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기 -2016년 이화의 여름을 기억한다
박진경
교수님 빨갱이가 뭐에요? 그러니까 네가 빨갱이지!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나는 곰곰 생각한다
빨 갱 빨 갱 씹히는 맛이 좋아 젤리인가?
내 몸에 빨 강 한 알도 없는데...
가끔 아주 가끔 밑으로 피를 흘릴 뿐
이제 그 마저도 흘리지 않는데...
요즘 죄다 폐경기라서 텅 텅 빈 인문대 소강당
환영사를 마친 교수님이 박수를 치시며 우리들을 기 다 리 신 다
00:01 - 11:11
안으면 안는 만큼 움푹해지는 소파가 몸에 꼭 맞는 무덤이 되기까지 계속되는 포옹 속에서
뭉텅뭉텅 만져지는 얼굴이 너야?
생크림시멘트 범벅으로 계속되는 입맞춤 속에서 씹히는 포도알
나야. 방금 들었어? 엎질러진 곤충채집통에서 실로폰 터지는 소리 나는 보았어. 새하얀 아이들의 발목 빈 나뭇가지에 걸려 헛도는 자전거 바퀴
그것이 애 얼굴이라면 기억나?
흔들의자에서 두 사람 같이 두 사람 같이 흔들리는 오후가 가고 켜 놓은 티브이는 꺼져버리기 위해 채널링링을 한다 > 하루에 세 번 양치하듯이 파 앙 파 앙 울어주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 레, 미, 파 쏠-! 쏠의 치닫는 자세입니다
활 쏘는 체위로 성욕을 스트레칭하고 무너진 잇몸으로 호두를 씹으면 뭐랄까, 마릴린 먼로의 사진이 걸린 노인의 방에서* 빵이 충분히 빵 같지 않은 기분이랄까 파 앙 파 앙 부서지는
나 봐봐. 등을 두드려주면 효과가 배가된다 해서 여기저기서 주워온 팔들을 매달아 봤어 예뻐?
애벌레가 사과를 파먹으며 포옹하듯 계속되는 포옹 속에서 깊어지고 검어지는 구멍 속에서
숨소리가 숨소리를 지우고
두 사람 같이 두 사람 같이 뒤척이다가 싱글사이즈 침대에서 올려다 본 멈춤 11:11
*찰스 부코스키, <대립>
-「실천문학 」2017년 가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