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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강] 이미지의 종류.4
강사/김영천
3)상징적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를 알기 위해선 먼저 상징이 무엇인지 알아야
겠지요? 상징은 비유와 함께 시의 내용을 이미지화 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비유는 두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반면 상징은 하나의 이미지만을 표면에 내 세웁니다.
그러나 비유적 이미지에 대한 연구는 순차적으로 상징적
이미지에 대한 연구와 중첩이 됩니다.
상징은 어떤 대상이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부합되는 다른 의미나 관념을 표상하는 것인데, 대상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을 원관념, 거기에 부합되는 다른 의미나
관념을 표상하는 것을 보조관념으로 이해하시면 앞으로의
강의가 알아듣기 좋습니다.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하기로 하지요.
여러분 비둘기, 그러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평화지요?
우체국이라고 하신 분도 맞습니다만, 여기서는 평화로 하지요.
또 십자가와 연꽃은요.
그렇지요. 교회와 불교를 표상합니다. 그렇듯이 푸른 소나무
는 절개를, 떠오르는 태양은 희망을 표상하게 되며, 그 대상
물들은 하나의 상징이 됩니다.
여기에서 비들기나 연꽃, 십자가, 소나무, 태양은 우리의
감각적, 지각적 대상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되며, 이러한
이미지들이 상징으로 기능하므로 상징적 이미지가 되는 것
입니다.
기관감각적 이미지를 배울 때, 슬프다는 것이나 기쁘다.
즐겁다, 아름답다는 것은 기관감각적 이미지가 될 수
없는가 물어오신 분이 계시는데 여기에 그 답이 있군요.
기관은 우리 신체의 기관을 말하구요. 감각은 느끼는 것
이니 우리 신체의 기관이 감각하는 것을 말하며, 또한
이미지는 이런 감각이나 지각 그 자체가 아니라 감각적,
지각적 대상이어야 함으로 슬프다 나 기쁘다 이런 것은
이미지가 안되는 것입니다. 슬프다나 기쁘다는 감정을
시어로 직접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각한 이미
지로 이런 기쁨과 슬픔을 나타내어 주어야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지요.
이야기가 옆으로 많이 흘렀네요.
아무튼 쉽게 말하면 어떤 대상이 원래의 뜻과 다른 뜻으로
표상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이버 상에서 많이 보는 것인데요. 하트 표시가 많이
이용되더라구요. Heart 의 원 관념은 심장입니다.
♡♥은 심장을 그려놓은 것이구요. 그러나 이 표시는
무엇으로 쓰입니까? 심장입니까? 아니지요. 그렇지요.
사랑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심장은 원관념, 사랑은 보조 관념이며 심장이 아니라
사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제 좀 아시겠지요?
상징적 이미지는 원관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비유와 서로
닮아 비유적 이미지와 서로 헷갈리는 면을 가지고는 있습니
다만, 상징의 특성은 어떻든 은유와 다르게 처음부터 원관
념이 전제되지 않고 보조관념을 내세우기 때문에 그 의미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상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상징적 이미지는 강한 암시성을
띠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용직의 견해를 들어보기로 하지요.
"한편 상징적 심상의 기본 개념의 정립을 위해서는 당연히
상징의 문제가 논의되어야 한다,(......)그러니까 상징은
그 개념의 차원이 비유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유는 그
함축성이 아무리 강한 경우에도 그 상상력의 뿌리가 유추가
가능하다. 그러나 상징은 대체로 그것의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그 동기 자체가 우리 자신의 의식의 뿌리를 내린 광막한
영역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좀 어려운가요?
말하자면 비유는 두 이미지를 결합시키기 때문에 아무리
감추어도 상상력으로 그 뿌리를 찾아낼 수 있으나, 상징은
하나의 이미지만 표면에 내세우니 그 실체를 잡기가 어렵
다는 말이지요.
예문을 들어가며 살펴보기로 합시다.
