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번호:지방기념물 제 1호
시 대:조선시대
송강 정철은 선조17년에 대사헌이 되었으나 동인들이 합세하여
서인을 공박함이 치열 해지자 마침내 양사(兩司)로 부터 논척(
論斥)을 받아 다음해 조정을 물러나자 이곳 창평으로 돌아와 4년
동안을 평범한 인강으로써또한 시인으로써 조용한 은거를 하였다
여기서 그는 사미인곡을 썼던 것이다 [송강별집] 권 7기옹소록에
[前後思美人曲(전후사미인곡) 在批鄕(재비향)(昌平) 時小作不其年
(시소작불기년) 苡是丁泫戊子年間耳(이시정액무자년간이)]라는
기록을 보면은 양사미인곡 제작은 창평으로 돌아온해로부터2-3
년 뒤가 된다 사미인곡은 제명 그대로 연군지정을 읆은 노래이다
그 수법은 한 여인이 남편을 이별하고 사모하는 정을 기탁해서
읆은 것인데송강 자신의 충정을 표현한 노래라 하겠다 심각한
실의에 빠져 있었던 때이라 송강은 이때 세상을 비관했고 음주와
영탄으로 이곳에서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정면 3칸 측면3칸의 골
기와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재실이있는구조이며 정면엔 송강정 측
면엔 죽록정이란 현판을 가지고 있다
1)교통
광주 두암동 정류소에서 담양방면 322번 군내버스
이용하여 쌍교에서 하차 좌회전 100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2)도로
광주두암동 정류소에서국도29호선을 이용 증암천과 교차지점
쌍교를 건너기 전 좌회전 1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