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032926 가해 강론
이사 50:4-7; 필리 2:6-11; 루카 22:14-23, 56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성주간이 시작되는 날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고, 그분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운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쉰들러의 리스트를 본 날 밤, 저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내가 거기 현지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을까? 내가 그런 일에 협력했을까?
나는 그런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을까? 나는 조용히 그런 쉰들러의 계획을 뒤엎어버리기 위하여 소리 없는 저항을 했을까, 아니면, 적어도 무언의 불온한 생각으로 조용히 저항했을까?
비록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하더라도 나는 쉰들러의 계획에 반대했을까? 하는 등의 생각으로 저는 잠을 설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께서 처형되신 이번 주간의 전례상의 사건에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에서는 십자가를 향한 여정에 오르신 예수님께 다양한 방법으로 응답해 드리는 인간의 양상을 제시하여 보여 주게 됩니다.
우리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칭송하는 무리의 사람들이 되어 성당 밖에서 행진을 하면서 성가를 높이 부르며 오늘의 전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얼마 후에 “그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는 외침에 동참하게 됩니다.
아마도 주말에 예수님의 죽음을 요구한 사람들 중 일부는 호산나를 부르며 한 주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또는, 왜 변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아마도 그 사람들이 외쳐대던 "호산나"는 진심이 아니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의 “그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는 외침도 진심이 아니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그 두 가지의 외침은 다 진심이 아니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옛날 그런 실제의 상황에서 저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저는 그 군중과 함께 휩쓸려 갔을까요?
과연 저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와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시던 그 여정을 지켜 보면서 그저 침묵하는 구경꾼으로 남았을까요?
저는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드렸던 찬사나 예수님께 내려진 처벌에 반대했을까요?
저는 제가 나치에 대한 딜레마에서 경험한 것처럼 답을 모르거나 그 어떤 종류의 결론적인 답을 알기가 두렵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가 그리스도교 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특히 적당히 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주일 미사에 꼬박꼬박 빠지지 않고 참례한다? 대체로 괜찮습니다.
제가 유망한 직업을 포기하는 이유가 그러한 직업상의 일이 세상이나 제 영적 생활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미친 짓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왠지 존경스럽습니다. 나의 가족이나 사회의 가치가 생명을 파괴하는 우상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비난하니, 돌아오는 것은 "그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라는 외침뿐입니다.
오늘 저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느 쪽이 주님의 뜻인지 헤아려 보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런 일은 오래 전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만 적용된 결정이라고 말하면서 결정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대면서 지금 당장 죽음을 외칩니다.
물론 전례 중에 우리는 맡은 역할로만 행동합니다. 아니면, 과연 그럴까요?
취해야 할 선택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나, 주일 날 아침에 만의 그리스도교 교인이 되는 사람들이나, 결과적으로 배신자가 될 그 선택의 여지는 항상 제 앞에 열려 있습니다.
제가 내리는 대부분의 선택은 생사 문제의 선택이 아닙니다. 제가 내리는 그런 선택은 "호산나"나 "십자가상 처형"을 외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대본이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에 내리는 선택이며, 인생의 역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타협적이고 마찰이 없도록 둥글게 내리는 선택입니다. 그런 선택을 내리는 데에는 큰 결정도, 큰 헌신도 없습니다.
제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다는 현상은 참으로 무서운 현상입니다.
제 삶을 정의하는 그 "작은" 배신이 다른 사람들의 "작은" 배신들과 합쳐진다면, 바로 그런 작은 배신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낼 수 있을 만큼 큰 영향을 미칠 그런 배신이 될 수가 있지 않을까요?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작은 목소리 하나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이 예수님을 골고다로 데려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현양(顯揚)하며 묵상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스러움을 변명 없이 정직하게 마주해야 합니다.
저 자신을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저의 "작은" 죄들, 즉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기를 문득문득 거부하는 것, 그리고 나의 행위나 불충분한 행동이 하느님과 이웃에게 미칠 결과에 대해 잠시 소홀히 하는 것 또한 분명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성주간에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단순히 세상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나 자신의 "그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부르짖으며 내가 지은 죄로부터 나를 구원한다는 것을 상기합니다
첫댓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늦었지만 금경축을 축하드립나다. 베트남 여행 하신 사진 도 잘 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건강 하세요.
감사함니다~
신부님~
건강하세요~~♥︎
고맙고 감사합니다 신부님
신부님♡
감사합니다 ^~^
아멘.아멘!
묵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50주년 금경축을 축복합니다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건강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 건강하세요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아멘 🙏
신부님! 감사합니다
환절기에 건강조심하세요.🙏❤️
샬롬,
주님께서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 처럼,
양키나라에도
이스라엘에도
이란에도
어서 입성하시기를 빕니다.
당신 부활의 축복과 함께 평화를,그 세 나라에 뿐만 아니라 온 세상 가득차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특히 남북이 분단되어 지금도 으르렁대는
우리나라도 결코 잊지 말아 주십시오.아멘.
ㅡ금경축을 맞이하신,정신부님 축하인사와 만수무강의 은혜를 간구해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