먼저 여러분들이 너무도 잘 아시는 유치환의 <바위>를 읽어
보실까요?
내 죽으면 한 개의 바위가 되리라
아예 愛憐(애련)에 물들지 않고
喜怒(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대로
億年(억년) 非情의 緘默(함묵)에
안으로 안으로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遠雷(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때 분명 이 바위는 그냥 자연물
의 바위가 아니라 무엇을 상징한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바위가 그 대상물로서가 아니라 무엇을 표상하는가?
그 이면에 어떤 의미들을 숨기고 있는가? 그 것이 바로
바위가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바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나
시적 의미들을 통해 그 것이 암시하는 바를 추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위가 일반적으로 연상시키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무거움, 그렇지요. 강함, 그렇지요.단단함도 뭐 강한하고
같으니까요. 그럼 단단함도 넣읍시다. 신중함을 들 수 있겠
지요. 그리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사람과 대비해서 감정의
기복, 변화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비유되기도
하지요.
이 시에 대한조태일님의 해설을 곁들이니 한번씩 읽어보
십시오.
"여기에서도 의인화된 비유는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애련에 물들지 않"는 비정함과 노여움, 성냄, 기쁨 따위의
감정에 물들지 않고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도 그저 함묵한
채 자신을 지키고 견디며 안으로 더욱 강해지는 게 바로
바위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생명도 망각"하는 초
월의 경지에 이르러 그 어떤 외부 자극에 흔들림이 없는
존재의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바위는 이러한
세계를 소망하는 시인의 강한 의지나 신념, 초연함 ,초극
의 경지, 달관의 세계를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또는 일
체의 생명에 대한 허무 의식을 상징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며, 읽는 사람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해석에 따라서 또
다른 다양한 의미들을 끄집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기형도님의 <빈집>을 들어보겠습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시가 좀 어려운 것 같지요? 아주 많은 비유적 이미지들이
쓰였기 때문인데요. 보실까요?
'짧았던 밤들',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이 다 비유적 이미지들입니다.
사랑을 잃은 화자는 이 여러 비유적 이미지들을 구사하면
서 사랑의 열망을 보내고 난 후의 절망감과 허무를 '빈 집'
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사용하고 있는 이 '빈집'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는 이 시의 전체의 문맥을 떠나면
창의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먼 인습적 상징이지만,
이 시에서는 개인적인 실연의 체험을 통해 시인이
구사한 섬세한 비유적 이미지들의 다발 때문에 독창성과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훌륭한 시적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언젠가 강의 시간에 내 주위의 사물이 너무 익숙하듯이
그런 익숙한 비유나 상징은 시에서 좋지 않습니다. 독창적
이면서도 보편성인 것들을 써야하겠지요. 그 것이 바로
낯설게하기라고 배웠지요.
비유나 상징도 모두 너무 흔하게 사용했던 것들, 인습적
인 것들을 사용하면 좋은 시가 되지 않는 것을 오늘의 주
제와는 상관이 없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윤동주님의 <자화상>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서 돌아갑니다
<自畵像>의 부분입니다.
이 시의 중심정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우물이지요? 맞습
니다. 우물입니다. '우물'의 상징적 이미지 속에는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가을'같이 이 시인이 즐겨
사용하는 상징적 이미지들이 다발로 들어 있고 '한 사나이'
의 이미지도 들어 있습니다. 우물은 화자의 순수한 정신적
깊이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며, 다른 이미지들도 화자의 정
신 속에 존재하는 사유들을 구체적 사물로 육화(肉化)시켜
표현한 것입니다.
특히 '한 사나이'의 이미지는 물질주의의 세상에 대한 내
면적 고뇌 속에 갈등을 겪고 있는 고독한 자아를 반영하는
상징이지요.
