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지리산문학상 / 정윤천
발해로 가는 저녁 / 정윤천
발해에서 온 비보 같았다
내가 아는 발해는 두 나라의 해안을 간직하고 있었던
이쁘장한 한 여자였다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자전거를 다루어 들을 달리던
선친의 어부인이기도 하였다
학교 가는 길에 들렀다던 일본 상점의 이름들을
사관처럼 늦게까지 외고 있었다
친목계의 회계를 도맡곤 하였으나
사 공주와 육 왕자를 한 몸으로 치러 냈으나
재위 기간 태평성대라곤 비치지 않았던
비련의 왕비이기도 하였다
막내 여동생을 태우고 발해로 가는 저녁은
사방이 아직 어두워 있었다
산협들을 연거푸 벗어나자
곤궁했던 시절의 헐한 수라상 위의
김치죽 같은 새벽빛이
차창에 어렸다가 빠르게 엎질러지고는 하였다
변방의 마을들이 숨을 죽여 잠들어 있었다
병동의 복도는 사라진 나라의 옛 해안처럼 길었고
발해는 거기 눈을 감고 있었다
발목이 물새처럼 가늘어 보여서 마침내 발해였을 것 같았다
사직을 닫은 해동성국 한 구가
미처 닿지 않은 황자나 공주들보다 먼저 영구차에 오르자
가는 발목을 빼낸 자리는
발해의 바다 물결이 와서 메우고 갔다
발해처럼만 같았다
이번 지리산문학상 수상자인 정윤천 시인은 1960년 전남 화순 출생으로 19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1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 ‘흰 길이 떠올랐다’, ‘탱자꽃에 비기어 대답하리’, ‘구석’ 등과 시화집 ‘십만 년의 사랑’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