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인 시인의 "식구" 외 2편
_저편으로 건너갈 무렵의 그리움
글/박철영
하얀 눈을 백설이라하듯 마음이 맑은 사람을 해맑다고 한다. 그것은 눈을 보면 안다. 처음봐도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된다. 눈으로 보고 말을 걸어 안면을 튼다고 한다. 안면이란 뜻에서처럼 눈으로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이상인 시인은 눈빛이 순해 시골 촌집을 쏙 닮았다. 눈으로 확인을 하지 않아도 이미 시인의 모습을 봐 버린거나 진배 없다. 도시에 살지만 행색도 시골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시도 그런 모습이 아닐까. 교사인 시인의 눈을 닮은 아이들이 초롱초롱 빛날 것 같다. 혹시 이상인 시인과 만나는 날에 눈이라도 펑펑 와 준다면 참 좋겠다.
수십 번의 생에서 만난 흰 나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것일까
하늘을 가득 채우더니
메마른 마음을 깊이깊이 뒤덮는다.
이런 날은
뼈마디 부서지도록 열심히 살아온
시간을 한 장 한 장 되넘겨가며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어진다
아직 그려지지 않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여백을
아득히 그리움으로 스케치하고 싶어진다.
지금까지 따듯한 사랑으로
나는 그대를 건너왔다.
여기서 만난 모든 인연이
흔적없이 저편으로 건너갈 무렵
은은하게 빛나는 추억위로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흰 나비 떼
정든 이름처럼 반짝반짝
온 세상을 가득 메운다.
<백설白雪> 시 전문
"수십 번의 생에서 만난 흰 나비들이/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며 자신의 어릴적 추억으로 빠져든다. 누구나 "수십 번의 생"으로 만날 수 있는 인연은 흔치 않다. 눈은 내려 녹아 없어지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하얀 눈을 시인은 순간적으로 흰나비로 환생시켜버린다. 그래야 생에서 만난 수십 번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 "하늘을 가득 채"운 흰 나비들이 다가와 "메마른 마음을 깊이깊이 뒤덮"어 주기를 바라고 누군가에게 위안을 받고 싶은 것이다. 유년의 추억은 나이 만큼 더 깊어져 삭막해진 가슴을 순진한 아이처럼 되돌려 놓기도 한다. 이에 그치지않고 소싯적 추억은 꿈으로 고스란히 남아 살아가는 동안의 눈높이를 끝없이 높이도록 요구한다. 문득 눈 내리는 풍경을 보다가 자신의 유년 이후의 추억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날은/뼈마디 부서지도록 열심히 살아온/시간을 한 장 한 장 되넘겨가며/꼼꼼하게 읽어보고 싶어진다."고 자신에게 독백처럼 말한다. 누군가는 "뼈마디 부서지도록 열심히 살"아 왔다는 것인데, 이것은 시인의 삶을 말하는게 아닌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의 만만찮던 모습을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눈 오던 날의 풍경과 오버랩되는 아버지가 떠올랐을까? "뼈마디 부서지도록" 살아온 분들이 있었기에 행복한 어린 시절이 가능했음을 나이들어 알게된다.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다는 것은 되돌아보면 그분들의 노고에 대해 마음먹고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음을 늦게서야 깨닫는 것이다. "지금까지 따뜻한 사랑으로/나는 그대를 건너왔"음을 고백한다. 자신이 여기까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스스로가 아닌 부모 세대의 사랑이었고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인정하고 감사해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서 만난 모든 인연"은 자신의 삶 속에 끝없이 다가와 부대끼던 소중한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흔적 없이 저편으로 건너갈 무렵/은은하게 빛나는 추억 위로/무수히 쏟아지는 흰 나비떼"처럼 소중한 인연으로 알겠다는 것이다. 시인은 "정든 이름처럼 반짝반짝" 빛났을 소중한 시람들을 떠올린다. 시인은 수업을 하다 눈 오는 풍경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풍경은 때론 가슴을 촉촉하게 젖어들게 한다. 삶이 순한 사람의 눈은 그래서 마음도 한 없이 맑다.
동박새가 매화 가지 사이에서 날아오더니
쮸 쮸, 찌이, 찌이, 쮸 쮸
빠른 장단으로 옹알이하며
스스럼 없이 동백나무 품으로 파고든다.
기다렸다는 듯이
푸른 옷섶을 여미며 받아 안는다.
눈썹 닮은 또 한 놈이
쮸 쮸, 찌이, 찌이 부리나케 날아와
함께 꿀을 빤다.
어리광부리듯이 이 꼭지 저 꼭지
돌아가며 맛있게 꿀을 먹고는
만개한 벚꽃 속으로 장난처럼 사라진다.
열심히 그 뒷모습을 쫓는 동백나무의
무수한 눈동자가
스물네 시간, 사방팔방으로 열려있다.
