼬볼한 산길로 가면 조그마한 마을에 있는 학교다
어느 시인의 어머니는 풀들을 발로 밟아 뭉개는 것도 죄스러운 일 중 하나라 해 듯이
그 마을에는 들에는 사람들의 손길이 닫지 않은 듯 청정 그 자체였다
바로 그런 시골마을에 모곡 초등학교가 있었다.
학생 수 19명 직원들 4명의 작은 학교를 찾았을 때 아이들의 들숨과 날숨소리가 엇박자로 부서지며 내 귓전에 맴돌았다
바람결에 따라 풍금소리에 맞추어 아이들의 합창소리도 들려왔다.
작곡가도 세월 앞에서는 마음대로 숨소리를 내는 법인데,
어찌 이 아름다운 소리에 반하지 않겠는가?
그 순박한 숨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어린 시절에 뛰어놀던 그리운 고향이 생각나는 곳이다.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그 곳에서 풍금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추억과 그 시절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 순간 어린 아이가 되고 말았다.
삶에 있어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파트와 자동차에 둘러싸여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없는 요즈음
도시의 아이들에 비해서
이곳의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순수하고 정겨운지 몰랐다,
세상이 온통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시의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학원이나 오락실에서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만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순박함과 자연에 대한 감정을 엿볼 수가 있었다.
마치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김유정 선생님이 살던 실레마을처럼 삼태기 모양의
아늑한 풍경도 있었다.
앞산에 바위들은 그림 같은 모양을 이루었고, 학교 앞에 작은 연못과 계곡에서는
마른 풀잎들이 구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자연의 힘과 정적 섞인 공간, 비킬 수 없는 무한창공 그런 힘들이 실려 있는 듯했다.
처음 학교에 들어왔을 때 남편의 첫 발령지가 이 학교였다.
몸이 불편했던 남편은 왜 굳이 이 작은 학교를 마지막으로 오고 싶어 했을까?
오늘 그 궁금증이 풀리고 말았다.
이 낯설지 않고 편안한 풍경 앞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예견했던 것일까?
편안함과 아늑함. 바위틈 속에 숨어 있는 낯선 씀바귀 잎이 꺼져가는
그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걸까?
나는 누군가와 눈을 맞추며 대화한 것이 얼마던가?
다시는 올 수 없는 그 옛날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는 소중한 어린 시절의 그리움들이 살아났다.
남편이 근무하던 시골학교 교정에서
그의 체취와 동심의 세계를 향유하다가 돌아온 날이었다.
마치 김유정 선생님처럼 젊은 나이에 훌쩍 떠나가 버린 그가 보고 싶었다.
텅 빈 운동장으로 삼월의 연둣빛 바람꽃 한 줄기가
교정을 빠져나가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련하게 보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