한 시인이 자기의 시에 계속된 상징어를 사용함으로서
보편성을 갖게도 합니다. 예를 들면 갯땅쇠라 하면
그 말 뜻도 몰랐던 분들이 이제는 갯땅쇠 하면, 김영천을
떠올리는 것도 아마 갯땅쇠가 김영천을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독창적으로 만든 상징이 그 시인의 시에서
만은 어떤 상징적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겠지요.
오늘 너무 강행군 하셨나요?
오늘로 해서 이미지에 대한 강의는 모두 끝났습니다.
이 이미지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 번 주말에는
이미지만 한 번씩 복습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또 내일 뵙지요.
좋은 글이 있어서 옮겨왔습니다.
가벼운 맘으로 읽어보십시오.
가을에는 유치한 사랑을 하자
속살 환한 단풍
사흘 전에 산보를 하다가 너무 예뻐서 단숨에 안아버렸습니다
뒤꿈치 들고 살금살금 다가와 두 눈 살짝 가리고는
"내가 누구게?" 하고 찾아오는 가을은
언제나 가슴이 먼저 알아채고 저 혼자 콩닥거리는 것일까.
버스를 기다리다가 빨간 우체통을 보니 가슴이 설렌다.
막 내려앉은 고추잠자리 날개 같은 이파리 한 장을 주워 책갈피에 넣어 두었다가 편지 봉투에 우표 대신 붙여 보내도 그리운 사람에게 전해질 듯 하다. 벌레에게 한입 베어 먹힌 놈이거나 몽고반점 같은 초록이 엉덩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놈이면 더욱 그러할 것 같다. 가을이 깊어져 좀더 쓸쓸해지기 전에 서둘러 사랑을 시작해야겠다.
딱히 연애다운 연애도 못해 본 놈이 괜히 또 사랑 타령을 하다가 상처만 하나 더 키우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이 가을에 시작할 생각이다.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적어도 나는 좀더 성숙해져 있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하여도 가을은 사색하고 연애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아침 일찍 눈이 떠지거든 가을하늘을 한번 보라. 맨손체조 하던 바람이 상쾌한 공기를 깊게 들이키면 잘 닦인 하늘이 빨려 내려와 깨질 듯 위태롭게 맑을 것이다. 기차라도 지나가면 덜컹거리다가 쏟아질 것 같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그리운 사람과 함께 코스모스가 핀 어느 간이역을 걷고 싶다면, 오랫동안 부치지 못했던 편지를 부쳐도 좋을 것이고 좀더 용기를 내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가을에는 직설적이어야 하는 여름의 사랑과는 다른 유치한 사랑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유치해진다고 흔히들 말한다. 나는 그 유치함을 아름다운 낭만이라 부른다. 평소에는 낯간지럽게 여기던 것들도 내가 애인과 직접 해보면 낭만이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령, 한적한 공원에서 '나 잡아 봐라' 놀이를 하는 연인이 그렇고, 단숨에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를 손잡고 조심조심 건너는 일이 그러하며, 들꽃을 애인의 머리에 핀처럼 꼽아 주고 깔깔거리는 것이 그럴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술렁이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 한번 단풍이 들기 전에 사랑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끼는 편지가 한 통이 있다.
대학 시절에 받은 것인데 나는 지금도 그것을 서랍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들국화 꽃잎 과 코스모스 꽃잎으로 편지지 구석구석을 빽빽하게 메워 보내 온 연애편지가 그것이다. 물론, 그녀는 시집가서 남편에게 사랑 받으며 아이도 셋이나 낳고 잘 산다고 누군가에게 들었을 뿐이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아직 그 꽃편지를 버리지 않았다. 그녀의 예쁘고 고운 마음을 함부로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사랑했어도 괜찮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해본다.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거나 현재 사랑하는 사람과 좀더 특별한 연애를 하고 싶거든 정성들인 편지를 우체통에 넣기 바란다.
