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시 제주북부예비검속희생자원혼 합동위령제」에서 낭송한 시수필.
무궁화로 피어나다
이숙영
아버지는 사삼사건으로 사라봉 기슭에서 숨을 거두시고
큰오빠는 예비검속으로 죄 없이 끌려가 바다에 수장
"집안의 주춧돌이 무너졌다" 어머니의 애끓는 한숨 소리는
여덟 살 어린 내 가슴을 설움으로 철들게 하였어라
못다 한 생을 천상에서 즐겁게 지내라며
오빠가 늘 불던 섹소폰을 바다 멀리 던져 주고
짧은 운명 대신하여 비석 옆에 심어 놓은 무궁화 한 그루
고내봉 부모님 산소 앞에서 육십 육년 피고 지네
아버지의 빈자리를 기타 치며 노래로 채워 주던 큰오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동생들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남편과 아들을 보냈는데 더 비참할 일이 있겠냐던 어머니는
삼십 년 아픈 세월 잘 견뎌 내다 두 분 곁으로 가셨네
오빠 생각 날 때면 노래로 그리움을 띄운다.
- 고내봉 산허리에 핀 꽃 무궁화 꽃은
어머니가 가꾸어 논 오빠의 영혼
시대의 아픔을 잠재우고 꽃으로 피어나네
임은 가고 없어도 곱게 피는 무궁화
첫댓글 '예비검속희생자원혼위령제'에서 시수필을 낭송할 때 작년과 달리 올해는 목이 메어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