<식구> 시 전문
웬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 뒷모습을 쫓는 동백나무의/스물네 시간, 사방팔방으로 열려있"다로 끝내는 시의 맺음은 더 많은 이야기를 아끼고 우리들에게 그들을 바라보라는 여백의 메시지인 것이다. 여백으로 남긴 그곳을 지나야 다다를 수 있다는 동백나무 숲으로 지금부터 걸어가 보자. "동백나무" 숲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시인의 가슴에만 존재한다면 혹시 어머니를 뜻하지는 않을까? 그러면 동박새는 동백나무가 낳아 키운 아들과 딸이 되는 셈이다. "동박새가 매화나무 가지 사이에서 날아오더니/쮸 쮸, 찌이, 찌이, 쮸 쮸/빠른 장단으로 옹알이를 하며/스스럼없이 동백나무 품으로 파고"든다고 하는데 왜 하필 날아든 곳이 동백나무숲이어야 하는가 생각해보자. 그것도 "매화 가지" 속에서 도망나오다시피 절박하게 울부짖으며 동백나무로 날아들고 있다. 그리고는 안도의 "쮸 쮸, 찌 이,"라며 동백나무의 품에 안겨 기쁨의 울음을 터뜨린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푸른 옷섶을 여미며 받아 안"아 준다는 표현으로 충분히 속내를 드러낸다. 동박새나 사람이나 닮은 족속이라면 잘 어울릴 수 밖에 없다. 동박새의 부리로 묻어온 검붉은 동백꽃은 동박새의 전 생의 엄마다. 동박새는 아이가 어미를 찾듯 겨울 내내 봉긋한 제 어미의 젖을 빨기 위해 울부짖은 것이다. 어미는 울음소리만 듣고도 제 아이인줄을 안다. 그래서 동백나무는 동박새가 언제라도 날아들면 "푸른 옷섶을 여미며 받아 안"아 다독이는 것이다. 비록 나무와 새 사이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친 유전적 요소로 보면 그만이다. 그들을 통해 우린 껴안음의 의미를 알아가고 삶으로 실천하면 된다. 여수 오동도 동백숲을 걷다가 동백꽃 붉은 울음을 따라 가고 싶을 때가 있다. 내 몸에도 겨울 동박새의 울음으로 잠긴 동백꽃물 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미물도 서로를 다독이며 함께 살아간다. 소소한 순간을 놓치지않는 시인의 눈이 그래서 아름답다.
새로 난 숲길, 소나무의 실팍한 허리에
고삐 같은 쇠사슬로 묶여있는 그를 발견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을 뿐인데
한껏 부풀어 오르던 내장은
갈라터진 뱃살 사이로 삐져나오고
한쪽이 꺼진 안장에는 푹신하던 스펀지가
푸석푸석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둥근 울음을 꾹 눌러 참고 있었다.
둥글둥글 굴리고 왔던 웃음들이
그동안의 거리와 속력만큼이나
깊고 어두운 울음으로 변하여
소나무 주위를 무겁게 짓눌렀다.
새로 난 숲길을 우렁우렁 소리치며
맘껏 달려 나갈 태세로
페달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마도 덩치 큰 소나무마저 뽑아내버리고
휙휙 휘파람을 불며 뛰쳐나가고 싶었으리라.
<폐자전거> 시 전문
"소나무의 실팍한 허리", "속력", "우렁우렁 소리" 이런 류는 젊음과 가깝다. 자전거의 "페달" 이런 것은 누군가의 힘이 필요한 것이고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 시인의 눈에 비친 풍경은 고요한 숲속의 관점을 뒤바꿔버린다. "고삐 같은 쇠사슬로 묶여있는 그를 발견"하면서 모처럼 산책 나온 기분이 확 상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둥근 울음을 꾹 눌러 참고 있"어야만 한다. 아니 시덥잖게 쓸만큼 쓰고 버린 자전거를 보고 "둥근 울음"을 눌러 참고 말게 뭐야?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를 사람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자전거의 부품을 인체의 부분으로 대체해본다면 금방 무슨 뜻인지 느껴질 것이다. 시인의 나이가 벌써 반백을 벗어나고 있음을 놓칠수는 없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을 뿐"인 자신을 되돌아 본 것이다. "둥글둥글 굴리고 왔던 웃음들"도 부질없다. 더 처참한 것은 "한껏 부풀어 오르던 내장은/갈라터진 뱃살 사이로 빠져나오고/한쪽이 꺼진 안장에는 푹신하던 스펀지가/푸석푸석 고개를 내"미는 볼상사나운 꼴불견으로 방치되어 버렸음을 그저 지나칠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탄력있고 탱탱하던 몸도 이젠 "푸석푸석"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자전거와 딱 닮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깊고 어두운 울음으로 변하여/소나무 주위를 무겁게 짓"누르는데 더 비참한 것은 "고삐 같은 쇠사슬로 묶여 있"고 그곳이 "새로 난 숲길,"이었고 젊은 세대일 "소나무의 실팍한 허리"에 꼼짝없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힘으로 새로 난 숲길을 "맘껏 달려나갈 태세로/페달은 숨을 죽이고" 기회를 옅보고 있지만 기회는 올 수 없음을 알아챈다. "소나무"에 옭매인 시인을 "단단히 조립된 몸의 부속뿐만 아니라/시도 없이 어지럽게 일렁이던 마음마저/낱낱이 해체되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사람이나 자전거나 영원히 살거나 굴러갈 수는 없다. 언젠가 그런 때가 다가온다. 그렇다고 슬퍼하진 말고 후회없이 살자. 그런데 괜히 눈물이 나네. 시바.
첫댓글 전체적으로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맨 마지막 문장이 필이 확 꽂히네요~~
저도 눈물날것 같은^^
~~^^
그러면 다행이지요.
철렁 회장!! 고생했네. 나도 마지막 줄이 눈물나네, 시바-
워낙 시가 좋아 내가
흠이 되지않았음 좋겠네~~^^
어떤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란
사람의 눈빛을 기억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게는 그렇습니다
맑다는 것은...
누군가를 기억하고자 하는데 눈빛이 흐릿해 기억나지 않으면 조금 답답해집니다
눈빛이 맑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 행복합니다^^*
눈이 가장 맑은 사람이자나요.
눈과 마음이 맑아서 좋은 시를 쓰나봐요
시를 쓰는 사람들은 모두 눈이 맑아요.