가까운 공원에서 찾은 네잎 클로버도 좋고 예쁘진 않지만 개성 있는 낙엽이나 들꽃 등으로 편지지를 장식해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 정성을 들인 한 통의 편지는 그 어떤 선물보다도 큰 감동을 줄 것이다. 아마 '너에게 그런 면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 라는 말을 하며 어쩔 줄 몰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을 하면 모두가 시인이 된다는 말도 있으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좀 서툴긴 해도 사랑을 하는 순간 이미 시인이 되어 있을 테니까.
예쁜 강아지풀이나 억새풀, 개망초꽃 같은 들풀이나 들꽃을 한 다발 선물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꽃집에서 예쁘게 포장된 꽃을 사주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감동적이다. 정성껏 다듬어진 그것들을 어설프게 포장해도 무방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특한 정성이 한몫을 단단히 할 것이다. 방치해 두었던 조약돌이나 조개 껍데기를 함께 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는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기차를 타고 무작정 떠나는 일도 새로운 추억이 될 것이다. 버스를 이용해 올망졸망한 외곽으로 나가는 것도 좋겠다. 혼자이어도 좋을 것이고 함께라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이다. 쓸쓸히 들길을 걷다 보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생각나는 법이고, 함께 걷고 있다면 서로에게 숨겨진 마음이 좀더 환해질 것이다. 풀꽃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기도 하고 간판조차 없는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불량 과자를 사 먹어도 좋으리라. 그 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아늑한 방 하나를 쉽게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한 후배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며 울었다.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다. 사귄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으니 한달 조금 넘었다고 했다. 나는 일회용 밴드 같은 사랑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담배 한 대 피우고 서둘러 자리를 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가을에는 유치한 사랑을 해보자. 서로에게 진지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해보자는 것이다.
또 생각난 듯 등나무 이파리 하나가 벤치에 슬쩍, 가벼운 어깨를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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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윤후명 (1946∼)
철새들 乙乙乙 날아간다
乙乙乙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러나 乙乙乙
고개를 들라고 날개를 친다
모름이 곧 앎이니
날아갈 뿐이니
삶이 곧 낢이니
날개를 친다
너는 어느 땅에 붙박혀 있는가
묻는 상형문자 乙乙乙
음역하여 내 삶에 숨을 불어넣는다
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의
소리글자 날개
춘분도 지나고 이제 겨울철새들 날아갈 때인가. 추운 고장을 향해 먼 길 떠나는 새들이 딱하다. 하지만 내가 따뜻한 걸 워낙 밝히듯이 그들은 추운 날씨를 좋아할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설레고 있을지도. 저마다 타고난 체질과 성정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늘 높이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을 보면 겨드랑이가 들썩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깃털 달린 영혼의 소유자들. 비행기를 봐도 그들은 발바닥이 간지러울 것이다. 그 유랑의 무리가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것은 먼 고장, 다른 고장에 대한 향수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이나 몸이나 끊임없이 떠돌아야 사는 체질 때문이리라. 사실 우주의 본질은 움직임 그 자체이니 그들의 삶이야말로 우주의 이치에 합당한 것일 테다. 시인은 말한다. 잠시도 한 모양으로 머무르지 않는 것, 움직이는 것, 곧 날아가는 것이 삶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정체해 ‘어느 땅에 붙박여 있구나!’ 철새들의 비행 행렬을 보며 시인은 한 삶에 안착한 자신의 모습을 새삼 깨닫고 호흡곤란을 일으킬 지경이다.
새 을(乙). 과연 둥긋하게 앉아 있는 새의 형상이다. 상형문자의 형상을 이용해서 시 속에 새를 그려 넣었다! 그 글자의 소리를 ‘을을을을을을을…’적어서 아득히 날아가는 새떼들의 날갯짓과 날개소리, 그로부터 땅으로까지 전해지는 공기 가득한 떨림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살갗에 느끼게 한다. 그 발상과 솜씨가 기발하고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